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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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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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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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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DUMMY

“그래···. 그래서 요즘은··· 좀 지낼만하냐?”

“지낼만하냐고?”

여태까지의 나긋했던 녀석의 목소리가 살짝 치켜 올라간 듯하다 잠깐 멈추었다. 그리곤 지궐련 문 숨을 깊이 들이킨 뒤 후우~ 하고 크게 내쉬었는데, 그 품이 마치 가슴속에 있는 모든 응어리와 회한 그리고 번뇌를 남김없이 뱉어내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클클···. 지옥이다 지옥. 그냥 이세상이 지옥이다. 너도 아까 얘기하지 않았냐? 거기도 지옥이요 여기도 지옥이다. 그것도 보통지옥이 아닌 흑암지옥. 아무것도 안 보이는 흑암지옥. 눈앞이 캄캄~하니 세상이 다 캄캄~해 보인다.”

“···.”

그래도 조금은 긍정적인 대답이 나왔으면 했는데 이렇게까지 얘기해버리니 뭐라 대꾸해 줄 말이 달게 떠오르질 않는다.

그런데 그게 비단 남 말 같지만은 않은 것이, 요즘 우리 또래 친구들 중에 눈앞이 캄캄하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냐는 거다. 엊그저께 만난 왕도 그렇고 지난주에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들도 그렇고, 그리고 이 나이까지 아직도 공무원 준비하고 있는 몇 몇 친구들도 그렇고. 따지고 보면 은수저 쯤 물고 태어나 집에서 가게를 차려준 녀석이나 생선장사로 성공한 정수,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초등학교 동창 등 조금 살만하다 하는 놈들 몇 제하고 나면 다 사는 게 좀 그렇긴 하다.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나만 보더라도 한때의 실수로 개인회생에 기대고 있는 처지인데. 더군다나 아직도 기간이 2년 넘게 남아있어 남들 다 간다는 장가조차 꿈도 못 꾸고 있는 실정이니···. 그나마 그 무시무시한 저승 10지옥을 이미 다 경험하고 나왔기에 세상살이가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지는 것일 뿐. 아 이거? 헤~ 내가 예전에 겪었었던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 하며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 항상 힘들었다. 언제 한국이라는 나라가 안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근대 이전, 흉작과 기근과 역병이 돌아가며 내왕하던 시절 접어두고 일제 강점기야 당근 말할 것도 없고, 「대한민국」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고 출범한 이후부터만 보더라도 6.25동란과 와장창, 그거 복구하는데 몇 십 년, 조금 숨 돌리나 했더니 바로 찾아온 IMF외환위기, 그 뒤로 고착화되어버린 경제 불황과 거기서 파생되어 나온 취업난, 고용불안, 양극화, 그리고 출산율감소에 세계 유래 없는 고령화까지. 참~ 파란만장한 나라로세. 뭐 세계 어느 나라 굴곡 없는 역사 있겠느냐 만은 정말 내가 태어난 이 나라 이 조국만큼 별별 우여곡절 많이 겪은 땅도 찾기 힘들겠다. 전 지구 유일하게 허리가 잘리어진 채로 있는 것만 봐도···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겠지.

하지만··· 그간 그 어떠한 힘든 일들을 겪어왔어도 이 땅에 있던 인간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왔다. 가혹한 환경과 거듭되는 환란으로도 이들의 종족번식에 대한 순수한 욕구를 결코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인간종의 존속을 위해 자연스럽게 발현되어야할 그 가장 기본적인 섭리가 근자에 들어서는 심각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만큼 커다란 위협을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가임 가능한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기도 낳지 않는 시대가 끝내는 도래 해 버리고만 것이다. 좀 더 깊숙이 짚어보자면 제도과학권에서 지칭하는 인류역사 중 선사를 끝내고 역사시대로 들어섰다고 하는, 다시 말해 문명이 발흥하고 사회질서가 잡힌 뒤로 4000년 넘게 이어져왔다는 그 인간사회에서 99%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서민들은 시대를 초월하고 항상 힘들었었다. 늘 굶주려야했고 늘 헐벗어야했다. 이건 시대를 초월한 진리이자 법칙이다 「서민은 힘들다.」. 그래서 중국의 농민들이 나라에 망조가 들 때마다 머리에 갖가지 두건을 둘렀고 프랑스에서는 1789년 대혁명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때 당시도 그들은 먹고 살기는 힘들었을지언정, 결혼하고 성교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력 2000년을 훨씬 넘긴 지금,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와 눈부신 기술의 발전을 이룩한 인류문명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으니···. 「결혼」이라는 것이 「소수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허락되어지는 사태가 급기야는 벌어지게 된 것이다. 공통조상에서 유인원과의 분화를 이룬 후 비로소 시작된 600만 년의 인류사회에서,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종 번식을 위한 행동만큼은 그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당연한 것조차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버리고야 말았다. 우리 인류라는 종은··· 어쩌면 지금 가장 커다란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홀로세Holocene Epoch. 지구 지질시대 구분법에 의해 6,500만 년 전 공룡이 지배하던 세상이 막을 내리고 열린 신생대 제4기, 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이자 가장 최근인 시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 현생인류가 살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말이 참 기가 막이다. 「홀로세」라니. 이 이름을 최초로 떠올려낸 사람은 나중에 인간들이 점점 결혼을 기피하고 홀로 사는 이들로 그 자릴 대체해 나가게 될 것이라는 걸 미리 예견하고 이딴 식으로 명명해놓은 것일까? 큭큭큭. 물론 그럴 리가 없겠지. 뭐 이 명칭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니. 그러나 웃긴 건, 지금 사람 사는 세상이 진짜 저 말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홀로세라···. 참···, 정말··· 의도치 않게 시대의 커다란 흐름으로 우리를 이끄는 것만 같다는···.

비약이 심하여 거창하게 인간사회전체를 갖고 들먹였지만 어떻든 간에 핵심은 그냥, 요즘 우리 젊은 세대 결혼하여 가정 꾸리고 살기가 저엉~~말 힘들다는 거다. 그 매우 당연하고 인간이라면 마땅히 자연스럽게 행하며 누려야할 그 일들이. 심하게는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로. 이 땅 위의 인류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순간이 온 거라고.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나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생존경쟁에서 뒤쳐진 개체들은 응당 자연도태 되기 마련인데, 지금이 그 각축전에서 패배한 돈 없고 능력 없는 남자와 못생기고 뚱뚱한 여자들, 즉 힘없는 수컷과 매력 없는 암컷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도태의 흐름을 따르게 된 때이고, 그리고 그렇게 한 세대가 지난 후의 세상에는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와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의 결합으로 인해 열성형질이 전적으로 배제된 진정한 의미의 신인류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라고. 이러한 의의를 내포하고 있는 그 최종전쟁의 장에서 우린 지금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발악을 하고는 있으나 안타깝게 그 치열함속에서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한다 해도··· 남겨질 생존자들은 새로 탄생하게 될 신인류의 노예들로 내정되어질 뿐이다··· 라는. 좀 소름 돋긴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공감 가는 이 내용이 나와 내 또래 젊은이들 사이에 크게 퍼져 나와 고개를 굵게 끄덕거리도록 만들고 있음이라.

이러한 이야기들을 중호처럼 냉소적인 웃음으로 함께 자조하며 술안주 대신 씹어 삼키고 있는 우리들 상황일진데 얼마 전엔 또 어느 정신 가출한 정치인까지 헛소리로 입 터는 걸 본 기억이 난다. 뭐? ‘젊은 세대들이 자기들 편하려고 출산을 기피한다.’고? ··· 이런 미친···. 후우··· 정말 그 높은 곳에 있다는 양반들은 이런 식으로 우릴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양심 팔아먹은 기레기들의 향연장이 되어버린 언론에선 잘 안 나오는 내용이지만, 2000년대 초중반부터 거의 최근에 이르는 근 10여 년 동안 저출산 지원 한답시고 쏟아 부은 나랏돈이 100조가 넘는다. 100조다 100조. 자그마치. 100억이 아니라. 그런데 실상은? 그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는데, 좀 나아졌나? 그때에 비해서? 클클클. 그럼 그 돈은, 그 피 같은 국민들 세금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차라리 그 어마어마한 돈을 어느 선진 유럽 사회처럼 기본소득의 개념으로 자나 깨나 그 미래가 걱정되어 죽겠다는 우리네 세대들에게 직접 주었더라면 청년세대 천만으로 잡고 단순계산만 해도 인당 1000만원 가까이 떨어졌을 텐데···. 그랬으면 아마 청춘남녀들 연애도 더 하고, 더 자주 만나고, 그리고 그걸로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쪽으로 이용하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수중에 쩐이 부족해 이성 교제하는 것도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 시대인데 말야. 정말 그랬었더라면 지금처럼 그 100조라는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보다 그래도 좀 더 나은 성과가 우리 앞에 놓여 있진 않았을까? 다 늙어빠진 높은 치들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된다며 뭐 무슨 출산율높이기범국민운동본부 라든가 청년미래를위한발전기금지원대책마련본부 같은 겉만 요란한 단체를 만들어 사무실 꾸미는데 몇 십억, 임대료 내는데 몇 억, 발촉식 하는데 또 몇 천, 그리고 행사 끝난 다음에 룸싸롱 기집년들 꽁무니에 돈 몇 백 처바르는 등으로 낭비해대는 대신에 말이다. 이렇게 거창한 협회 몇 개 만들어 국가적으로 몇 년 반복하면서 탕진해먹고 나니 그 아까운 돈들이 정작 청년들의 미래로 들어오지 못할 수밖에···.

그런데··· 애초에 저 돈을 왜 지원하려고 했을까? 간단하다. 젊은 애들이 결혼을 안, 아니 못하고 아기를 안 낳기 때문이다. 그럼 왜 결혼을 못하고 왜 아기를 안 낳느냐고? 이건 더 간단하다. 돈이 없어서다 돈이. 돈만 있으면, 먹고살 만한 여유가 있으면 어느 힘세고 무서운 놈이 결혼하지 말라 협박하고 다녀도 다 교합하고 다 애 낳고 한다. 그 좋은 이성간의 육체적 교감을 왜 안하고 싶고 나 닮은 새끼 보는 것을 왜 주저하겠느냐 말이다 내말이. 이유는 대기권 높이에 다다른 부동산가격, 그 근처까지 치솟아있는 물가, 취업하기 힘든 세상과 고용불안 그 외 뭐다 뭐다하며 수 없이 많은 듯하고 또 모두 사실이긴 하지만 그냥 쉽게 말해 딱 한 가지, 희망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거지쓰레기 같은 세상에 힘들게 내 새끼를 내어놓아 봤자 똑같이 나처럼 고생하고 보이지 않는 앞날에 절망하고 쓰러져갈 모습을, 그 처절한 모습을 두고 볼 수가 없는 거다. 가까운 친구만 보더라도 이미 1억이 넘는 대출로 시작을 했고 그 짐을 내려둘 방도도 찾기 전에 아이들이 생겨버렸다. 새집 담보 대출은 30년 상환으로 잡았기에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다달이 100가까운 돈이 빠져나간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되고 쭉쭉 커나가 어느새 대학생으로 자라간다. 마땅히 등록금을 대주어야겠지. 예전과 같은 고도성장 사회였으면 정년까지 버틸 수 있어서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으나 지금은 사오정과 오륙도라는 괴물들이 서슬 퍼런 칼날로 가차 없이 목을 베어버리는 세상이라 자녀들은 어쩔 수 없이 학자금 대출에 기대곤 할 것이다. 마치 우리들이 그 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그리고 시간은 혼기가 차오르는 것을 절대 미뤄주지 않은 채로 시시각각 결혼의 순간을 땅겨온다. 그때까지 친구가 집 대출이라도 갚았으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마당에, 아들딸 특히 아들의 결혼자금을 대주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별 수 없이 빌린 돈으로 새로운 삶을 기경起耕해나가야 하는 그의 2세들.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부모들이 걸어온 길을 답습한다. 지질학의 아버지라 일컫는 라이엘형님이 지지한 동일과정설과 같이, 커다랗고 급격한 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과정은 무한히 반복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보고 있는 「우리가 결혼 한 후」의 모습들이다. 이러한데··· 우리가 정말 결혼을 해야 할까? 누구 좋으라고. 이 정도면 최소한 우리 좋자고 하는 모양새는 아닐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그래도 행복을 찾아보라고? 장난해 지금? 가진 자 들은··· 없는 자의 삶을 절대 알지 못한다. 몇 해 전, 국내 굴지 기업을 일궈 한국사에 큰 획을 긋고 작고하신 대왕회장을 춘부장으로 둔 어느 「의원님」께서 요즘 버스비가 얼마인지 아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었다. ‘70원?’ ··· 후우. 말이 필요한가? 저들은 그 기분을 절대 알지 못한다. 돈이 없어서 얼마 안 되는 적금을 깨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이리저리 돈을 빌리러 다니는 그 기분을. 그 비참함을. 내 가족이 그나마 평범한 삶을 누리게 하고 싶어 턱도 없이 높은 은행 문을 기웃거리며 이리저리 담보를 끌어다 돈을 꾸어오는 그 슬픔을. 그렇게 내 앞날에 마땅히 나타나줘야 할 재화까지 앞서 이자로 뜯기고 뜯겨 결국 그 앞날의 앞날에 쌓이게 될 돈까지 또 땅겨서야 하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차비가 21세에 들어서고도 강산이 한 번 변할 무렵까지 「70원」인 줄 알고 계신 그분들은 절대 알지 못한다. 난 그렇게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부모님은 당신들께서 힘들어 하는 걸 보고 또 힘들어 하고 있는 자녀들을 대하며 안타까워하시는 그 기분을 아주 입에 피가 나도록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보라고? 너희들이나 잘 찾아봐라! 난 이런 가난을 되풀이 하고 싶지도 않고, 이런 가난을 내 소중한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으니!!

동물들은 생태계가 자신들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쪽으로 변하게 되면 새끼를 낳지 않는다. 그 일례로 환경이 더욱 가혹해지면 늑대는 아예 가능성 없는 새끼들을 먹어버린 뒤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샬레 속에 떨어진 물벼룩들은 자기들의 개체로 포화상태가 되었을 때 더 이상의 번식을 거부한다. 본능적으로 그들은 알고 있는 거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는 후손을 제 아무리 남겨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간이라고 다를 순 없다. 다른 생명체보다 우월한 채 고귀한 채 하고 있지만 다 똑같이 대자연의 속박 안에 묶여있는 구속물들에 불과할 뿐이니까. 작금의 우리들이 결혼과 연애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고 있는 것 역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오랜 세월을 늘상 그래왔듯, 짝을 만나고 아기를 낳아 키워서 종족을 번식시키는 더할 나위 없이 아주 당연한 행위에 불과한 것이 이다지도 힘든 행위였단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따지지 않고 그 당시들도 이러했을까? 지금처럼? 아니면 지금이 가장 힘든 것일까. 내 인간의 역사만큼 살아보지 못했기에 말과 글로 습득한 것 이상으로 선대의 사정을 낱낱이 알 순 없겠으나 최소한 역사적 통계자료를 근거삼아 근래의 출산율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낮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내 좁은 견해로 비추어보았을 때 우리는 더욱 발전하기 위해 구축해 놓은 사회적 체계에 스스로가 제약을 받는 자가당착에 빠져 종 자체가 점점 나약해져 가고 있는 것 같다. 엄혹한 자연 속에서 자신을 더더욱 강한 쪽으로 진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우리네 조상들에 비해. 가까운 주변을 돌아보기만 해도 긴 학업 과정과 직업적 성취도를 근간으로 깔고 가는 사회체제에 의해 점점 만혼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출산율이 아예 한 자리 수 이하로 떨어져버렸다. 그 와중에 40대의 출산은 해가 갈수록 꾸준히 늘어가고 있다. 별 것 아닌 거 같지만 이렇게 늘어나는 노산율은 상당히 많은 위험을 초래한다. 기형아 빈도만 보더라도 35세 이상의 그것에 비해 40세 이상에서는 무려 10배를 초과할 정도로 수직 상승한다. 80년대부터 산전 관리에 대한 전 세계적인 산과 집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산에 대한 신생아의 기형아 출산과 임신 중독증, 조산 등의 빈도는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노산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이다. 왜? 가진 자들의 부동산과 사회활동 점유율의 독점이 젊은 세대의 결혼을 근원적으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스스로 이룩해 놓은 기술과 발전에 의해 일견 행복을 향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류라는 종은 갈수록 병약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사회는 이렇듯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보았다. 직접. 내 두 눈으로! 그리고 지금도 보고 있다. 최근에야 여유가 좀 생겨 선보고 다닌다고는 하지만 청년시절 시장에서 물고기 장사를 한다는 이유로 여자들에게 만나길 거부당하던 정수의 모습을, 짠돌이라는 오명을 써가며 7천 가까이를 모았지만 결혼이라는 관문 앞에 억이 넘는 돈을 대출받아야하는 현실에 울면서 술 마시던 여행사 친구의 모습을, 그리고 결혼한 후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희망을 붙들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대낮에 소주를 먹자 하던 왕의 애처로운 모습을. 뿐만 아니라 2~300씩 받는 월급으로는 살인적인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에서 암만 해봐도 집을 구할 길 없어 애초에 장가의 뜻을 접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는 것으로 만족해가고 있는 내 곁의 그 많은 친구들의 모습을! 우리들의 세계는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뭐? 우리 편할라고 아기를 안 낳는다고? 아우 진짜! 만약 내 앞에서 직접 그 얘길 나부린다면 정말 나의 불타는 쇠주먹으로 그 냄새나는 누런 옥수수를 우수수 털어내어 줄 텐데!

이쯤 되면 누군가 얘기할 꺼다. 사회 탓 하지 말라고.

뭐? 사회 탓 하지 말라고? 그럼 당신들도 우리 앞에서 결혼이니 출산이니 그딴 얘기 하지 마! 항상 당신들이 먼저 그 얘길 꺼내잖아! 이 사회, 이런 현상 우리가 만든 거야? 부동산값 우리가 올렸어? 외환위기 우리가 오게 했어? 취업하기 힘든 세상 우리가 만든 거냐고! 이봐 이봐~ 우린 그때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어. 다 자라 사회에 나올 때 쯤 되니까 이렇게 되어 있는 거라구. 다 당신들이 벌려 놓은 일이잖아! 그래 놓구선 왜 우리한테만 닦달해?! 뭐? 요즘 젊은 것들 힘든 일을 안 하려 한다고? 나 해봤어. 당신이 모르는 힘든 일들 생각보다 우리 젊은이들이 많이 해. 그러다가 전철 스크린 도어에도 끼어죽고 컨베이어 벨트에도 끼어죽었잖아. 그 힘든 택배 상하차일 돈 많이 준다고 젊은 애들 많이 해. 뭐 또? 중소기업을 안 가려 한다고? 나 가봤어. 근데 그거는 아나? 우리나라 고도 성장기에는 중소기업의 월급이 대기업의 80%에 육박했어. 지금은 50%야 50%! 그리고 야근에 잔업에 주말근무에 기본적인 사람 생활이 안 돼. 한 나라의 경제 건전성을 따질 때 그 나라 인구의 90%를 감싸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튼실한가로 가늠해. 그 점에서 우리나란 아~직 멀은 거야. 돈 제대로 챙겨주고 근로 요건 개선해주면 젊은 애들 가지 말라고 쌍수 들고 막아도 가. 그리고 또 뭐? 공장 같은 데 안 가려 한다고? 나 거기도 있어봤어. 중소기업하고 똑같아. 돈, 근로여건 이 두 가지만 잘 해주고 그 거지같은 갑질꼰대 문화 좀 어떻게 해봐. 사람들 알아서 와. 오지말래도 와.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러겠지. 너희들이 전쟁을 겪어봤냐고. 전쟁 겪어봤냐고? 아니! 몰라!!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아!!! 우리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해? 정신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우리 후손에게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잘 가르쳐주고 잘 이끌어줘야 하는 게 맞잖아? 근데 왜 우리는 그런 거, 지네들 고생한 거 모른다고 덮어놓고 까기만 해? 그래도 당신들은 다 직장 잡았잖아. 다 결혼 했잖아. 외 벌이로 애들도 다 키워냈잖아. 우린 그걸 지금 하나도 못하고 있다고! 당신들과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도 많은 고생 속에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제발 우리한테, 우리 젊은 세대들한테 그런 소리 하지 좀 마! 그럼 우리도 사회 탓 같은 거 안하고 그냥 가던 길 갈 테니.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웃기지 말라 그래. 청춘이 굳이 아파야만 할 필요는 없어. 안 아프고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으니까. 날 봐봐, 난 괴물이야.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서 아프기만 한 청춘을 버티고 살아난 괴물! 왜 우리들은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살아야 하나에 대해 고민하고 번뇌하다 그 끝 모를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렇게 사회를 망쳐놓은 원흉들을 찾아내고 징치하기 위해 눈에 핏발이 서있는! 그런··· 괴물···이라고.

먹고 살만하면 우리가 알아서 연애하고 우리가 알아서 결혼하고 우리가 알아서 애 낳고 키울 테니까. 당신들한테 손 벌리지 않고. 그러니까 우릴 좀 가만 놔둬줬음 좋겠어. 천 번을 흔들려야 된다는 개소리 같은 것도 좀 하지 말고.

···

허허···. 지옥 맞네···.

중호말대로 진짜 지옥이었네. 그것도 흑암지옥.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래 맞다. 지옥. 니말이 맞네···. 지옥이야 지옥···.”

할 말이 없다. 녀석과 나의 입안에서 번갈아 맴도는 「지옥」이라는 한마디 외에는···. 그래서 우린 맥주깡통만 비워댔다. 입맛이 떨어져 비싼 돈 주고 사온 육포에도, 쥐포에도, 혼합 견과류에도 손이 가질 않았다.

“어쩌냐···.”

“뭘 어째 어쩌긴. 그래도 살아야지.”

“그래··· 살아라. 일단은···. 그 수밖에 더 있냐. 그렇다고 죽을 순 없잖아.”

“별수 있냐. 살아야지. 뭐 살아는 봐야지···.”

“짜식···.”

“킬킬···.”

녀석은 어느덧 필터가까이 타들어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실 웃음을 흘렸다. 아까 보단 조금 덜한 듯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냉소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다음날 새벽, 중호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나갔고 난 그런 녀석을 위해 숙취 해소용 라면을 맛있게 끓여주었다.

“아이~씨 맛있네. 너 나한테 시집와라.”

“미쳤냐? 나 같은 남자랑 결혼할라면 연봉 6천 찍고 아파트 하나 해와. 월세 말고. 차는 중형세단이상. 알지?”

“그럼 너는 뭐해올 건데?”

“아 나이 씨~ 당연히 내가 쓰던 밥통, 세탁기, 냉장고, TV, 장롱, 그리고, 그리고··· 「나」!”

“···.”

“···나아, 나. 바로 나! 왜에~.”

“···그냥 혼자 살란다.”

“아놔 이 쒝! 그 정도도 못 해올 거면서 감히 나한테 결혼을 하자 그래?”

“아 그러니까 혼자 산다고!”

“에혀~ 이 남자도 아니네~~.”

“푸하핫~.”

“케헤헤헤~.”


난 조금 더 눈을 붙였다가 느지막한 오전에 일어나 남정네 혼자 사는 방 깨끗이 청소해준 뒤 근처 마트에서 휴지와 물과 라면을 사와 쓸쓸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빈 둥지에 소담스레 쟁여놓고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발걸음을 떼었다.


여기까지가 지난 한 달 전 어느 일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사찰속 사정은 내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분명 녀석은 절 안에 있는 것이 더 편했을 텐데···. 이 힘들기만 한 속세로 왜 돌아온 것일까···. 무엇을 찾고 무엇을 얻기 위해···.

난 당분간 녀석을 지켜보아야겠다. 과연 지옥이나 진배없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일구어 나가려하는지.

···에잇! 기왕 이렇게까지 떠오른 거 간만에 친구한테 함 전화나 넣어봐야겠다!

“어~! 준호냐!”

“그래 나다. 잘 살고 있냐?”

“뭐 그렇지 뭐. 너는?”

“니캉내캉이다. 킥킥.”

“헤헤. 근데, 야. 나 지금 일하느라 좀 바쁘거든? 이따 내가 전화할께.”

“어어어 그 그래 그래 그래, 너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미안하다 야.”

나는 한창 일 안하고 있냐?

“미아안-.”

“어 그래~.” 짜식. 바쁜가보구나. 오랫동안 찾아 헤매서 그런가? 본지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보고 싶다. 빨리 또 약속을 잡아 내려가서 밤새 술 먹어야지. 이번엔 일요일에는 쉬라고 좀 꼬드긴 다음에.

기대감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을 내삘 놔둔 채 전화기를 정리하다가 아직도 지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창밖이 재차 눈에 닿으면서 지나갔다.

흑암지옥.

망자의 죄를 심판하는 저승시왕 중 마지막 열 번째 왕 오도전륜대왕께서 다스리시는, 마찬가지로 저승 십 지옥 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지옥. 낮도 밤도 밑도 끝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런 무서운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이곳에 가는 사람은 생전에 부모와 스승의 물건을 훔쳤거나 자식을 한 명도 낳지 않은 죄를 지은 이들이라고 하는···, 읭? 자식을 낳지 않은 죄를··· 지은··· 사람? ?? 이거 난데? 아니 아니 나 뿐만이 아니라 내 친구들 거의 절반이상인데? 게다가 1:1 남녀의 비율로 단순히 따졌을 때 나와 내 친구들 수만큼의 여자들도 있네? 와~ 심심하진 않겠다아~. 일단 내가 앞서있는 아홉 지옥을 통과할지 못할진 미지수지만 최소한 마지막 지옥에서 걸리는 건 2000퍼센트 확정이다! 지금 이 나라꼴이라면 먼 훗날 우리가 지상과 작별인사를 할 때 즈음 그쪽 세상에선 아주 총 비상이 걸리겠는 걸? 우리 오도전륜대형 이제 곧 엄청 바빠지시겠어 큭큭. 그때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로 미어터질 테니까. 다행이다. 마누라도 없어 자식 구경도 못해, 근데 그것 때문에 지옥까지 간다 해서 엄청 억울할 뻔 했는데 나 혼자만 가는 게 아이었네! 자, 그럼 일단 이번 인생은 포기하기로, 그냥 확 말 줄여서 「이인포」하기로 하고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지옥 즐거운 기분으로 맞이해 볼까나? 그곳에서 많은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그리고 혹시 알아? 흑암지옥에 떨어진 여러 아가씨들 중 한 명을 만나 이승에서 못한 사랑도 하게 될지. 가정도 꾸리고 그녀 닮은 아들과 나 닮은 딸도 낳으면서 말야. 그 동네는 먹을 것도 돈도 집도,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의 발목을 잡아끄는 것과 같은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을 테니. 그렇게 되면 진짜 서로의 조건이나 배경 따위 따지지 않는, 순수하게 그 사람자체만 보는 진실 된 사랑이 여기저기서 난무하겠구먼!

중호 이 짜식! 어디 감히 흑암지옥을!! 이렇게 좋은 곳을 감히 이 비참한 이승 따위와 비교하다닛!!! 이제 보니 정말 괜찮은 곳이었구만!!!!

오도전륜대형! 사랑해~.

그때 되면 잘 좀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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