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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최근연재일 :
20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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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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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DUMMY

난 좀 수위가 올라간다 했지만 그래도 항상 밝고 긍정적인 얼굴로 일관하던 형의 모습만 보아왔던지라 잠시 그러다 말겠거니 했는데 갑자기 그의 입에서 커다란 욕지기까지 튀어나오자 적이 기의가 움츠러듦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우리들 뿐만은 아닌 듯했다.

“동한아 왜 그래.”

“김사장~ 무슨 일 있어?”

가게 곳곳에 있던 손님들이 이쪽을 보며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걸 보면.

“아유, 아닙니다. 별거 아녜요. 죄송합니다~.”

보아하니 오늘 여기에 와 있는 사람 열에 아홉은 또 형과 친분이 있거나 아니면 단골손님들인갑다. 그렇지 않고서는 술자리에서 으레 튀어나올 수 있는 큰소리에 저렇게들 관심을 가져줄 리가 없지. 이렇게 으쓱한 곳에 저 적다고 만은 할 수 없는 손님들이 자리하게 만든 것을 보면 형이 정말 노력을 하긴 많이 한 것 같은데···.

“미안하다. 내가 좀, 아우~ 열이 받아서 말야.”

“괜찮아요 형. 듣는 우리도 화딱지 나는데, 당사자인 형은 오죽 하겠어요?”

“그래 암튼, 요즘 내가 좀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야. 그 무슨 좀비 영화들처럼 내 온몸이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돌아가니 손에 쥐는 것도 없구···. 수도세에 전기세에 직원 월급에 이것저것 빼고 그 적잖은 가게세까지 제하고 나면··· 없다 진짜 없어. 어쩔 때는 백 간신히 넘긴 달도 있을 정도로.”

?? 백? 천도 아니고 백? 배애액??

와··· 이 정도까지 심각했었어? 내 우리나라 자영업자들 힘들다는 건 뉴스를 통해 많이 접해왔지만··· 그 첨두에 닿아있는 사람 얘기를 직접 들어보니 상태가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구나···. 장사가 그나마 된다 해도 이정도인데 가끔 손님 대신 파리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여러 점포들을 보면··· 수익이 지표면 아래를 밑돌아 대출 끌어다 메꾼다는 일이 실찌로 있을 수 있는 일이었어···.

“그리고 뭘 또 그렇게 분기 별로 내야 할 건 많은지···. 이정도 바쁘면 사람을 써야 하는 게 맞는데, 그렇다고 지금 사람까지 쓰면··· 난 굶어 죽는다. 그래서 밤장사 새벽장사 미친 듯이 뛰고 있는 건데··· 여기 이분들마저 없었으면···. 하아··· 내가··· 이돈 벌라고 이거 시작한 게 아닌데···. 차라리 이럴 거면 그냥 아무 회사나 다니는 게 낫지, 뭣하러 시간 버려 몸 버려가며 이 지랄을 하고 있냐?”

가만히 듣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나 형이 힘들어하고 있었구나. 우린 그것도 모르고 이사람 언제 건물 올리나 그 기간과 날짜를 갖고 농담 섞인 내기나 하고 있었는데···. 누구는 몇 층 달라 그러고 또 누구는 몇 층 달라 할 거라는 식으로.

“내 그래서 접을라고··· 이 생활 더는 모대먹겠다. 피똥 싸가며 돈 벌어봤자 건물주만 부자 만들어주는 거 더 이상은 못 하겠어. 말이 좋아 장사지, 이거 지나가는 사람들 삥 뜯어다가 임대사업자들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개쌩양아치 짓이야. 그 짓 이제 더는 못하겠다구. 어차피 2년 계약이니 슬슬 움직일 때도 됐어. 재계약 안 할 거다. 그냥 적당히 때맞춰서 빠져나가야지, 이거 더하다간 제명에 못 살 것 같애. 역시··· 역시, 이 나라에선 자영업 따위 하는 게 아니었어. 니네들도 명심해라. 장사든 뭐든 하고 싶거들랑 난중에 자기 건물들 올린다음에나 하등가. 만약 그전에 장사 한다 뭐 한다 지랄치고 다니면 내가 아주 가만 안 놔둔다.”

협박적 기능이 소량 섞인 엄포로 자신의 기나긴 언사를 마무리 지어가던 동한이형은 잔 바닥에 남아있던 맥주를 단번에 털어 넣는 것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짓궂게 헝클어뜨리며 다시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있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자, 답이 됐냐 요놈들아? 이제 궁금한 거 없지?”

이런 주인과 그런 기분 좋음을 만나기 위해 이 밤 이 먼 곳까지 찾아 온 아름다운 사람들은 동한이형이 말을 마치고 일어나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당신들이 필요한 주문을 건네 오기 시작했다.

“자 그럼~ 멋쟁이들! 오늘도 마음껏 먹고 놀다가. 내 또 짬나면 술 들고 올 테니까. 예~ 갑니다 형님~.”

형은··· 또다시 바빠져 간다.

그리고 우린··· 이제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야겠지.

“아니 닭핥지 마시오가 그 사람들 인생 다 피게 해준 거 아니었어? 아 그런데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들 사냐?”

“그러니까~. 지들이 이렇게 살게 된 것도 다 그분 때문이라며? 그럼 알아서 어디 처박혀서들 자~알 살고 있을 것이지 왜 그렇게 젊은 사람들한테 폐만 끼치고 다닌데? 꼴사납게 스리.”

“아이구··· 걱정이다 걱정. 내 저 양반 이제 좀 번듯하게 사는 거 보나 했더니···.”

··· 그러나, 쉽사리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점잖고 멋진 분들은 가만계셔도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대우 안 해 드리겠냐?”

“그래에~ 내말이! 근데 또 그런 분들은 그러지도 않아요, 꼭~ 어디서 본데 배운데 없이 나이 똥꾸녕으로 처먹은 새끼들이 대우 받을라고 더 지랄들이라니까?”

누구랄 것도 없었다. 다 같이 하나 되어 목청들을 돋우는 것이. 아이고, 이 친구들도 맺힌 게 많~았나 보구나. 우리는 그래서 그 꼴 난 나이 뒤에 숨어 경우 없고 막되 먹은 행동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늙은이들을 두고 이렇게 부른다. 「시대와의 싸움에서 져버린 노땅들」이라고.

휘유···.

이렇게 저마다 날 새운 한마디씩을 하고 있는 일당들을 보고 있자려니 며칠 전 접했던 뉴스 하나가 또 떠오른다. 모 이름 높은 제과점의 대형점포하나가 서울을 대표하던 강남의 어느 노른자위 상권에서 결국 철수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이유인즉 과도한 임대료를 더 이상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내 직접 확인할 길은 없지만, 기사에 따르면 월 가게세가 1억 4천에 달했다고 한다. ··· 1억··· 4천···. 연이 아니라··· 월로. 하악··· 1억이··· 무슨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그간 그 비싼 가게세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버텨온 것이었는데 이제는 홍보도 될 대로 되어 더 이상 그 비싼 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져 결국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골갱이의 보도였다. 근데, 그 비어있게 될 자리엔 누가 들어갈 수 있기나 할까? 그런 과시욕으로 무장되어 있는 또 다른 대기업이 아니면··· 아마 힘들겠지. 개인의 힘으론.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이른바 그 유명한 「가로수 길」로 대변되는 임대사업자들의 수익은 평균 6배가 올랐다고 한다. 6배··· 6배라··· 편한 예시로 10년 전 임대료 100만원 받아먹던 사람이 이제는 월 600만원을 받아낸다는 소리다. 지금 받아먹는 그 돈의 1/6도 당시엔 절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는데···. 우리 급여도··· 그 정도 올랐나? ··· 킥. 그런데, 그 돈이 다 어디서 났을까?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났나? 나타나긴 나타났지. 너와 나 같은 서민들 호주머니 속에서. 계속되는 경기 침체를 회생하기 위해 부동산시장을 중점으로 활성화시킨다는 아주 아주 멋들어진 정책아래. 그래서 양도소득세 등의 각종 규제를 철폐해부렀지. 경기를 부양시킨답시고. 상승했냐고? 상승했지. 경제 사정이 아주 많이 나아졌어. 물론 부동산을 거머쥐고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뭔가 착각들을 좀 하고 계셨나봐, 이런 결정을 내린 높은 분들이. 부동산 거래를 통해 많은 돈이 오가면 그걸로 인해 시중에 자금이 풀려 경기가 좀 돌아갈 거라는··· 이게 바로 낙수효과라고 했던가? 근게 이걸 어쩌나··· 그 높은 곳에서 떠다니는 돈들은 결코 낮은 곳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 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그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우리도 그 잘난 돈들 구경 일호정도는 해봤겠지. 그런데 어떻게 그게 코빼기도 안보이더라. 그나마 부동산가격의 폭주를 억제해주던 여러 가지 규제가 경기활성화라는 미명하에 철폐되고 나니 너도나도 그 시장으로 몰려 당연히 공급자 측면에선 아쉬울 것 없이 가격을 높여버렸고··· 이렇게 고삐가 풀려진 망아지들은 신명나게 뛰어다니며 임대사업자들의 불로소득을 무려 6배나 올려주는 기염을 토하게 되었구나. 뭐 이소리 저소리 잡소리 다 늘어놓았지만, 그냥 한마디로 말해 건물주의 수입이 6배 올랐으니 세입자의 지출도 6배 올랐다는 소리다. 더 간단히 따지면 저 힘들어하는 동한이형이 만약 10년 전에 가게를 했다고 봤을 때 지금 얼마를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단순대비로 육분지 일 수준의 임대료에, 내 기억 상 지금 3500~4000원 하는 생맥주 한 잔이 그 당시는 많게 잡아 2500~3000원이었으니까 지금보다는 그래도 훨씬 먹고 살기가 수월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는 거다. 후우··· 이렇게··· 이렇게 우리를 사지로 몰아놓고는 뭐, 어쩌고 저째? 요즘 것들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아 씨발, 노력하면 월급 10년 사이에 6배로 만들 수 있냐? 당신들도 10년 사이에 월급 6배 올린 적 있어? 응? 있어? 있냐고오~!

뭔가 심각한 착오 속에들 살고 있나본데, 부동산에 이렇게 끼어나는 거품들은 나라살림에 별 득이 되지 않는다. 그걸 갖고 영화를 누리는 소수의 부유층들을 제외하고서는. 그 이유를 알려주마 이 씨발. 건물주가 임대료 6배를 올리지? 그럼 아까 얘기했듯 세입자는 6배로 오른 임대료를 내야한다. 근데 이게 단순히 그냥 돈만 올려 받고, 올려 내고가 끝이 아니라 여기서 시작된 나비효과가 광대한 태풍이 되어 우리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는 거다. 어떤 이유가 됐든 한 곳의 지출이 늘어나면 그만큼 다른 곳에서 지출을 줄여야만 하는 것이 우리네 삶. 세입자 입장에서는 임대료가 부담이 되어 여러 가지 새는 돈들을 잡아 보려하지만, 그것 갖고는 택도 없다. 그렇게 버티다 버티다 안 되면 할 수 없이 졸라매는 것이 인건비. 이 나라 영세자영업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요식업의 경우를 들어보자면, 돈을 많이 줘야하는 기술자를 내보내고 직접 자기가 하던가 아니면 집안사람을 박아 넣는 걸 은근 많이 보게 되는데 이리하는 순간, 망조의 악순환은 그 무시무시한 거체를 가게 안으로 슬쩍 들이밀어 온, 아니 이미 들어와 자릴 잡고 있다. 무엇보다 정직한 것이 사람입맛이다. 그리고 그 미묘한 차이를 손님들은 웬만해선 놓치지 않기에 매출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직원들도 어느 정도 임금을 쳐줘야하는 숙련자에서 차차 값싼 학생들이나 의사소통이 가능한 외국인들로 대체되어 진다. 끝 모르게 이어지는 불경기로 인해 소비와 지갑사정이 얼어붙어 사람들도 점점 외식을 줄여나가는데, 재료값은 물가상승률과 호응하여 점점 올라 이마저도 싼 외국산으로 은근 바꾸어가니 수익은 갈수록 하락세 일락. 자, 이제 문을 닫는 일만 남았다.

건물주들은 그러나 가게가 이렇게 하나 빠진다 해도 아무렇잖아한다. 어차피 먹고 사는 문제에 내몰려있는 치들은 들어와서 장사를 해야 하니 다시 사람 하나 받는 게 좀 귀찮을 따름이겠지. 당연 청운의 꿈 한 아름 안고서 점포를 인수한 후발주자들. 그러나 그 악순환의 고리는 그들이라고 예외를 쳐줄리 없고, 그들이라고 놓아줄리 만무하다. 이러는 와중 또 깃발을 꼽는 건 인테리어업자와 가맹점회사들인데, 아 그들이야 제공한 수고만큼 돈만 따박따박 받아 가면 되니까. 가게가 망하건 말건 아무 상관없지 그 사람들은. 건물주들이야 뭐··· 입이 아프고. 이렇듯 부동산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밑에서 뭐라 하건 무슨 일이 일어나던 별반 피해를 입지 않는다. 그럼 가게 시작해서 성공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래, 맞는 말이다. 성공하면 된다. 누구나 그런 생각으로 장사를 시작하고 또 그렇게 돈 번 사람들이 있긴 있으니까. 그런데··· 장사가 잘 되면 임대사업자는 대번에 세를 올려 받거나 아니면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대박가게 주인을 내쫓고 자기 일족을 끼워 넣는다. 가끔 그런 경험들 있을 것이다. 분명 잘하고 유명한 집인데 얼마 있다 가보면 객관적으로 맛이 좀 변해있는 경우를. 상호고 뭐고 다 그대로인데 말야. 이거, 열에 여덟은 분명 아까 내가 말한 대로 주인이 바뀐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중심에 요지부동 박혀있는 거대한 부동산 괴물, 이 부라퀴 진배없는 녀석은 이러한 방식들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

허나, 이게 다가 아니다. 저 거대한 수레바퀴아래 깔려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요, 주변의 이웃들이다. 저렇게 쫓겨난, 응당 합당한 보수를 받아야 할 기술자들은 분명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저런 방식에 희생당해 퇴직금이고 뭐고 다 날려먹은 사람들은 분명 누군가의 부모들이라는 거다. 집안의 버팀목이 되어야 할 어른들이 자유시장경쟁의 논리에 의해 이런 식으로 경제적 주권을 위협당하다보니 그나마 보탬이 되고자하는 마음속에 고사리 손이라도 들고 하염없이 자녀들이 밖으로 나설 수밖에. 그리고 애처롭게도 이는 더 싼값으로 노동력을 구하길 원하는 사냥꾼들의 시야에 쉬이 노출되고 더욱 손쉽게 포획되는 절차를 밟는다. 가진 것 없는 서민은··· 자신들은 물론이거니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당신의 자녀들까지 서서히 가진 자들의 노예로 전락당해 가는 모습을 그저 눈뜨고 멍하니 바라다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로 내몰리고들 있다. 십 수 년 전까지 그래도 외벌이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부양하던 정상적인 모양새의 가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맞벌이 그리고 아이들의 아르바이트로, 저 옛날 마치 산업혁명시기에 부르주아지들이 운영하는 공장에 애·어른 할 거 없이 가족 모두가 일하던, 그러고도 참혹하기 그지없는 가난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던 당시의 비참한 노동자들의 모습과 묘하게 중첩되어 나타난 풍속도가 현 세상에 기이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부동산시장을 철썩 같이 믿고 풀려진 돈들이 이 나라의 서민들에게 내려와 가라앉아있는 경기를 활성화 시켜주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론 몇 몇의 부동산 부자들과 건축업자들에게 가는 대부분과 그 틈바구니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통해 그들의 나라로 사라져버리는 약간으로 양분되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 헐리웃 영화중에 「신데렐라 맨」이라는 작품이 있다. 배경이 1930년대 미국의 암울했던 경제 대공황시기였는데, 작중 아이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빈민촌의 사람들이 모여 커다란 케잌을 만들어 같이 나눠먹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그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얘기한다.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분명 이 아버지들의 잘못이 아닌데, 당신들은 자신의 탓만 하고 있다고.”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았던 어린 시절, 당시 소중하게 여겼던 아가씨와 같이 손목 잡고 극장가서 봤을 때는 그냥 재밌다하고만 본 영화였으나, 이 나이 들어 다시 보고나니 그 대사가 그렇게 가슴을 저미어올 수가 없다.

그러하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그리고 더 나아가 집 마련은 물론 인간관계까지 포기했다는 오포세대로 쫓겨나게 된 것이 분명 우리들만의 잘못은 아닐 진데 사회는 그저 그 잘못을 우리가 감내해야만 한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우린 지금 이 시절, 이 시대에 태어난 죄 밖에 없는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척하며 꺼내는 얘기지만 30대 후반으로 치달아 가는 지금, 여기 같이 앉아 있는 세 놈을 포함한 내 친구 중 삼분지 이는 아직도 결혼들을 안 하고 있다. 못했다는 말이 조금 더 정확하겠지만···. 당근 인류역사를 돌아다봤을 때 지상에 발붙이고 다니던 사람 모두가 다 결혼을 하지는 않았다. 독신들··· 많았다. 멀리는 플라톤형님에서부터 가까이는 베토벤형님까지. 그러나 소수에 불과했다. 나 역시 만약 다들 장가가서 애 낳고 살고 있는데 혼자만 이러고 있다면 ‘그래. 라톤이형도 그랬고 토벤이형도 그랬는데 나 역시 그분들처럼 뭔가가 있어서 그러는 거겠지.’하며 자위라도 해보겠지만, 그 수가 주변인 셋에 둘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거의 50%에 육박해 간다면··· 짜장 그것을 우리들의 문제로만 돌려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 가장 깊은 내핵에 잘나신 「부동산 거품」께서 거친 숨결을 쉼 없이 내뿜고 계신데 말이다.

이래서 헨리 조지형님이 100년도 전에 남기신 자신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는 공공의 자산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그렇게나 말했었나보다. 먼저 태어난 이들의 대지 독점은 이후 나중에 태어날 이들이 누려야 할 기회비용을 박탈하게 된다고. 아아··· 형님 진짜 사랑해···!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조지대형이 우려했던 예언은 현실이 되어 부동산을 세습한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부의 독점과 통제가 이루어지는 세상으로 눈앞에 펼쳐지게 되었나니···. 썅! 내가 몇 번을 말해 내가. 안 좋은 예감은 꼭! 적중한다고. 1879년, 형님이 인류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나게 될 그 명저를 쓴 이유가 자기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중에 태어날 놈들 미래가 너무나도 암담하고 불쌍해 정신들 좀 차리라고 미리 알려주고 싶어서 그랬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불길한 예감은 반드시 적중한다는 세속의 이치까지 의도치 않게 증명하면서.

“야, 너 전화 온다?”

“응?”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

또 잡념에 빠져 정신을 놓아버린 병증이 도진 날 바로 옆에 앉아있던 정우가 일깨워 준다.

보니, 진짜 바지 속에서 쉴 새 없는 진동이 울려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어, 아. 고마워.”

엇?

“민희야.”

“오빠?”

“뭐?” “민희?” “이건 또 뭐냐?”

아이씨 이 자식들 진짜!

난 같이 있는 시정잡배 놈들이 소중한 통화에 끼어들게 되는 게 굉장히 못마땅하여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 가게 밖으로 뛰쳐나왔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응?”

“내가 몇 번을 했는데!”

“아 미안 미안.”

“누구랑 같이 있어요?”

“아 친구들하고.”

“어디에?”

“도봉산. 동한이형네 가게.”

“헐~ 그 오빠 가게 차렸어요?”

“응. 디게 이뻐.”

“쳇··· 이럴 줄 알았으면 그 오빠랑 잘해보는 건데···. 남자답고, 음··· 또 멋있고.”

헐?! 아니 이 아가씨가 헤어졌다고 지금 못하는 소리가 없네 그냥?

“동한이 형 눈 높아.”

“야!!”

“왜!”

“너 진짜 죽어~??!”

“죽여바 죽여바 죽여바~.”

케헤헤헤헤~.

“진짜 이씨~.”

“그럼 다리 놔줄까? 사실 그 형 정도면 충분하지~.”

“됐어요~ 그냥 해본 소릴 가지고 또. ··· 근데 나 정도면 어때서!!”

“그래~. 민희도··· 최고지···.”

“흥~! 알긴 아네!”

알지. 그걸. 그 누구보다 잘···.

“···뭐, 그건 그렇고, 뭐해요? 설마?”

“응··· 아···.”

“으이그 으이그 또 술 진짜! 왜 그렇게 맨날 술만 먹어요?”

“어젠 안 먹었잖아.”

“그건 나하고 있어서 그런 거고!”

“뭐, 무슨 상관이냐? 기다려줄 마눌님도 안 계시는데.”

“치···.”

“치는 무슨 치야, 됐고, 준비는 다 됐어?”

“··· 치. 몰라···.”

“몇 시 비행기야?”

“··· 12시 5분.”

“그렇구나···.”

“나··· 이제 나가요.”

“응, 그래.”

“··· 예전엔··· 해외 나갈 때 오빠가 공항까지 태워다주고 그랬는데···.”

“이번엔 싫다며···.”

“응···. 그게 맞는 것 같아.”

“그래 잘 가고,”

“그래요. 이제 공항 리무진 시간 다 됐어. 나 나가야 돼.”

“짐 무거울 텐데.”

“괜찮아요 이 정도는. 늘 있는 일인 걸···. 그럼, 술 먹어요~. 나 이따 공항 가서 전화할께.”

“그래 민희야 조심해서 가구.”

“응 오빠.”

맘 같아선 냅다 달려가서 차에 태운채로 마지막 가는 길을 전송해주고 싶지만···.

아슬아슬하게 연결되었던 오작교마저 이제는 자신들도 떠나갈 때 되었다며 뿔뿔이 흩어져 모두 처연한 날갯짓 흩뿌리누나.

그래도 아직은 한 번 더 통화 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겐 있어 다행일 뿐이로고···.

전화는 이미 끊어졌으나, 난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 산바람 나붓거리는 화천월지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한동안 기꺼웠던 마음과 이제 곧 다시 애호버질 가슴을 살살 쓰다듬어 주어야했다.

봄은 만발하였건만 이 몸을 향해 언뜻뜻 몰아치는 만동晩冬의 심술은 아직도 맵기만 하구나···.


한편으론 깃브고 한편으론 습슬한 염통을 달래며 초초히 가게로 들어오니 아 안에서는 글쎄 완전 난리가 나있는 게 아닌가.

“야 너 뭐야,”

“다시 만나는 거야?”

“오오~ 이 새끼~ 술 처먹을 때마다 항상 민희만 찾더니?!”

“그러니까 말야. 지금에야 말하지만, 그거 존나 지겨웠는데.”

“그래 진짜 듣기 싫었어. 근데 졸라 처량해 보여서 뭐라 말도 못하고 큭큭큭.”

“애들이 너 왜 술 안 먹인 줄 알어? 취하면 또 걔 얘기 할까봐 듣기 싫어서 그런 거였다 이 쨔샤.”

뭐? 아놔 이 쫘식들! 난 또 술 약한 내 생각해주는 거라 여기고 졸라 고마워했었는데, 사실은 지네들이 편할라고 그랬던 거였어? 이런~!

“야, 한 놈씩 얘기해 한 놈씩! 정신 사나워 죽겠다.”

고오맙다 민희야.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에서 탈피해 드디어 밝고 가벼운 우리들의 얘기로 돌아왔어. 이것도 다 네 덕분이구나.

“어떻게 된 거야, 다시 만나는 거야?”

“그때 외국 나갔다 그러지 않았어?”

분위기가 좀 진정되자 녀석들의 질문공세에 차근차근 대답해 줄 수 있는 여유도 조금은 찾아지는 듯하다.

“응 아, 아직 외국에 있어. 두바이에. 다시 만나는 것까진··· 아니고, 글쎄··· 연락이 왔네. 얼마 전에··· 한국에 잠깐 들어왔다고.”

“그래서, 만났어?”

“응.”

“오오오~ 준호오오오~!”

제일 좋아하던 상국이다. 기실은 이놈들 모두 민희를 본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뭔 일 있을 때마다 내가 항시 옆구리에 낀 채로 다 같이 어울려 다닌 탓에 심지어 어떤 놈은 지가 나보다 더 그미와 친하다는 망발도 서슴지 않던 악마들이었다.

게다가 웬만해선 천박한 자본주의에 오염된 속물들이라는 시선을, 거친 이 나라의 경제사정과 여자라는 종족에게서 거두지 않던 정우마저도 그미만큼은 맘에 들었었는지 옆에서 상국이를 거든다.

“다시 한 번 잘해봐~. 내 너 그렇게 좋아했던 여자 민희말곤 못 본 것 같은데.”

“아이 씨, 내가 사귄 애들 몇 명이나 봤다고!”

“그런가? 암튼. ···응? 너 걔 말고 또 여자 만난 적 있냐?”

···

에효··· 말을 말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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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금요일 24.09.07 4 0 24쪽
49 금요일 24.08.30 6 0 22쪽
48 금요일 24.08.22 8 0 27쪽
47 금요일 24.08.16 7 0 20쪽
46 목요일 24.08.08 8 0 22쪽
45 목요일 24.08.03 7 0 18쪽
44 목요일 24.07.27 7 0 18쪽
43 목요일 24.07.18 8 0 20쪽
42 목요일 24.07.12 6 0 20쪽
41 목요일 24.07.05 7 0 22쪽
40 목요일 24.06.28 7 0 12쪽
39 목요일 24.06.20 9 0 22쪽
38 목요일 24.06.15 12 0 26쪽
37 수요일 24.06.13 10 0 24쪽
36 수요일 24.06.12 7 0 26쪽
35 수요일 24.06.11 6 0 23쪽
34 수요일 24.06.11 7 0 24쪽
33 수요일 24.06.09 6 0 13쪽
32 수요일 24.06.09 6 0 13쪽
31 수요일 24.06.07 9 0 15쪽
30 화요일 24.06.06 6 0 14쪽
29 화요일 24.06.05 10 0 14쪽
28 화요일 24.06.04 8 0 15쪽
27 화요일 24.06.03 6 0 14쪽
26 화요일 24.06.02 8 0 13쪽
25 화요일 24.06.01 5 0 18쪽
24 화요일 24.05.31 10 0 13쪽
23 화요일 24.05.30 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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