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분위기
얼마 뒤, 분위기가 좀 진정되고, 모두가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들고 같이 휴게실에 있던 테이블에 빙 둘러 앉았다.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거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우리 자기를 못 말리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처음부터 난 갑자기 병원을 옮기는 게 이상했다고.”
진국이 제일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말에 아까부터 초조하게 시계만 보고 있던 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어. 나도 다영이 처제에게 이유를 전해 듣긴 했는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진짜 평소 시은 엄마답지 않았어.”
그는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는 아내의 소식을 그녀의 동생, 다영에게서 듣고 있었는데 그 마저도 병원을 옮긴다는 소식이후로는 끊겨서 걱정하던 차였다.
그 다음 그가 받은 소식은 여영에게서 온 사고소식이었다.
계속되는 의문제기에 사정을 알고 있던 범수와 치영 그리고 그 동생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큰 사위인 선두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속 시원하게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이쪽 형제들 사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은 몰라도 이렇게 사안이 중요한데 이렇게까지 숨기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 말이야.”
“그래, 형님 말이 맞아. 우리만 모르는 뭔가가 있지?”
진국이 얼른 말을 받았다.
“흐음, 아무리 눈치 없는 나라도 이번 일은 확실히 이상해.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야 협조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니겠어. 안 그래?”
답답하다 못해 속이 터질 지경이 된 효자도 그들을 재촉하며 다른 두 사람의 말에 힘을 보탰다.
그때 여영은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고,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도움을 구하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 치영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나서며 말했다.
“저, 그래요. 형부들도 가족이니까 아실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희 얘기를 제발 열린 마음으로 판단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중간 중간 범수와 그녀의 형제들이 부연 설명해가며 끝까지 계속 됐다.
한동안 이어진 얘기 중간에 무슨 질문이라도 나올 법 하건만, 어느 순간부터 듣고 있던 세 사람은 침묵을 이어갈 뿐이었다.
귀영은 그들의 표정이 한없이 심각해지기만 하자 몹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치영의 얘기가 끝이 났다.
그리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제일 먼저 침묵을 깬 건 역시 선두였다.
“그게···, 그러니까, 흐으음, 세영 처제가 지금 저세상에 있고 나머지 저기, 누워있는, 그, 그, 자매들이 처제를 찾으러 갔단 말이지···?”
그는 평소 자신답지 않게 심하게 말을 더듬고 있었다.
“음, 그러면 유영 처제는 지금 인도에 있잖아! 근데, 어떻게 같이 갔다는 거야, 엉? 뭐, 자해라도 해서, 음, 뭐, 정신이라도 잃었대?”
효자가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는 명상으로 따라간 거예요.”
이에 여영이 항변하듯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게 다, 그, 처제 아이디어라는 거네?”
진국이 묘하게 비꼬듯 질문했다.
“아니이! 그, 그 이게, 그러니까, 뭔, 잠깐마안···!”
선두가 계속 버벅거리는 것을 보고 효자가 얼른 말을 받았다.
“미쳤어? 다들, 지금?”
“아하하! 그러게요.”
억지웃음을 보이고는 금방 굳은 표정이 된 진국이 끝맺음을 했다.
그래도 반응이 이렇게까지 부정적 일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치영과 형제들은 자신들의 전한 소식 때문에 다른 형제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전전긍긍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범수가 지푸라기라도 집는 심정으로 치영에게 말했다.
그의 말투는 몹시 다급했다.
“처제! 그 영상 있지? 그거 보여줘···!”
그가 말하는 그 영상은 치영이 찍어뒀던 유영이 세영의 몸에 들어가 다른 형제들과 얘기했던 그걸 말하는 거였다.
치영은 과연 이걸 보여줘도 될지 내심 걱정이 됐다.
“그래, 언니 그걸 보면 더 이해가 되실 거야.”
여영이 성마른 말투로 언니를 재촉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은 바짝 타들어가 있었다.
“응, 누나, 그러자.”
귀영도 동의하며 말했다.
그에 쭈뼛거리던 치영이 마지못해 자신의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세 사위들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그 영상을 다 본 그들은 한동안 또 말이 없었다.
그저 한숨만 계속 쉬던 선두가 입을 열었다.
“휴우우! 저, 누가 담배 있을까?”
그는 기껏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져 물었다.
“네, 어, 여깃어요. 뭐, 같이 가시죠, 형님!”
사영의 남편, 효자가 선두를 재촉하며 말했다.
그의 몸은 그때 거의 밖으로 튕겨져 나갈 기세였다.
“어, 어, 저도 같이 가요, 형님드을!”
진국이 그들을 놓칠세라 재빨리 따라나섰다.
그렇게 세 사람이 서둘러 밖으로 나가고 힘이 쭉 빠져버린 범수가 세 남매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 지금 망한 거···, 맞지?”
그 말에 셋은 울상을 지으며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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