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을 잡았더니 세상이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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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작품등록일 :
2023.12.01 17:08
최근연재일 :
2024.01.1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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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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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비밀 통로

DUMMY

라인스 왕국.

변경지대의 그저 그런 소왕국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10회차의 인생을 살아왔음에도 방문한 적은 많지 않다.

다만, 이런저런 소문은 제법 들어봤다.


“그곳의 흑마법사 중엔 정신 나간 부류가 많아. 이번에 또 고대 악마를 소환하려다 적발되었다는군.”

“신성 교단에서는 대체 뭘 하는 건가? 변방이라고 해도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군.”

“모르는 소리 말게. 몇 번이나 이단 심문관이 다녀갔네만, 현지에서 별 소득 없이 시간만 낭비했다고 하네.”


예전부터 악마 숭배를 하는 놈들이 비밀리에 활동한다는 이야기.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귓등으로 흘렸었다.

자고로 세상에 미친 놈은 많았으니까.

변방에서 벌어지는 사건까지 전부 신경 쓰기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런데 결국 내가 나서게 되는군.’


예전에 발생했던 불미스러운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영향을 주었을 거란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런 쪽으로는 감이 좋은 편이라, 한번 알아보기로 했다.

음습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지하 통로.

어디로 연결되는 건진 몰라도,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다.


“누가 이런 통로를 만들어 놓은 걸까요?”


횃불을 든 채 뒤따라오던 카린이 물었다.

그러자 라일라가 자신의 추측을 늘어놓는다.


“비상시에 왕족이나 귀족들이 탈출용으로 쓰려 한 거 아닐까요?”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애초에, 권력자들의 허락 없이 이만한 규모의 공사를 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우리도 모르고 있었을 정도면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 같아. 무슨 이유에서인진 몰라도.”


타르샤가 미심 쩍은 부분을 말했다.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구석은 있긴 했다.

지난 10년간 마물의 침공으로 도시 내부가 혼란스러웠을 텐데, 이곳을 활용하지 않다니.

단순한 대피 목적으로 만들어 둔 건 아니란 느낌이 든다.


“마물이 도사리고 있는 것부터가 정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요. 우연히 기어 들어왔다기엔 개체 수도 많구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걷던 데커가 맞장구를 쳤다.

이후 그는 리볼버를 들어 올리더니, 천장에 매달려 있는 비행형 마물을 쏘아댄다.


타탕 탕 탕!


흡사 박쥐처럼 녀석이 푸드덕대며 지면으로 떨어진다.

그것을 본 타르샤가 징그럽단 표정으로 비켜섰다.


“이쪽으로 떨어뜨리지 마! 하마터면 닿을 뻔했잖아!”


여도적 출신이었던 것치고는 비위가 좀 약한 면이 있다.

나는 잠시 멈춰서서 뒤쪽의 일행을 바라봤다.


“마물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도 좋지만, 뭔가 이상한 게 없는지 잘 살피도록 해. 숨겨진 마법진 같은 거 말이야.”


아직까지는 수상하게 여길 만한 것이 발견되지 않았다.

상업 구역의 은밀한 뒷골목에서 시작된 비밀 통로를 따라 내려온 지도 어느덧 3시간 째.

슬슬 뭐든 나타날 때가 되었다.


“으음?”


다시 탐사를 계속한 지 30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이었다.

미미한 마력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보니, 벽면에 수상한 장치가 있었다.

우리는 그 앞으로 다가가서 가까이 살펴봤다.


“데커, 이게 뭐라고 생각하나?”

“으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요. 공업구역에서 지내며 금속으로 조립된 건 많이 봤습니다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데커가 고개를 저었다.

기계공 출신인 녀석이 모르는 걸 보면 역시 수상쩍다.


“어디 보자, 침입자를 감지하는 장치는 아닌 것 같고. 혹시 보물창고를 열기 위한 수단 아니에요?”


여도적 출신인 타르샤가 아는 척을 했다.

그녀도 여기저기 잠입한 경력이 있으니 자부심은 있겠다만, 너무 자기 욕망을 드러내는 건 아닌가 싶다.


“보물창고를 이런 데 두진 않았겠지. 그런 곳이라면 도둑이 들지도 모르는데 경비병이라도 세워뒀을 거야.”


이실롯이 간단히 반론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이건 무언가를 숨겨두거나 할 목적으로 설치해둔 게 아니야.”

“그렇다면 대체 용도가 뭔가요, 시로네님?”


라일라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질문해왔다.

한편, 카린은 짚이는 부분이 있는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낸다.


“어렸을 적에 비슷한 걸 방안에서 본 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건 분명 저희 모녀를 감시하는 느낌이었어요.”


드디어 정답에 근접한 것 같다.

나는 돌아서서 카린을 내려다봤다.


“그걸 설치한 건 너희 가문의 사람들이었나?”

“네, 아버님··· 아니 에스터리츠 백작이었어요.”

“흥미롭군. 마음이 안 놓인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하다니.”


사생아는 가문의 수치라곤 하나, 지나친 처사였다.

도망치거나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일거수일투족 전부 훔쳐보다니.

아무튼, 카린 덕분에 결론에 좀 더 빨리 도달할 수 있었다.

이건 비밀 통로의 침입자를 지켜보기 위해 설치한 감시도구다.


“이 정도로 정교한 장치라면, 서로 대화도 주고받을 수 있겠어.”

“네, 대화라고요?”


카린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벽면을 바라봤다.

나는 시험 삼아 입을 갖다 대고 속삭여봤다.


“이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말고 뭐라고 말이라도 하지 그래? 다 들킨 것 같은데.”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자 라일라가 고개를 갸웃한다.


“정말로 가능한 걸까요? 설령 그렇다 해도 반응할 것 같진 않은데.”


정상적인 놈들이라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는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타입이 아닐 듯했다.

저번에 마물을 통해서 대화했을 때는 나더러 음모가 벌어지는 최심부까지 오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었지.

방해꾼이나 다름없는 내게 그런 제안을 하는 건 확실히 미쳤다고 봐야 한다.


‘녀석은 흑마법사일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어딘가 단단히 비틀린 구석이 있어.’


물론, 나도 흑마법사로 불리는 족속이다만 조금 결이 다르다.

내가 인간의 근원적인 부분을 연구한다면, 저들은 악마적인 권능에 기대어 세상을 지배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원소 마법을 다루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은 부류로 묶인다면 조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이참에 그 점을 강조하는 편이 좋겠군. 나름의 도발하는 의미도 있을 거야.’


자고로 흑마법사는 어느 부류이든 자신이 개척해가는 분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것을 전면 부정당한다면 기분이 매우 나빠지는 것이 당연할 터다.


“아아, 벌써부터 지루한걸? 시답잖은 마물이나 심어놓은 걸 보니, 너도 허접한 악마나 숭배하는 그렇고 그런 흑마법사 같은데.”


혼잣말이라고 해도 좋았다.

무시당하더라도 놈의 비위가 상할 때까지 계속 떠들어대면 된다.


“산제물은 얼마나 바쳤으려나? 고작 해봐야 서열 100위권에도 못 미치는 악마를 소환하려고 지극정성을 들이는구나? 왜, 이번엔 어린 왕녀라도 데리고 와달래? 마왕군으로 참전했을 땐 계급장에 별 하나도 못 달아봤을 떨거지가 입맛 하나는 까다롭네.”


솔직히 흑마법사가 정말로 악마를 소환하려는 건지, 그 악마의 위계는 어느 정도인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저번에 유도 질문이 성공했을 때 들었던 답변을 포함하여 이것저것 고려해보면, 대충은 때려맞출 수 있었다.

10회차의 인생을 살아오며 마족과 연관된 사건들을 해결해온 나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나는 사냥개처럼 냄새를 맡고 놈들을 추적할 수 있다.


“시, 시로네 님.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라일라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바라봤다.

다른 부하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더 호통을 쳤다.


“하긴, 드래곤이 떠난 둥지에서 오우거가 왕 노릇을 한다지? 이런 변경지대라면 그렇게 근본 없는 악마도 나름 활개를 칠 수 있겠어. 언젠가는 만만히 보던 인간들에게 또 토벌당하겠지만.”


이 정도 약을 올리면 더는 참기 어려울 것이다.

예상대로, 치직 하는 잡음이 들리더니 저번에 들었던 인공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도 지껄이는구나, 마법사! 네놈이 뭘 안다고!」


마법적인 발성으로 인해 무미건조한 느낌인데도, 치밀어오르는 듯한 분노감이 전해져왔다.

역시 이래서 어쭙잖은 흑마법사는 다루기가 쉽다.

나는 씨익하고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가? 전부 맞는 말이잖아. 너는 세상이 말세라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풋내기에 불과해.”


열등감을 조장할수록 효과는 더 확실하다.


「풋내기? 그건 바로 너겠지! 하급 마물의 뒤꽁무니나 쫓다 보니 현실 감각이 둔해졌나 보군! 너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우리 손바닥 위에서 놀아날 뿐이다!」


우리, 라고 했다.

그렇다면 상대는 1명이 아니라 최소 2명.

많게는 길드처럼 하나의 조직일 수도 있었다.

그에 관해 좀 더 캐물어 볼 필요성이 있겠는걸.


“너희가 뭐 그렇게 대단해? 기껏해야 이런 데서 친목질이나 하면서 애꿎은 사람들에게 부두술이나 거는 주제에.”


「시끄럽고, 어서 통로를 지나 이쪽으로 와라. 우리를 조롱한 죗값을 톡톡히 치르게 해줄 테니까!」


목소리는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좀 더 유도질문을 하려 했는지 조금 아깝다.


“전부터 봐왔던 거지만, 심리전이 뛰어나시네요.”


숨죽이고 있었던 카린이 나를 칭찬했다.

라일라도 동의하는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상대가 열받을 만한 이야기만 하면서 일방적으로 잘도 조롱하세요. 마치 악마 같아요.”


이건 칭찬인지 악담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무안하게 웃어보인 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 어서 가자.”


비밀 통로 너머에 뭐가 있을 지는 아직 모른다.

정말 내성으로 이어진다면, 경비병의 감시가 삼엄하지 않은 한밤중에 돌파하는 것이 좋다.


“무단침입한 저희를 순순히 내버려 두는 걸 보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듯합니다.”


불안함을 느꼈는지 이실롯이 경고를 해왔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우리는 양 갈래 길 앞에 멈춰서게 되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네요.”


이리저리 살펴보던 타르샤가 머리를 긁적였다.

길 찾기는 자신 있다던 데커도 확신이 없어 보인다.


“어느 한쪽은 함정이거나 막다른 길로 보이는데, 쉽게 판단하기 어렵군요. 양쪽 통로가 똑같이 생겨서.”


시간을 오래 지체하는 건 좋지 않았다.

나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인원을 나누자. 이렇게 몰려다니면서 차례로 확인하는 것보단 효율적이니까.”


어떻게 나누는게 좋을지는 이미 결정했다.

라일라, 타르샤에게 손짓하자 나머지는 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저희는 버리는 카드인 겁니까요? 조금 서운하군요.”

“너무해요, 이런 식으로 편을 가르다니.”

“저는 상관없습니다만. 그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군요.”


데커, 카린, 이실롯.

셋이서 원망 섞인 눈빛으로 쏘아붙이는데, 이건 오해였다.


“너희들이라면 어지간한 돌발 상황이 아닌 한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

“···.”

“···.”


아직 상관으로서의 신뢰가 부족한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내쉰 후 선택권을 양보했다.


“정 그렇다면 너희가 먼저 결정해라. 어느 쪽으로 갈지 말이야.”


참고로 나는 오른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셋은 소곤소곤 논의하더니 왼쪽을 가리켰다.


“저희는 왼쪽입니다요!”

“오른쪽은 너무 뻔하잖아요!”

“저는 두 사람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마침 잘 되었군.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운을 빈다, 제군들. 조만간 다시 보자.”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고, 한동안 재회하지 못했다.

어느 쪽이 함정이었냐 하면 당연히 왼쪽이었다.


“왜 갑자기 웃으세요, 시로네 님?”

“아니, 그냥.”


어리둥절하는 라일라를 뒤로 한 채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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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을 잡았더니 세상이 망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숲속에서의 대화 24.01.15 13 2 12쪽
35 숲속의 악마 24.01.12 12 1 12쪽
34 에리나 브르타니엔 24.01.11 15 1 12쪽
33 환영의 숲 24.01.10 14 2 12쪽
32 추방된 자들 24.01.09 15 1 12쪽
31 황무지에서의 전투 24.01.08 17 1 11쪽
30 성벽 밖으로 24.01.05 15 1 11쪽
29 유리우스 제르가딘 24.01.04 20 1 12쪽
28 정예 인원을 뽑았다 24.01.03 19 1 12쪽
27 협상을 해보자 24.01.02 22 1 12쪽
26 알현실에 불려갔다 23.12.30 25 1 12쪽
25 부하를 팔아먹었다 23.12.29 21 1 12쪽
24 재각인 23.12.28 25 2 12쪽
23 할 일은 해야 한다 23.12.27 23 1 12쪽
22 귀찮은 일은 싫다 23.12.26 23 2 13쪽
21 리제 에스터리츠 23.12.25 25 2 12쪽
20 지하 고문실의 독대 23.12.23 28 2 12쪽
19 사라진 왕녀 23.12.22 26 2 12쪽
18 오래된 기억 23.12.21 36 3 12쪽
17 악인은 심판 받는다 23.12.20 34 3 12쪽
16 구원받지 못한 자 23.12.19 29 3 11쪽
15 악마숭배자 23.12.18 30 3 12쪽
14 밤은 깊어간다 23.12.16 30 3 11쪽
13 고대 마물 23.12.15 27 3 12쪽
» 비밀 통로 23.12.14 31 3 12쪽
11 도둑 길드 23.12.13 30 3 11쪽
10 초승달 밤의 도둑고양이 23.12.12 41 3 14쪽
9 진위 조사대 23.12.11 40 3 12쪽
8 유도 질문 23.12.09 43 4 12쪽
7 야간 습격 23.12.08 4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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