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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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ithrone
작품등록일 :
2024.05.08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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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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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0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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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DUMMY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점심까지 걸렀더니 지독한 허기들이 빈 위장 속에 자리 잡고 앉아서는 단체로 머리띠를 둘러매었다. 심지어 현기증마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잘하는 곳인지 못하는 곳인지 확인할 정신머리도 없이 가장 먼저 보이는 중화요리 집으로 총알같이 튀어 들어가 짜장면 곱빼기를 시켰고 나오는 기다림이 끝나는 대로 뱃속에 쉴 새 없이 밀어 넣었다. 숙취는 아까 이른 오후를 기점으로 모두 날아 간 듯하여 음식을 삼키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으나 그래도 혹시 토가 쏠릴지 몰라 다 먹고도 한참을 배 다듬질 해주었다.

역시 도심지인 만큼 조금 비싸다고 생각되는 값을 치르고 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다시 한 번 심신을 가다듬으니 그제사 우리 회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저곳만 잘 갈무리하여 지나치면 될 일이다.


나를 그토록 챙겨주시는 두령님께 얼마간 미안한 마음이 일었지만, 있었던 것만 그대로 적기에는 일일보고서의 빈칸이 너무 도드라져 보여 호도성 진실을 아주 약간 빌려와 그 하얀 부분만 적당히 가리고는 부장님께 짐짓 아무렇잖은 얼굴을 띄운 채로 가져다드렸다. 근데 어차피 보지도 않고 저 사람 윗선으로 올라가지도 않을 텐데 뭐···.

나머지 시간은 내일 방문할 장소와 업체를 찾아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적이며 보냈다. 그런데 오늘은 퇴근 시간이 왜 이리 더디 오는 게냐! 마음은 이미 콩밭을 향해 떠나간 지 오래이건만 속절없는 빈껍데기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니 아주 그냥 지루하기가 짝을 찾지 못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더디 간다 더디 간다 해도 결국은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딛고야 마는 크로노스의 위대한 발걸음. 그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초월자의 전지전능한 행보에 힘입어 마침내 퇴근의 순간에 도달하고야만 나는 힘겹게 이어지던 지겨운 자리지킴을 겨우 끝내고 드디어 민희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이렇게 집에 빨리 들어온 건 아마 역대급일 거다. 그 모냥새에 어머니께서도 놀라신다.

“웬일이래? 벌써 집엘 다 겨들어오고??”

“아 어머니, 약속 약속.”

“그래? 어쩐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나 했더니, 또 기어나갈려고 그랬구만?”

생각 같아선 민희한테 연락이 왔고 그래서 지금 만나러 가는 거라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괜히 얘기 꺼내봤자 마음만 심란하게 해드릴 것 같아 그미에 대한 내용만 쏙 빼놓고는 대충 얼버무렸다.

어머니께서도 이쁘고 야무진 민희를 몹시 마음에 들어 하셨었다. 그닥 번듯하지도 못한 집구석에 아직 제대로 이룩해 놓은 거 하나 없는 아들내미를,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저 사람하나 괜찮다고 옆에 딱 붙어서 챙겨주고 보듬어주니 어찌 아니 어여삐 보였겠을까. 그런 참한 아가씨를 당신 아들이 그만 만나자하고 돌아왔을 때, 또 그렇게 되기까지 당신이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내막을 알게 되었을 때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까워 하셨었다. 지금도 잊을 만하면 ‘민희는 어떻게 지낸대니?’하고 물어보시는 그 앞에서 차마 「민희를 만나러」간다는 말을 꺼낼 순 없었다.

“아 예,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요.”

“그럼 저녁은.”

“나가서 먹을 거 에요.”

“그래 알겠다.”

급한 마음으로 서두른 탓에 약속 시간인 8시 반까지는 많은 여유가 있었지만 몸과 마음은 그걸 느끼고자 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였다.

어제 못한 목욕과 오늘 아침에 생략했었던 면도를 동시에 해결하고 나온 나는 옷을 입기 전에 건조한 겨울을 지내며 보기 싫게 터 오른 건성 가죽을 숨기기 위해 좋은 향이 나는 로션을 전신에 치덕거렸다. 그리고는 참으로 간만에 옷장을 열어 그 안을 뒤적이는 행동까지 했다. 그 수고로움 덕분으로 난 예전에 민희가 선물해 주었던 연분홍의 드레스 셔츠와 바다색 니트를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꺼내보는 소중한 나의 재보들이었다. 이 녀석들을 볼 때마다 그미의 웃는 얼굴이 떠올라 가급적 입는 것도, 그 근처를 뒤적이는 것도 자재해 왔었는데··· 지금이 그 봉인을 풀 때 인가보다.

커다란 거울을 보며 그저께 아침보다 더욱 때깔난다는 느낌이 올 때까지 옷매무새를 가다듬다가 그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확신이 든 순간, 차 열쇠를 들고 찬 기운과 더운 기운 미묘하게 섞여있는 춘소春宵로 나와 집 앞 자동차용 마구간에 고이 모셔져 있는 94년식 갤로퍼의 등자에 발을 얹었다. 녀석이 푸릉거리며 심장에 열을 가하는 동안 민희에게 지금 출발한다는 문자를 보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주인을 등에 태우고 서서히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는 이 친구의 이름에는 Gallop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민희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전속력으로 달려갈 필요는 없었다. 우리의 집은 수틀리면 걸어 다녔을 정도로 지척에 있었던 까닭이다. 도원경의 향기 그윽했던 여름바다를 서해에 남겨두고 온 바로 그날 민희를 바래다주며 난 적이 놀랐었다. 그미의 보금자리가 이렇게나 가까운 곳에 있었을 줄이야! 훗날 좀 많이 뻔뻔스러워져 민희가 있건 없건 신경 쓰지 않고 맘대로 그미의 화원에 들락날락하게 되었을 때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렸을 적 친구들하고 가끔 갔었던 동네 유명 빵집이 바로 그미의 집이었었다는 거다. 물론 어린 시절 빵 사먹을 돈이 풍족히 있을 리 없어 단골까지 되지는 못했으나 암튼 그때 깍듯이 인사할 때마다 웃으며 반겨주시던 그 인상 좋던 아주머니가 바로 내 여자 친구의 어마마마였다니! 넉살 깔고 수다를 떨다가 알게 된 이 운명의 장난을 갖고 어머니께선 당신의 기억과 예비 사위의 어린 시절 모습을 중첩시키려 골똘히 생각을 모아보기도 하셨었더랬다. 아쉽게도 이 부분만큼은 내가 적잖이 도와드렸음에도 결국 떠올려내질 못하셨지만, 그래도 그 옛날 그런 식으로 추억이 얽혀있었다는 사실에 어머님과 난 민희가 질투를 일으킬 정도로 죽이 맞아 지냈었다. 내가 수중에 여유가 있어 빵을 자주 사먹었더라면 지금보다 빨리 민희를 만날 수 있었을 테고 더 일찍부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었을까 하는 마음에 못내 안타까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금이라도 이 사람을 내 앞에 서게 해 준 세렌디피티에 더욱 감사하고 기뻐하는 마음이 훨씬 광대무변했던 그때였다.

이러한 속에서 거의 하루도 빼먹지 않고 오다녔던 이 길,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된 건 둘 다 어른이 되고난 후였으나 이렇게 얽혀있던 인연의 실타래를 한두 개씩 찾아내며 또 웃으며 그렇게 같이 만지작거릴 때마다 그미가 나의 청홍사를 갖고 있는 천생연분이라 여겨왔던 그 철썩 같은 믿음이 곳곳에 은은한 수채화처럼 서려있는 이 길을 나는 지금 또다시 지나가고 있다.

민희가 떠나간 뒤로는 일부러 얼씬도 하지 않았던,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지나치게 될 적마다 구멍 뚫린 마음속으로 아릿한 바람 하나 불어와 몸 전체를 쓰라리게 만들던 이 길을··· 오늘은 웃으며 지나가고 있다.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왔다. 한 5분 정도?

그 살짝 내게 허락된 짧디 짧은 촌구寸晷의 순간에 난 옛 생각을 떠올리며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민희를 바래다 준 저녁마다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 둘이 나란히 앉아 사랑의 밀어를 늦게까지 속삭이던 등나무 정자도, 그러고 한참 있다 일어나 결국은 헤어져야하는 아픔을 마지막 포옹으로 달래던 아파트먼트 계단입구도. 시간은 지나가고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어 주위 만물에 아쉬움과 그리움 등 온갖 의미를 부여해보려 몸부림치지만 정작 그 넷 에움은 그런 것 자기와 무관하다며 덤덤히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즈이 달라진 모습 보고 싶거들랑 먼 훗날 다시 오라고 애써 보낸 시선을 등 떠밀어 보낸다. 저들은 우리처럼 변덕맞지 않다고.

그렇구나··· 변한 건 우리들뿐이구나···.

편시 사위에 둘러쳐져있는 추억을 더듬거리고 있는 새, 먼저와 남아있던 시간이 다 흘러가 버렸는지 어두운 아파트먼트 입구 안쪽에서 ‘띵-’하는 승강기 소리가 나더니 거의 동시에 불이 들어왔다.

안 그래도 뛰고 있던 심장이 더욱 크게 요동쳤다.

이윽고 또각 또각 하는 굽 높은 여성화의 울림이 복도 안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청명한 음곡에 나의 관자놀이도 꿀럭 꿀럭 거리며 같이 맞울어 대었다.

난 크게 한 번 침을 삼키고는 이내 넋 놓고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이 얼마나 오랫동안, 꿈속에서도 그리 애타게 기다려왔던 순간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리고··· 드디어 마침내 민희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3년 만이었다.

그 오랜 시간을 뒤로 하고 눈앞에 나타난 민희는, 그러나 세월의 흐름도 무색하게 할 정도로 여전히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오직 천일이라는 시간이 그미만을 비껴간 것 같았다. 오히려 시간의 거인이 가져다준 원숙미가 예전에 있었던 풋풋스러운 상큼함과 멋지게 어우러져 더욱더 찬연한 여성의 자태로 거듭난 듯했다. 20대의 싱그러운 청초함에 30대의 성숙한 매력이 더해진, 여자의 일생 중 가장 광휘 넘치는 시절을 누리고 있는 중이라는 걸 눈 먼이 조차도 알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그미는 아파트 입구계단을 내려오며 내가 세워놓은 차와 그 안에 타고 있는 나를 보았고, 나 또한 그런 민희를 마주 올려다보았다. 서로 활짝 웃고 있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러나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올라가있던 입꼬리 중 한쪽을 애써 내리며 살짝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한다.

하하. 저건 예전에 나한테 살짝 삐졌을 때 하던 얼굴인데···. 무려 나 때문에 3년을 화나 있었으니 저 정도면 감사한 거겠지. 오늘만큼은 저 화용花容에 미소가 함박 피어오르게끔 만들어주고 싶구나.

민희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차 문을 열고 능숙하게 조수석으로 올라앉았다. 이 자리는 원래 그미의 것이었다. 그미는 항상 이렇게 나의 옆자리에 앉아 많은 곳을 함께 다니며 진주알처럼 빛나는 추억들을 가이아의 품속에서 건져내어 하나의 목걸이에 같이 꿰어나갔었다. 때론 웃고 또 때론 눈물지으며 만들었던 그 미완의 수파首帕···. 그미가 그것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지 알 순 없으나 난 하나이면서 동시에 두 개로 나눠져 있는 그 목걸이를 항시도 내 몸에서 떼어내 본 적이 없다.

“민희야.”

난 감격에 젖어 그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 「민희」라는 두 글자를 다시 내입으로 세상에 그려볼 수 있게 되다니···. 그미를 잃고 아파해온 세월들을 일순간에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빠.”

“그래 민희야. 잘 지냈어?”

“치이~ 몰라. 그렇게 보내놓고는···. 나 잘 지냈어. 오빠한테는 나 잘 지내는 거 꼬옥 보여주고 싶었어···!”

“··· 다행이네. 민희가 잘 지냈다니 나도 마음이 놓이네···.”

“··· 오빠는··· 요?”

“나? 난··· 잘 못 지냈지···.”

“거봐~ 나 보내니까 그렇게 된 거지?”

“그래. 그렇더라. 민희가 없으니까 잘 지내지지가 않더라···.”

“··· 못 됐어···.”

“그래··· 미안.”

“··· 나빴어···.”

“···.”

민희의 질책을 들으니 당연히 내가 했던 행동들이 떠올라 말문이 막힌다. 하지만 속은 후련했다. 이렇게 얼굴 보고 마주앉아 그미에게 혼나며 못 다한 사과를 하고 싶다 늘 생각해 왔었는데 그 기회를 민희가 직접 만들어준 게 진실로 고마웠기 때문이다.

근데··· 그래도 뭐라 해야 하긴 해야 할 텐데···.

“아! 생일 축하해~!”

이게 있었지?!

다행이다. 매우 적절한 시기에 터져준 아주 적절한 대사였다.

“뭐에요 갑자기?!”

··· 아니었나보다.

“··· 미안해 민희야. 사실, 나도 널 보내고 마음이 편치가 않았어. 근데, 미안해. 내가··· 좀 사정이 있었어. 민희한텐 그때 말을 못했는데, 아니 할 수가 없었지··· 그때 내가···.”

“됐어요. 다 지난 일인 데 뭐. 처음엔 실망도 많이 하고 화도 많이 나서 나도 어쩔 줄 몰랐는데, 시간 지나니까 차차 화도 가라앉고···. 또 오빠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좀 해봤고···. 근데··· 모르겠어요···. 시간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했는데 자꾸 그때 일 떠오르고···. 그리고 이번엔 오빠 만나서 얘기 좀 하고 싶었어요. 내가 알던 오빠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갑자기 왜 그렇게 됐는지도 이해가 잘 안 갔고···.”

“···.”

“아 몰라 복잡해~! 암튼 나 오늘 생일이니까 오빠가 나 책임져요!”

“그래. 오늘 우리 민희 생일이니 내가 책임져야지···.”

“치~ 말로만?”

“아니지~ 일단 저녁 먼저 먹으러 가자.”

“어디로 갈 꺼에요?”

“장어 먹어야지. 민희 좋아하는.”

그미에게서 시선을 떼긴 싫었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탓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앞으로 돌리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민희가 들어온 뒤로 차 안에선 익숙했던 그미의 향기가 퍼지며 온 몸의 털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마치 전기가 이는 것처럼. 난 민희에게 다가가 그미 주위에 켜켜이 쌓여있는 향긋한 내음을 원 없이 들이키고 싶었으나 그래선 안 되었기에 애써 참으며 평정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 쪽으로 많은 힘을 보태었다. 옛날이었다면 만나자마자 품에 끌어안고는 마음껏 그미의 숨결에 취해 있었을 텐데···.

“잘 하는 데 있어요?”

“어, 어. 좀 알아봤어. 그래도 날이 날인데 우리 민희 맛있는 거 멕여줘야지.”

“멀어요?”

“아니. 가까워. 찾아보니까 다 나오더라구.”

사실대로 하면 진짜 맛있다고 소문난 장어집은 우리 동네에서 제법 멀리 나가야 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게 민희를 만난만큼 먼 거리를 왔다갔다는 걸로 그미와 같이 있는 시간을 허비하기는 싫었다. 때문에 난 이 주변에 있는,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집을 찾아 맛과 시간사이의 타협점을 찾아내었어야했다.

“어?”

그렇게 해서 골라놓은 목적지가 달리는 차창 앞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역시나 장어 좋아하는 아가씨 아니랄까봐 귀신같이 냄새를 맡는다.

“왜, 무슨 일 있어?”

“혹시 저 집 가는 거에요?”

“어. 그런데 왜? 저기 별로야?”

“아니에요. 저 집 괜찮아. 나도 가끔 가봤어.”

“아 그래? 다행이네. 민희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집이겠지.”

“저긴··· 오빠랑 그렇게 같이 가보고 싶었던 집인데···.”

“···.”

“이제야 가보네···.”


전라북도 남동부에서 전라남도 북동부에 걸쳐 흐르는 꽤 큰 강의 이름을 상호 앞머리에 내건 이 민물장어집은 우리 동네에서도 그닥 먼 곳에 있지 않아 가끔 앞을 지나다니기도 했는데 항상 사람들로 꽉 차있어 굳이 저렇게까지 해서 먹고들 싶나? 라는 약간의 비아냥을 나에게 사던 곳이었다. 그러던 이 몸이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될 줄이야.

다행히 오늘은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이 매우 한산해 그야말로 편한 자리에 차를 대놓는 것이 가능했다. 혹시나 사람이 많아 민희와 또 한참을 기다려야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안고 왔더니만, 생각해보니 내가 여기까지 나돌아 다녔던 일이 쉬는 날이나 주말 한정뿐이었다는 게 떠올라 괜한 기우로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었었다는 것을 시인할 수밖에 없겠다.

우리는 손님 몇 없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개중 가장 아늑해 뵈는 방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장어를 자주 접해 본 경험이 없는 난, 민희가 또 이집에 몇 번 와봤었다고 하니 전적으로 그미의 의향을 따르기로 했다. 긴 시간은 아녔지만 그래도 운전대를 잡았던 손 정도는 씻어줘야 하기에 잠시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그 사이 민희가 수저도 놓고 물도 따라놔 주었다. 일견 별것 아닌 행동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어찌나 고맙게 느껴지던지 가슴 한 켠이 뭉클해져 올 정도다.

음식을 시키고 곱단히 있는 민희 앞에 나 또한 정갈한 태도로 몸을 마주하며, 그래도 부족함이 없도록 다시 한 번 자세를 바로잡아 앉았다. 그리고는 찬찬히 그미의 화안을 뜯어보았다.

“모해요~?!”

“응? 아 아니···.”

“치!”

“더 이뻐졌네.”

“응. 나 더 이뻐졌어요. 오빠랑 만날 때 보다 더!”

“그러니까.”

“후회되죠?”

“···.”

난 입을 여는 대신 빙긋한 웃음을 지어 보냈다.

“웃지 마요!”

“왜~.”

“그렇게 웃지 마···.”

그러나 한 번 올라온 미소가 쉽사리 지워질 리 없다.

“만나는 사람은?”

“···.”

“······.”

“··· 아직···.”

“왜~ 민희정도면 매달리는 사람 많을 텐데.”

“응, 맞아요. 디~게 많아.”

“근데 왜 안 만나.”

“··· 몇 명 만나보긴 했는데···.”

“근데?”

“다들 그냥 몇 번 보고 말았어요.”

“··· 그럼 내가··· 민희를 보내준 의미가 없는데···.”

“치··· 몰라요. 오빠 때문에 나 눈만 높아진 것 같아.”

“?? 내가 뭘. 나 자신감 하나 빼고 아무 것도 없었는데.”

“···그니까··· 아무 것도 없었는데···.”

“···.”

“오빠 진짜 아무 것도 없었는데···.”

내, 정말 내세울 게 없어 반박치도 못할 사실이었으나 그래도 남의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근데··· 오빠 보다 좋은 사람을 못 만나겠어···.”

얼씨구? 이말 들으니 기분이 더 묘하네??

“···.”

능갈치기가 하늘을 찌르고 다니는 천하의 나였지만 이 대목에선 뭐라 참 대꾸해 줄 말이 없어 눈만 껌뻑이었다.

잠시의 틈을 타 들어온 침묵이 그래도 난 아무렇지 않다는 양 익히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잔에 있던 물을 마시며 민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물어진 그미의 연지벌레 빛 입술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았다.

“······.”

주제를 잠깐 환기換氣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무원 생활은 힘들지 않아?”

“···힘들죠. 왜 안 힘들겠어.”

다시 그미의 말문이 트인다. 다행이 미소도 조금 되찾은 듯하여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래. 그거 많이 힘들다던데···. 그래도 민희가 꼭 하고 싶어 했으니까 얼마나 멋지고 좋아. 세계 여기저기 마음껏 다닐 수 있고.”

“그건 그래요. 처음에는 진짜 신기하고 볼거리도 많아 힘든 줄 몰랐는데, 근데 그것도 몇 년 지나고 나니까 좀 지치네요.”

“하하. 이젠 더 가볼 곳이 없어서 그런가보지.”

“그런가?”

“암튼 좋네.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그러면서 여행도 하고···. 딱 어울려. 민희하고.”

“··· 내 생각은 안 났어요?”

“안 났을 리가···. 그렇게 나간 이후로 한시도 잊어 본적이 없는데···.”

“치··· 그걸 어떻게 믿어.”

“사실··· 잊으려고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닌데, 그게 잘 안 되더라구. 그래서 포기했어. 어디를 가든 민희네 항공사 광고가 보이는데 그걸 볼 때마다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데. 축구경기를 보다가도 전광판에 그 이름이 보이면 또 생각나고···. 심지어는 시상식 때 에미레이츠 승무원들이 나와서 메달하고 꽃다발 수여해주는 거 보고는 그 뒤로 딴 건 몰라도 시상식은 꼭 챙겨봐. 혹시나 민희가 나오진 않을까 하고.”

“아 그거···.”

“응. 민희는 시상식에 나가 본 적 없어?”

“아직 없어요. 그건 키도 좀 커야 되구.”

“?? 민희 정도면 큰 거 아닌가?”

“아이~ 이거 보다 더.”

“에에? 그럼 앞으로 챙겨 볼 필요 없겠네!”

“푸훗~.”

줄곧 같이 있었던 이후로 가장 크게 웃은 것 같다. 그미의 미소를 밝게 빛내주던 보조개가 유난히 더 아름다워 보였다.

“아 참! 그러면 언제 나가는 거야?”

“내일··· 밤 뱅기로.”

“아··· 그럼··· 오늘이 휴가 마지막···.”

“네.”

“그럼 이제 볼 시간 없겠네.”

“응···.”

“··· 내일 한 번 더 보려나 했더니···.”

“···.”

또다시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토록···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힘들게 분위기를 전환해 놨는데··· 오래 가질 못하는구나.

“근데 이제 힘들어서··· 그만둘까 생각중이에요.”

“응? 그만둔다고? 왜?”

“아니, 일단은 생각만.”

“그렇게 힘들어?”

“그냥··· 뭐랄까··· 친구들도 이제 거의 결혼해서 가정 꾸리고 살고 있는데···. 벌써 애 키우고 있는 애들도 있고···.”

“하긴···, 이제···.”

이다음으로 이어질 그미의 말은 탄지지간 통제할 수 없는 움찔거림이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가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요 요즘. 한국이 많이 그립기도 하고. 그리고··· 이젠 결혼해서 나 닮은 예쁜 아가 낳아서 살고 싶어요.”

“?!!”

등에서 수유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머릿속까지 띵~ 해져오나 싶더니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양 옆에 붙어있는 자노리들조차 뜨겁게 맥 뛰기 시작했다.

한동안이라고 느껴졌던 잠시,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그럼···.”

“??”

“··· 나하고 하면 되겠네···.”

힘겹게, 그리고 용기 내어 뱉은 그 말.

그러나 민희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러고도 한참을 뜸 들인 뒤에야 천천히 입술을 우물이었다.

“···, ···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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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수요일 24.06.09 6 0 13쪽
31 수요일 24.06.07 9 0 15쪽
30 화요일 24.06.06 6 0 14쪽
29 화요일 24.06.05 10 0 14쪽
28 화요일 24.06.04 8 0 15쪽
27 화요일 24.06.03 6 0 14쪽
26 화요일 24.06.02 8 0 13쪽
25 화요일 24.06.01 5 0 18쪽
24 화요일 24.05.31 11 0 13쪽
23 화요일 24.05.30 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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