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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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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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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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9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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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DUMMY

허나, 무작정 뛰쳐나온 기세와는 달리 상황이 참 머시기했으니···. 이제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라 어딜 방문하기도 좀 그렇고,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근처에 내 영업지역이 있지 않다는 거다. 우리 인차투어판 토르데시야스조약에 의거하면 어느 쪽으로든 최소 여기서 한 시간은 족히 가야 나의 활동무대로 접어들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찾아 가고 싶다고 해서 바로 머리를 들이밀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에라이~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우선 밥이나 먹으며 생각하자.’

라고 속으로 떠올렸지만, 기실 이 모든 것은 철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행동! 아까 오찬을 누구와 즐길까 하고 잠시 궁리하던 차에 마땅한 목표가 화망에 쉬이 포착되었었는데, 아마 놈이라면 충분히 나의 점심제안에 응해 줄 것이고 이후론 나머지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관할구역으로 이동하면 만사형통! 꽤 그럴 듯한 구상이라고 여겨지니 서둘러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으렷다.

난 주섬주섬 전화기를 꺼내들고는 주소록을 열어 「왕」이라는 단문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대번에 「왕」이라는 한 글자가 열한자리 번호를 이끌고 나타났다. 이번에 만나려 하는 친구의 이름은 왕현태. 너무나 특색 있는 성씨의 소유자였기에 그냥 그대로 별명이 되어버린 사례다. 재밌는 건 나이 찰대로 찬 뒤 예비군 훈련 갔다가 만나 벗이 되어 바로 그 자리에서 「왕」이라 불렀었는데, 좀 더 친해진 후 녀석의 친구들을 함께 몇 번 보았더니 아 다들 현태를 「왕」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사람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였나 보다 킥킥. 어쨌거나 이 소소한 삽화가 일어났던 순간도 어느덧 일질一秩의 연화를 뛰어 넘었구나. 무념한 세월 앞에 현태 녀석과 나는 10년 지기라는 낯간지러운 멍에 안에 영락없이 들어선 꼴이 되어 버렸다.

“처언~ 웬일이야!”

녀석은 내가 자길 「왕」이라고 부르는데 대하여 역시나 쬐끔 특색 있는 성씨를 갖고 있는 날 「천」이라고 불렀다.

“어 그래. 잘 지냈냐?”

“물론이지! 너는?”

“그래, 잘 지냈다니 다행이네. 난 뭐 그냥저냥 산다.”

“어. 사실은 나도 너랑 똑같이 그냥저냥 살어. 잘 지내긴 뭘 잘 지내!”

“프헛!”

“케헤헤헤헤.”

“아이구, 끅끅끅. 잘 지내고 있구만 뭘.

“그렇지 뭐어. 그나저나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바쁘냐? 지금 일하고 있지?”

“그렇지. 지금 한창 일할 시간인데. 넌 노냐?”

“헤헤. 나야 뭐 노는 게 일하는 거지 뭐.”

“좋~겠다, 영업직은. 맨날 밖에 쏴 다니고.”

“이 새끼. 그거 부러워할 거 하나 없다. 난 니가 더 부럽다 인마.”

“내가 뭐가 부러워.”

“아 너는 번듯한 직장도 있지, 여우같은 각시도 있고 토깽이 같은 새끼도 있잖아.”

“···아니야. 힘들어. 그러지마.”

“웃기고 있지 말고, 야 너 오늘 같이 점심이나 먹을래?”

“오늘?”

“응. 시간 되냐?”

“너 어딘데.”

“종로. 어···, 우리 사무실 근처.”

“너 오늘 종로에 있냐? 웬일이래? 항상 밥 먹자고 전화하면 저기 어디 머얼리 가 있더니.”

그랬다. 내 본부가 속해 있는 곳도 종로, 왕이 일하고 있는 곳도 종로. 엄밀히 말하면 난 구청 주변인 심장부 쪽이고 녀석은 동대문이 더 가까운 4가이지만 어쨌든 같은 구획에 있으니 점심이나 하자는 연락을 심심찮게 받아왔었다. 그러나 이 회사 다닌 이래 점심밥을 종로바닥에서 해결해 본적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에 번번이 친구의 요청을 미안하다는 말로 묵살해온 나였다.

“아씨, 미안해애~. 그래서, 괜찮냐?”

“오브 콜스~.”

“오키 접수!”

“언제 오냐?”

“언제까지 갈까?”

“음··· 지금 시간이···.”

“열한시 십 분이다.”

“아··· 그래? 그럼 45분까지 와라. 여기 괜찮은 집 있는데 거기 가려면 좀 일찍 가야돼.”

“45분? 이거이거 그렇게 일찍 나올 수 있냐? 누가 그 시간에 내보내 준데?”

“아씨 그렇잖아도 짜증나는데, 그것까지 못하게 하면 때려 쳐야지!”

어이쿠! 내가 역린을 건드렸나보다. 살짝 억양이 있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나긋했던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는 걸 보면.

“워워~ 진정해 친구. 진정해. 나와, 나오라고. 나오면 돼. 나올 수 있어!”

“그래. 그러니까 그때까지 늦지 않게 와. 알았지?”

“그래그래. 좀 있다 보자. 내 부지런히 갈게.”

“아 참, 너 김치찌개 좋아하냐?”

“아유~ 내가 음식 가리는 거 봤냐?”

“그래. 그 집 잘 하니까. 간만에 얼굴보고 밥이나 먹자.”

“그럽시다. 그럼~.”

“그려~ 조심히 와~.”

다행이다. 성공했다. 덕분에 붕 뜨지 않고 나름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친구란 좋~은 것이여.

옛말에 부모 팔아 친구 산다는 말이 있다. 당연 부모님을 판다는 것 자체가 차마 생각으로도 떠올려선 안 될 몹쓸 짓이지만, 그만큼 친구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옛 성현들의 과장이 더해진 것이겠지. 그러나 세상엔 참 많은 사람들이 있는 법. 제 아무리 오래 사귄 친구라 하더라도 그놈이 반드시 좋은 놈이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는 게 또 세속의 이치다. 익자가 삼우면 손자가 삼우라는 말처럼, 그만큼 주변엔 옥 같은 사람들과 돌 같은 인간들이 혼요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치 않으면 안 된다는 거다. 나라고 예외 없이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닳고 닳아가고 있는 근간, 예전과는 달리 굉장히 듣기 싫은 말로 다가오는 주제 하나가 느닷없이 떠오른다. 그건 바로 ‘근본은 착한 녀석인데 말이야,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라는. 주로 소년원 같은 곳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언담이다. 어렸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었으나 다양한 사람들을 거치고 수많은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지금에 이르다보니 저것처럼 말이 안 되는 새끼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아니 왜? 근본이 착한 녀석이 왜 나쁜 녀석을 사귀어? 근본이 착한 사람은 처음엔 그 달콤함에 혹해 잠시간은 교분을 틀 수 있겠지만, 시간 지나면서 차차 음험한 속내를 알게 되어 마침내는 교우관계를 틀어버리는 게 인지상정인데? 그러나 생선을 꼰 새끼줄에서는 생선을 빼더라도 비린내가 가시지 않는 법. 비린 인간과 조금이라도 비빈 인간은 자신이 아무리 깨끗하다 여길지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릿한 내음이 배어있지 않을 수 없다. 먹물이 스며든 옷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힘든 것과 같이 그걸 발견하고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쉽사리 도로 희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물며 그것도 모른 채 ‘친구를 잘 못 사귀어서···.’라는 말까지 듣다니! 이건 변명과 반론의 여지없이 이놈도 그놈도 둘 다 똑같은 놈이라는 거다.

몇 해 전 어느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근데 그 일도 일이지만 그 자살한 연예인과 교우 관계에 있던 또 다른 연예인이 친구 장례관련비용 일체를 부담해주어 세간에 신선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일로 더욱더 인구에 회자되어진 사건이다. 이러한 멋진 모습에 또한 많은 말들이 오갔으나,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언사가 하나 있으니 다들 ‘나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하며 내뱉은 부러움 섞인 탄식 사이로 ‘나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바라기보다는 내가 누군가에게 저런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더 옳지 않겠나.’라며 어느 무명 현자가 내어놓은 말이었다. 하··· 그야말로 어리석은 언어言魚 가득한 더러운 못에 홀로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 아닐 수 없었다는. 이 한마디에 중구난방이던 다른 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물러갔고, 바보상자나 거기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강 건너 불 보듯 무심하게 대하던 본좌 역시 누군가에게 「저런 친구」가 되어준 그 잘생긴 남자배우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버렸다. 내면과 외면의 완벽한 조화라 칭송하면서. 원래 잘생기긴 했지만 이 사건 이후로 그 누구보다도 더 잘생겨 보이는 건 도저히 막을 길이 없었다. 분명 고인이 된 그분도, 이승에 남아 먼저 벗을 떠나보낸 그분도 함께 지냈을 때는 서로가 서로의 친구였음을 얼마나 자랑스러이 여겼을까.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붕우유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 백아절현의 참모습이리라. 그렇다. 일이 이러할 진데, 강제합숙소에 끌려갈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지른 놈들이 뭐?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고? 천만에, 그놈이 그놈이다. 그놈은 누군가에게 잘못 사귀어지게 된 친구 중 하나일 뿐 그 이하는 될지언정 그 이상은 될 수 없다. 그러니 그따위 말장난으로 논평을 매스껍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럼, 만나는 친구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냐고? 아주 쉽다. 한마디로 정의 내려주지.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된다. 그러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 나만큼이나 좋은 사람들이 겨울하늘 눈송이처럼 하늘하늘 내려온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사람 되기가 힘들지 않냐고? 그러면 계속 더러운 친구들 속에서 어울려 지내시던지. 세상일 쉽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부단한 자기절제가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쓰디쓴 인고의 노심 뒤에 맛볼 수 있는 극락같이 달콤한 열매는 한량없는 노력과 절제로 엇비슷한 곳에 올라선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다. 사실 내가 만나고 다니는 많은 친구들? 내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 내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에 어느 놈이 좋은 놈이고 어느 놈이 나쁜 놈인지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어디 감히 불완전한 인간 나부랭이 하나 따위가 남을 평가질 한단 말인가. 난 그저 나 스스로에 대한 비평에만 열을 올리면 된다. 내가 어떤 놈인지, 어느 정도의 놈인지. 매일매일 나 자신을 다잡고 고매한 이상과 뜻을 잃지 않기 위해 각고의 주력을 다할 따름이다. 그리하면 나머지는 그냥 저절로 따라온다고 나는 믿고 있다. 따라서 지금 만나러가는 왕현태라는 인물이 좋은 친구인지 나쁜 친구인지 역시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내가 그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면 그만인 것이다. 그 길이 맞다면 녀석과 나의 연은 계속 이어질 테고, 만약 그 길이 아니라면 언젠간 갈라서게 되겠지. 그저 난 지금에 충실하면 된다. 녀석을 위해, 그리고 녀석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를 위해.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도착했을 때 시간이 어중떠버리는 애매한 거리라 평소처럼 같이 열일하자고 골반아래 붙어있는 두 대퇴골에게 힘찬 성원을 보내었다. 덕분에 가볍게 놀려가는 발걸음 아래로 세월의 때 가득 묻어나는 종로의 정취를 오랜만에 느껴 볼 수 있어 좋았다. 이 상큼함과 가까이서고 싶다는 듯 망중한이란 녀석이 덩달아 끼어들려는 기미를 보였으나 아쉽게도 아까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통화했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라 자리를 만들어주진 못했다.

반사적으로 손에 들려진 전화기를 보면서 일었던 잠깐의 망설임을 끊어내고··· 이내 통화목록을 확인 한 뒤 거침없이 전화걸기 단추에 손가락을 올린다.

“준호냐.”

아이쿠. 역시 형이다. 신호음 두 번 채우기도 전에 말소리가 들려오네. 이러한 신속쾌남아가 만약 전화를 한 번이라도 안 받는다면 주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십중팔구 분명 이사람 무슨 일이 생겼다며 걱정난무 하는 온갖 추측 속에 잇따라 통화 단추를 눌러대기 바쁠 것이다 에 내 전 재산과 왼손 여섯째 손가락을 건다.

“예 영근이 형. 저에요.”

“그래. 바쁜 건 좀 끝났냐.”

“예 형. 아까 사무실에서 좀 할 일이 많아 가지구요. 다 끝내고 지금 외근 나가는 길입니다.”

“그래. 고생이 많다.”

“별말씀을요. 뭐 저만 고생하나요.”

“그건 그렇고,”

드디어 시작이구나. 과경에 살짝 망설였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어제 일에 대한 보고를 함에 있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순식 끝난 만큼, 아까 떠올렸던 것처럼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그냥 있었던 그대로를 얘기하면 될 뿐. 내가 뭐 잘 못한 것도 없으니까 위축 될 일 역시 없다. 고 마음을 잡아나갔다.

“어떻게 된 거냐, 잘 된 거야?”

“아, 아뇨. 잘 안 된 것 같아요.”

“그래? 왜에? 왜 잘 안됐어?”

“그게···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는데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싫은 티를 팍팍 내더라구요.”

“그래에? 걔가? 그럴 리가 없는데? 걔 진짜 예의 바른 앤데?”

일순 듣고 있으려니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아 당신이 걔에 대해서 뭘 도대체 얼마나 안다고! 어제 갸 입을 통해 들어보니 그저 형부와 같이 있었던 거 몇 번 본 게 다라카드만!

“모르겠어요 저도.”


작가의말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에게서 온 전화 한통.

과연 천준호의 선택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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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목요일 24.06.15 12 0 26쪽
37 수요일 24.06.13 10 0 24쪽
36 수요일 24.06.12 7 0 26쪽
35 수요일 24.06.11 6 0 23쪽
34 수요일 24.06.11 8 0 24쪽
33 수요일 24.06.09 6 0 13쪽
» 수요일 24.06.09 7 0 13쪽
31 수요일 24.06.07 9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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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화요일 24.06.05 1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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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화요일 24.06.03 6 0 14쪽
26 화요일 24.06.02 8 0 13쪽
25 화요일 24.06.01 5 0 18쪽
24 화요일 24.05.31 11 0 13쪽
23 화요일 24.05.30 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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