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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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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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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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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이란

DUMMY

성훈이 형의 얼굴을 보자마자 얼마 전 함 원장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넌 네 바둑이나 신경 쓸 일이지. 이 대회 기권까지 한 녀석이 여긴 왜 왔냐?”


그건 묻는 당사자 역시 사정이 비슷할 것 같은데 이런 게 세상에 쓸데없는 질문이다.


“형이 걱정 안 해줘도 될 만한 성적이라서 말이지. 형이야 말로 대국 스케쥴이 한가한 가봐. 요즘 많이 져서 그런 건가?”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 내가 2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가장 큰 공신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지만 나에게 고통을 주려한 음흉한 인간이다.


물론 그 일이 선의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맞는 놈에건 아픔이 우선이지 그 주먹이 어떤 마음에서 날린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생각 없이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도 있다. 한동안 못 만나다 봐서 반갑긴 한데 막상 좋은 말이 잘 안 나온다.


“그래도 밥 먹을 만큼은 이기고 있어. 다른 건 떨어져도 스마일 배가 있잖아. 그래도 형 전적은 꼬박꼬박 찾아보나봐. 기특하네.”


그는 지금 8강에 올라있다. 국내 기전도 아니고 세계 대회 8강이라니··· 전생처럼 결승까지 못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성적만으로도 아주 훌륭하다.


“특별히 찾아보진 않지만 스마일 배 예선 통과가 유력시 된다고 리그전 하러 갔더니 말들이 나오더군.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한 거야.”


올 해 세 번째 리그전을 끝낸 현재 난 아직도 2조에 있다. 연이어 1조 승급을 해내진 못했지만 강급 당하지 않고 잘 버티는 중이다. 현 상태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야! 고맙다고 안 하냐. 네가 올 리그전에서 상승세인 게 다 이 형의 헌신적인 지도 대국 덕분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


본인이야 말로 내 소식을 어디서 듣고 있는 것인지···


여기는 일반인 입단대회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기원이다. 성훈이 형이나 나나 다 이 근처가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다. 자주 오가는 곳이기도 하고 마침 오늘 입단자가 결정되는 날인데 재국이 형이 그 후보군 중의 하나라 겸사겸사 들렀다.


물론 참가자들의 지인들이 모이는 일종의 대기실 역할을 하는 이 공간에서 성훈이 형과 마주칠지는 전혀 몰랐지만. 같은 건물을 이용하긴 하지만 연구생과 프로기사의 신분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조선시대에 왕과 내시도 같은 건물을 쓰긴 했잖아, 그 차이 정도 되겠지. 왕이 될 수도 있는 후보군이니 왕자 비슷하지 않냐고?


왕자는 왕이 못 되어도 자식 대접을 받지만 연구생은 프로가 못되면 일반인이 된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고성훈 프로는 글쎄···


“헌신적이었다는 건 동의해. 일용할 양식까지 베풀어 주셔서 한동안 주변에 인심도 좀 베풀고 좋은 것 먹으면서 잘 지냈어. 너무 감사한 일이지.”


“어휴! 말을 말자. 너 딱 기다려. 시즌 끝나고 겨울에 한번 더 해보자. 이번에 계급장 다 떼고 호선으로 시원하게 붙어보는 거야.”


석 달도 더 지난 일인데 아직도 몸이 잔뜩 달아 있다.


“글쎄 굳이 겨울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겨울 전에···”


“잠깐만! 오전 대국 결과 나왔나 봐.”


. 대회 관계자로 보이는 이가 나와서 가지고 온 종이를 벽에 붙인다. 정말 21세기에 들어서고도 몇 년이 더 지났는데 대국 결과를 종이에 쓰고 벽에 붙여 알리는 이 구태의연한 방식이라니 정말 가슴이 웅장해진다.


‘조선 시대 방을 붙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근본적으로··· 하아! 관두자. 관둬.’


이번 대회에 난 기권했지만 재국이 형은 출전했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최종국이 두어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대감을 가질만한 내용을 만들어냈다.


‘꽤 긴 시간 1조에 있었으면서도 번번이 한 끝이 모자라서 물러서곤 했는데 이번엔 제발 좀···’


기대대로 그는 많이 이기고 적게 졌다. 어제까지 7승 2패였다. 이제 두 판이 남았는데 현재 공동 3위다, 오늘 오전 대국 상대가 2위였기 때문에 지금 이 결과가 아주 중요하다..


사람들이 붙은 종이 앞으로 바글바글 모여들었다. 그곳을 파고들고 싶지는 않다. 슬쩍 성훈이 형을 쳐다봤더니 그 역시 나와 생각이 그다지 다르지 않은 듯 뒷전에서 움직일 기미가 없다.


“재영이 너 나 입단할 땐 코빼기도 안 보이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엉? 이거··· 작년에 안 와줘서 섭섭했다란 소린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다. 그런 건 고려의 대상에는 없었다.


“그거야 작년과 올해 사정이 다르잖아.”


“작년 이맘 때 너 리그전 성적이 안 좋았었나?”


썩 좋지는 않았었겠지만 지금 그건 기억조차 안 난다. 과거는 흘러갔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형은 작년에 초반부터 압도적이었잖아. 막판에 연패를 하면서 조금 사연이 생기긴 했지만 큰 위기 상황 없이 입단을 한 셈인데 보긴 뭘 보겠어.”


역시 난 위기에 강하다. 신경 쓰지 않았다는 무성의함을 압도적 승리라는 포장지로 티 나지 않게 아주 잘 감쌌다.


“음. 재국이는 그렇지 않아서 그냥 보기가 좀 안타까워 보러 왔다. 이 말인 거지?”


“그렇죠. 형 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르잖아요. 형도 그것 때문에 나온 거 아니야?”


“흠. 나야 뭐··· 오가는 길에 그냥··· 재국이 이 자식은 좀 똑바로 두지. 초반에 두 판이나 져 가지고···”


말하는 게 아직 애다. 그는 아직 만 18세다. 감정 표현이 서툴기는 하지만 꽤 귀여운 면이 있다.


이제 게시물 앞에서 사람들이 좀 빠졌다. 어쩌면 참가자들 보다 기다림을 가지는 사람들이 더 조바심을 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패를 쪼아볼 시간이다.


“재영아. 니가 빨리 좀 가서 보고 와.”


“엉? 쫄았어? 당사자도 아닌 형이 왜 그래?”


무엇이라고 당장 반박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성훈이 형은 의외의 행동을 했다. 말없이 손짓으로만 날 재촉한다.


‘나 참! 어울리지 않게 뭐 하는 거야? 이렇게 작은 간으로 어떻게 입단을 한 거지?’


조금 애처로워 보이는 모습에 마음이 약해졌다.


“이겼네요.”


“뭐? 진짜지? 짜식 막판에 숨이 붙었네. 이 자식 이럴 줄 알았어.”


무엇인가 행동과 잘 맞는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굳이 따지고 싶지 않다. 이 동네는 이기는 것이 진리다. 이기면 대개의 일이 순조롭다.


“마지막 대국을 이기면 입··· 음. 잘 되겠지.”


아직 입단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기가 왠지 꺼림칙하다.


그 불길함 때문이었을까 재국이 형은 오후의 입단 결정국에서 져 버렸다. 반집패란다.


‘결국 이렇게 되나?’


진재국이란 프로기사의 이름은 전생의 기억에 없었다. 내가 모든 기사를 다 알지는 못했고 노력에 의해 변수가 만들어지면 혹시 전생과 달라지는 결말이 나오지 않을까란 한 가닥 기대를 품었는데 운명 같은 게 있긴 있는 모양이다.


“야 이 미친놈. 다 와 놓고선 거기서 쳐 자빠지면··· 어휴!”


성훈이 형은 도저히 못 참겠는지 누구에게인지 모를 막말을 퍼부어 댔다.


“기보를 본 것도 아니고 어떻게 진 건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아직 안 끝났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계속 기다리자고?”


마냥 대기실에서 무턱대고 기다리기가 어려워 바둑이라도 한판 두면서 시간을 보내려 일반 대국실로 자리를 옮겼지만 집중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성훈이 형의 상태도 비슷해 몇 수 놓아보다가 일찌감치 돌을 거둬버렸다.


마음도 갑갑하고 엄청나게 지루하기도 하다. 화는 나는데 어디다 어떻게 풀어야 할지 알 수조차 없는 묘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끝나진 않았다.


그냥 한 판 이겨냈으면 간단했을 일을 마지막 판을 지면서 2위 자리를 두고 삼자동률이 나왔다. 정말 드문 경우다. 세 명이 공교롭게도 서로 승패가 물고 물려 동률재대국을 해야 할 상황이 만들어졌다.


대회 규정은 일정을 미루지 않는다. 입단자는 당일 결정하는 걸로 되어 있다. 대국은 잠시의 휴식을 가진 뒤 바로 이어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두 판을 더 둬야 한다고? 사람을 잡으려고 하네. 하루에 네 판을 어떻게 둬. 그래 가지고 무슨 바둑이 돼?”


성훈이 형과 같은 심정이지만 덩달아 화를 내고 싶진 않았다. 협회의 머리 굳은 아저씨들은 먼 훗날까지 변하지 않는다. 그걸 뻔히 아는데 열 내어 봐야 개선될 일도 아니고 나만 손해다.


“어차피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이잖아요. 이겨내야죠. 3패나 했는데 아직 목숨 붙어 있는 걸 보면 운이 좋은 걸 수도 있잖아. 잘 할 거야.”


말은 긍정적으로 했지만 속마음은 정반대다. 입단 결정국에서 반집패를 당하면서 끝내 입단하지 못한 비운의 아마추어 이야기는 흔한 클리셰다. 어쩌면 오늘이 그 통속성을 목격하는 날이 될 수도 있다.


‘기억에 없는 이름, 비극을 향한 전개 뭐하나 희망적인 게 없네. 그렇다고 나까지 부정적으로 말할 순 없잖아.’


굳이 인간의 의지가 어떠하다는 등 거창한 말을 하고 싶진 않지만 그런 기대가 전혀 없지는 않다.


이젠 진짜 마지막이다. 단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 나머지 두 명은 나락행이다.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정신력 소모는 집중력 감퇴로 이어진다. 이제부터의 승부에서 실력은 논외다. 독한 놈이 이긴다.


‘아! 재국이 형의 독기는 상상이 잘 안 되는데···’


이래도 안 되고 저것도 좋지 않다. 정말 생각이라도 긍정적으로 하고 싶은데 온통 부딪치는 것 뿐이다.


보통은 대국이 끝나는 대로 대국 결과를 게시하는데 그런데 지금은 특수 상황이라 그런지 관계자들이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탓인지 게시가 없다. 알 수 없는 상황에 조바심은 더해가고 기다림은 더더욱 길게 느껴졌다.


“형 관계자 누구 아는 사람 없어요?”


“있긴 있는데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나중에 혹시라도 구설수가 나오면 어쩌냐. 떨어지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혹시 입단을 했는데···”


정말 별 거지 같은 걱정을 다한다. 그래도 무조건 질 거라고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아 위로가 된다. 이 와중에 그나마 처음으로 들은 긍정적인 말이다.


오후가 늘어져 해가 지고 밤이 깊었다. 어떤 기다림이라도 끝은 있다. 이윽고 초췌한 모습의 대국자들이 쓰러질 듯 대국장에서 나왔다. 먼 발치지만 상황이 한눈에 들어오기엔 충분히 가깝다.


재국이 형의 모습이 말이 아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런··· 결국··· 미래는 바뀌지 않는 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명이 그를 맞아 들였다. 아무도 없었으면 직접 얼굴을 맞대어야 했는데 그를 향해 도저히 무슨 말이고 할 자신이 없었다. 정말 다행스럽다.


‘부모님인가? 아니면 다니는 도장 사범님?’


누가 되었든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어휴! 병신 새끼 그걸···”


성훈이 형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돌아서려는데 왠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설마···’


“우아앙. 엄마 이겼어. 이겼다구. 흑흑”


“재국아 수고했다. 수고했어. 으흑흑”


마지막에 승리를 움켜진 자만 울다니 정말 아이러니 하다.


‘패자는 눈물 흘릴 자격도 없다는 거야?’


두 명의 패자는 조용히 현장을 떠났다.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묵묵히 돌아서는 등과 승자의 뚝뚝 떨어지는 굵은 눈물을 보면서 만약 저 눈물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액체로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울지도 모르겠다는 싱거운 생각이 들었다.


‘좋은 밤이네. 모두 수고 많았어요. 재국이 형. 잘했어.’


왠지 나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성훈이 형 역시 아무 말 없이 눈의 깜박임이 잦아졌다.


‘하아! 나도 입단해야 하는데···’


프로의 자격을 갖추고 이런 이들과 어서 빨리 반상에서 마주하고 싶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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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가오가 정신을 지배할 때 24.08.13 143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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