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공모전참가작 새글

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최근연재일 :
2024.09.20 18:00
연재수 :
52 회
조회수 :
489
추천수 :
0
글자수 :
390,044

작성
24.08.16 20:43
조회
7
추천
0
글자
20쪽

금요일

DUMMY

구름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난 다음날 아침이다.

아직도 입술에 남아있는 여운은 가시질 않고 있다. 그 덕분인지 간만에 즐겁고 재밌는 꿈을 꿨던 것 같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상쾌한 기분으로 잠을 털어버리고 시계를 보니 아직 기상종이 울리기 전이다. 다시 눈을 감아도 보았으나 그래봤자 10분 남짓이라 갈무리하는 쪽으로 슬슬 정신을 몰아갔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 어젯밤 민희를 들여보낸 뒤 집으로 돌아와 자기 전에 보냈었던 문자도 열어보았다.

「I always pray for you...」

되도 않는 실력으로 억지억지 만들어 날린 거라 유명 영어학원 강사 출신인 그미가 보았을 때는 웃겼겠지만 그래도 그랬었던 내 맘 조금이라도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고마워요 오빠... 늘...」

다행이 보내온 답문으로 미뤄보거니 약간은 알아준 것 같다. 이정도면 됐다 이정도면.


금요일이라서 그런가, 몇 년 동안 막혀있던 가슴이 탁 트여서 그런가, 아니면 둘 다 때문인가 오늘 유난히 더 출근길이 가볍다. 이 기분대로라면 역대급으로 일이 잘 될 것 같다.

사무실에 앉아서도 평상시 늘 접하던 모든 것들이 유달리 즐겁게 다가온다. 저 많은 책상과 의자들, 그 위에 놓여진 잡다한 서류들과 컴퓨터들, 그리고 여전히 시간 아슬아슬하게 맞춰 뛰어 들어오는 여직원들과 우리 영업부 부장··· 음··· 이 사람은 빼자. 저 얼굴을 보니 모처럼 올라온 좋은 기분이 다 깨져나가려 한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저 인간 나랑은 안 맞는 것 같아.

먼젓번에 부산으로 장기 출장을 내려가기 앞서 그래도 또 직속상관이라고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면서 마침 갖고 있던 영화표 두 장을 뇌물, 아 아니 아니 선물로 건넨 적이 있었다. 서울에 있는 영화관 지정에다 기간도 명시되어있어 지방으로 가버리면 아깝게 사장 될 것이 자명하기에 나름 선심 좀 써본 것이었는데···. 그러나 그 긴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근황을 물었더니만 저 사람 대답이랍시구 내게 내어놓은 한마디가

“그거? 모올라 내가 누구 줬든가 아무튼 그래. 내가 그거 볼 시간이 어딨냐.”

이 따위 소리가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건넸던 말은 이거였다.

“부장님 잘 다녀왔습니다. 근데 영화표는 잘 쓰셨나요, 형수님하고?”

아니 씨발. 그럼 아예 처음 줬을 때 볼 시간 없다고 하면서 받질 말든가. 그때는 ‘그래? 고맙다.’ 하면서 낼롬 챙기더니 그제와서 저 지랄이냐? 저 지랄이. 아니면 최소한 그래도 ‘그래 덕 분에 잘 봤다.’하고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꼭 가시 박힌 말로 되받아쳐서 사람 골나게 만든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 저 양반 비위를 거스른 적이 없는데 나한테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는 나도 걍 그러려니~ 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아무튼 저부분만 건너뛰고는 다 그러하여도 기분이 좋다. 꽤 오래전, 민희와 사귀기 전에 그미가 내게 처음으로 선문자를 보내왔을 때도 세상이 이렇게 보였었는데, 다시 또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다니 새삼 신기하다. 역시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인가 보다.

생각 같아서는 오늘 영업지역을 집 근처로 잡아 밤 뱅기로 나가는 우리 민희 맛있는 것 마지막으로 떠멕여 보내고 싶은 맘 굴뚝같지만 지역이 약간 후미진 곳이라 여행사라곤 본 기억 없는 것과 어제 이미 회사에 반 거짓을 친 이력에 찔린 양심이 더하여져 차마 그러하진 못하겠다. 그런데, 그것도 그거지만 좀 더 심오하게 파고들면 아마 민희는 한참 자고 있을 공산이 크고, 거기다가 이제 외국 나가 또다시 밤 낮 구분 없는 생활을 해야 하기에 그미가 지금이라도 보충해둬야 하는 수면을 방해하기 미안한 까닭이 사실은 가장 앞섬이었다.

아아! 이런 배려심 넘치는 남자라니. 그녀 옆에 서있기로는 더없이 어울리는 나일 텐데···. 빌어먹을, 그놈의 돈이 뭔지···!

···시끄럽고, 암튼··· 이 기분, 이 기운을 갖고 이번 주로 계획했었던 송파구에서의 여정을 이어나가보자.

시간은 며칠 지났으나 그쪽까지 가는 방법은 아직도 별다른 수를 찾아내지 못하여 주 초반 때처럼 땅속으로 다니는 놈들에게 발을 맡겨봐야겠다.



기시감. 난 분명 오늘 지하철을 처음 탔는데 이 상황이 왜 이리도 낯설지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마치 앞서 경험해 본 적 있는 것처럼.

어제 그제를 빼고 요즘 계속 같은 방법으로 같은 시각 같은 장소를 지나다보니 얼마 되도 않은 월요일과 화요일의 기억이 상당부분 중첩되어 다가온다. 심지어는 오늘이 그때 그날 이었는지, 그날이 오늘인지 요일마저 잘못하면 헷갈릴 정도로.

지금도 벌써 그러할 진데 하물며 시간 훌쩍 지난 뒤이면 분명 이 겹쳐지는 시공의 기간은 한 뭉텅이가 되어버려 자신으로부터 세세한 기억을 한 올씩 뽑아내려는 해마와 시냅스의 노력을 방해해댈 것이 분명하다.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닌데 아직은 그럴 나이가 아닌데 하며 계속 자신을 다잡아도 보지만, 아니다. 이건 나이하고는 무관하다. 어쩌면 흥미진진한 수렵생활을 벗어나 매일 매일 반복되는 농경생활로 접어들며 상당수의 일들을 분업화 반복화 시킨 탓에 우리가 필연적으로 습득하게 된 진화의 산물은 아닐는지. 직접 그들이 생활하는 것을 보지 못해 확실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지금까지 밝혀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열등한 신체능력을 무리지어 상충시켰었던 것에 비해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혹은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라 불리던 이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며 달리기를 제외한 다른 많은 부분에서 훨씬 월등한 육체적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집단으로도 수렵과 채집 등 생존에 관한 전 과정을 수행하는 게 가능했다고 하는데, 나는 이게 그들의 두뇌 용적이 지금의 우리들보다 더 컸었던 이유에 힘을 실어주는 하나의 예시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인류학자도 아니면서 건방지게,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끄집어내본다. 그렇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꾸 깜빡깜빡하는 망각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반복되는 부분을 효율적으로 축약시켜 체내 칼로리 소모를 최소화하려 하는 인간종의 눈물겨운 진화의 소산이라고 난 조금 덜 자신 있게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마치 커다란 사진기와 음원재생기, 텔레비전 그리고 컴퓨터 등이 오늘날의 소형 전화기 안에 모두 융합·포식되어버린 전자기기의 혁신적 진화처럼! 그러니까 우리는 가끔 헷갈린다든가 까먹는다고 해서 너무 심하게 자신을 책망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고, 다시 말해 체중의 2%밖에 차지하지 않는 두뇌가 소비 에너지의 1/5을 넘게 가져가면서 발생하게 되는 문제점을 극복하는 도중에 야기 된 아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평온해질 거라는 소리다. 단···, 주변에서 뭐라 할 정도로 너무 심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왜 이 따우 헛소릴 주절거리고 앉았느냐구?

지금 뭔가가 자꾸 떠오르려하기 때문이다. 근데 그게 지금 막 떠오른 건지 아니면 예전에 한 번 생각했었던 건데 시간 지나 다시 떠오른 것인지가 구분이 안가서리···.

하철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언뜻 까아만 칠흑이 지배하고 있는 차장 밖으로 눈길이 살짝 스쳤을 뿐인데 불쑥 뒤따라 나온 단어 하나가 머리주변을 맴돌며 독서에 집중하려는 의식을 쉼 없이 간지럽히고 있거든.

바로 「흑암지옥」이라는 단어가.

흑암지옥··· 흑암지옥이라···.

더 이상 책엽은 눈에 들어오지 아니해 대신 그 말을 무심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자니 소싯적 사문의 길로 들어섰던 친구의 모습이 연달아 나타났다.

지중호라는 좀 멋진 이름을 갖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했던 친구의 친구로 만났으나 막판에는 그냥 가장 친해져버려 정작 우리 자릴 마련했던 그 친구가 꽤나 질투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녀석이다. 만난 기간 무색하게도 여름방학 끝날 무렵부터 이미 단짝이 된지라 수능 끝나고 나서는 짐짓 말 그대로 두 마리 미친 망아지처럼 날리고 다녔는데, 나완 달리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못하고 하여 같이 다녔을 때는 정말 어느 영화 문구에서처럼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다. 녀석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를 빼고는. 아마 녀석과 내가 이름이 부르기 비슷해서 더 친근하게 느껴진 점도 크게 작용했지 싶다. 친구들이 녀석의 이름인 「중호」나 내 이름인 「준호」 둘 중 하나만 불러도 우린 같이 ‘왜?’하고 돌아봤었으니까. 늦게 만난 아쉬움을 상쇄하려는 듯이 우린 그렇게 밤낮없이 붙어 다녔건만, 그러나 중호가 원래 집이 있던 전라도 쪽으로 대학을 가버리는 바람에 더 큰 아쉬움을 남기고는 다시 떨어져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 신성하다고는 추앙해주지만 기실은 하루 500원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남의 집 귀한 자식들 양심 없이 굴려먹다가 크게 다치거나 죽으면 나 몰라라 하는 국방부 산하 군인집단에 몸담고 있던 시절, 뜻밖의 편지 한 통이 날아오게 되는데···. 내용인즉 녀석이 머리를 깎는다고. 아니 멀쩡히 학교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드만 난데없이 이건 또 뭔 소린지.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었으나 집안 큰 어른이 스님으로 계셨던 영향도 아마 무시 못 할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난 졸지에 「스님친구」까지 생겨버렸다. 나중에는 중호의 어머님께서도 녀석에게 존칭을 쓰시는 탓에 나 역시 공식석상에서는 법명에 스님칭호를 깍듯이 붙여주었지만 사석에서는 당연히 개새끼 소새끼였지 뭐 낄낄.

이 이후 난 뻔질나게 절간을 드나들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백수기간이 좀 길어지거나 하면 어김없이 녀석이 있는 곳을 찾아갔더랬다. 심할 때는 한두 달까지도 처박혀 있었는데, 그 이상한 여자와 헤어진 뒤에 그랬고 민희천사를 외국으로 보낸 뒤에도 그랬었다. 아마 이때 불공을 드리며 분노와 슬픔을 내려놓으려한 탓에 정신세계가 나름 빨리 복원되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 않았으면 지금쯤 되는대로 막사는 반미치광이가 되어있었을지도. 사랑에 이용당했어! 가진 것도 모두 빼앗겼어!! 세상이 날 버린거야!!! 이렇게 날 내팽개친 신에게 복수하겠어!!!! 하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말이다 큭큭큭. 암튼 이렇게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난 전부 훌훌 털어내 버릴 요량으로 「스님」있는 곳으로 달려왔었는데 일단 사천왕문을 지나 일주문 안으로 들어오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해 질 수가 없었다는. 그리곤 행랑채 한 켠에 자리 잡고 여장을 부린 후 땡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사박사박 들려오는 발걸음에 반가워 맞이하면 어느새 기울고 있는 곡차 잔들. 달에 취해 구름에 취해 그리고 친구에 취해 따뜻한 기 올라오는 구들에 등 붙이고 있으면 아련히 들려오는 소쩍새소리···. 아 이때 이 기분은 정말··· 여기가 바로 극락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일 정도였다. 지금이야 그때만큼 시간을 낼 수도 없고 녀석도 파계한지라 다신 그런 기분을 느낄 순 없겠으나, 난 멋진 친구 덕분에 그렇게 가장 힘든 시기를 나름 슬기롭게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햐~ 이 생각을 하고 있자니 지금 나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있구나.

그런데 그 친구가 사라져버렸다. 어느 날엔가 계를 파하고는 잠적해버린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10년 공부는 내 얼추 계산해보아도 충분히 넘겼기에 도로 아미타불까지는 아니었다곤 하지만···. 그렇게 사라진지 1~2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시간 날 때마다 찾아보았으나 아무 소식 없더니 근간에 들어서야 드디어 그 잘난 모습을 드러내시었다. 보내준 사진 상으로 아주 팍~삭 골은 중늙은이가 되어. 한 편으론 반갑고 또 한 편으론 내심 괘씸했지만 아무래도 앞쪽의 마음이 더 컸기에 녀석이 알려준 소재지로 만사 제쳐두고 달려갔다.

조그마한 지방도시 버스터미널에서 해후한 그 녀석 중호와 이 녀석 준호. 반가움이 가득 차오른 건 오른 거고 그래도 괘씸한 건 괘씸한 거라 난 그 녀석을 한 대 세게 때려주···려다 말았다. 나보다 싸움을 잘 했으니까.

법명을 등진 채 웃고 있던 그 친구는 우리가 만난 조그만 터미널 근처에 터전을 마련하고서는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난 저녁, 중호와 난 대학 새내기 때 신입생OT고 MT고 다 때려치우고 전라남도 나주에 꾸려놓은 녀석의 자취방으로 놀러갔었던 십 몇 년 전의 그맘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걱정 없이 그냥 밤새워 부어라 마셔라 해대었다. 사회인이 된 뒤로 그렇게 기분 좋고 즐겁게 먹어본 적은 또 없었을 정도로.


“이 새끼! 뒤질려고!”

“미안~.”

“어디 갔었냐? 그래, 그동안.”

“그냥 뭐··· 여기저기 이것저것.”

“하~ 이 새끼. 연락이라도 하지 좀. 내가 인마 니 연락하면 내가 잡아먹냐? 인마?”

“미아안~ 이제 안 그럴께.”

“절은 또 그래 왜 나온 거야?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 쯧, 휴우···.”

친구가 내쉰 깊은 한숨을 보자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직장을 그만둔다 라는 개념과는 그 철학과 크기부터가 달랐다. 한마디로 목적지로 가기 위해 교통편을 갈아타는 정도가 아닌 아예 인생을, 신지信地 그 자체를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는 만큼의 규모였던 것이다.

제 아무리 친하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친구에게도 깊은 사연이 있을 진데 그걸 간과하고 걱정되는 맘만 앞세워 섣불리 찔러대다니···.

“그게··· 그게··· 그렇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나 또한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밥 먹듯이 가출하던 시절, 그의 방에서 발견했었던 일기장의 내용을 토대로 어렴풋한 사정을 대충이나마 짐작할 따름이었다. 친구의 밝은 얼굴 뒤에 숨겨져 있던 힘든 가정사. 그로인해 한창 즐거웠어야 될 청소년기가 막을 올리기도 전부터 시작된 방황···. 가정과 사회 어느 곳에서도 안식처를 찾지 못했기에 세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나름 해본다고 한 것 이었는데 결국 부처님 품 안에서도 고뇌와 번민은 끊이질 않았었나보다.

“··· 미안하다. 너도 괴로웠을 텐데···.”

“아냠마 니가 뭐가 미안해. 그냥··· 좀··· 이해해주라.”

“인마 다들 너 죽었다고 했을 때도 기다린 나야. 그런 말이 어딨냐? 이해해달라니.”

“씨불. 키키킥, 누가 나 죽었다 그러던?”

“친구들 다 그러던데?”

“아씨 안 되겠네 이것들. 한번 가서 다 조져?”

“제발 좀 그래줘라. 다들 웃는 얼굴로 당해줄 테니.”

“킥킥킥. ··· 나오고서, 절 나오고서 닥치는 대로 했다 이것저것. 근데 내가 뭐 기술이 있길하냐 경력이 있길하냐. 나이도 삼십대 중반 그리고 대학도 중퇴. 할 게 아무것도 없는 거야.”

그러게 절에 쭈욱 있지 왜 그랬냐?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기어 올라왔다가 천천히 내려갔다.

“사회 힘든 거 몰랐냐? 여긴 지옥이야 지옥. 하물며 니캉 내캉 집안도 돈도 아무것도 없는 놈들한테는 그냥 생지옥이야. 넌 그것도 모르고 나온 거냐?”

아이쿠! 아직 안 내려가고 있었구먼!

“알고는 있었지. 내가 그걸 왜 모르겠냐. 내 살아 온 삶이 그냥 지옥 그 자체였는데···. 그걸 좀 어떻게 해보려고 절밥 먹으러 간 건데···. 계속 있자니 답답해서···. 내 슴세살에 머리 깎고 들어가 청춘 다 보냈다. 그렇게 좋은 시절 다 욱이고 죽이고 살았다. 어느 날 보니까 서른이 넘어가있는 거야. 좀 서글프더라. 남들 다 연애하고 젊음 즐기고 그러고 살고 있는데 난 이게 뭔가 하고···. 내 살아왔던 삶에 조금이라도 즐거웠던 순간이 있었으면 그래 그때 그랬었지 하면서 어찌어찌 잘 다듬어가며 지냈겠는데, 이건 그런 게 하나도 없으니 좀 억울하더라고. 그러다가··· 아버지 소식도 있고 해서 그냥 무작정 나왔어. 다 그냥 놔두고 나왔어. 그렇게 빈소 갔다가··· 그냥 다 좀 잊고 싶어서 PC방엘 갔다. 거기서 일주일 있다가··· ··· 여기까지 온 거야···.”

“···.”

잠자코 듣고는 있었지만 이게 근본적인 이유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냥 푸념 섞어 둘러대는 말일뿐. 그걸 내가 모를 정도 바보는 아니다. 또 이걸 모를 친구 역시 아니다. 그러나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할 수 없이 공장엘 들어갔지. 거 왜, 외국인들 일하는 데 있잖아. 거기밖에는 받아주는 데가 없더라. 근데 몇 개월 있어보니까 역시 왜 외국인들만 쓰는지 알겠더라구. 일은 힘들고 돈은 짜고 그것도 희한하게 쪼금씩 밀려서 주고. 그래서 나온 다음에 막노동판 구르고 다녔다. 나한텐 여기가 좀 더 낫더라. 그래도 내가 젊은 축이고 다 나이 많은 아저씨 아니면 조선족, 중국사람 인데 그래서 소장이 날 좀 데리고 다니더라고. 지금은 그 형님 가는 곳엔 내가 다 따라가.”

“잘 됐네. 알잖냐 나도 대학 때 공사판에서 굴러먹은 거. 그때도 젊은 사람 없었는데 지금은 더할 껄 아마? 이럴 때, 젊은 사람들 없을 때 시작하면 너도 좀 자리 빨리 잡을 거다. 그렇게 해서 도면 공부도 좀 하고 그러면, 그땐 니가 그 아저씨들하고 조선족들 부리는 사장 되는 거야.”

“그러니까. 형도 그 얘기 하더라고.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지금 여기가 젊은이들한테는 기회의 땅이라고.”

“그램마, 잘 해봐. 그래도 이 녀석 정말 어디 가서 뒤지진 않았나 했더만 아주 자~알 살고 있었네. 이렇게 번듯한 집도 하나 장만해놓고.”

“푸하! 번듯? 번듯하냐?”

친구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고는 과장 된 손짓발짓으로 우리가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앉았던 조그만 원룸 안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이게? 이 코딱지만 한 방이?”

“야이씨 혼자 사는데 이정도면 됐지. 올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다고. 그냥 여기서 착실히 돈 모으다가 아가씨 생기면 들어와 살라 그러다 아, 아 생기면 그때 좀 더 넓은 곳으로 가면 되지 새꺄. 얘기 못 들었어?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다 그렇게 시작했대잖아~.”

“그게 언제 적 얘기냐? 요즘 여자애들이 이런 꼴 보고 잘도 시작할라 그러겠다 씨발. 킥킥. 암튼 그래도 고맙다. 말이라도 그리 해주니.”

“말만이 아냐 인마. 잘 찾아봐. 혹시 알아? 난 중호씨 아님 안돼요~ 하는 눈멀고 골빈 처자 하나 얻어 걸릴지.”

“허허 허허허··· 참 잘도 그러겠다.”

“히힛.”

“근데 야, 말도 마라. 이거 하나 만드는데도 수억 들었다.”

“에이, 설마 수억까지야.”

“··· 씨불, 그래 수억은 좀 뻥이고, 암튼 이것도 암 것도 없는데서 시작할라하니까 지인~짜 힘들더라. 공장 때 쪼금 모아 논 걸로 달방 잡아 생활하면서 현장 다녔는데 정~말 안 모이는 거 있지. 맨땅에 헤딩하면서 일 년 고생해 겨우겨우 이 원룸 하나 만들었다. 그래도 일 끝나고 오면 아느윽~ 하고 좋다. 어찌됐든 내가 맨 바닥에서 시작해 만든 곳이니 볼 때마다 뿌듯~하기도 하고.”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지.”

잠깐 대화에 틈이 생긴 사이 중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그것도 방에서! 큭큭큭. 근데 누가 뭐라 하겠냐. 이곳은 녀석의 집이요 궁궐이요 천국인데. 친구 지중호야 말로 이 조그만 세계의 왕. 모든 질서를 창조하는 전지전능한 지배자! 여기선 그 누구도 녀석의 말을 거역할 수 없다. 나만 빼고.

“후읍~ 하아~.”

“맛있냐.”

“인생의 맛이다 인생의 맛.”

“헛허~ 쓰다는 소리네.”

“끊어볼까도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내 유일한 취미생활이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2 금요일 NEW 5시간 전 2 0 23쪽
51 금요일 24.09.11 2 0 24쪽
50 금요일 24.09.07 4 0 24쪽
49 금요일 24.08.30 6 0 22쪽
48 금요일 24.08.22 8 0 27쪽
» 금요일 24.08.16 8 0 20쪽
46 목요일 24.08.08 8 0 22쪽
45 목요일 24.08.03 7 0 18쪽
44 목요일 24.07.27 8 0 18쪽
43 목요일 24.07.18 8 0 20쪽
42 목요일 24.07.12 6 0 20쪽
41 목요일 24.07.05 7 0 22쪽
40 목요일 24.06.28 7 0 12쪽
39 목요일 24.06.20 9 0 22쪽
38 목요일 24.06.15 12 0 26쪽
37 수요일 24.06.13 10 0 24쪽
36 수요일 24.06.12 7 0 26쪽
35 수요일 24.06.11 6 0 23쪽
34 수요일 24.06.11 7 0 24쪽
33 수요일 24.06.09 6 0 13쪽
32 수요일 24.06.09 6 0 13쪽
31 수요일 24.06.07 9 0 15쪽
30 화요일 24.06.06 6 0 14쪽
29 화요일 24.06.05 10 0 14쪽
28 화요일 24.06.04 8 0 15쪽
27 화요일 24.06.03 6 0 14쪽
26 화요일 24.06.02 8 0 13쪽
25 화요일 24.06.01 5 0 18쪽
24 화요일 24.05.31 10 0 13쪽
23 화요일 24.05.30 8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