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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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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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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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30화

DUMMY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하은의 말과 행동은 나를 당황케 하기 충분한 돌발행동이었다.

이럴 때 침착하게 머리를 빨리빨리 굴려서 사태를 파악하고 해결법을 내놓는 게 익숙해야 하는데 막상 들이닥치면 항상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빨리 들어가, 곧 경비병이 더 몰려올 거야.”

“너도 와야 할 거 아니야?”


나도 안다, 같이 갈 수가 없으니까 하은이가 이런 분위기를 잡았을 거라는 정도의 눈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듣지도 더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조차 해보지 않고 그냥 냅다 휭 가버리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안다.


- 철컥.

- 우우우웅!


같이 가자는 내 말에 하은은 말보단 보여주겠다는 듯 열쇠처럼 꽂은 호위대장의 검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그 즉시 알현실로 향하는 통로에 보호막이 생기며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다.


- 텁.


하지만 하은이 다시 검을 잡자 보호막이 사라지며 닫히던 문이 도로 열렸다.


원래는 호위대장이 잡아주고 있어야 하는 저 검을 이제 우리 중 누군가가 붙잡고 있지 않으면 알현실로 향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근데 넌 그런 건 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한편으론 이 와중에 그게 뭐가 중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하은은 호위대장이 쓰러지자마자 검을 가져가 문을 열었다.

마치 꼭 이 순간이 오면 이렇게 행동하려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뻔하잖아, 책에서 봤어.”

“책?”

“여긴 이미 멸망한 도시야, 엘프의 나라 라프론의 수도 왕의 숲, 그게 이 도시의 이름이야.”

“그럼 네가 아까 성벽에 쓰여있는 글자 보고 도시라고 했던 게⋯.”

“기록에 따르면 라프론이 탑에서 나온 몬스터를 막지 못해 전쟁에서 패배한 날 왕의 숲이 갑자기 뿅 하고 사라졌대, 꼭 마법처럼.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는데 여기 있었네.”


아무래도 하은은 단순히 엘프어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그 외의 다양한 지식도 가지고 있나 보다.


“하은아? 일단 알았으니까 그 검부터 놓고 얘기 좀 할까?”

“그,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한편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형과 아린이가 혼자 뭔가를 각오한 하은이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하은은 검을 붙잡은 채 완강히 버텼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빨리 들어가세요, 어차피 누군가 이걸 잡고 있지 않으면 저 안으론 절대 들어갈 수 없어요. 언니도 알잖아요, 부술 수 없다는 거.”

“⋯⋯⋯⋯.”


이미 보호막을 한 번 때려본 아린은 하은의 말에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저게 그렇게 단단해?”


원래 거짓말을 못 하는 성격이라곤 해도 부술 수 있다는,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는 빈말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튼튼하다는 건가, 나는 아린이에게 작게 속닥였는데 또 그걸 들은 하은이 대신 대답했다.


“단단한 거랑은 달라, 특수한 패턴의 마력망이 물리 에너지를 분산시켜서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거야. 원래 같으면 내가 패턴에 균열을 일으켜서 부술 수 있게 만들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 말한 하은은 갑자기 입을 움찔거리더니 미처 붙잡지 못한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트리며 말했다.


“이제 나한텐 그런 간단한 마법을 쓸 마력조차 남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런 일이라도 할 수 있게 해줘.”


그런 말을 들은 우린 충격에 잠시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하은의 행동은 분명히 우릴 위한 희생이다.


그런데 그 용감하고 숭고한 행동이 왜 그렇게 아니꼽게 느껴질까, 왜 그렇게 새카만 무언가로 오염되어 있는 것 같을까.


나는 그 뭔지 모를 찜찜함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생각해봤는데 곧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헷갈리지만 결국 하은이가 하고 싶은 건, 하은이의 목적은 아군을 살리기 위한 희생이 아니라 마력을 잃은 삶을 비관한 자살 아닌가?


- 뚜벅, 뚜벅.


그런 생각이 든 나는 아무 말 없이 하은을 향해 다가갔다.


“뭐, 뭐야! 가라니까 왜 나한테 와!”


그러자 하은은 나를 적대하기라도 하는 듯 예민하게 굴었지만 나는 계속 말없이 다가갔다.

그리고.


“읏차.”


검을 붙잡고 있는 하은은 번쩍 들어 올려 어깨에 얹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너 죽을래! 당장 안 내려놔?!”


그러자 하은은 버둥버둥 발버둥 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등을 콩콩 두드렸다.


원래 같으면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터지고 아주 난리가 났겠지만 진짜 마력이 다 빠졌는지 하은은 여느 10대 소녀와 다르지 않은 근력밖에 내지 못했다.


“속 썩이지 말고 따라가, 저건 내가 어떻게 해볼 테니까.”

“날 불쌍하게 생각해서 그러는 거면 당장 그만둬,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니까! 그리고 합리적으로 생각해, 아저씨는 아직 싸울 수 있잖아, 난 이제 완전히 일반인이야, 아무 짝에 쓸모도 없고 짐짝일 뿐이라고! 누군가 여기 남아야 한다면 내가 남는 게 맞잖아!”


광분한 하은은 이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주륵주륵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듯 소리쳤지만 상대가 흥분했을수록 내가 침착을 유지해야 한다.


나는 당장이라도 검을 향해 달려들려 몸부림치는 하은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조곤조곤 말했다.


“합리적인 거 좋아해? 그럼 내 판단이 맞아,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이렇게 하는 거야.”


어지간하면 앞으로 하은이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한번 생각했었는데 이번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이건 내가 하는 게 더 합리적이고 또 더 옳은 판단이다.


“아니, 야! 잠깐만! 이야기가 왜 또 그렇게 돼?!”


내가 하은이를 맡겨두고 검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하자 형이 나를 말렸다.


“하은이 말이 반은 맞아, 어차피 누군가가 저 검을 잡고 있긴 해야 하잖아, 다른 곳 상황은 모르겠지만 아직도 전투 중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보스를 잡아서 싸움을 끝내야 해.”

“⋯그러면 차라리 내가 할게. 내가 하게 해줘.”


그렇게 말하자 이번엔 또 서연이가 나섰다.


“어차피 난 죽어도 딱히 슬퍼할 사람이 없어,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나아.”

“왜 없어, 난 너 죽으면 슬플 것 같은데?”

“⋯어?” “그리고 나만 그래? 형도 하은이도 아린이도, 네가 죽으면 안 슬퍼할 리가 없잖아.”


내 말에 서연은 상상도 못 한 말을 들었다는 듯 늘 반쯤 감겨있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건 박준호 네가 죽어도 마찬가지야, 여기서 누가 죽든 간에 안 슬플 사람이 있겠냐고!”

“난 안 죽잖아.”


내 말에 형은 순간 헷갈렸는지 입을 다물었지만 곧장 숨을 들이켜 반박했다.


“⋯아니! 그건 네가 재생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고, 너 지금은 그 능력 없잖아!”

“그건 없어도 다른 건 다 작동하니까.”

“다른 거? 다른 거 뭐!”

“몰라, 한 번 정도는 죽어도 될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하은이가 잡고 있던 검을 잡고 돌려 보호막을 걷어내고 문을 열었다.


“하, 한 번 정도는 죽어도 되는 것 같다니⋯ 그게 뭐야?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괜찮을 거야. 네가 나한테 무슨 일 생기기 전에 보스 후딱 죽이고 오면 되는 거잖아?”


나는 간만에 아린이의 눈동자가 떨리는 모습을 보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럼 난 여기 같이 남을래.”

“그, 그래! 생각해 보니까 굳이 다 같이 들어갈 필요 없는 거 아냐?”


그러자 이번엔 서연이가 나와 함께 여기 남겠다고 했고 형도 그런 서연의 말에 맞장구쳤다.

뭐, 확실히 하은이까지 온전한 전투가 가능하다면 생각해 볼 법한 전략이긴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들 싸워봐서 알잖아, 나 혼자 있으나 다 같이 있으나 아린이가 없으면 다 똑같다는 거. 그냥 따라가는 편이 안전해.”


여기까지 모두가 고군분투해 치고 들어온 건 맞지만 냉정하게 말해 우린 호위병들을 상대로 겨우 제 목숨을 부지하기 급급했을 뿐 실질적으로 호위병을 해치웠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린이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린이 없이 우리끼리 뭉친다고 특별히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고 모두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에 괜한 억지를 쓰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그냥 빨리 가서 차라리 아린이를 도와줘, 그리고 애초에 여기 혼자 남으면 확실하게 죽는다고 확정한 것도 아닌데 왜들 그래? 이렇게 망설일 시간에 그냥 갔으면 벌써 왔겠다. 아직 호위병도 안 왔는데.”

“⋯⋯⋯⋯.”


아직 호위병이 오지 않았다는 내 말은 들은 아린이는 돌연 뭔가의 결심이 섰는지 나와 시선을 한 번 마주치곤 알현실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그런 아린이의 행동에 형과 하은과 서연은 어느 쪽에 붙어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한번 결정을 내린 아린이는 확실하게 다른 이를 이끌었다.


“준호 말이 맞아.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 고민 없이 보스에게로 향했으면 호위병이 오기 전에 끝내고 돌아올 수 있었을 지도 몰라. 그리고, 지금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잖아.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계속 싸우고 있을 거고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누군가가 또 죽었을 수도 있어, 지금 우리 손엔⋯ 우리 목숨만 걸린 게 아니야, 그러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아린이는 더 이상 귀중한 시간을 끄는 사람이 있으면 강제로 끌고 들어갈 기세로 모두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런 아린이의 결단에 따르기로 한 모두는.


“⋯금방 올 테니까 어디 잘 숨어있어라.”

“아저씨⋯ 고마워.”

“죽지 마, 죽으면 나 슬퍼.”


내게 한마디씩을 남기고 아린이를 따라 알현실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 쿠구구구⋯ 쿵!


모두가 안으로 향한 것을 확인한 나는 검을 놓았고 역시, 어떻게 해도 검을 붙잡고 있는 이는 안으로 들어갈 방법 없이 곧장 보호막이 발동하고 이내 문이 닫혔다.


“⋯그럼 어디 한 번 숨어볼까.”


한순간에 적진 한가운데에서 혼자 남게 된 나는 형의 말대로 일단 숨기로 했다.


호위병이든 일반 병사든 재생력도 없는 나 혼자 맞서봤자 지는 건 뭐 재고 대볼 필요도 없이 확정이니 최대한 숨어있는 게 최선이니까.


하지만 큰 걱정은 없다.


왕궁은 엄청나게 넓고 복잡하니까.


여긴 오히려 누굴 찾으려고 돌아다녀도 마주치기가 어려울 정도라 이건 술래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술래잡기다.


나는 우선 재빨리 탁 트인 광장을 벗어나 숨을 수 있는 방이 많은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자 역시 병사들이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는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고함과 발소리가 나를 압박했다.


뭔가 이렇게 몰래 숨어다니는 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보다 더 긴장되고 쫄깃한 스릴이 있었다.


“⋯여기 정도면 되려나.”


아무래도 적들이 수색하고 있는 이상 이동을 최소화하는 편이 발각될 확률이 낮을 것 같았다.


그래,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잖아.


나는 괜히 광장에서 멀어지려 하기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적당한 방에 숨기로 했고 그 방의 문을 조심스레 밀어보려는 순간이었다.


- 끼이익!


아직 손도 대지 않았는데 갑자기 문이 혼자 확! 열렸다.

당연히 자동문이라 열린 건 아니고.


“아⋯ 지랄하네 진짜.”


나는 하필이면 뒤늦게 무장을 마치고 작전에 투입하려는 호위병 하나와 딱 마주쳐버렸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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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75 백발대마왕
    작성일
    24.09.20 21:21
    No. 1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네요.
    늘 주인공에게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서 재미있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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