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처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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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푸우우우른
작품등록일 :
2024.06.10 18:50
최근연재일 :
2024.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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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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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DUMMY

-자 떠나기 전 너에게 미리 알려줘야 할 사항이 있다.

이미 모든 짐을 정리한 칼은 비몽사몽에 아직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를 앉혀 놓고 말하고 있다. 칼은 자신이 사용했던 침낭과 어제저녁에 사용했던 요리 기구를 정리하고 자고 있던 아이를 매트에서 돌바닥으로 옮겨 놓은 뒤 그 이부자리마저 정리한 상태다. 덕분에 아이는 이불 속에서 농성할 겨를 없이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연신내 비벼댈 뿐이었다.

-우선,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첫 번째!

칼이 힘을 주어 강조하며 말했다. 이는 아직 꿈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를 깨우치기 위함이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는 부르르 떨며 자세를 고쳐 앉고 입맛을 다시며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거리는 약 300km다. 그러니 하루에 10km씩 30일 동안 이동할 것이다. 물론 이는 너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겠지. 나 혼자서라면 목적지까지 하루면 도착할 거리지만 너는 아니니까.

그의 마지막 말이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아이는 거만한 표정의 짓고 팔짱을 끼었다. 그까짓 것 별거 아니라는 의미였다. 칼은 적당히 그러려니 하며 다음으로 이어갔다.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목적지로 가는 도중 식량이 될 만한 재료들을 직접 찾아야 한다. 당연히 나 혼자였다면 그럴 필요 없겠지만 혼자가 아니니까.

아이의 얼굴은 이미 침울해져 있다. 아이는 칼의 말에서 식량을 직접 구해야 한다는 부분보다 식량이 얼마 없다는 부분에 초점을 두었다. 식량은 아이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아이는 그저께 먹은 고기와 어제저녁에 먹은 물고기를 생각하며 희망을 품었다. 양이 적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아, 당분간 육류 및 생선은 없다.

아이는 절망했다. 아이는 울먹이며 칼의 멱살을 부여잡고 흔들어 댄다.

칼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부터 가는 길목엔 계곡이나 호수는 없다. 물론 여기서 잡은 다음 염장을 하면 되지만 지금 소금이나 향신료가 거의 떨어진 상황이다.

아이는 바닥을 치며 울기 시작한다. 아이는 생존자 귀환 시설 앞에서 있었을 때보다 더 서러움을 느꼈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사냥을 할 수 있을 거다. 최근엔 사슴이나 토끼들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아이는 그새 자리에서 일어나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서 설레발을 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아이는 앞서가다 다시 돌아와 칼을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아서라. 그리고 아직 한 가지 남았다.

칼은 들뜬 아이의 뒷덜미를 잡고 다시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항상 내 곁에 붙어 있어라. 정말 급할 경우 내 다리 한쪽을 부여잡고 매달려. 이게 마지막 사항이다.

아이는 칼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칼도 아이가 왜 그렇게 쳐다보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칼은 굳이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미 칼이 수십 번 넘게 드나든 곳이고 칼이 거의 집 앞마당처럼 관리를 했기 때문에 자신이 고려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출발하지.

아이의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칼에게 실실 웃는다. 칼은 양손에 얼굴을 묻으며 열심히 차곡차곡 정리한 짐을 풀기 시작한다. 칼은 요리 기구를 가방 제일 안쪽에 넣어두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떠다니는 로봇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처럼 공중에서 위아래로 격한 파동을 그리며 움직였다. 칼은 로봇이 왜 저러나 싶다.

목적지로 가는 길에는 완만한 고개로 이루어진 산길이었다. 다행히 아이가 오르기엔 무리가 없었지만, 거친 흙길과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신발은 아이에게 무리를 준다. 그것을 알고 있는 칼은 여태껏 일절 가져 본 적 없는 휴식을 취했다.

이러한 여유롭고 느슨한 행군 속에서 칼이 걱정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지금 아이의 배 안에서 악의 진혼곡을 부르는 무언가를 잠재우는 것이다. 간혹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서 주었으나 오히려 그게 더 악을 키웠다. 열매를 먹을수록 그 고동은 더욱 커졌다. 이제는 무서울 지경이다.

-악!

아이가 뒤쪽에서 칼의 다리를 잡았다.

앞에서 울렁거리며 움직이는 로봇이 칼을 쳐다본다.

칼은 놀라지 않은 척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러나?

아이가 아닌 AI가 반응한다. AI 딴지를 건다.

-방금 놀라지 않았습니까?

-아니다.

-풋.

칼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스럽게 로봇을 쳐다보았다. 로봇이 비웃다니 설마 그럴 리가?

-푸, 풋사과가 저기 있습니다.

칼은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로봇을 쳐다보았다. 로봇은 사과의 학명부터 특징까지 문어체로 내뱉기 시작했다. 칼이 그 눈빛을 거둔 건 마지막으로 사과를 먹은 인간이 누구인지 말할 때였다.

-됐고, 우리가 얼마큼 걸었지?

-오늘 총 9.64km까지 걸었습니다.

-그렇군, 잠시 쉬어가지.

칼은 짐을 풀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AI가 작게 속삭였다.

-독한 놈, 저런 꼬맹이를 데리고 결국 10km를 걸은 거야?

칼은 그 목소리의 주인이 AI라는 것을 모른 채 칼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에 누군가가 있는지 살폈다.

그때 아이가 칼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칼이 아이를 내려다보았을 때 지친 기색이 보인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지. AI 근처 쉼터로 쓸만한 곳이 있는지 알려줘.

-네 아무렴요~


칼은 우선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모닥불을 피웠다. 숲 안에 있으니 금방 어두워지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제 저녁을 준비하려는 찰나 아이가 배낭을 뒤지고 있었다. 말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물어볼 수 없었던 칼은 요리 기구를 잠시 옆에 내려놓고 가방의 물건을 꺼내 아이에게 검사받는 것처럼 일일이 보여주었다.

아이의 선택은 매트와 이불이었다. 칼은 잠을 자려는 아이의 의사를 깨닫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저녁은?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칼은 매트를 펴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아주었다. 아이는 미끄러지듯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밤은 깊어져 모닥불이 더 짙어지게 되었다. 칼은 아무런 건더기가 없는 수프에 후추와 소금을 뿌려 아이에게 들고 갔다.

아이는 이불로 몸을 꽁꽁 에워싸고 매트에 파묻혀 있다. 칼은 아이에게 저녁을 먹으라며 흔들어 깨웠지만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다. 그제야 칼은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깨지 못하는 악몽을 꾸고 있는 듯 인상이 찌푸려져 있었다.

아이의 이마는 뜨거웠다. 이마를 통해 손으로 전달되는 열기에 칼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았다. 방사능 처리반에게 있어 약은 필요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보급으로도 나오지 않는다. 즉 아이를 치료할 약품이 칼에게 전혀 없다는 것이다.

-AI, 근처 해열에 도움이 되는 약초는 없나?

-300m 이내 약초 확인. 안내할까요.

-아니, 형태와 장소만 알려줘 내가 직접 가지.

그동안 아이의 상태를 모니터링해서 무전으로 알려줘. 칼은 상의 가슴팍에 달린 주머니에서 귀에 거치가 가능한 작은 무전기를 착용한다.

-네 알겠습니다.

AI로봇은 홀로그램을 띄워 약초의 생김새와 이름, 특징 등 칼에게 알려주었다.

-11시 방향 237m에 존재합니다.

-알겠다.

칼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아직 숲속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아 시야 확보에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 칼은 쉽게 약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줄기는 땅으로부터 곧게 자라있었고 짙은 녹색의 줄기와 잎에는 잔털들이 잔뜩 돋아나 있다. 연한 보라색의 가시 같은 꽃잎들이 노란 원을 중심으로 오밀조밀하게 피어있었다. 로봇이 전해준 정보에 따르면 이 꽃의 줄기에서 나오는 흰 진액을 달여 마시면 된다고 한다.

칼은 줄기를 잡고 가볍게 뜯어내 아이에게로 향했다.

-이런!

바보 같은 실수다. 그 어린 것이 그 빗속을 헤치며 왔던 순간부터 아이의 건강을 먼저 챙겨야 했다.

그런 아이를 데리고 고된 행군을 시키다니 이건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매뉴얼, 예전 매뉴얼대로라면 지금 아이는 지하 도시에서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이런 불상사들은 매뉴얼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칼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왜 하필 매뉴얼이 바뀐 거야.

칼이 바뀐 매뉴얼에 대해 불만을 품는 것도 잠시 저기 모닥불이 보인다.

오로지 머릿속은 줄기에서 나온 흰 즙을 물에 달이는 방법이 채워졌다. 가서 얼른 배낭에 있는 물 주전자를 꺼내 불 위에 올린다. 줄기에서 나온 흰 즙을 넣고 끓인 후 아이에게 먹인다. 그러면 열이 내려갈 것이다. 그럼,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럴 일이 없었다.

-AI, AI 무슨 일이 있었나?

AI로봇이 흙 속에 처박혀 있다. 제 딴에는 발버둥을 치며 빠져나오려 하지만 찰기가 있는 흙에 제대로 박혀서 나올 수 없다. 저건 분명 누군가가 파묻어 놓은 것이다.

-일이 생기면 무전을 하라 하지 않았나?

칼은 흙 속에 박힌 로봇을 거칠게 꺼내며 말했다.

-방해 전파가 있었습니다.

-방해 전파?

-사람입니다. 사람이에요. 분명 그건 사람이었습니다.

아이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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