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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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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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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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DUMMY

그 꼴도 보기 싫어 일부러 새벽같이 나가고 오밤중에 들어오기도 했으나 항상 마주쳤다. 내가 사는 빌라촌에 들락날락하는 길이 그거 하나뿐이었다는 점도 한몫 거들었다. 그러고는 밤마다 전화를 걸어댔다. 한 번도 받지 아니하는 그 전화를. 내 이 기간 동안 수신거부목록에 찍혀있던 번호를 작정하고 새어봤는데 최고점을 찍은 날은 무려 63통의 그것이 걸려온 적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한 열통 단위마다 문자 하나씩 잊지 않고 끼워 보내면서.

「오빠 전화 받아주세요」

「그 남자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없어요」

「날 놀렸어 오빤, 날 가지고 논거야!」

「오빠 보고 싶어요」

등등의 내용으로.

그렇게 일주일···.

매일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모습이 거짓으로 느껴지지만은 않는다는 쪽으로 서서히 기울어가던 마음이 끝내 시베리아벌판 같던 영구동토층을 살짝 쪼개며 새순을 피워 올리게 만들었다. 결코 넘어지지 않을 거라 여겼던 빙성철벽이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녹아내리다 결국은 빙충스런 모습으로 무너져 허무히 사위어간 것이다. 이는 동시에 변변한 연애경험도 없고 따라서 여자라는 동물에 대한 깊은 통찰력 역시 거의 전무했던 한 얼뜨기 천치바보가 달콤한 악마의 이끌림에 홀려 그가 내어놓은 「영혼포기각서」에 언령신앙의 정점에 위치해 있는 자신의 소중한 「서명」을 올림으로써 지옥의 문을 활짝 열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고야 말았다는 걸 뜻하는 바이기도 했다.

7일에 하루 더해 8일째 되던 날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라는 문자에 심금이 비틀어진 나는 피 바른 인장을 원하고 있던 악마가 서있는 곳으로 밤늦게 나아갔다.

“오빠···?”

“헤어지고 왔냐.”

“네. 이제 오빠밖에 없어요 오빠밖에···.” “그래. 알았으니까 어여 들어가.”

“네···.”

후우··· 이런 비잉~신··· 아무리 생각해도 내 스스로가 병신이라는 걸 부인 할 래야 부인 할 수가 없구나. ···아니지 아니지, 그래도 사지는 멀쩡하니까 병신病身이 아니라 병심病心이라 해야 함이 옳겠어.

···

이 잔혹했던 과거를··· 두 번 다시 세상과 만날 수 없도록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불태워 땅 속 깊은 곳에 묻어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몰래 빠져나간 한 조각이 그녀의 가슴에 박혀있었을 줄이야···. 내 모질지 못했던 마음이 이렇게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구나.

에혀~ 이제 보니 남 탓할 거 없네. 모두 다 내 업이로세 내 업···.


그러했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나는 그녀의 바람상대였다. 무슨 연유에선지 알 수는 없고 또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녀는 그 남자와 잠시 거리를 둔 사이 영문 모르는 나와 일바람을 피워댔던 것이다. 잠깐 싸웠든지 아니면 진짜로 헤어졌든지 간에. 지금에야 드는 생각이지만 그녀가 날 그렇게 매사 의심하고 감시하고 또 집착했던 이유도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자기가 그런 뒤 구린 행동을 하고 다녔으니 다른 사람 다 지 같이 보여서 그리 행동했던 것은 아니었나 싶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끝까지 믿었었던 것처럼. 아무튼 그 연놈은 나를 통해 사랑을 재확인하고는 기어코 자신들의 그것을 완성시켜 버렸다. 내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으나 그녀 입장에선 미처 청접장까진 찍어내지 못했던 것을 아주 신의 한 수라 여기지 않았을까.

푸하··· 그런데, 이쯤에서 끝나줬으면 또 좀 좋으련만··· 한번 무너지기 시작한 뚝은 걷잡을 수 없이 몰려드는 미친 물길들의 연이은 쇄도를 막아주지 못했고, 그 급류에 의해 나의 소중한 미래들이 휘말려 가는 것을 뜬 눈으로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어야하는 안타까운 사태들을 속출하게 만들었다.

정신적인 부분은 이미 작살났으니 다음은 물질적인 부분 차례라는 뜻이다.

지금이야 업계를 떠난 지 꽤 되어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당시 내가 있던 보험회사에는 이 「유지율」이라는 것이 있었다. 간단히 설명해, 책정된 급료를 100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갑이라는 사람의 유지율이 100%면 100만원이 다 나오는 반면 을이라는 사람의 그것은 88%라 88만원만 받게 되는 뭐 그런 식으로 적용되는 급여체계를 말한다. 일모 단순해 보이지만 그래도 앞 뒤 없이 운용되는 것은 아니어서 계약한 뒤 미처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해약된 건들에 한한 담당설계사의 급여 비율을 깎아내는, 나름 회사입장에서만 봤을 때는 타당했던 방법이라 볼 수 있겠는데, 이러한 방법이 쓰였던 이유는 신계약을 체결했을 때 나오는 수당이 계약자가 최장 몇 십 년까지 유지해야 하는 장기 금융상품인 「보험」을 최소 1년 이상은 깔고 간다는 전제하에 산정된 금액을 기준으로 계산되는 일종의 선 지급금인 만큼, 만약 계약자가 해당 기간 내에 그것을 틀어버리면 회사가 고스란히 그 피해를 떠안게 되므로 그 「약속」을 유지시키지 못한 책임을 계약해 온 당사자가 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못 받게 되는 나머지 백분율에 상응하는 돈들은 이미 지급되었던 수당에 대해 이루어지는 당연한 환수조치로 보면 된다.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계약에 단 한 건의 해지도 없고 새로운 계약도 무더기로 들어온다면··· 이 녀석은 마땅히 100%이상으로도 올라갈 수 있다. 다시 말해 무턱대고 깎아내리자고 만 만든 체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데··· 난 이 유지율이란 녀석이 55%까지 떨어졌었다. 진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렇게 된 연유에는 또··· 그녀가 연관되어 있었으니···.

일반인보다 여유가 좀 있었던 그녀의 집안에서 밀어주고 있던 굵직굵직한 계약들이··· 싸그리 몽땅 해지되는··· 무론 만 1년 넘게 유지된 뒤라면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으나···.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였고 이런 날이 오게 되리란 건 그녀와 헤어진 순간부터 이미 예견되어진 바였다. 단지 그게 언제 오느냐가 관건이었을 뿐. 그렇다고 이게 또 대비한다고 해서 대비되어지는 일도 아니었던지라···.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그 초유의 사태에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결국 안 좋은 예감은 늘 항상 꼭 딱 들어맞게 되어있다는 불사의 법칙이 어김없이 작용했던 것이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내가 어느 정도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커다란 도움이 없었으면 아니 될 일이었다. 이 부분은 정말 고맙다는 말로도 부족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난 실적을 위해 염치없이 처갓집 될 곳에 손을 벌릴 그런 나약한 놈은 결단코 아니다. 다만, 돈이 없는 나를 위해 그렇게라도 힘을 실어주어야겠다는 제안을 끝내는 거절하지 못하였고 또 이렇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 그녀와 결혼할 수만 있다면 그 뒤에는 한 가족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옆에서 평생 챙겨드리며 보답할 수 있겠다는 앞 나간 생각에 좀 더 빠른 길을 택했던 것인데···.

그리고··· 우리네 인생살이가 다 그렇듯 당시엔 최선이었다고 생각했던 선택이 늘 최고의 결과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듯 내가 올라섰던 선택지 역시 보시다시피 날 그리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지는 못하였다. 그저··· 몰아쳐오는 태풍이 훠~언히 보이는 방파제의 테트라포드 위 정도?

왜··· 항상··· 내가 본 경우 중 가장 나쁜 경우의 수는 꼭 나에게 닥쳐 오냔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빌어먹을 상황에 처해 있으니 실적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지 않을 리 없었고, 월말마다 꼬박꼬박 챙겨먹던 우수설계사 포상도 다른 사람들의 손으로 넘어간 뒤로는 아예 돌아올 생각을 잊어버린 듯했다. 그래도 열심으로 정상궤도에 올라가려는 노력과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노력 모두에 매진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허나 이 유지율 55%의 힘은 마치 장판교에서 혈혈단신으로 위무제의 대군을 막아서던 촉한 소열제의 막내의제처럼 너무나도 강력했으니···. 가뭄에 콩 나듯 들어오는 신계약과 장마철 소낙비처럼 우두두 떨어져 내리는 기존계약, 그리고 형편없이 줄어든 월급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심지어 어느 달은 환수조치가 급여이상으로 이루어져 돈을 다시 박는 기염까지 토해낸 적도··· 있었을 정도로. 예마저 만으로도 죽을 맛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아놓은 돈이 거지 똥구멍에 붙어있는 콩나물마냥밖에 되지 않아 결혼 준비하며 하릴없이 긁어대 바닥 드러낸 카드와, 이에 눈물을 머금고 융통할 수밖에 없었던 현금서비스조차 이행 직전에, 그것도 「단순변심」으로 계약을 파기했다는 낙인을 사정 봐주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찍어준 덕택에 제때 메꾸지 못해 그 피해를 옴스래기 내 지갑 안으로 갖고 들어와 둥지를 틀어 버렸다는···.

··· 하아~.

··· 후우~.

이런 난리 속에서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월 수령액 천만 원을 넘긴 적 있었으나··· 카드 두 개 메꾸고 나니 손에 남아 있던 것은 땡전 한 푼 없는 텅 빈 수벽뿐이었음이라···.


아직 누구의 이름도 새겨져있지 않던 나의 심장, 그 가장 가까이에서 서성거리던 여자는 그렇게 동방결절에 서슬 퍼런 비수를 깊숙이 박아 넣고는 도망가 버렸다. 날 관속에 떠미는 것으로도 모자라 다시는 부활하지 못하도록 아예 뚜껑에 못질까지 하고서는.



한치 앞도 가늠되지 않는 시구屍柩 안. 그 질식할 것 같은 공포 속에서 놓을 수 없는 숨을 부여잡아가며 단단히 박혀있는 못들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무덤 위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차갑게 꽂혀있던 칼날을 통해 그것을 감싸 쥐려하는 따스한 온기가 심장으로 전해져왔다. 움직움직거리던 그 부드러운 손길···. 쉽사리 빠지지 않겠다는 듯 표독스레 박혀있던 비수는 그러나 그 조심스러운 움직임에 이끌려 마침내 자신의 독기가 뽑혀져 나오는 것을 무력하게 당해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끝 모르게 이어질 것 같던 어두운 밤이었다. 그러나 창천은 다시 여단黎旦으로 넘실거렸고, 그 눈부심 속에서 빛을 휘감은 채로 다가오고 있는 여인이 있었으니, 마치 수평선 거품 속에서 태어나 인간의 모습으로 화한 하늘신의 정기가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에 의해 키테라 섬으로 밀려와 봄의 호라를 맞이하여 그녀의 수행을 받게 되는 보티첼리의 유화 속 이야기처럼, 그렇게 바닷가에 나타나 향기로운 머리칼을 은은한 서풍에 나부끼며 미소 짓고 있던 그미.

민희는 그렇게 자신의 아름다운 첫 발을 나의 해변 위로 내딛어왔다.

태양은 다시 또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이유와 힘이 나에게도 솟구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둠이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해가 떠있는 지구의 밝은 이면에는 항상 새카만 밤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그미를 향한 나의, 나를 향한 그미의 애틋한 마음은 나날이 깊어져 갔으나 아직 내게 행복한 순간이 와서는 안 된다는 듯, 애간장을 숫제 녹여 내리고 있는 속사정은 별로 나아질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하루가 갈수록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게 너무나 환히 눈에 들어왔다. 이미 열심히 뛰어서 이겨낼 수 있는 범주의 한계를 가뿐히 넘어선 곳에 다다라 있었던 것이다.

월급은 여전히 환수되기 바빴고, 그러고 남은 돈은 민희와 만나는 비용을 충당하기에도 빠듯했다. 나이도 서른 줄을 넘기니 청소 일을 하시다 이제는 연로하여 집에서 쉬고 계시는 어머니와 아직 현업에는 있지만 벌이가 뻔한 택시 일을 하고 계신 아버지께서 지고 있는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고정적으로 집에 들이는 돈과 개인 생활자금을 합치면 수입은 항상 X축 아래에서 밑돌았다.

보험일을 하다 보니 영업비도 많이 들었다. 그나마 고객이 있는 사무실을 찾아가면 다행이지만 그냥 밖에서 만나게 되면 차 값만 두 명, 만원이 넘어가고 그걸 하루 서너 번만 반복해도 벌써 5만원에 육박한다. 가끔 자기 차 값은 자기가 직접 내는 고마운 분들도 있었으나 어쩌다 한 번 볼까 말까이니 이것만으로도 한 달 돈 백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 뿐만 아니라 새벽 늦게 다닐 때 드는 택시비하며 이거 저거 따지면 나가는 돈이 훨씬 많아진다. 예전처럼 월급으로 돈 잔치 해댔을 때는 별 것 아니었으나, 실적이 없어 급여가 바람 빠진 풍선마냥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지금에선 이것 또한 심각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문 앞에서 맛보았던 달콤한 언약의 과실은 아주 잠깐 눈을 즐겁게 해주는 별똥별처럼 석화광음 혀끝을 스치다 사라지고, 결국 들어서게 된 지옥 안의 광경은 어리석은 이의 영혼을 찢어발겨 처절한 괴로움 속에 몸부림치는 양을 보며 웃고 싶어 하는 마귀들의 소름끼치는 눈길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형형한 살기들은 벌써부터 나를 노려보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의 노정 속으로 어서 발걸음을 옮겨오라는 거부할 수 없는 영을 내리고 있었다.

매달 일정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나가는 돈과 늘 그 아래로 수렴하는 수입. 긁는 것만으론 이제 부족하여 하나 둘 돌려막기 시작하다가 종내 손대게 된 단기카드대출. 악마는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친절하게 지옥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단지 처음이 힘들었을 따름이다. 처음 내딛는 그 발걸음이. 하나의 한도가 다 되어 다음 것에 손대기 시작했을 때 ‘큰일이네··· 이거 다 갚아야 되는데···.’라고 했었던 망설임. 더 이상 돌려막을 것도 없자 현금자동인출기 앞에서 ‘그래, 일단 급한 불 먼저 끄고, 돈 생기면 제일 먼저 갚아버리자.’하고 속으로 다짐은 했지만 주저주저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던 그 손길. 그러나 다 그때뿐이다. 일단 그 고비를 한 번씩 넘기고 나면 이후부터는 아주 거칠 것이 없어진다. 이렇게 각기 자신의 모든 것을 뽑아주어 순차적으로 돌아오는 결제일과 맞서 싸워주던 고마운 현금서비스들. 그러나 그들도 결국 힘을 다하자 녀석들의 모선母船은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한다.

‘호갱니임~! 요즘 호갱님 실적이 너무 좋아서 카드 한도를 상향 조정해 드립니다~. 많은 이용 부탁드려요~♡’

이것마저도 다 되자, 이번엔 직접 전보를 쳐오는데···.

‘호갱님 안녕하십니까. 저희 회사에는 「카드론」이라는 기능이 있는데 혹시 알고 계셨나요? 이건 단기대출인 현금서비스 외에도 신용카드를 갖고 계시는 모든 분이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담보 장기대출이랍니다. 기간은 1년이구요, 일반대출보다 쉽고 빠르게 이용하실 수 있어 많이들 문의 주신답니다.’ 물론 이율은 엄청나게 비싸지요~ 오호호호호호호호~.

··· 참 그 조그만 카드 하나에 이렇게나 많은 기능이 있었는 줄은 정말이지 이때 처음 알았다. 뭐 어쨌거나 이들은 침투시켜 놓은 당보수들을 이용해 자세한 실정을 파악한 뒤 지금 갖고 있는 자금은 물론, 내가 응당 누려야할 미래가치의 재화까지 남김없이 쓸어 담아 끝내는 자신들의 노예로 전락되게끔 만들어버린다. 친절하고 호의적인 낯빛만 띄게끔 깎이어진 가면 절대 벗지 않은 채로. 자칫 잘못하여 한번 걸려들기라도 하면 현재는 물론 다가올 앞날까지도 모두 저당 잡히고는, 그들이 휘두르는 가열찬 채찍질을 피할 길 없이 온몸으로 받아내며 그 탐욕스러운 입으로 주위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삼켜대고 있는 자본주의의 늪 한가운데에 빨려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리니···. 그 폐해를 알고 있음에도 결국은 근절하지 못하여 청이라는 대국을 몰락의 길로 이끌었던 아편처럼, 그러면서도 하릴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는 이 처참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의 구슬픈 말로가··· 바로 저런 식으로 우리들 주변에서 종종 보여 지고 있다. ···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나였다.

이때 하나 더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사람들이 왜 사채를 쓰게 되는지, 그 말도 못할 조건과 살인적인 이자를 감내해 가면서까지도! 그것은 ‘잠깐만 쓰고 빨리 갚아 버리자.’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 이미 늦었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한때 돈을 살짝 만져 보았던 사람들이 더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 또 아닐까 한다. 조금만 어떻게 하면 돈이 들어올 것 같아 잠시 급한 것만 메꾸고 나서 바로 갚아버리자는, 그러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이미 사채에까지 손을 벌린다는 건 경제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내 백퍼센트 확언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약정된 기간 내에 자신이 원하는 액수만큼의 돈을 쥐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다.

아직 운이 다하지는 않았는지 난 그마저는 아니었으나 대신 대중매체에서 연일 광고해대는 모 유명 대부업체의 사무실 안에까지는 들어가 봤는데···, 으으··· 그때의 그 기분이란···.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주는 아리따운 여직원들의 모습마저 왜 그리 무섭게만 느껴지던지···. 다행히 이 일은 벌어진지 한 달 안에 수습하여 큰 이자를 물지 않고 바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고, 이 사실은 이날 이후 무덤으로 가져갈 때까지 혼자만의 비밀이어야 한다는 피의 맹세로 각골하였다. 이는 당연 현재 아무도, 심지어는 부모님께서도 모르고 계신다.

이 모든 사태가 일단락되어진 지금도 가끔 TV를 통해 사채 관련하여 많이 힘들게 된 사람들의 사연을 보고 있자면··· 하아··· 얼~마나 힘들었길래 저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동병상련의 기분이 아련히 밀려온다. 그들은 그것 외에는 기댈 곳 없는 구석까지 몰렸기 때문이다 라는 말만으론 차마 다 설명하지 못할 사연들을 가슴에 절절이 안고 있을 게 분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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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수요일 24.06.11 8 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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