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을 잡았더니 세상이 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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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작품등록일 :
2023.12.01 17:08
최근연재일 :
2024.01.15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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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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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 인원을 뽑았다

DUMMY

라크슈는 나를 인정했다.

아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법사로서의 역량부터가 비교 불가였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오랜 세월에 걸쳐 환생하며 흑마법을 연구해왔다.

흑마법이라곤 하나, 기본적으로 마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다른 마법과 같다.

그러니 마력을 다루는 숙련도라던가, 이해도 면에서 격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하고 동등한 수준으로 인정받으려면 에리나 정도는 되어야겠지.’


원소 마법에 천재적인 자질을 지닌 하프 엘프.

나와 같은 7인의 영웅이기도 했다.

악마숭배자의 증언에 의하면, 현재 그녀는 서북쪽의 산맥을 떠돌고 있다.

물론,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행선지는 그쪽으로 정해진 상태다.

성벽 밖으로 떠나는 원정대를 꾸려가는 일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자, 그럼 중간점검을 해볼까.”


차출되는 일반병은 합쳐서 300명이었다.

너무 적은 숫자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이게 최선이다.

계속해서 침공해오는 마물을 막아내기도 힘겨운 상황인 탓이다.


‘사실, 병사의 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고위 악마를 상대로는 무력한 전력일 테니.’


서열이 높은 마족은 인해전술로 공략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독이 되기도 한다.

마족이 아군의 진영에 혼란을 일으키는 식의 농간을 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왕을 토벌하는 임무도 소수 정예인 7인의 영웅이 맡았었다.


‘즉, 이번 임무에서도 핵심 전력이 어떻게 구성되느냐가 관건이야.’


사실 그래봤자 믿을 만한 전력은 아델레 1명뿐이다.

검은 성녀라고 불리우는 만큼, 수준 높은 신성 마법을 사용했다.

게다가 신성 마법은 마물이나 마족을 상대로 상성이 유리하다.

잘은 몰라도, 그녀 혼자서 100마리 정도의 하급 마물은 동시에 상대 가능할 것이다.


‘그다음으로 강한 전력은 이 자인가.’


명단에 적힌 이름 하나를 눈여겨봤다.

유리우스 제르가딘.

성벽 내부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명문가의 기사였다.

대대로 로얄 가드를 해왔을 정도로 혈통 면에서는 뛰어나다는데.

아까 만나본 바로는 확실히 타르샤나 이실롯보단 강했다.


“어째서 그 녀석이 저보다 전력 면에서 우위라는 거죠? 자존심 상하는군요.”


타르샤가 내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다.

반면, 이실롯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잠깐 마주쳤지만, 빈틈이 없는 모습이었다. 제대로 붙으면 아마도 졌을 거야.”


무예를 수련한 기공사답게 강한 상대를 잘 알아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너희 둘이 동시에 덤벼도 힘들 거다. 아니, 데커까지 합세해도.”

“잉? 정말입니까요? 그러면 엄청난 경지에 오른 것 아닙니까요?”


데커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자 카린이 피식, 하고 웃었다.


“에스터리츠 가문이 마법으로 유명하다면 기사도는 제르가딘 가문이 있다고. 너희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텐데?”

“아하, 기억나요. 예전에 성벽 도시를 침공했던 흉폭한 거대 마물을 물리쳤다는 성기사.”


라일라가 맞장구를 쳤다.

그녀가 말하는 인물은 에르실 제르가딘이다.

그리고 에르실이 활약한 건 수백 년 전의 일이었다.


“아하, 그 전설속의 영웅이 바로 제르가딘 가문이었군요. 옛날 이야기로만 들어서 미처 몰랐습니다요.”


데커가 뒤늦게 아는 척을 했다.

어렸을 적에 흘려들은 전설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나.

반응을 보아하니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수백 년이 흐르고 나면 그렇게 대단했던 영웅의 발자취도 옅어지는 거군요.”


라일라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는 동화책을 끌어안고는 나를 바라봤다.


“시로네 님은 알고 계신가요? 그 성기사에 대해서.”

“응, 어느 정도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에르실하고는 동시대의 인물이었다.

지금 말고, 9회차의 환생을 했을 때 말이다.

어쩌다 실제로 만난 적도 있다.

이곳은 아니고, 라인스 왕국 접경지대의 한 전장에서였지.

당시엔 라인스 왕국이 존재했고 녀석은 왕국군을 지휘하는 군단장이었다.


‘성기사 중에서는 대륙을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실력자였지.’


성기사는 기본적으로 <디바인 오러>라고 불리는 힘을 사용하는 직업이었다.

통칭 오러라고 하는데, 마력과는 다르다.

생명체로서 지닌 기력을 고도로 수련하여 정제된 형태로 승화시킨 것.

그런 면에서 기공사가 사용하는 내공과 비슷한 면이 있다.

내공과 다른 점은 기력을 정제해내는 방식에 있다.

오러는 조금 더 신성력과 비슷한 속성인 반면, 내공은 타고난 자연적 기질에 가깝다.

아무튼, 말은 쉽지만 이렇게 고순도의 에너지원을 만들어내는 건 장기간의 고행을 요구한다.

재능이 없으면 평생 수련을 해도 깨우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면 재능 빨이 가장 심한 직업군일지도 모르겠군. 성직자와 더불어서 말이야.’


신성력과 오러는 신이 내리는 가호라고 여겨지는 만큼 개인차가 큰 느낌이다.

물론, 마법사도 소질이 필요하지만 정도의 차이를 놓고 보면 그렇단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유리우스에겐 내심 기대가 되는 편이었다.

격세유전이라고, 녀석도 자신의 선조를 닮아 난세에 맹활약을 할지 모르는 일이다.


“잠깐, 어디까지 했더라. 맞아, 유리우스였지. 그 다음은 너희들이다. 이실롯, 타르샤, 데커, 라일라, 카린.”


현재 인원은 그대로 원정대에 편성되었다.

내 의지가 아니고, 성벽 수비대장인 마크셔가 지시한 것이었다.

뭐, 나로서도 원래 데리고 다니던 부하들이니 나쁠 건 없다.


“저기, 방금 순서는 강한 순서대로인가요? 그럼 제가 꼴찌?”


호명이 끝나자마자, 카린이 앙칼지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타르샤가 입을 가리며 그녀에게 말한다.


“우리가 너보다 약할 거 같아? 마법 재능으로 유명한 에스터리츠 가문이라고는 하지만, 실전 경험도 별로 없으면서.”


타르샤의 말이 맞았다.

잠재적인 가능성은 뛰어날지 몰라도, 아직 미숙함이 많다.

그건 라일라도 마찬가지였다.


“인정할 건 인정해요. 저희는 항상 보호를 받으며 기본적인 술식 정도만 영창했으니까요.”


라일라는 내가 정해놓은 서열 관계에 불만이 없어보였다.

그녀가 기특하다고 여겼는지, 데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라일라는 참 마음씨가 착한 소녀구먼요. 자신의 부족함을 아니까 금방 성장할 겁니다요.”

“그러면 저는 싹수가 노랗다는 말인가요? 뭐든 자신감이 중요한 법이라고요?”


카린이 눈을 부라렸다.

역시 붉은 머리칼의 여자애는 속성이 참 한결같다.


“너무 다투지들 마. 서열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없을 때 누가 판단을 내릴지 정해둔 것에 불과하니까.”

“그러면 엄밀하게 위아래 개념은 아니구먼요?”

“정확해, 데커. 너희는 같은 기수 동기니까 친구처럼 지내도록 해. 아니면 가족처럼 생각해도 되고.”


같은 기수라는 동질감이 서로를 의지하게 하고, 단결하도록 만들 터였다.

그것도 최전방 부대 출신.

훈련병 생활만 하고 바로 파견을 나왔다만, 소속감부터가 남다를 것이다.


“저기, 질문 있습니다. 부관님.”

“뭔데?”


모처럼 훈훈한 분위기를 만드려는데 이실롯이 손을 들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녀석을 바라봤다.


“출정식이 코앞인데 저희도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다른 준비는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만.”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수도승 이미지인 이실롯에게서 이런 말이 튀어나오다니.

아니, 이건 분명 누군가가 시킨 것이 틀림 없었다.


“이실롯이 먼저 생각해냈을 리는 없고, 너냐 데커?”

“아닙니다요.”

“그럼 너냐 타르샤?”

“왜 저를 의심하죠? 기분 나쁘네요.”

“그럼 라일라? 카린?”

“아니에요.”

“의심할 걸 의심해요.”


정말로 이실롯이 자신의 머리로 제안한 것이란 말인가.

너무도 믿기지 않아서 이실롯을 빤히 쳐다봤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만찬을 즐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만 다른 동료들이 원할 것 같았습니다.”


이실롯은 이것이 자신의 순수한 견해임을 재확인시켜줬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암 그렇고말고.”

“무언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부관님?”

“아니, 그저 네가 너무 캐릭터에 안 맞는 말을 해서 조금 혼란스러웠을 뿐이야.”

“캐릭터라면, 수도승 같은 이미지 말씀이십니까?”

“너도 인지하고는 있구나? 솔직히 네 자신도 비슷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 말에 이실롯은 탁자 위의 거울을 빤히 쳐다봤다.

얼마 후,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을 표한다.


“잘 모르겠습니다. 동료들이 평소에 그렇게 놀리긴 합니다만.”

“아아, 괜찮아. 어차피 사소한 부분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잊어버리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이실롯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갸웃한다.


“아무튼, 최후의 만찬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실 내가 준비할 필요도 없었어. 코르시우스 왕이 오늘 밤에 연회를 베푼다고 한다.”


정예 인원으로 편성된 자들만 특별히 초대받는 자리였다.

무려 왕궁에서 즐기는 만찬이었기에 부하들은 침을 흘렸다.


“살다 살다 궁전에 초대받을 줄은 몰랐습니다요.”

“귀족들이 먹는 음식은 어떤지 궁금했어. 이참에 확인해볼 수 있겠네.”


데커와 타르샤가 콧노래를 불렀다.

라일라와 카린도 내색은 안 했지만 기분이 좋은 눈치였다.


“그럼 빨리 나머지 일을 마무리하자고. 그래야 오늘 밤에 제대로 놀 수 있을 테니.”


말을 마친 후 나는 서류 검토를 계속했다.

이후 부하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


최후의 만찬.

우리끼리는 그렇게 부르는 연회였다.

출정하는 용사에게 전날 밤 귀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오랜 관습이다.


“즐거운 시간 보내도록 하시오, 용사들이여. 그대들을 위해 마련한 자리이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소.”


코르시우스 왕은 간단한 말만 전하고 사라졌다.

어차피 자신이 계속 있어봤자 불편할 테니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

아델레도 성직자라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은 상황.

덕분에 부하들은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부드러운 육질의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까요?”

“귀족들은 항상 이런 음식을 먹는 거야? 부럽네 부러워.”


데커와 타르샤가 떠들어대며 분위기를 띄웠다.

즐거운 대화가 오가고 있는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조금 늦었군.”


유리우스 제르가딘.

연회장이란 장소에 맞지 않게 플레이트 갑옷을 두른 상태였다.

나는 그에게 맞은 편의 자리를 권했다.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딱히 존칭 같은 건 쓰지 않았다.

유리우스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착석했다.


“네가 시로네지? 얼마 전에 얼굴은 본 적 있어.”

“그래, 맞아.”

“이번 원정대장을 맡았다고 들었는데, 실력이 대단한가 보군.”

“뭐, 조금 내색할 수준은 되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유리우스는 눈을 빛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원정대장의 자리를 넘겨줄 수 없겠어? 아무래도 후위에 있는 마법사보다는 선두를 지키는 성기사가 적격인 것 같아서 말이지.”


이 녀석이 눈치도 없이 모처럼의 연회를 개판으로 만드려 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거절한다면?”

“그냥은 물러나지 않겠어. 나도 가문의 영광을 위해 출전하는 거니까.”


유리우스가 도발적인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는 와인 잔을 천천히 내려놨다.


“밖으로 나와.”


아무래도 한판 붙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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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을 잡았더니 세상이 망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6 숲속에서의 대화 24.01.15 12 2 12쪽
35 숲속의 악마 24.01.12 12 1 12쪽
34 에리나 브르타니엔 24.01.11 15 1 12쪽
33 환영의 숲 24.01.10 14 2 12쪽
32 추방된 자들 24.01.09 15 1 12쪽
31 황무지에서의 전투 24.01.08 16 1 11쪽
30 성벽 밖으로 24.01.05 15 1 11쪽
29 유리우스 제르가딘 24.01.04 20 1 12쪽
» 정예 인원을 뽑았다 24.01.03 19 1 12쪽
27 협상을 해보자 24.01.02 22 1 12쪽
26 알현실에 불려갔다 23.12.30 25 1 12쪽
25 부하를 팔아먹었다 23.12.29 20 1 12쪽
24 재각인 23.12.28 25 2 12쪽
23 할 일은 해야 한다 23.12.27 23 1 12쪽
22 귀찮은 일은 싫다 23.12.26 23 2 13쪽
21 리제 에스터리츠 23.12.25 25 2 12쪽
20 지하 고문실의 독대 23.12.23 27 2 12쪽
19 사라진 왕녀 23.12.22 26 2 12쪽
18 오래된 기억 23.12.21 35 3 12쪽
17 악인은 심판 받는다 23.12.20 34 3 12쪽
16 구원받지 못한 자 23.12.19 29 3 11쪽
15 악마숭배자 23.12.18 30 3 12쪽
14 밤은 깊어간다 23.12.16 30 3 11쪽
13 고대 마물 23.12.15 27 3 12쪽
12 비밀 통로 23.12.14 30 3 12쪽
11 도둑 길드 23.12.13 30 3 11쪽
10 초승달 밤의 도둑고양이 23.12.12 41 3 14쪽
9 진위 조사대 23.12.11 40 3 12쪽
8 유도 질문 23.12.09 43 4 12쪽
7 야간 습격 23.12.08 4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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