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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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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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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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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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DUMMY

민희라는 곱디고운 이름이 나의 심장에 아로새겨지기 전, 그 근처에서 잠시 서성대던 여자는 그렇게 떠나갔다. 난 그런 줄 알았다. 그저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 그런 뻔한 방식으로 우리는 그렇게 헤어진 걸로만 생각했다. 거기에 파혼이라는 약간 특이한 점 한 가지만 살짝 첨가하여.

그날 이후로 내가 「희숙」이라 부르던 여자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심지어는 바티칸을 총 본산으로 하고 있는 모 종교단체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끝났는 줄 알았다. 모든 것이.


그 여자가 옆에서 사라진 후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오려고, 제자리를 잡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고 깨진 유리컵은 다시 갖다 붙일 수 없듯 모든 것을 전처럼 되돌리기란 불가능했다.

우선은 아들의 파혼으로 충격에 빠진 부모님을 진정시켜드려야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당신들 딴에는 키우면서 변변케 해준 것도 없는 자식새끼 어떻게든 일어나보겠답시고 뛰어다니다가 드디어 장가가서 번듯하게 살아보나 했더니만 그러기는커녕 다 잃고 돌아와 허구한 날 방구석에만 처박혀있는 양태에 이 어찌 아니 속이 답답하셨겠을까. 게다가 정작 결혼준비를 할 때도 여자네 집에서는 예물도 필요 없다, 예단도 없애자, 그리고 집까지 해오겠다고 하는데 명색이 신랑 집이라는 곳에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 이 또한 내색은 안하셨지만 얼마나 자책하고 괴로워하셨을지 같이 사는 내가 모르기는 힘들었다. 이 침울한 분위기를 좀 날려보고자 애써봤지만 한동안 서로의 눈치를 보며 힘을 낭비하느라 좀처럼 어두워진 집안의 공기는 맑아지지 않았다. 그저 시간에게 맡겨놓을 수밖에···.

이렇게 수습 아닌 수습을 하고난 뒤에는 내 자신을 돌보아야했다. 이 모든 일의 근원을 나아닌 곳에서 찾기는 어려웠던 만큼, 스스로가 다시 일어서야 내 주변과 순차적으로 그 주위, 그 너머 그리고 또 그 너머 이렇게 재차 자리를 잡아 나갈 수 있으리라 여긴 까닭이다. 일단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기 위해 평소처럼 사람들을 만나··· ···기는 개코나! 이미 말했듯이 방구석에만 쳐박혀 있었다. 회사도 며칠 빼먹었다. 최대한 휴가를 당겨썼고, 그것이 다 소진되자 덧붙여 그냥 무단으로 며칠 안 나갔다. 당연히 직장에선 난리가 났다. 계속되는 전화에 어쩔 수 없이 복귀하기는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보험일이라는 게 기쁘고 즐거운 기분으로 고객을 만나도 될 똥 말 똥인데 이렇게 풀죽은 우거지상을 하고 있으니 되려다가도 안 될 일이었다. 불 보듯 빤하게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심지어는 두 달 가까이 신계약을 체결하지도 못했다. 현황판에 새겨져있는 내 이름 위로는 아무것도 붙여지지 않았다. 급여는 착륙하는 비행기처럼 서서히 바닥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술만 마셔댔다.

이 지랄을 하고 있는 와중, 그 여자와 내가 잡아놨던 결혼날짜도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그 이듬해는 또다시 찬란하게 밝아왔다.

새해가 되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말은 바로하자. 그 생각은 이미 한참 전부터 떠올리고 있었으니까. 단지 마음이 따르지 않으니 몸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을 뿐···. 여하튼 흡연자들이 늘 이때마다 그러하는 것처럼 나 역시 온 몸과 마음을 찍어 누르고 있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하지만 또 애연가들이 그렇듯 이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내가 겪은 일련의 일들이 그리고 그 인연이 흡사 칼로 무를 자르는 것 마냥 일도에 삶에서 썰려나간다는 것은 애시당초 인간이라는 생물에게는 절대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그저 내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과 같이 그녀 역시 어딘가에서 아파하고 있을 거라는 비애로 스스로를 곱씹으며 앞으로 펼쳐질 나날들을 추슬러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평생 겪지 말았어야 할 아픔을 나 때문에 겪게 된, 한땐 내 목숨만큼 소중했던 그 사람이 앞으로는 정말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마지않으면서···.

그러고 보니 이 경우 또한 시간에게 맡겨놓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구나···. 제길슨···.

일단은 대충 이렇게 어영부영 마무리 짓고, 의미 없이 지나가고 있던 하루하루에 의욕 없는 삶을 아무렇게나 반죽해 나갔다.

그러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시작은 시작이로되 시작이 아니메 끝은 끝인데 끝이 아니로다. 시작은 끝을 낳고 그 끝은 또 새로운 시작을 낳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 이 모든 것은 그저 앞으로 다가올 파국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으니···.


시작은 별거 아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이제 다 끝난 일이고 이따금 떠오를 슬픈 기억으로 가슴 한 구석을 아프게 저미어대는 것 외에는 앞으로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일이 없으리라 여겼으니까. 무엇보다 파괴된 내 인생을 복구하는 것이 급선무였으며 그 외 다른 일들에게 쓸 신경과 여력 따윈 없었다. 스리슬쩍 나돌기 시작하는 항담을 듣기 전까지는.

처음엔 대수롭잖게 여겼다. 소문이라는 것이 항시 그러하듯 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떠들며 만들어낸 부언유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지만, 그 유설의 흐름에 나와 관련된 내용이 딸려 다닌다면 또 얘기가 달라지지! 그리고 공교리우스하게도 이번 소문의 태풍안은 다름 아닌 나를 뿌리 잡아 생성된 녀석이었다는 거다! 이게 또 듣기 싫다고 해서 들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무시하려 노력하고 애써보아도 결국 헤어진 그녀의 근황을 알고 싶진 않지만 듣고는 싶은 이율배반적이고 아주 저열한 궁금증 앞에서는 그 굳건했던 마음의 성벽조차 스리슬쩍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라···. 이렇듯 알고 싶진 않았지만 들릴 수밖에 없는 풍문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결혼을 했다고. 그래, 바로 그녀가! 나랑 헤어진 지 몇 개월 미처 되지도 않아!! 와··· 이건···?!! 정말 어처구니없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시간상으로 따지면 이 사실을 알게 된 때가 헤어지고 나서 6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는데···.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그 여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는, 세상 다 산 듯한 폐인 꼬락서니를 하고 있는데! 아니···, 어떻게 반년도 지나지 않은 그 짧은 기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결혼까지 할 수가 있는 거지?!

그러나 괘씸한 것도 괘씸한 거지만 그보다는 궁금한 마음이 더 컸음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리 할 수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때! 느닷없이 머리를 퉁 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으니···. 그랬다, 사실 그녀에게는 나와의 짧은 연애를 시작하기 전 오랫동안 만나왔던 남자가 있었더랬다. 그리고 혹시나 가 역시나 로···. 그녀가 결혼한 남자는 바로 그 「오랫동안 만나왔던」남자였던 것이다···. 이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고 나자 힘겹게 힘겹게 지탱해오던 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희망이고 꿈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내 주변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욕 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내 입이 더러워지기 시작했고, 정말 실소조차 나오지 않아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도 생각 날 때마다 화가 나고 약이 올라 무심결에 ‘C8’이 튀어나온다.

이렇게 이성을 잃게 된 소용돌이 속에 그래도 놓치지 않은 한 가닥으로 지나간 연애 시절을 되새김질 해보았더니만 그간 이해되지 않고 이상했던 모든 것들의 퍼즐이 적확히 맞춰져 들어감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렇게 그녀가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았었는지도···. 그날, 그녀와 사랑을 약속했던 그 자리에 묻어놓았던 아픔들이, 떨쳐내려 무진 애를 썼던 그 슬픔들이 아무도 모르게 땅속에서 껍질을 까고나와 싹을 틔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귀기 직전까지도 추레한 싸움이 멈추지 않도록 만들었던 커다란 이유 중 나머지 하나가, 내가 그토록 죽여 버리고자 밟고 밟고 또 밟어 완전히 산산조각 내놨다고 여겼었던 그 나머지 하나가 절대 사멸당하지 않고 그 미천하고 비루한 숨을 부지한 채 이 고귀한 세상에 알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나타나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아아··· 그때, 진짜 마음 독하게 먹고 잘라냈어야 했는데···. 그냥··· 그때 그 새벽에···.


그런데 세상만사 참 웃긴 건 이날은 또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한 날이었다는 거다. 그녀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는···.

그리고 아직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으응 희숙아~.”

“여보세요?”

그녀의 이름을 따스하게 부르며 전화를 받았지만 예상외로 들려온 남자목소리는 날 조금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누구···세요?”

“그러는 넌 누구세요.”

이건 또 무어라? 요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지는데···.

“어? 여, 여보세요?”

“나, 희숙이 남자친구다!”

··· ?

이때··· 이 기분··· 참··· 착~자압하다 못해 팔다리에 있는 기운 모두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던 것이···.

‘아··· 내가 삽질하고 있었구나···. 남친이 있었다니··· 난 그것도 모르고···.’

그렇지만 처음으로 먼저 전화를 걸어온 건 그녀였다. 그 뒤로 매일저녁 전활 하는 것도 그녀였다. 그리고 항상 문자를 보내오는 것도 그녀였다. 그런 모습에 동하지 않을 남자가 있을까? 난 이 처자가 나한테 마음이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어 그렇게 몇 번 만난 후 좋아한다 말했고 사귀자고도 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안돼요’. 마음은 아팠지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녔기에 뭐 그렇구나 하며 단념하기로 했다. 허나 그녀의 전화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건 뭐하자는 거지? 하면서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걸어왔다. 그렇게 결국 통화를 하게 되면 밤새도록 끝이 나질 않았다. 난 그 후로도 몇 번 더 사랑을 고백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내가 먼저 전화와 문자를 하지 않고 보내지 않았던 건 그녀가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먼저 연락할 테니까 먼저 연락하지는 말라고. 병신같이 여자에 눈 먼 쪼다는 그걸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기를 몇 개월, 애가 타고 또 타올라 최근에는 그 금기를 넘어 막무가내로 내 쪽에서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던 터였다. 그녀가 뭐라고 하건 말건. 근데 그 내막에는 이러한 연유가 있었다니, 참으로 허탈했으나 차라리 잘 되었다 여겼다. 대뜸 전화를 걸어 무례하게 구는 남자도 남자였지만 그보다 더 화가 나는 건 애인이 있으면서도 그 긴긴 밤 동안 날 농락했던 그녀의 장난질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더 이상은 볼 게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에??”

“그래. 근데 뭐 어쩌라고.”

“야!!”

“아 귀 안 먹었어. 조용히 말해.”

“야 이 새꺄! 너 누가 남자 있는 여자한테 찝쩍대래!!

“오오~ 남자친구?”

그때였다.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 조오~.’

‘아 가만있어봐!’

‘달라구 그러지마아~.’

‘가만 안 있어? 진짜 이씨!!’

가만 듣고 있자니 저~ 너머에서 계집애의 전화기 하날 갖고 둘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그 꼴이 우스워 살긋 키득거렸다.

“여보세요.”

“크큭~.”

“너 웃냐?”

“어~.”

“뭐? 미쳤냐?”

“아니 웃기잖아. 둘이서 해대는 꼬락서니가.”

“야이 개새꺄!!”

“욕하지마 이 씨발새끼야!!!”

이 바람에 다 같이 모여 희희낙락거리던 술판이 돌차간 조용해졌다.

이 자리는 아까 낮에 혼인을 치른 친구가 마련한 피로연이었던 것이다. 난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결혼예식을 지배하는 사회자로서 활약했었고, 발 넓은 신부아버님이 주례선생으로 섭외해 온 유명원로연예인에게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막 오늘의 인기스타로 등극한 참이었다. 응당 신랑신부를 따라온 선남선녀들이 모여 있는 이 찐~한 뒤풀이 자리에서도 깨알 같은 재담으로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는 몸이었는데 갑자기 전화에다대고 욕질 더하기 소리 지름을 시전하니 좌중의 흐름이 반 토막 날 수밖에.

“왜 그래 준호야 무슨 일이야.” “무슨 일 있어?” “뭐야 왜 그래?”

“아니야 아니야 별거 아니야, 내가 순간 욱해서. 미안하다. 미안합니다~.”

뜻밖의 사태에 어리둥절해있는 친구들과 신부 친구들, 그리고 잘 나가다 난데없이 허리가 끊겨진 그 불쌍한 분위기란 놈한테까지 사과와 양해의 뜻을 밝힌 나는 바로 자리를 피해 옮겼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난 걔 남자친구 있는 줄도 몰랐”

“그럼 이 문자는 모냐 이 새끼야, 「사랑스런 희숙~ 좋은 꿈 꾸고~」?”

“야이 개새꺄 내가 얘기했지, 나 희숙이란 그 애 남자친구 있는지 좆도 몰랐다고 이 새끼야. 있는 줄 알았으면 내가 그따위 문자질 했겠냐?”

“비겁하네. 비겁하네, 이 새끼.”

‘빨리 내놔아~.’

‘아 가만있어봐~ 너두 통화 끝나고 좀 봐!’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이 진짜 씨발, 야야 어이, 너 옆에 그년도 있지? 확실히 전해, 앞으로 나한테 또 수작질 부리면 가만 안두겠다고. 그리고 너! 쌩판 모르는 나한테 쌍소리하기 전에 니 여자 간수나 잘해 이 등신새끼야. 그게 모냐 그게?”

“뭐야 이 새끼야? 너 어디야, 지금 어디 있어!”

“어~ 나 어딨냐고? 똑바로 얘기해 줄 테니까 자알 받아 쳐적어. 여기 미아삼거리역 2번 출구 근처에 있는 술집이야. 어차피 술집이름 얘기해줘 봤자 기억도 못할 테니까 이 근처 오거들랑 전화해! 내 바로 나올 거니까. 번호는 니 옆에 있는 그년한테 물어봐 아주 자알 알고 있을 꺼다.”

“너, 기다려. 거기서 기다려.”

“그래 와 와, 기다릴께. 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내가.”

“너!”

‘빨리 줘어~ 그만해애~!’

뚝-!

그러나 피로연이 끝날 때까지 그는 오지 않았다. 무론 전화도 없었다.

난 그 더러운 기분을 그나마 뒤풀이에 참석한 중 가장 예뻤던 친구신부친구생각으로 희석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번호에 수신거부를 걸어놨음 또한 물론이다.


예상하고 짐작한 바대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해놔도 그 번호가 「수신거부」라는 빨간 표시와 함께 부재중 통화 목록에 흔적을 남겼었다. 하여 잠깐 끝장치를 들었다 논 사이에도 수십 번의 「수신거부」표시가 찍혀 올라왔는데···. 그러나 더 이상 난 그녀와 얽혀들고 싶지가 않았다. 그 자체로 기분이 나빴다. 그러자 잠깐 텀을 두고 이번엔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대충은 짐작했기에 그것도 받지 않았으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두 번째로 울려왔을 때는 단말기를 개방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역시나 였다.

“엉엉엉어어엉~.”

“···.”

“허어 허어 오빠아 흐어.”

“···.”

“대답해요 오빠아 어엉.”

“···.”

“오빠 제에바알 허어.”

“왜 전화했냐?”

“오빠 오빠 어어허엉.”

“누구세요? 누군데 저한테 그러세요?”

“오빠 오빠 그러지마아.”

“아니 누구시냐고요 이 밤중에. 할 말 없으면 끊습니다.”

속이 살짝은 후련했다.

그러나 이번엔 이 번호로 밤을 샐 기세였다. 짜증이 치밀어 이 번호도 수신거부를 걸어 놓으려고 전화기를 든 순간, 아뿔싸! 실수로 통화가 연결되어 버렸다.

“흐어어어~.”

“아이씨 진짜!”

“오빠 오빠 끊지마요 끊지마요, 제발 내 말 좀 들어줘요 제발,”

“··· 하아···.”

“오빠 그게 그게 있잖아요, 나 그 그 사람 헤어진 사람.”

“근데 이건 누구 번호냐?”

“치 친구 친구 훌쩍 훌쩍.” “그랬구만. 뭐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너랑 할 말 없고, 앞으론 통화하지 말자. 아는 채도 하지 말고.”

“진짜 진짜 오빠, 나 그 사람 헤어졌는데 자꾸 만나달라고 만나달라고 해서,”

“···.”

“나 나 남자친구 이미 생겼다고 생겼다고 말했더니,”

“그게 나냐?”

“어 어 오빠 끄억.”

“그게 왜 나야.”

“오빠 오빠 나 오빠 좋아한단 말야.”

“니가 싫다메, 사귀는 건. 근데 이제 와서 나보고 어쩌라구.”

“아냐 아냐 오빠, 그거 아냐, 나 그 사람이랑 확실히 마무리 짓고 나서”

“···.”

“근데 오빠, 왜, 왜, 왜, 왜! 그 사람한테, 나 사랑한다고, 왜 말 안했어요?! 왜 나 사랑한다고 걔한테 말 안했냐구!”

근데 이게 갑자기 쳐울다가 소릴 지르고 지랄이다? 귀 아프게 스리. 미쳤나?

“나 난, 당연히 오빠가 그 사람과 통화하면 내가 희숙이 사랑한다고 말해 줄 줄 알고”

“너 미쳤냐?”

“비겁하게 비겁하게 왜 그랬어요! 나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허엉 오빠아 나,”

“할 말 다했냐.”

“아 끄 끄어어 아니 왜, 날 당당하게 사랑한다고”

“난 다했으니 끊는다.”

“아 오빠 오빠 옵”

씨발, 친구신부친구들 덕분으로 겨우겨우 살려놨던 기분 다시금 더러워졌다.

영양가 없는 일로 시간을 허비한 탓에 날은 새벽으로 기울고 있었고, 그 여파로 인해 쉽사리 잠도 오지 않았다. 어쩔 도리 없이 반 뜬눈으로 지새우고는 역사상 가장 힘든 월요일 아침 출근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데··· 몇 번 본 차가 집 근처 골목길에 서있었다는···. 처음엔 에이, 잘 못 본 거겠지 했으나 아니었다. 그녀가 날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난 떳떳하게 외면하며 그 옆을 지나쳐갔다.

그날 이후 그녀는 매일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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