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을 잡았더니 세상이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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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작품등록일 :
2023.12.01 17:08
최근연재일 :
2024.01.1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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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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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야간 습격

DUMMY

“허업!”


아찔한 감각에 카린이 헛숨을 삼켰다.

정말 눈 깜짝할 만큼 찰나의 순간이었다.

피하지 못했다면 바로 옆에 무너진 진지처럼 완전히 박살이 났을 것이다.


‘꽤나 민첩하군.’


정찰이나 기습에 특화된 마물인 것 같았다.

녀석이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쳐다보자 카린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으윽!”


잘은 모르겠지만, 안 좋은 트라우마가 도진 것 같았다.

흑마법을 오랫동안 다뤄온 내 눈엔 안 좋은 기억이 들여다보인다.

선명한 장면은 아니고, 추상화처럼 뭉개진 형태로 말이다.

그런데도 대략적인 심상이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여기는 전장이야.”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었기에 나는 한 마디 해주었다.

성벽 내부에서 살아가다 보면 트라우마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을 터였다.

절단된 시신에서 희생자의 내장을 빨아먹는 마물.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겠지만, 극복해내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고, 고마워요!”


카린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런데 아까부터 마물의 행동이 조금 이상했다.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덤벼들지 않고 이쪽을 주시하기만 한다.


‘우리를 관찰하는 건가?’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접근해온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직전까지는 망설임 없이 다짜고짜 앞발을 내리쳤으니까.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생각을 바꾼 것이라 보는 게 맞았다.


‘하급 개체라 지능이 높은 편은 아닐 텐데.’


누군가 마물의 눈을 빌려 이쪽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서열이 있는 마족이나 흑마법사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녀석에게 대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네놈은 누구지? 어째서 이곳을 염탐하는 거지?”


너무 뻔한 질문이긴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캐묻는 것도 의심을 산다.

내가 7인의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마물의 공세는 더욱 거세어질 터였다.


키릿. 키리릿.


마물은 잠시 우리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저 너머에 있는 염탐자의 반응이라고 봐야 하나.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싶어서 좀 더 기다렸는데, 예후가 좋지 않다.


키릿.


마물이 다시 한번 날카로운 앞발을 들어 올린다.

시험을 해볼 생각인 건지, 아니면 정말로 죽이려 드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조종당하는 마물의 심상은 텅 빈 공허에 가까워서 깊이 들여다봤자다.


“크읏!”


궁지에 몰렸다고 여긴 카린이 안면을 구겼다.

손바닥 위로 다급히 불꽃송이를 피워올린다.

그녀의 적성은 원소 마법 중에서도 화염계.

평범한 하급 마물을 상대로는 상성이 유리한 편이다.


‘하지만 스피드에서 밀려. 마법사에겐 치명적인 약점이야.’


견습 수준에서는 시전 속도가 느린 게 보통이다.

마법에 대한 개념적인 이해도가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천적인 재능을 타고나면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러기는 확률적으로 매우 낮다.


‘분명 남다른 재능이 있기는 하다만.’


아직 그것을 제대로 일깨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대충 전황을 파악한 후 나는 한손을 펼쳐보였다.


“우선 방어에 집중하자. 한밤중이라 저 마물의 움직임을 추적하기 어려워.”


솔직히 혼자서 싸운다면 괜찮은데, 지켜야 할 대상이 있었다.

순식간에 수호 결계를 전개하자 카린은 놀란 반응을 보인다.


“이런 걸 어떻게 그리 빠르게 해내는 건가요?”

“너와는 살아온 세월의 깊이부터가 다르단다.”


어지간한 마법의 술식따윈 외우는 걸 넘어서서 이미지로 연상할 수 있었다.

멋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무영창에 가깝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놀라서는 곤란하다.


“이쪽으로 넘어와, 그쪽도 위험할 테니까.”

“누구한테 하는 소리예요? 갑자기.”


혼잣말이라 생각했는지, 카린이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때, 대치 중이던 마물이 앞발을 내리치며 위협을 가해왔다.


카랑!


타격점으로부터 미미한 진동이 일어났다.

이후 수호결계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자, 카린은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쪼, 쫄았네요. 무안하게.”


전장에서의 경험이 전무하니 위축이 되는 건 당연했다.

그건 그렇고, 슬슬 시간이 되었는데.

잠시 뜸을 들이고 있자 눈부신 형상이 옆에 나타났다.

그것은 익숙한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숙소에 두고 왔던 라일라.

혼자 내버려두면 위험할 것 같기에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다.

“와아, 신기하네요. 이건 어떤 마법인가요?”

“뭐긴 뭐겠어. 소환 마법이지.”

“···그렇구나.”


대충 얼버무리자 카린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실력이 대단해서 가능했을 거라고만 여긴 모양이다.

실은, 이런 일이 쉽게 가능했던 이유는 소울 웨폰 덕분이었다.

계약의 형태로 이어진 마력이 매개체를 해주고 있으므로, 상대가 동의하기만 하면 소환은 어렵지 않다.


“저 마물은 어째서 내버려 두고 계신 건가요, 시로네 님?”


라일라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이런 전투로 고전할 수준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조금 걸리는 게 있어서 말이야. 확인을 해봐야겠어.”


아델레 수녀가 말한 왜곡된 세계는 마물이 비정상적으로 날뛰고 있었다.

만악의 원흉인 마왕이 봉인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되어버린 배후를 캐야 했다.


‘놈들이 마왕 대신 마물을 부리고 있는 게 틀림없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씩 단서를 찾아내는 수밖에.

생각해보니, 카린과 라일라가 성장하기에도 좋은 기회였다.


“너희들이 한번 제압해보지 않을래? 수호 결계는 내가 유지하고 있을게.”

“한번 해보죠.”

“시로네 님께서 명하신다면 시도는 해보겠어요.”


두 소녀는 결의한 듯이 서로 쳐다보더니 각자 주문을 영창했다.


키릿!


마나의 움직임을 감지한 마물이 재차 앞발을 내리찍으려 했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납탄이 마물의 머리에 명중했다.


티잉!


외골격이 단단해서 별 피해를 못 주고 튕겨 나간다.

납탄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며 나는 혀를 찼다.


‘쓸데 없는 짓을 하는군.’


오십보 정도 되는 거리에 머스킷을 든 사내가 있었다.

신병은 아니고, 훈련소의 물자보급을 담당하는 군수병이었다.


“시선을 끌 테니 어서 피하십시오!”


사내가 재장전을 하며 외쳤다.

나는 다시 한번 혀를 찼다.


“저 자의 말은 무시하고 계속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조언이니까.”


계속해서 지원사격을 하면 마물의 주의는 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잠시일 뿐이고, 소녀들은 도망치다 금방 붙잡히고 말겠지.

주위에 다른 마물도 있을지 모르니 결코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없었다.


“현재로선 놈을 제압하는 방법밖에는 없어.”


물론, 죽일 거라면 진작에 내가 나섰을 것이다.

옆쪽을 흘끗 보니 카린이 먼저 술식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딱히 그녀가 더 뛰어나서라기보단, 뒤늦게 소환된 라일라보다 아무래도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다.


“···알고 있어요. 그 정도는.”


말을 마친 카린의 주위에 무형의 마나가 일렁인다.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마물이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으나, 붉은 불꽃이 벌써 일렁이고 있었다.

가지 위의 꽃이 만발하듯 피어오르며 순식간에 마물을 올가맨다.

치이익 하고 검은 연기가 나면서 두터운 외피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키릿!


마물은 저항하듯 몸부림쳤다.

속박 마법이 제대로 구현되었는지 성공적으로 녀석을 붙잡아두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효과일 뿐.

불꽃으로 이루어진 사슬은 곧 끊어질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역시 위력이 부족하네.’


이 정도의 불안정함은 예상했다.

애초에 마력이 강하지 않으니 첫 공격 마법이었던 불꽃송이로 끝장을 못 낸 거겠지.

날뛰려는 마물을 완전히 침묵시키려면 추가적인 데미지가 필요하다.


“이런!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카린이 울상을 지었다.

연달아서 공격 마법을 시전하기에는 마력 소모량을 감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었다.

그녀를 대신해서 이번에는 라일라가 신성 마법을 완성시켰으니까.


“흉악한 마물은 이 세상에서 당장 사라지세요!”


라일라가 소리치자, 눈부신 빛의 기둥이 눈앞에서 솟아올랐다.

그녀가 사용하는 신성 마법도 일반적인 하급 마물을 상대로는 상성이 좋은 편이다.


키릿!


신성 마법에 당한 마물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외골격이 제법 단단하긴 해도, 상성이 불리한 마법에 계속해서 당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해, 해치운 걸까요?”

“아니야. 완전히 절멸하진 않았어.”


두 소녀의 마력이 부족해서인지 마물을 무력화시키는 정도에 그쳤다.

그렇긴 해도, 한동안 다시 일어서긴 힘들 것이다.

죽은 척을 하고 있긴 하다만 사실상 거의 넉다운한 상태였다.


“숨통을 끊지 않을 생각이신가요?”

“끌고 가서 연구를 좀 해볼 거야. 물론 이곳 지휘관의 허락은 받아야겠지.”


수비대장 마크셔는 그리 깐깐하게 굴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이쪽의 수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니까.


“입대하고 나서 세운 첫 공적이네요. 이것도 앞으로의 진급에 반영되겠죠?”


카린은 벌써부터 신난 표정이었다.

피식하고 웃으며 마물을 포박하고 있는데, 멀리서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마크셔가 병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었다.


“무사하셨군요. 침공해온 마물은 전부 정리했습니다.”

“여기도 별문제는 없었습니다. 갑자기 마물이 출몰하긴 했지만, 제압에 성공했습니다.”

“혹시 생포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전력은 충분하셨을 것 같은데요.”


예상대로 마크셔는 조금 이상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주위에서 보는 눈이 많았기에 나는 되도록 말을 아꼈다.


“수상한 점이 있어서요. 자세한 건 돌아가서 말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우선은 철수하지요.”


마크셔는 병사들을 시켜 마력실로 포박된 마물을 운반하도록 했다.

나는 두 소녀를 이끌고 말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함부로 정체를 밝히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세계가 왜곡된 배후를 캐기 위해서는 무명인 상태로 돌아다니는 편이 낫다.

오늘 밤은 내가 모르는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까?

잘은 몰라도, 뭔가 건질 수 있으리란 느낌이 들었다.


* * *


한밤중의 소란 이후, 마물은 재차 침공해오지 않았다.

지휘부는 이런저런 논의를 주고받느라 시끄러웠다.


“침입 루트를 확인해보니 주된 목적은 취약시설인 훈련소를 노리는 것이었습니다.”


브리핑을 맡은 부관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칠판에 붙여놓은 지도를 지휘봉으로 분주하게 가리켜댄다.


“훈련소를 노린 이유는 뭐지? 신병들을 제거하기 위함인가?”


보고를 듣고 있던 마크셔가 물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다른 부관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러한 의도가 없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뭔가 다른 수작이 있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다른 목적?”

“네, 예상보다 피해가 크지 않고 마물의 관심사도 다른 데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야밤에 상대했던 마물은 전투에 특화된 타입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몸집이 작고 기동성이 빠른 개체들이었다.

살상이 아니라, 염탐과 교란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노리고?

자연스레 머릿속에 물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


보고를 묵묵히 듣고 있던 마크셔가 나를 쳐다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두를 해산시켰다.


“이만하면 됐다. 다들 돌아가서 부대 정비에 힘쓰도록.”

“대장님, 좀 더 보고할 내용이···”

“잡다한 건 내일 보고서를 통해 읽어보겠다.”


마크셔가 손을 내젓자 부관들은 일사불란하게 물러났다.

잠시 후, 우리만 남게 되고 나서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확인하러 가보겠습니까? 당신이 포획한 마물은 지하실에 있습니다.”


슬슬 시작될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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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을 잡았더니 세상이 망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숲속에서의 대화 24.01.15 12 2 12쪽
35 숲속의 악마 24.01.12 12 1 12쪽
34 에리나 브르타니엔 24.01.11 15 1 12쪽
33 환영의 숲 24.01.10 14 2 12쪽
32 추방된 자들 24.01.09 15 1 12쪽
31 황무지에서의 전투 24.01.08 16 1 11쪽
30 성벽 밖으로 24.01.05 15 1 11쪽
29 유리우스 제르가딘 24.01.04 20 1 12쪽
28 정예 인원을 뽑았다 24.01.03 19 1 12쪽
27 협상을 해보자 24.01.02 22 1 12쪽
26 알현실에 불려갔다 23.12.30 25 1 12쪽
25 부하를 팔아먹었다 23.12.29 21 1 12쪽
24 재각인 23.12.28 25 2 12쪽
23 할 일은 해야 한다 23.12.27 23 1 12쪽
22 귀찮은 일은 싫다 23.12.26 23 2 13쪽
21 리제 에스터리츠 23.12.25 25 2 12쪽
20 지하 고문실의 독대 23.12.23 28 2 12쪽
19 사라진 왕녀 23.12.22 26 2 12쪽
18 오래된 기억 23.12.21 36 3 12쪽
17 악인은 심판 받는다 23.12.20 34 3 12쪽
16 구원받지 못한 자 23.12.19 29 3 11쪽
15 악마숭배자 23.12.18 30 3 12쪽
14 밤은 깊어간다 23.12.16 30 3 11쪽
13 고대 마물 23.12.15 27 3 12쪽
12 비밀 통로 23.12.14 30 3 12쪽
11 도둑 길드 23.12.13 30 3 11쪽
10 초승달 밤의 도둑고양이 23.12.12 41 3 14쪽
9 진위 조사대 23.12.11 40 3 12쪽
8 유도 질문 23.12.09 43 4 12쪽
» 야간 습격 23.12.08 4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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