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공모전참가작 새글

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최근연재일 :
2024.09.20 18:00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491
추천수 :
0
글자수 :
390,044

작성
24.05.31 23:07
조회
10
추천
0
글자
13쪽

화요일

DUMMY

아무리 조합해보아도 이곳 신천역에서 사장님이 알려주신 여행사가 있는 녹번역까지 가는 합당한 버스노선이 짜여지질 않아 별도리 없이 전철에 발을 올리기로 했다. 엊저녁부터 구상해 놓았던 동선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다. 하지만 어느 안전이라고 거역하리오.

잘됐다. 어차피 오늘은 친구와 이바구를 푸느라 점심 먹고 쉬질 못했는데, 때마침 적절한 시기에 터져준 적절한 사건이었다. 은평구로 넘어가는 전동차 안에서 신나게 휴식이나 취해야겠다.


때가 때인지라 지하철 녹색노선 안은 한가했다. 그래도 앉아있기 편한 곳은 얼렁뚱땅 임자들이 있어 그냥 대충 아무 곳에나 몸을 쑤셔 박았다. 그와 동시에 관행적으로 책을 펴들었지만 지금만큼은 그닥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분명 졸음이 몰려올게 뻔하거든. 역시나 미처 한 장을 넘기기도 전에 노도 같은 수마가 달겨들어 눈꺼풀을 거칠게 아래로 잡아당긴다. 잠깐 사이 전철은 땅 위로 올라와 강물에 반사되어온 햇살을 마음껏 머금으며 자신의 뱃속을 눈부심으로 가득 채웠으나 이번만큼은 무지막지한 잠의 공격에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바깥경치고 뭐고 다 눈 앞에서, 사라져라!

이렇게 졸다 깨다 깨다 졸다 하면서 어찌어찌 잠결에 갈아타기까지도 했지만 결국은 먼 길 같이 달려와 준 전동차 녀석이 녹번역에 날 토해놓고는 저만 냉큼 꽁무니를 빼버린다. 아직 눈도 덜 뜨여 졌는데···.

뎅그러니 승강장에 남겨진 뒤로도 멍한 머리를 가누기 힘들어 두개골을 좌우로 좀 흔들어댔다. 덕분에 살짝 정신이 트여오는 것 같아 찬찬히 정신과 마음과 영혼을 갈무리해가며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아까 이동 중에 미리 전화를 넣어놓은 터라 긴장감은 약간 덜해 왔으나 그래도 두근반세근반 거리는 가슴이다.

“안녕하십니까 김창욱 부장님. 아까 전화 드렸던 인차투어 천준호 대리입니다.”

“오~ 그래요, 왔어요?”

“네. 지금 녹번역입니다.”

“빨리 왔네?”

빨리 온 건가? 난 그냥 되는 데로 왔을 뿐인데. 비록 매정하게 내치고 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한 최단시간의 길로 일분일초가 아쉬운 직장인을 이끌어준 아까 그 지하철 녀석에게 감사 인사를 못해준 게 미안하네.

“아 예. 하하 너무 빨리 왔나요?”

“음 아녜요 아녜요. 딱 좋아요. 마침 방금 회의도 끝나고 해서 지금 바로 보면 될 것 같아요.”

“예 알겠습니다.”

“우리 사무실 어딘 줄 알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찾기도 쉬우니까. 올라와요. 여기 건물 4층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예 그럼~.”

휘우~.

한 손만으로 어렵사리 개찰구를 통과함과 때를 같이하여 전화를 끊고 나니 등줄기가 땀으로 범벅이다. 그래도 우리 대빵께서 미리 약을 쳐놓은 덕분인지 매우 호의적인 분위기가 넘쳐나 다른 때와 달리 맘이 심히 안심된다.

만나기로 한 2시까지는 아직도 20여분이나 남아있어 천천히 등갱이의 끈적임을 진정시키며 계단을 올라섰다. 자세히 파악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초행인지라 지상으로 올라와 사위를 두리번거리니 일대 아파트단지를 배경으로 조금 도드라져 보이는 고층건물 하나가 듬직이 눈에 들어온다. 과시 우리나라 열손가락 안에 드는 여행사답게 사옥부터가 뻔쩍뻔쩍하구나! 붉은 글씨로 쓰여 있는 커다란 간판으로 시작해서 외관을 전부 두르고 있는 은청색 빛가림 유리까지! 나의, 이 몸의 거래처가 되기에 부족함이 결코 없어 보인다. 음하하하! 그래, 이 건물 4층이란 말이지~?

회전문을 타고 들어와 어렵지 않게 승강기를 찾았다. 회사 규모가 꽤 있다 보니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너도나도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이 바삐 오가는 몸체의 앞섶에서 멋지게 덜렁이고 있다들. 우리나라 큰 기업 거의 다 그러하듯 이 회사 역시 국내 굴지 그룹의 여러 계열사중 하나답게 각각의 사원증마다 회사 로고가 그리 크진 않지만 확실히 눈에 들어오게끔 아주 인상 깊게 박혀있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래서 그런지 다들 어깨에 자부심이라는 이름의 견장이 매섭게 올라 앉아있는 것 같네. ···음, 나만의 착각인가?

띵~.

승강기 문이 열리자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고, 또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담겨져 들어갔다. 그 하나로 통일된 군체 안에 홀로 서있으려니 마치 머나먼 이세계異世界에 떨구어진 고독한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외지인의 몸으로 여러 개체들 사이를 헤집으며 힘들게 누른 단추번호가 1에서 시작된 승강기 문 위 숫자와 점점 가까워져가다가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띵~.

4층이다.

몇 사람 같이 내린다. 그러나 그들은 능란하게 사무실 유리문을 열고서는 유유히 그 안으로 사라져가고···. 맞구나. 이방인. 설자리 어딘지 몰라 허둥허둥 거리는 것이. 그래도 촌티 나지 않도록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가 들어있는 주머니 쪽으로 태연히 손을 가져가본다.


전화를 끊고는 미처 도로 넣기도 전에 중년 사내 한명이 눈앞에 나타났다. 아마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딱 보기만 해도 「아 이 사람 중견 간부정도 되겠구나.」하는 분위기를 폴폴 풍기는 아저씨였는데 해외를 많이 나갔다와서 그런지 까맣게 그슬린 얼굴과 피부가 멋지게 어우러져있는 나이스 미들이었다.

난 거의 90°가까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창욱 부장님.”

그리고 고개를 다시 올리면서도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희 사장님 소개로 찾아뵙게 된 천준호 대리라고 합니다.”

내 큰절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45°정도까지는 고개를 숙인 김창욱이란 사내가 바로 이어 답례를 해왔다.

“오 그래요. 반가워요. 김창욱입니다. 내 김 사장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누구를? 나를?

“괜찮고 쓸모 있는 친구라고. 꽤.”

내 괜찮은 건 둘째치고라도 쓸모 있다는 건 잘 모르겠다. 이 회사 다닌 지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큭큭··· 어쨌든 그래도 기분은 좋다. 소개자에 의한 영향력, 이거시야말로 영업을 다니는데 있어 최고의 지원사격이 아닐 수 없기 때문에! 일은 아직 성사되지 않았건만 시작도 하기 전에 김칫국이 먼저 식도를 거쳐 위장으로 흘러들어간다.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결코 이건 내가 나서서 벌컥 들이킨 게 아니다. 나도 모르게 그냥 저절로 입안으로 들어온 거란 말이다!

“아 예. 말씀 감사합니다.”

“자, 여기 서있을 게 아니라, 들어오세요. 안으로.”

“예 알겠습니다.”

사무실 안은 내가 지금껏 다녀본 여타 소규모 여행사들에 비해 확실히 공기가 달랐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칸막이 사이로 또 그 수만큼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전화기 소리와 그걸 받아대는 소리. 뭐가 그리 급한지 서류를 들고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들까지. 한적한 외곽 지역으로 나가 자기들 스스로 지었을 법한 이름을 걸고서 영업하는 작은 곳을 찾아가보면 열중 아홉은 인터넷을 하는지 뭘 하는지 여하간 컴퓨터만 만지작거리고 있기 일쑤인데···. 아, 물론 그들은 당연 그들 나름대로의 지역 친화적인 영업 전략을 구사하며 선택과 집중의 효율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는데 토를 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단지 이곳은 정말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어쨌거나 이러한 번잡스러운 곳을 옆으로 끼고 지나쳐 한쪽 벽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회의실로 부장님을 따라 들어갔다.

“앉으세요.”

“예 부장님.”

난 자리에 앉기 전 잠시 부스럭거리며 명함을 하나 꺼내어 이미 건너편 의자에 아랫몸을 걸치고 있는 부장님께 상체를 숙여 전해드렸다. 그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아~ 명함. 여기···, 저도.”

부장님께서도 당신의 명함을 꺼내 건네려해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상체를 숙이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힘들다.

“잘 왔어요 천 대리님. 우리 김 사장 말대로 아주 맘에 드네.”

“감사합니다.”

“뭐, 회사 소개는 나한테 할 필요 없고, 나 그쪽 김 사장, 성윤이 잘 알아요. 우리 친구거든. 술도 같이 자주 먹고.”

이건 아까 울 사장님께도 들은 얘기다. 당신 친구라고. 하여간~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이놈의 고질적인 혈연·지연·학연! 고~오맙다···!

“아 그렇습니까? 어쩐지···.”

“음··· 빠르게 얘기합시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이번에 초등학교 배움여행에 입찰했다가 선정이 되었거든요? 근데 그걸 우리 성윤이 회사, 음··· 천 대리님한테 맡길려구요.”

“아, 예?”

너무 급작스러운 내용이었다. 오락기계에 동전 넣고 누구로 할까 고르고 있었는데 바로 왕이 나와 버렸다.

“아이 뭐 할 건 별로 없어요. 이미 업체는 우리로 선정되었으니까 그 부분은 신경 쓸 거 없고, 그냥 학교에 같이 가서 선생님들이랑 회의할 때 자료준비하고 그것들 좀 자세히 설명만 해주면 되요.”

“아, 예 알겠습니다.”

내 자신 있어 하는 대답을 들은 부장님은 혼잣말로

“가만있자, 그게 어딨더라.”

라고 중얼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뒤편에 있던 책장을 눈으로 더듬었다.

“내가 아까 여기다 꽂아두라 했는데···.”

약간은 성기게 꼽혀져있는 서류들을 이리 저리 훑으며 닫힌 입으로는 연신 ‘음~ 음~ 음~’ 하는 콧노래를 내뱉는 그의 모습이 저건 아무러하여도 저 분의 버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찾았다!”

서류철이 많지 않아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는 내 추측에, 역시나 흥얼거리는 소리가 금방 끊기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어준다.

“여깄어요 천 대리님. 이게 우리가 이번에 입찰했을 때 만들었던 자료에요.”

부장님은 책장을 향해 있던 몸을 돌려 바로 앉으며 내 쪽으로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좋이 두툼해 보였으나 PPT인쇄물이 그렇듯 거지반 대부분이 여백이어 보기 편했다. 그런데 정작 그 내용보다는 학교 이름이 먼저 눈에 붙어왔다.

“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조그만 비명.

이런 나의 태도에 부장님은 조금 놀란 듯이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뇨. 학교가···.”

“학교가 왜요?”

“제가 이, 여기 부속고등학교에 다녔거든요.”

그러하였다. 그 이름도 찬란한 「명운초등학교」라는 글자 여섯 개가 서류 맨 앞장 아래 부분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잖아도 내심 도대체 어떤 초등학교길래 체험학습여행을 해외로 기어나가나? 하고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교명을 보고 나니 대번에 이해가 갔다.

‘그래. 이 학교면 이정도야 껌이지.’

하는 생각이 성냥불처럼 머릿속을 짧게 밝히고 지나갔다. 그리고 등시 잊고 있었던 쓰린 추억 하나가 아련히 떠올라 입맛을 다시게 했다.

때는 바야흐로 근 20여 년 전. 더 정확히는 90년대 초반이었고, 이 몸은 당시 「국민학교」라 불리던 곳에 6학년으로 재학당하고 있었다. 그해 봄, 곧 다가올 수학여행으로 다들 들뜬 기분으로 있을 때 난 혼자 그러지 못하고 속으로만 전전긍긍 앓고 있었던 슬픈 기억이 있는데, 그 이유는 지금에야 물론 ‘돈’도 아닐 테지만 그 시절로는 꽤 큰 액수였던 「몇 천원」에 달하는 여행경비가 부담이 되어 집에는 감히 말도 꺼낼 수 없었던 때문이었다. 요행히 많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목적지인 속리산까지 갔다 올 수는 있었으나 그때, 그 힘겨이 끄집어낸 말씀에 넉넉지 못한 가계를 꾸려가고 계시던 부모님의 난감해하는 표정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뇌리에 박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었었다. 이후로 난 힘들 때마다 엄마빠의 그 얼굴을 떠올리며 악착같이 버텨왔던 것 같다.

‘큭큭큭. 난 그때 그 돈이 없어 수학여행 안가겠다고 생떼 부렸었는데··· 얘네들은··· 큭큭.’

갑자기 어른거린 쓸데없는 추상 한 줄기다. 빨리 훌훌 털어버리자.

“오~ 그래요? 천 대리님 좋은 학교 나왔네.”

“아, 아닙니다. 전혀 아니에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2 금요일 NEW 5시간 전 2 0 23쪽
51 금요일 24.09.11 2 0 24쪽
50 금요일 24.09.07 4 0 24쪽
49 금요일 24.08.30 6 0 22쪽
48 금요일 24.08.22 8 0 27쪽
47 금요일 24.08.16 8 0 20쪽
46 목요일 24.08.08 8 0 22쪽
45 목요일 24.08.03 7 0 18쪽
44 목요일 24.07.27 8 0 18쪽
43 목요일 24.07.18 8 0 20쪽
42 목요일 24.07.12 6 0 20쪽
41 목요일 24.07.05 8 0 22쪽
40 목요일 24.06.28 7 0 12쪽
39 목요일 24.06.20 9 0 22쪽
38 목요일 24.06.15 12 0 26쪽
37 수요일 24.06.13 10 0 24쪽
36 수요일 24.06.12 7 0 26쪽
35 수요일 24.06.11 6 0 23쪽
34 수요일 24.06.11 7 0 24쪽
33 수요일 24.06.09 6 0 13쪽
32 수요일 24.06.09 6 0 13쪽
31 수요일 24.06.07 9 0 15쪽
30 화요일 24.06.06 6 0 14쪽
29 화요일 24.06.05 10 0 14쪽
28 화요일 24.06.04 8 0 15쪽
27 화요일 24.06.03 6 0 14쪽
26 화요일 24.06.02 8 0 13쪽
25 화요일 24.06.01 5 0 18쪽
» 화요일 24.05.31 11 0 13쪽
23 화요일 24.05.30 8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