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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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최근연재일 :
20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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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5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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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DUMMY

음식이 나왔다.

장어 정식이었다.

꽤 푸짐한 상차림에 민희의 낯빛에서도 화색이 돌았다.

“먹자 민희야.”

“응. 같이 먹어요.”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근데 민희가 잠깐 날 제지 하고 나섰다.

“오빠 잠깐만~.”

“응? 왜?”

“잠깐만 오빠.”

그 말에 멈칫한 나는 우아하게 춤을 추기 시작하는 그미의 젓가락에 연이어 시선을 빼앗겼다. 보아하니 쌈을 싸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야 뭐 같은 남자 놈들하고 무식하게 구워 먹을 줄만 알았지 저렇게 기품 있게 음식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본 적은 기억상 별로 없어서 민희가 하는 양을 잠자코 지켜보기만 했다.

이윽고 정성스럽게 쌈을 완성한 민희는 그것을 올려들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뭐해요? 입 안 벌리고,”

“응? 어···.”

“아~ 해요 어서.”

그리고는 손수 내 입에 넣어주려 하였다.

적이 당황한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그미의 장어 쌈을 받아 들려했다.

“아냐 아냐 괜찮아. 내가 먹을 게, 그냥 줘.”

그러나 너무도 쉽게 거부당해 버렸다.

“싫어요. 어서~, 나 팔 아파.”

“아···.”

어쩔 수 없었다.

그미의 삭옥섬수에 이끌림 당해온 세상 그 어떤 장어보다 맛있는 쌈은 조심스레 내 입안으로 들어왔고 역시나 세상 그 어떤 장어보다 훌륭한 맛을 내었다.

난 이 감동의 기운을 서둘러 넘겨 보내고 싶지 않아 최대한 오래 씹으며 그 향취를 음미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는 없는 법···. 잘게 부수어진 향미덩어리들은 하릴없이 목구멍 안으로 사라져야할 아쉬운 순간을 결국 맞이하고야 말았다.

“어때요?”

“맛있네··· 고마워.”

“아니···, 독이 들어있나 보려고···.”

“헙??!”

어쩐지 내가 다 삼킬 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있더라니!!

“푸훗~.”

덕분에 잠시 웃었다. 민희도 나도.

“오빠 괜찮으니 이제 나 먹어도 되겠다.”

“야! 독이 그렇게 빨리 퍼지는 줄 알어? TV에서 그, 사약 먹고 그 자리에서 피 뿌리고 죽는 거, 그거 다 뻥이야! 너도 빨리 먹어 어서!”

“흥~ 먹지 말래도 먹을 꺼에요. 내가 다 먹을 꺼니까 오빤 이제 먹지 마요. 근데···,”

“?”

“오빤 나 안 싸줘요?”

“아···.”

싸드려야지! 것도 아주 맛있게!! 어차피 민희가 싸준 거 보다 맛은 덜 할 밖에 없을 테지만.

“근데, 손은 씻었어요?”

서툴지만 그래도 성심을 다해 생강 채와 각종 양념을 올리는데 열중하고 있는 내게 그미가 던진 말이다.

“아! 깜빡했다.”

“뭐~?”

“아까 화장실 갔다가 씻고 나오는 걸 깜빡했네 그냥.”

“야! 나 안 먹어.”

“민희도 아까 손 안 씻었잖아.”

“난 안 씻어도 괜찮아~!”

“사실 아까··· 좀 짰어···. 많이···.”

“야, 죽을래?”

“아 그런 법이”

“닥쳐.”

“네···.”

어차피 막말도 들었겠다, 스스로 오명도 뒤집어썼겠다 하여 난 거진 다 마무리 된 쌈을 들어 내 입 쪽으로 움직이려했다.

“그럼,”

“야!!”

“왜~.”

“그거 안 내놔?”

“아 손 안 씻었다고 싫다메.”

“시끄러, 빨리 줘. 아~.”

이거 이거 오늘 민희가 날 아주 그냥 심장 터져 죽게 만들려는 심산인가보다.

눈을 감고 살짝 고개를 내밀어 입을 벌리는 그 표정이···. 으으, 삽시 장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예전에 그랬었듯 두 뺨 감싸 쥔 채 깊은 뽀뽀를 해주고 싶다는 욕망이 성난 파도처럼 치밀어 올라왔다.

“맛있어?”

“우 웅~.”

일부러 좀 크게 쌌는데 그걸 기어코 한 입에 넣은 민희는 양 볼을 한껏 부풀린 채 우적거리며 그래도 고개를 주억거려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때 같이 사랑을 얘기하던 날들의 추억이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솟아나는 봄 꽃망울처럼 마음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 잠시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그때 참 행복했었는데···.’하며.

“무슨 생각해요?”

“아니···, 그냥···.”

“··· 그냥?”

“옛날 생각···.”

“그럼, 자네 사정에 1년 지나면 뭐 나아질 것 같나? 괜히 애매한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지금 하게.”

“예? 아, 아뇨 아버님, 저희 지금 만난 지 한 달 조금 넘었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결혼을 서두르십니까.”

“뭐? 서둘러? 혼기가 둘 다 찼으니 그러지 이 사람아. 자네 지금 내 딸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 같아서 그러나? 그럼 내가 지금 딸애 손목 잡고 같이 병원에라도 가볼까?”

“아뇨 아뇨 아버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뭐가 문젠가. 내 자네 사정을 아니 식도 간소하게 하고 또 살 집까지 마련해 준다고 하지 않았나. 근데 또 뭐 문제될 게 있나?”

아아··· 이분 도대체 말이 통하지가 않는다. 부전자전이라더니 막무가내인 게 어찌 그리 자기 딸내미하고 똑 같냐. 걔가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것도 같다.

“아니 다른 집들은 남자가 먼저 와서 집 해오겠다, 다 준비 하겠다, 딸만 달라하는데 어찌 자네는 집도 해주고 다 맞춰주겠다는데 그리 거불하나?”

“아버님, 제가 지금 거부하는 게 아니라, 왜 거부하겠습니까. 저는 너무 감사할 다름이죠. 근데 조금만 더 시간을”

“됐고, 그냥 우리 딸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게.”

“···.”

하아··· 오늘도 실패다.


“뭐라셔?”

“후우~ 안 된다고 하시네···.”

“거봐, 내가 뭐랬어. 안 될 거랬지?”

가뜩이나 심란한데 옆에서 더 속 긁는 소릴 해댄다.

“그냥 하자 오빠. 오빠 마음도 알겠는데 희숙이는 오빠가 좀 우리 뜻에 따라줬음 좋겠어.”

“야, 내가 말했잖아. 나 지금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다고. 회사 들어간 지 아직 6개월도 안 됐어. 나도 빚도 좀 갚고 집에 돈도 드리고 좀 해야 할 것 아냐.”

“누가 드리지 말래? 누가 갚지 말래냐고. 그냥 희숙이랑 먼저 한 다음에 해드리면 되잖아. 어려운 일 아니잖아.”

이 애가 늘 쓰는 3인칭 어투도 처음엔 그리 귀여울 수가 없더니만 요즘에는 들을 때마다 짜증 지대로다.

“야 희숙아. 우리 지금 만난 지 6개월 조금 넘었어. 그리고 제대로 시작한 건 이제 겨우 한 달이야. 좀 더 시간을 갖고 서로에 대해 알아나가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안 드니?”

“알아 오빠, 아는데. 지금 기간이 중요해?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더 중요한 거 아냐?”

“아니 그건 맞는데···.”

“됐어 오빤. 오빤 희숙이하고 결혼할 마음이 없어.”

“아니 지금 그 소리가 아니잖아. 아 누가 결혼을 하기 싫데? 단지 조금 더 시간을 달라는 얘기 아냐!”

내 쪽에서 느끼는 일방적인 감정일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이 답답함 도저히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오는 말소리가 약간 높아지려 했고, 이걸 놓칠 리 당연히 없는 눈앞의 아가씨다.

“지금 희숙이한테 소리 지르는 거야?”

“아··· 제발, 그게 아니라, 내가 왜 소릴 질러.”

“질렀잖아 지금!”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미안해 미안. 진짜 미안해.”

“됐어. 희숙이 화났어.”

“하··· 나도 모르겠다 지금.”

예상치 못하게 올라온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다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조용히 다시 입을 열었다.

“희숙아.”

“오빠랑 말 안 할래.”

“아 희숙아 제발 좀.”

“됐어.”

“그래, 그럼 듣기라도 해. 희숙아. 오빠가 다시 한 번 말 해줄께.”

“···.”

“그러니까 오빠가, 알잖아 너도 알잖아. 나 작년 아 아니, 올해 2월에 졸업했어. 그리고 지금 회사 다닌 지 4개월 조금 넘었어. 근데 내가, 우리 집 사정이 그렇게 좋지가 않다. 너도 와 봤잖아. 우리 집 빚이 조금 있어. 아니 쪼 쪼금 많아. 근데 그래봤자 몇 천이야. 뭐 억 단위 그런 거 아냐. 내가 이것만 좀 갚고 돈 조금 더 모은 뒤에 그런 뒤에 하면 안 되겠니? 할 거야. 나 너랑 결혼 꼭 할 꺼야. 너랑 하고 싶어. 그러니, 그러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라. 제발. 응? 제발. 1년만, 딱 1년만.”

“···.”

“그런다고 뭐 다 어 어디 가는 거 아니잖아. 세상 망하는 거 아니잖아. 그대로잖아. 희숙이도 그대로고 나도 그대로고 그리고 그 사이 좀 더 우리 잘 알아 가면 되는 거고. 내가 내가 그때 쯤 되면 빛은 올해 안으로 다 갚고 돈 좀 모아서 전셋집 어떻게든 마련해 볼 테니까,”

“그러니까아, 우리 집에서 그 집을 해 주겠다는 거 아니야 지금!!”

“하아~ 야.”

“뭐? 야? 야라고 했어 지금?”

“그래. 야. 내 뭐하나 물어보자. 이렇게까지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가 대체 뭐냐?”

“말 다 했어?”

“어 다했어. 한번 듣고 싶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내 도대체가 말야 이해가 안 되서. 우리가 오래 만난 사이도 아니고, 뭐 어렸을 때부터 쭉 봐 왔던 사이도 아니고, 이제 겨우 한 달 만났는데, 너 나 잘 아냐?”

“뭐?”

“나 잘 아냐고. 나 어떤 사람인지 알아?”

“뭐라고?”

“얘기 한번 해봐. 한번 들어보자 어디.”

“아니 오빠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결혼하기로 한 여자한테? 그게 지금 말이야? 아니 다른 애들은 남자들이 결혼하자 매달린다는 데 어떻게 난 그 반대로야?”

“응, 응 그래서?”

“난 알 수 있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난 올해 안에 꼭 시집가야 된다구! 나 이제 스물여덟이야, 내년이면 아홉수야! 그전에 가야 된단 말야!! 알잖아 우리 엄마 아빠도 오빠 씩씩하고 사내답다고 좋아하시는 거! 근데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할 수가 있어?!!”


서로 아끼고 보듬어주자며 새끼손가락 맞걸어 언약을 한지 대략 한 달 정도 지난 즈음, 나와 그년 이렇게 매일 언쟁을 벌이는 것으로 연애의 대부분을 메움질했다. 어차피 호르몬 분비량에 따라 서서히 식어갈 게 분명하겠으나 그래도 애틋한 감정 아직 마음가득 차올라 있을 이 소중한 시기에 우린 서로 사랑을 속삭이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쪽으로 더욱 많은 시간을 허비해 나갔던 것이다.

요는 이러했다. 나와 그녀가 그것을 전제로 사귀는 만큼 우린 응당 결혼을 해야 함이 옳다. 마땅하고 지당한 일이다. 근데 문제는 바로 그 「시기」였는데, 그녀는 그녀대로 그래도 올해 안에는 반드시 해야 한다, 난 나대로 최소 1년 만이라도 말미를 좀 달라는 데서 오는 견해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질 않는다는 것이 행성 내 핵이었다. 사실 난 이 아이를 만나기전 연애다운 연해를 해본 적이 없어서 약간 서툴렀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언제 어떻게 어느 때쯤 뭘 해야 하는지 정도도 모를 바보맹추는 아니다. 그렇기에 정확히 사귄지 1주일 만에 결혼하자는 말이 나온다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이 나한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TV속 연속극이나 영화에서 보았을 법한 그런 일이···.

난 당연히 신중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말로 그 애에 대해 하는 게 거의 없었으니. 나이가 나보다 두 살 어리고 서울소재 4년제 여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집이 좀 잘 산다는 정도? 그게 다다. 그 외에는 어디서 무얼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전혀 정보가 없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나갈 시간조차 주지 않고는 무조건 결혼부터 하려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가에 목숨 건 배나오고 머리까진 노총각 아닌 경우에야 어느 누가 쉽게 그 뜻에 따른단 말인가. 결혼얘기 안 하는 대신 가급적 빨리 하는 걸로 하자고? 개뿔. 이미 담 넘어가는 도둑괴가 물어간 지 오래다. 이 깊은 사정 모르는 친구 놈들은 30년 만에 솔로부대 전역한 것도 축하 다 못했는데 그 상대가 부잣집 딸내미인데다가 또 집까지 해온다고 하니 아주 그냥 부러워 죽겠다고 지랄댄스 난리부르스 들이였다. 그동안 고생하고 열심히 살아온 거 이번에 여자로 다 보상받는다며. 난 그게 엄청난 찌증으로 다가오고 있구만···.

근데 허구한 날 이일로 싸우다보니 생선 꼰 새끼줄에선 생선을 빼도 비린내가 난다는 말처럼, 나도 시나브로 동조되었는지 부모님을 설득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어느 날부터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내가 그녀와의 첫 번째 기 싸움에서 완벽히 패한 것이다.

자, 이 얘기는 이렇게 마무리 되···기는커녕, 산 너머 산이라고 정말 산 하나를 넘었나 했더니 그 뒤로는 더 큰 산이 있는 게 보였다.


“오빠 왜 전화 안 받아?”

“일하는 중이라고 했잖아. 고객과 상담 중이었다고.”

“그래도 전화는 받아야 될 꺼 아냐. 희숙이가 전화하는데.”

“희숙아 나 무슨 일 하는지 잘 알잖아. 한번 상담 들어가면 통화 못해. 나도 고객 힘들게 힘들게 만나는 거란 말야.”

“알았어 오빠. 앞으론 일할 때 전화 안할께.”

그래놓고는 부재중 10통···. 어쩌다가 일정이 겹쳐 몇 시간 통화라도 안 되는 날에는 그 토라진 성질머리를 달래주느라 집 앞에 가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했다.

“오빤 뭐가 중요한지 몰라.”

“왜 그래 또. 아 당연히 희숙이가 젤루 중요하지.”

“근데 이게 뭐야? 전화도 잘 안 되고, 해도 받지도 않고.”

“미안해. 그 대신 문자로 내가 다 알려주잖아. 어딨는지, 뭘 하고 있는지.”

“그게 더 수상해! 혹시 다른 여자 만나는 거 아냐?”

“하··· 내가 그럴 리가 있겠냐. 결혼까지 하는 마당에.”

“허얼~? 그럼 결혼 안 하기로 했으면 만날 수도 있다는 거?”

“희숙아. 이런 얘기 할 거면 나 들어갈께. 피곤하다. 내일 또 아침 일찍 나가야 돼.”

“흥!”

“왜 또~.”

“변했어. 예전엔 더 늦게까지 같이 있어줬잖아.”

“미안해. 근데 나 너랑 결혼준비하려면, 알잖아 더 뛰어다녀야 하는 거. 아무리 다 해주신다, 난 준비할 것 별로 없다 하시지만 그래도 나도 자존심이란 게 있잖아.”

사실이었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된 마당에 12월이 될 그날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몇 달 남짓. 그래도 명색이 사나이 결혼하는데 달랑 불알 두 쪽만 달고 갈 순 없기에 난 미친 듯이 영업을 하고 다녔다. 약속이 잡혔다하면 거기가 어디가 되든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가리지 않고 날아갔고, 당연히 그 양만큼 희숙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 탓에 난 항상 ‘미안해’라는 말을 입에 물고 그녀 앞에 서야했다. 그렇지만 나도 변명거린 있는 게, 집에 기댈만한 사정이 전혀 아니었고 그나마 이렇게라도 해야 결혼 전에 돈 푼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였기 때문이었다. 역설적이었다. 그녀와 행복해지기 위해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녀와 행복해야 할 시간이 줄어들다니··· 모순이었다. 한마디로 모순. 뫼비우스의 띠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으로 몸부림쳐 보지만 결국은 그 안에서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그런···.

이 부분에선 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한테 불만인 건 불만인 거고, 그것과 별개로 미안한 건 또 미안한 거니까.

“그래도 그래, 희숙이는 항상 오빠 볼 생각만 하면서 지내는데. 그거 시간 조금 더 못 내줘?”

그렇지. 이런 내 사정 이해해 줄 만큼의 도량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 이 여자는. 처음부터 그런 넓음이 있었더라면 결혼하자고 그렇게까지 졸라대지도 않았을 테니까.

“알았어 미안해. 이해 좀 해줘. 내 사정이”

“어으~ 지겨워 그놈의 사정 사정! 이정도면 오빠 사정 충분히 이해해 주는 거잖아! 근데 오빤 날 위해서 그 정도도 못해줘?”

“··· 하아. 그럼 도대체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내가 지금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고 싶어서 일해? 나도 빨리 일마치고 쉬고 싶어. 잠도 푹 좀 자고 싶어.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 몰라? 내가 지금 나 혼자 좋자고 이러는 걸로 보여 지금? 너랑 결혼 할라고 이러는 거 아냐 지금! 돈 벌어야 될 꺼 아냐.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시간 좀 달라했지? 그랬으면 좀 더 여유 있게 지내고 좀 더 자주 봤을 거 아냐!”

“지금 내 탓하는 거야?”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지금, 나 돈 별로 없어. 그래 우리 집 개그지야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나 지금 돈 벌어야 돼. 나 너랑 결혼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거야 지금.”

“됐어.”

“뭐?”

“안 해.”

“뭐라고?”

“오빠랑 결혼 안 한다고.”

“하아~.”

“가 어서. 나 들어갈래.”

“야, 야! 하아~ 진짜이씨 ··· 야! 최희숙!!”

대저 이런 식이었다.

이건 뭐 연애하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 싸우기 위해 만나는 사이인 것 같았다. 오죽했으면 그녀의 아버지께서도 너희들은 좀 그만 싸우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중 대박 사건은 또 이거였다.


친구 귀빠진 날이었는데 난 그녀에게 내 동패들을 소개해줄 요량으로 같이 가자는 얘기를 꺼냈었었다. 결혼날짜도 잡았거니와 어차피 그전에 다 같이 한번 모인 자리에서 예비 신부임을 공표하려던 찰나 아주 적시에 터져준 좋은 기회라 여겼었던 것이다.

물론 거절당했다. 어쩌겠나. 혼자 가야지. 아무리 매달려본다 한들 그 아 성격에 통할 리가 흰 긴 수염고래 그물코 통과하는 일보다 어렵다는 건 이미 빅뱅 때부터 통달한 수준이었으니.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던 녀석들이 맥이 빠져 날 신나게 갈궈댔음은 말할 것 없고···. 그래도 어렵사리들 참석한 자리, 간만에 다 모였다는 기쁨에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어, 여기? 친구 생일잔치.”

“그러니까 어디냐고.”

“어어, 미아삼거리.”

“언제와?”

“뭐?”

“언제 오냐고.”

“야, 지금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야.”

“알았어. 여자는 있어?”

“없어.”

그걸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들,

“제수씨~.” “오늘 왜 안 오셨어요~.” “우리 다 제수씨 보고 싶어서 기다렸는데~.”

“누구야?”

“친구들.”

“근데 왜 내가 제수씨야?”

“아 뭐 그거, 친구들끼리···.”

“기분 나쁘니까 그렇게 부르지 말라 그래.”

“으휴···, 알았다.”

“진짜 여자 없지?”

“야 야, 우리 각시님께서 여기 여자 있냔다.”

“제수씨~ 여기 여자 없어요~.” “아이구, 이 자식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구나 킥킥킥.”

“무슨 소리야?”

“아, 아냐 여자 없다고.”

“알았어. 사진 찍어서 보내.”

철커덕-.

“야야야 사진 찍어서 보내랜다.”

“그래? 어이구 좀··· 까칠하네. 자 모이모이(모여라모여라)~.”

찰칵~.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언제와?”

“야 희숙야. 우리 아까 통화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아직 술자리야?”

“그래. 아직 거기야.”

“몰 그렇게 오래있어?”

“말했잖아 오늘 친구 생일이라 간만에 모인 거라고.”

“나 오빠 보고 싶어.”

“지금은 안 돼. 내가 이따 가면서 들를께.”

“알았어.”

그리고 또 잠시 후,

“아직 거기 있어?”

“야 고만 좀 하자 고만 좀.”

“여자 없지?”

“사진 안 봤어?”

“혹시 알아? 빼고 찍었을지.”

“하아~ 야!! 그럼 내가 같이 가자 그랬을 때 오지 그랬어! 어차피 결혼하기 전에 다 같이 한번 볼 꺼, 내가 오자 그런 건데 안 오겠다 한 건 너 아냐!”

“어쩜 오빤··· 친구가 더 중요해?”

“그 말이 여기서 또 왜 나와?!”

“오빤 1순위가 내가 아닌 것 같애. 항상 그래.”

“야야 됐고, 끊자. 이따 내가 들를 테니까 그때 얘기해. 끊는다.”

그 뒤로도 전화는 계속 울렸으나 더 이상은 받지 아니했다.

그러하니 이미 사달은 나 있는 상태였다.

신경은 좀 쓰였지만 그래도 즐겁게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난 버스에 올라타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흐어어엉엉엉엉엉~.”

뭐라 말 꺼낼 새도 없이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반 쯤 취해 있는 술기운이 화들짝 놀라 도망갔다.

“희숙야?”

“엉엉 허엉 허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어엉엉 어 어서 와요~ 으어”

“어 어딘데.”

“끅 끄윽 끅 지입”

“집? 알았어 빨리 갈께.”

“오 오 오빠네 지입”

“우리 집? 우리 집?? 거긴 니가 왜 갔어?!!”

“모 몰라요 빠 빨리와요 어어엉~”

“아니 그러니까, 우리 집엔 왜 갔냐고!”

“오빠가 전화도 안 받고 해서, 꿀쩍 아 안오고 그래서어 어엉”

“알았어 알았어 빨리 갈게.”

“끄 끄 끊지마요 훌찌럭”

···

약속 장소가 집에서 가까웠던 게 다행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쉬지 않고 달려와 보니, 우리 연립주택촌으로 들어가는 골목어귀 한적한 곳에 흰 세단 한 대 세워져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차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흐느끼고 있는 여자도 보였다. 또 다행이라 생각했다. 난 집이라고 해서 내방까지 기어들어가 거기서 처울고 있는 줄 알았는데···.

“희숙아 무슨 일이야?”

“엉엉엉어어”

아 근데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이 계집애 울며 뛰쳐나오더니 들고 있던 물건을 냅다 집어던지는 것 아닌가?

순간 벙쪄 멍~하니 있는 내게, 거기서 그칠리 없는 걔는 소리까지 지르며 달려들어선 가슴을 주먹으로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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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수요일 24.06.12 7 0 26쪽
35 수요일 24.06.11 6 0 23쪽
34 수요일 24.06.11 7 0 24쪽
33 수요일 24.06.09 6 0 13쪽
32 수요일 24.06.09 6 0 13쪽
31 수요일 24.06.07 9 0 15쪽
30 화요일 24.06.06 6 0 14쪽
29 화요일 24.06.05 10 0 14쪽
28 화요일 24.06.04 8 0 15쪽
27 화요일 24.06.03 6 0 14쪽
26 화요일 24.06.02 8 0 13쪽
25 화요일 24.06.01 5 0 18쪽
24 화요일 24.05.31 10 0 13쪽
23 화요일 24.05.30 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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