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하면 군생활 끝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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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비
그림/삽화
아쿠비
작품등록일 :
2024.07.15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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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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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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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화. 정치쇼(2)

DUMMY

김연진은 우리 방에서 내가 유일하게 대화를 안 해본 인물이었다.



"저기. 뭐 바르고 계세요?"


"아? 그냥 스킨. 근데 갑자기 왠 존댓말이야? 나도 20살이야. 말 놔도 돼."


"아. 그래? 난 몰랐지. 헤헤. 우리 서로 대화할 일이 없었잖아."



김연진은 국내 3대 아이돌 소속사 중 하나인 비투엔터테이먼트의 연습생이었다.

하지만 연습생 활동 7년동안 데뷔를 하지 못했다.


김연진이 실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냥.. 운이 없었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김연진은 현역 아이돌들보다 몇 배는 뛰어난 실력과 비주얼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연진 또한 유력한 센터 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


다만 김연진은 센터 욕심이 별로 없어 보였다.


뭐랄까.. 그냥 지쳐 보였다.

춤과 노래를 할 때는 누구보다 밝게 빛나지만, 노래가 끝나면 스위치가 탁 하고 꺼져버린 사람 같았다.


그 때문에 이세영과는 다른 느낌으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랬지. 근데 나한테 무슨 할 말 있니?"


"아하하.. 그냥 로션 좀 빌려 쓸 수 있을까? 내가 깜빡하고 로션을 안 가져와서.."



김연진에게 친해지려는 목적도 있지만 로션을 안 가져온 것도 사실이었다.


화장품이 뭐가 뭔지 알아야지.



"응? 진짜? 완벽한 줄 알았는데 이상한 데서 덤벙이는구나? 자. 이거. 양 많으니까 여기 지내는 동안 편하게 써."



다행히 김연진은 인심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김연진에게 나는 고마움을 표했다.



"우와! 고마워! 이 은혜는 꼭 갚을게!"



같은 물건을 공유한다는 건, 그만큼 친밀함을 나눈다는 것이다.

김연진과는 앞으로 이런 식으로 친해져야겠다.


나는 빌린 로션을 손에 짜서 얼굴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때 김연진이 "어?" 하면서 다가와 내 귀에 속닥였다.



"루다야, 너 혹시 제모 안했어?"


"제모?"


"겨드랑이 말이야."


"겨드랑이? 헉!"



나는 놀라 겨드랑이를 가렸다.

생각해보니, 이루다의 몸에 들어와서 겨드랑이 제모를 해본 적이 없었다.



"너 덤벙이가 아니라 털털이구나?"



김연진이 피식하며 웃었다.

나는 볼이 빨갛게 달아오름을 느꼈다.


오늘 긴팔 연습복을 입고 있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방송에 털 숭숭 난 겨드랑이를 보일뻔했다.



"나만 알고 있을게. 몰래 하고 와."



나는 겨드랑이를 붙잡고 다시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섰는데, 도구가 없었다.

나는 김연진에게 조용히 다가가 다시 부탁했다.



"저기.. 혹시 그.."


"설마.. 없니?"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김연진은 비상용으로 챙겨온 게 하나 있다며, 그걸 빌려주었다.


부끄러워서 죽는 줄 알았다.


김연진이 착해서 망정이지...


나는 다시 샤워실에 들어가 생전 처음 겨드랑이 제모를 하였다.

수염을 밀어봤던 경험 덕분인지, 제모가 어렵진 않았다.


조금 부끄러울 뿐.



'하. 여자로 살기 쉽지 않네. 왜 이렇게 할 게 많아.'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12시까지 이어진 고된 연습으로 모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하지만 난 잠에 들 수 없었다.

전략을 생각해야 했다.


이미 편은 갈라졌고 프레임이 씌워져 버렸다면 그걸 이용할 수밖에 없다.


편이 생겼으면 내 편은 챙기고, 다른 편을 잡아먹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프레임이 씌워졌다면 그 프레임을 바꿔가면 되는 것이다.


일단 내 그룹의 규모를 변경해야 했다.

나는 내 편을 우리 방 전체로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방 사람 전체가 나에게 투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 방 인원은 다 해서 6명.

옆 방은 다해서 7명이다.


우리 방만 내 편으로 섭외해서는 과반을 차지할 수 없다.

안정적으로 센터가 되기 위해선 다른 방 인원의 표도 확보해 둬야 한다.



"염병."



욕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다음날.

오늘도 나는 6시 30분이 되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나는 옷을 대충 갈아입고 아침 구보를 하러 나섰다.

그때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세영이가 잠에서 깨서 날 쳐다봤다.



"어디 가요?"



세영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쉿. 그냥 아침 운동."


"하암. 저도 같이 가요."



그렇게 세영이와 나는 아침 운동을 나왔다.

밖은 아직 어둑어둑하고 안개가 자욱했다.


내가 아침 구보를 하는 이유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 기도 하고 규칙적인 생활 루틴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저번 첫 방송 때 느꼈지만, 지금 이루다의 체력은 여유가 있는 무대를 하기에 조금 부족하다.

호흡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해선 폐활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오늘은 일단 가볍고 천천히 뛰었다.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이루다의 몸이 아직 덜 풀린 이유도 있고, 날 따라온 세영이 너무 힘들어했다.



"안 따라와도 되는데."


"헥..헥... 아니에요. 저도 해야죠.."



그때 누군가 안개를 뚫고 뛰어오는 게 보였다.



송유나였다.



벌써 땀을 흠뻑 흘린 것을 보아 우리보다 일찍 나와서 운동을 시작한 것 같았다.


송유나는 우리를 보고 가볍게 미소 지으며 손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왔던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송유나를 마주하자,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내가 송유나의 기회를 뺏어갔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다.



저렇게 꿈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인데..


과연 내가 저 사람의 기회를 뺏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퍼스트 센터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날 돌이켜보니, 괜히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군생활이 걸려있다.

마음 독하게 먹어야 한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짬밥보다 부실한 아침밥을 먹으러 왔다.

어제 먹은 저녁은 협찬이라서 푸짐했던 모양이다.

식당에 카메라들이 철수하자 개 같이 급식이 부실해졌다.



"으깬 감자랑 멸치볶음이랑 김치.. 하.."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던 세영이가 한숨을 쉴 정도였다.

군대에서 이런 배식이 나온다면 바로 임오군란이다.



"그래도 많이 먹어둬. 체력이 있어야 연습도 하니까."



사실 식사 시간은 바로 옆 방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였다.


수업 시간이나 연습 시간 때는 의외로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쉬는 시간도 짧을 뿐만 아니라 연습에 집중하느라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마침, 옆 방 친구 중 두 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이미연은 보이지 않았다.



'이거 운이 좋구만.'



나는 그 두 친구에게 다가갔다.



"좋은 아침~ 여기 앉아도 돼?"


"아? 네네. 편하게 앉아요, 언니."



나는 두 사람 옆에 앉으며 인사를 했다.

둘 다 나보다 어린 참가자들이었다.

수업 시간에 인사를 나눈 것 말고는 나와 아무런 교류도 하지 않았던 '제로베이스' 관계인 친구들이다.



"아침밥이 조금 부실하네. 아침밥이 맛있어야 많이 먹고 힘도 나고 그러는데."


"그러게요. 어제는 잘 나왔는뎁.."


"맞아. 어제 나온 떡갈비가 대박이었는데. 사실 저희 어제랑 똑같을 줄 알고 기대하고 온거든요."


"아, 진짜? 그런데 왜 둘만 왔어?"


"다른 언니들은 안 먹고 바로 연습하러 갔어요."


"그래? 그런데 왜 너희는 연습 안 갔어?"



내가 그렇게 묻자 두 사람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눈치를 보는 걸까?



"그냥.. 저희가 같은 방이라고 다 같이 활동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옳거니.


너희 둘.


이미연이랑 사이가 별로 좋지 않구나?



"아하하. 맞지. 너희가 잘 생각한 거야. 밥 잘 먹어야 노래도 잘 나오고 하는 거지. 그렇지, 세영아?"


"응? 네?"



세영이가 허겁지겁 밥을 먹다가 대답했다.


많이 배고팠구나. 세영아..



"하하..아니야. 많이 먹어. 아! 맞다. '너네'는 방에서 불편한 거 없었어?"



내 편이 아닌 자를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의 첫 단계는 내 편의 경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다.


'너네'라는 단어는 그래서 사용한 것이다.

그 단어는 너희 둘은 내 편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하는 장치이다.



"우리 방은 카메라 각도가 좀 불편하더라구.

그래서 이런 불편 사항들을 우리 방이랑 '너네' 방이랑 모두 모아서 카메라 감독님한테 말해볼까 하는데...어떻게 생각해?

우리 방만 말하는 것보단 다 같이 의견을 모으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이야."



그리고 이건 '너네'에게 마음의 여지를 주는 장치.



"글쎄요? 저는 잘.. 너는 어때?"



하지만 결국 이 대화의 키는 상대방이 쥐고 있다.



"저희도 카메라 각도 때문에 옷 갈아입기 힘들더라구요. 그리고 베개도 부족해요."



오케이.

걸려들었군.



"그래? 역시 우리 방만 카메라가 불편한 게 아니었어."



나는 주머니에서 메모장과 펜을 꺼내 그 내용을 기록했다.

그 모습을 두 사람이 유심히 쳐다보았다.


별거 아닌 행동 같지만, 이것도 사실 다 마음을 뺏기 위한 연기다.


너희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연기.


그 모습에 두 사람이 다른 의견을 조금씩 꺼내었고 나는 그걸 받아 적었다.


이로써 나와 저 둘의 관계는 한걸음 가까워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다음 기술을 준비했다.



내가 오병장에게 배운 첫 번째 어둠의 비기.



뒷담화.



내가 안 친한 사람과 단둘이 있으면 어색해서 힘들다는 고민을 오병장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오병장이 말하길.



"야. 사람 마음 쉬워. 남자나 여자나 뒷담화 한 번 싹 털어주면 그때부터 우리 모두 베스트 프렌드가 되는 거야."



뒷담화는 서로 친분이 없는 제로베이스 관계에서 잘 통하는 스킬 중 하나다.


임창수 같은 올곧은 신념의 사나이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스킬이지만, 대부분 사람에게는 아주 잘 통하는 스킬이다.

공감을 나누는 동시에 양심을 거스르는 짜릿함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서로의 관계를 빠르게 가깝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 뒤에 있던 사람들이 뒷담화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뒷담화는 절대 만만한 스킬이 아니다.


우선 뒷담화의 수준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뒷담화는 아주 가벼운 이야기부터 딥한 패드립까지 세세하고 예민한 정도가 있다.


그것을 상대방에게 맞게 잘 조절해야 하기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이 이 스킬을 받아 쳐줄 준비가 되어있을 때만 쓸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탁구나 배드민턴처럼 상대방과의 암묵적인 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임창수 같은 사람에겐 안 먹히는 이유가 그것이다.


나는 뒷담화를 시작하기 위한 서브를 두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넣었다.



"그리고 또 없어? 같은 방 쓰는 게 조금... 불편한 사람이 있다거나."



내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게.. 사실 미연 언니가 저희를 좀 무시하는 것 같더라구요."



다행히 상대가 이미연을 주제로 내 뒷담화 스킬에 합을 쳐주었다.



'받아주어서 고맙다...!'



"아.. 미연언니? 조금 그래 보이긴 하더라. 나한테도 좀 함부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쵸! 저보다 언니라서 조용히 넘어가긴 했는데, 어제는 진짜 짜증 나더라고요."


"어제는 왜?"


"아니. 여기는 2층 침대를 쓰잖아요. 저는 2층 침대 처음이라서 2층 써보고 싶었는데,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냥 나이 순서대로 자리 정해버리는 거 있죠?"


"그랬어? 그러면 안 되는데. 서로 상의를 해서 정해야 맞지."



마치 핑퐁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핑퐁이 오갈수록 저들의 마음은 나에게 서서히 열려갔다.


한참 분위기 좋아지던 그때, 갑자기 이미연이 식당에 나타났다.

신나서 이미연을 까던 친구가 이미연을 발견하자, 목소리를 줄였다.


나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밥 먹는 시늉을 했다.

이미연도 우리를 발견하자 밥을 받지도 않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미연도 바보가 아니라면 알겠지.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그런데..

알면 니가 뭐 어쩔 건데?



나는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이미연에게 인사했다.



"어머. 안녕, 미연 언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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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팀원 선택 24.09.05 6 0 14쪽
27 27화. 미션곡 선택 24.09.04 23 0 12쪽
26 26화. 다시 만난 비투엔터의 연습생 24.09.03 28 0 13쪽
25 25화. 이등병의 편지 24.09.02 14 0 12쪽
24 24화. 비투엔터의 연습생 24.08.30 11 0 12쪽
23 23화. 데이트 24.08.29 11 0 12쪽
22 22화. 나에게서 걸려 온 전화 24.08.28 12 0 12쪽
21 21화. 그녀와의 치맥 24.08.27 14 0 13쪽
20 20화. PV촬영 24.08.26 16 1 13쪽
19 19화. 뺑이 24.08.23 16 0 12쪽
18 18화. 제설작전 24.08.22 20 0 12쪽
17 17화. 결전의 시간 24.08.21 19 0 12쪽
16 16화. 정치쇼(3) 24.08.20 27 0 12쪽
» 15화. 정치쇼(2) 24.08.19 23 0 12쪽
14 14화. 정치쇼(1) 24.08.16 23 0 12쪽
13 13화. 동기 생활관 24.08.14 21 0 12쪽
12 12화. 전투샤워 24.08.12 24 1 11쪽
11 11화. 엔들리스 리액션 24.08.09 24 0 11쪽
10 10화. 드디어 재평가. 24.08.07 25 0 11쪽
9 9화. 병장님과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3) 24.08.05 30 1 12쪽
8 8화. 병장님과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2) 24.08.02 35 1 12쪽
7 7화. 병장님과의 재회는 최악이었다. (1) 24.07.31 33 1 12쪽
6 6화. 예쁜 건 죄야. 24.07.29 34 0 12쪽
5 5화. 나 혼자만 영내 대기. 24.07.26 39 1 12쪽
4 4화. 훈련소 아니, 오디션장으로 가다. 24.07.24 35 1 11쪽
3 3화. 군생활이 늘었다. 24.07.23 37 1 12쪽
2 2화. 눈뜨니 입대일이다. 24.07.19 48 1 12쪽
1 1화. 나는 병장이다. 24.07.17 7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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