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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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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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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DUMMY

민희라는 곱디고운 이름이 나의 심장에 아로새겨지기 전, 그 근처에서 잠시 서성이던 여자가 하나 있었다.

로마 교황청을 총본산으로 둔 모 종교단체에서 만난 사람이었는데 같이 성가대생활을 하며 엮이다가 차츰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던 뭐 그런 사이다. 참하게 생긴 것이 매우 인상적인 두 살 연하의 아가씨였고, 처음 봤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으나 거리를 두고 은근슬쩍 주변을 돌며 다가오는 모양새로 신경 끌게 만들더니 결국 나마저 넘어가게 되어버린,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부한 방식으로 인연이 겹쳐진 경우였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그녀는 내 세상의 전부가 되었고 그렇게 찾아 헤매던 인생의 반쪽이 나타난 거라는 여김에 터럭만한 의심도 품지 않으려했다. 적어도 난, 내 쪽에서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시작은 다른 연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서로 호감을 갖고 자주 접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사귀게 되었으며 자연스레 결혼얘기가 오가는 순서까지는.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나 빨랐다. 그녀가 맨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게 그 만났던 해 1월, 수개월 동안 사귀네 마네하며 티격태격 거린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이 5월, 그리고 들썩이는 혼담 속에 결혼 날짜가 잡힌 12월.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다는 말이 딱 이짝이었다. 더 이상 맞는 표현을 찾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우리 나이도 나이인지라 언뜻 보면 몇 개월 안 만나 화촉 밝히자는 얘기 나오는 것이 무에 문제 삼을 일이냐 할 수 있는데 더해 또 여자 측에서도 이듬해가 아홉수이니 올해 안으론 꼭 가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버티니 나로서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할 구실이 없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귄지 1일주일 만에 결혼하자고 조르는 건 좀 이상한 거 아닌가? 뭐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지내왔던 사이도 아니고,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서로 면상 초다듬이 한지 고작 6개월 채 안 될 때였는데. 사실 지레한 더듬싸움을 거의 4개월 가까이 끌었던 것도 여러 가지 사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컸던 두 가지에 하나를 들어보자면 결혼에 대한 그녀의 집착이 너무 과하다는 거였다. 물론 이해는 갔다. 그녀 집안에서도 딸아이 서른 전에 시집보내는 게 목표라 했으나 어느덧 벌써 두 해만 남겨 놓은 상태였고, 또 스물아홉 한 해 제하고 나면 남은 건 이번 년도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사귀기 전서부터도 계속 올해 안으로 시집 가야한다는 말을 수시로 해댔었고, 대학 졸업장 받은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아무런 준비도 해놓을 수 없었던 난 심한 부담감을 느껴야했다. 도저히 내가 그녀의 원하는 바를 이뤄줄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마음을 접어야 했으며 그리고 더 이상 그녀와 엮이려 하지도 않았다. 이런 내 태도에 당연히 단념하고 돌아설 줄 알았던 그녀. 그러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런 나를 찾아다니며 울며불며 용서해 달라 빌었는데, 그 모습에 또 약해진 멍청이는 멍청스럽게도 ‘당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결혼을 하자는, 어찌 봤을 때 서로 한 발짝씩 물러선 것 같은 본새에 넘어가 치열하게 주고받던 탐색전에 종지부를 찍어주었다.

난 이때까지도 그냥 이렇게 잘 마무리 되었는 줄 알았고, 봄기운 완연한 5월 어느 날 그녀와 그동안 있었던 많은 문제들을 모두 땅속에 파묻은 뒤 정식으로 만나 새로운 사랑의 결실을 맺어가기로 다짐하였다.

그러고 얼마 후···.

그녀는 다시 결혼하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녀의 아버지까지.


으레 그래왔듯 난 여전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 전에도 언급했던 「내 자신감」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졸업식이 끝남과 동시에 교정문을 박차고나와 거칠고 험난하기가 그지없다는 영업의 길로 인생침로를 잡기 시작했던 것도 역시 이때였다. 그리고 아주 건방지게도 맨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보험의 세계! 당돌하게 내 이곳을 선택했던 이유는 온갖 미사여구를 걷어내고 그냥 딱 하나 「돈」 때문이었다. 뭐 이것에 대해 직업적 성취감이나 만족도, 명예 등등을 중요시하는 고매한 분들은 너무 천박하고 경망스럽다 여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난 그런 거 다 필요 없고 열심히 하면 돈 많이 벌 수 있다 해서 나름 가릴 것 가려보고 따질 것 따져본 뒤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겁 없이 투신해 버렸다. 친구 정수만 보더라도 처음엔 장사한다 생선판다 하여 주변에서 얕봤다고 하지만 지금 돈 많이 벌고 나서는 그런 거 일절 없다고 하니, 이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난 저 녀석도 저리 잘 되얐는데 나도 저 녀석처럼 돈 많이 벌어 그걸로 성취감도 만족감도 명예도 모두 충당하리라며 몰래 불태우던 호승심 또한 크게 작용했음을 열없지만 드러내본다.

어찌됐든 저찌됐든, 마지막 겨울 방학과 맞춰 나 역시 다른 졸업예정자들처럼 여기저기 괜찮다고 하는 회사에 닥치는 대로 이력서 무한 제출하기를 발동하였고, 그러다가 덜컥 걸려든 두 군데가 시중에 있는 모 유명은행과 꽤 높은 이름값을 자랑하는 동시에 내가 곧이어 몸담게 될 바로 그 생명보험회사였다. 이 순간만큼은 그래도 모든 우여곡절을 이겨내고 경영·경제학부관련 학위증을 따놓길 잘했다며 스스로에게 기뻐해 마지않았었다. 문제는 이 다음부터였는데, 그건 바로 과연 이 두 곳 중에서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더 직업적 만족도가 크겠느냐는 물음 끝에 나타나게 될 갈림길과의 필연적 마주침이었다. 둘 다 욕심이 났으나 택취의 시간은 길 수 없었고 게와 가재를 동시에 잡을 순 없는 노릇이니 결국은 약간의 고민 끝에 위에서도 얘기한 그 보험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응당 은행이라는 곳에 미련이 남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연봉도 꽤 센 것은 물론, 누가 뭐라 해도 요즘 시대에 각광받는 최고의 직장 중 하나이니까. 그러나 돌아가는 집안 사정을 보았을 때 그렇게 받는 돈으로는 가계의 어려움을 수습하고 더 나아가 개인적 성취까지 이끌어 내기에는 한마디로 「너무 요원한」일이라는 판단이 앞섰다.

여기서 잠깐 곁다릴 짚어 스타워즈라는 대작영화에 나온 장면을 슬쩍 들여다보자. 아직 파다완 신분도 되지 못한 햇병아리 루크 스카이워커가 제다이 들의 위대한 스승인 마스터 요다와 나눈 대화에서 과연 선과 악, 다시 말해 라이트사이드와 다크사이드 중 어느 쪽이 더 강하냐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어둠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거라 루크.’

‘어둠··· 어둠의 힘이 더 강한가요?’

‘아니,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아. 다만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매혹적일 뿐이지.’

히야~ 모든 것이 지난 이 마당에 되 떠올려보니 이게 그렇게 또 명쾌한 말로 다가올 수가 없는 거다. 바로 그러했다. 난 천천히 시간을 두고 올라가는 대신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택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은 빠르고 매혹적일 수는 있을지언정 쉬운 길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

살짝 내 경우로 비틀어보자면 느리고 평이한 방법 대 어렵고 빠른 방법의 선택지였다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 이미 애초부터 영업에 뜻을 두고 있었던 만큼 난 잘 할 자신도 있었다. 앉아서 기다리고 있기보다는 뛰어서 월급을 찾아다닌다는 것, 그 점이 내겐 더욱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왔으메 또 그래야만 지금 내가 처해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보다 빨리 나은 삶으로 다가갈 수 있으리라 여겼던 까닭이었다.

이렇게 들어서게 된 보험영업의 길이었다. 투지가 넘치니 이에 상응하여 일도 처음부터 잘 따라붙었다. 많은 입사 동기들 중 최종평가 3위를 하며 슈퍼루키에 올랐으니 이정도면 썩 괜찮은 축에 속했다. 그리고 그 여새를 몰아 꾸준하게 실적을 이어가며 상당히 많은 돈을 월급으로 받아 챙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순전히 돈에 혹하여 온 측면 부인할 수 없겠으나 현장을 뛰어다니면 뛰어다닐수록 가슴 뜨거워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일이 생각보다 거대한 일이었던 것이다.

흔히 우리들은 보험설계사들을 「보험쟁이」라 부르며 비하한다. 이는 매우 안 좋은 표현이라 지적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짭새, 담탱이, 운짱, 국해國害의원, 군바리, 꼰대, 틀딱충, 그리고 접미사로 거의 모든 직업군에 –새끼를 붙이는 등 살짝 꼬아서 본인 아닌 다른 이들을 하대하는 경향이 예외 없이 팽배해 있으니 그저 일부 물 흐리는 사람들 때문에 전체가 싸잡아서 욕먹는다는 것일 뿐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다 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좌우간 중요한 건 이 보험영업사원들 역시 질 낮은 일부로 인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는 것은 맞지만 그 강도가 다른 직업군에 비해 좀 많이 심하다는 거다. 일단 보험회사 다닌다고 하면 덮어놓고 안 만나려하니까. 반면 여기서 웃기는 건 이 와중에 아프거나 다쳐 병원에 가게 되면 또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보험이라는 이율배반적인 현실. 나 또한 소싯적 깐죽거리며 다니다 발 뼈가 깨져나가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현장으로 「나의 담당설계사」가 바로 달려와 이것저것 많은 일처리를 도와주셨고, 그렇게 받은 보험금으로 병원비와 뒤이어 몰려온 경제적 위기를 상당부분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그분은 사실 아버지의 후배였으나 이 모든 걸 넘어서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청나게 감사해했음은 당연 마땅하다. 내 아프다며 찾아 와준 사람들 많았지만 그중 실질적이고 가장 큰 도움을 준 이는 나의 보험계약을 관리해주던 그 삼촌이었다는 거다. 보험이란 이렇게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그걸 이용해 먹는 나쁜 회사와 악용하는 몇 몇 나쁜 사람들에 의해 그 가치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 하고 있음이 통탄스러울 따름이지 뭐.

이런 일들을 비교적 일찍 겪은 나는 당연히 보험에 대한 선입관이 없었고 나중에 이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도 적잖이 영향 받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인생의 가치를 전하는 일. 여기에는 분명 높은 도덕성과 그에 상응하는 정직성이 수반되어야하고, 응당 그래야만 고객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다. 그저 많은 돈에 혹하여 쉽게 시작하고 쉽게 그만두고 해선 안 될 일이라는 것이다. 창피하게도 돈에 이끌려와, 때문에 쉼 없이 깨지고 다녔던 나는 차차 이 신념을 터득하게 된 후론 어딜 가든 더 당당한 모습으로 고객 앞에 설 수 있었고 ‘보험을 통한 재무 설계로 나와 가족 그리고 가정을 지키십시오!’라는 말도 더 크게 하고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당당한 건 당당한 거고 그거와 달리 누굴 만나려하든 심장이 미친 듯이 쫄깃 거려오는 것까지는 끝내 어찌할 수 없었다는···.

여하튼 이런 강한 마음을 갖고 성실하게 일하니 실적은 준수히도 나와 주었다. 특히나 예전 아르바이트생 시절에 관계 맺었던 여러 사장님들의 도움이 엄청스리 컸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이 상태로라면 어머니 아버지께서 자식들 뒷바라지하기 위해 야금야금 쏠아먹다가 결국 기둥뿌리 뽑아먹을 만치 커지게 된 가계 빚을 금방이라도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 그토록 원해왔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내가 더욱 잘되어 나가리라는 것에 추호의 흔들림도 있지 않던 이때였다.

일하며 보람도 느끼고, 또 돈도 벌고 그러니 신나서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되고. 이게 그 당시 나의 모습이었다.

종교단체에서 알게 된 그 아가씨가 내 인생에 끼어들어온 건 이렇게 막 흥에 겨워 세상을 살아가게 된지 얼마 안 되었을 즈음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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