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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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죽음

DUMMY

맹금처럼 날카롭게 번뜩였던 두 눈은 어두운 그림자로 가득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우렁찬 목소리는 사라지고 가래 끓는 침음만 들릴 뿐이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토록 두려워하고 멀리하려 했던 죽음이 목숨을 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수은에 장기간 중독되어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새하얗게 질려버린 낯빛과 미약한 숨소리가 임종이 머지않았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 이사···.”

“하명하십시오.”


어둡게 내려앉은 두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임종을 앞둔 황제의 곁을 지키던 이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네.”

“폐하···.”

“30년 동안을, 고집불통 황제의 불호령을 버티면서··· 참으로, 고생이 많았겠군···. 매번 그대를 혹사시키지, 않았는가···?”

“아닙니다. 초나라의 하급관리에 불과했던 소신을 중용해주신 폐하의 국은에 보답하고자 기꺼이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출세가도를 밟았던 승상(丞相) 이사가 진나라의 귀족 출신이라고 섣불리 오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놀랍게도 이사는 초나라 출신이었다.


평민 출신의 하급관리에 불과했다.


젊었을 적부터 입신양명을 향한 야망을 불태우면서 초나라를 버리고 진나라에 투신했다. 진나라는 출신에 상관없이 오로지 능력을 중시하는 군사강국이었기 때문이다.


어리지만 총명한 왕.


수많은 전쟁으로 단련된 강인한 장수들.


분명 진나라는 수많은 제후국들을 거느린 천하의 패자가 될 터였다.


그렇게 예견했던 이사는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도록 수많은 계책들을 진언하면서 통일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조국을 배신한 매국노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황실과 조정에 헌신했던 이사는 지금 위대한 전쟁군주의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짐을 처음 보았을 때··· 그대가 말했지. 솥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듯, 천하를 손쉽게 정복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이야···.”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미치광이의 호언장담을, 어찌 잊겠나.”

“······.”


솥에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듯 천하의 제후들을 굴복시킬 방법이 있사옵니다.


진나라의 어린 왕을 처음 알현하자마자 광기에 물든 목소리로 소리쳤다.


허풍에 불과하다.

벼슬을 구걸하려는 실속 없는 잡설일 뿐이다.


초나라를 배신하고 진나라로 투신한 빈객의 호언장담은 곧바로 비난과 조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알현을 허락했던 어린 왕은 진나라가 자신의 계책으로 천하를 통일할 것이라는 미치광이의 호언장담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재상으로 발탁했다.


“···폐하.”


천하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중용했던 어린 왕이 지금 눈앞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아마 오늘을 넘기기 어렵겠지.


점점 희미해지는 안광과 숨소리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당장 태의들을 부르겠습니다.”

“아니, 됐다. 짐은 오늘 죽는다. 돌팔이들을 부른다고 하여, 뭐가 달라진단 말이냐?”

“그럼 공자와 공녀들이라도···.”

“부소를 불렀잖느냐. 그것으로 족하다.”


비빈과 자식들에겐 임종을 허락하지 않았다. 병세가 매우 위태롭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기에 황실과 조정은 황제가 임종에 다다랐음을 모르고 있었다.


짐의 죽음이 바깥에 알려져선 안 된다.


적어도 수년 동안은 천하를 속여야 한다.


본인의 사후에 벌어질 혼란과 동요를 직감하였기에 최소한의 인원들만 침소로 불렀다. 지독한 병마로 인해 죽어가는 와중에도 황제는 후일을 정확하게 예견했다.


“폐하.”

“···부소, 왔느냐.”


부소가 급보를 듣고 도착했다.


뒤이어 몽염과 몽의 형제가 내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신과 왕리는··· 아직인가?”

“무성후는 곧 도착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농서후는 멀었을 겁니다.”


천하를 호령했던 황제의 임종은 무척이나 조촐했다. 적장자와 공신들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기에 인원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듯한 가느다란 숨소리만이 내실을 가득 메울 뿐이었다.


“폐하, 부소 공자에게 남길 말씀은 없으십니까?”

“으음···.”


이사가 물었다.


그러자 허공을 응시하던 황제가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불로장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허영을 뒤쫓으면서 시간을 허비했던 짐이··· 무슨 낯짝으로, 유언을 남긴단 말이냐?”


동쪽 바다의 너머에 있다는 불로초(不老草)를 찾으려 했다.


전설에 등장하는 만병통치의 선단(仙丹)을 구하겠답시고 관리들을 수차례 파견했다.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죽음을 피하려 발악했던 스스로를 향한 조소였다.


천하통일이라는 전대미문의 업적을 세운 황제라도 결국은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 당연한 이치를 깨닫기 못하고 불로초와 선단을 구하려 발악하면서 말년을 보내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황릉의 토목공사를 중단하라. 장성의 축조도 중단하라.”

“···폐하.”


황릉(皇陵)과 장성(長城)은 황제의 오만한 집념을 표상하는 상징과도 같았다. 오랫동안 강행해온 토목공사를 이제 중단하라는 황제의 명령에 부소는 당혹감을 내비쳤다.


죽음을 앞둔 순간이기 때문일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불로초와 선단에 매달렸을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마지막을 앞둔 황제의 얼굴은 한없이 평온했다.


“사람은 죽어 한 줌의 흙이 될 뿐이거늘···. 호화로운 무덤에 묻힌들 살과 뼈가 썩어가는 것을 어떻게 피한단 말이냐.”

“······.”


늦게,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


어찌하여 시골의 필부들도 알고 있는 간단한 이치를 외면했단 말인가.


불로(不老) 따위는 없다.

불사(不死)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 모질게 매달렸던 불로불사를 향한 미련을 포기하자 졸음이 몰려왔다. 온몸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고통이 점점 잦아들면서 죽음의 손아귀가 포근하게 끌어안았다.


아아.


이것이 죽음인가.


수십 년 동안 떠났던 고향으로 돌아온 것 같은 따스한 그리움마저 느껴졌다.


“···그동안 수많은 적들이, 그리고 수많은 벗과 신하들이 떠나갔지.”


자신의 맏아들과 충성스러운 공신들을 바라보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무도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황제의 모습에 몽염과 몽의는 눈물을 집어삼켰다. 언제나 냉철한 모습을 보이던 이사도 감정이 격해졌는지 고개를 숙였다.


“짐도 이제, 그들을 따라가는구나. 전란의 시대를 종횡했던 영웅호걸들이 있는 곳으로···.”


두 눈을 힘겹게 지탱하던 눈꺼풀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이제 천명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구나.


본인의 생명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한 황제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참으로 고단했다···. 힘들고 외로웠고···, 언제나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중원을 처음으로 통일한 전쟁군주이자 최초의 황제였던 영정의 인생은 역설적이게도 가시덤불처럼 괴로움과 고통으로 가득했다.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았다.


철이 들기 전부터 온갖 박해와 괴롭힘에 시달렸다.


자신을 노리는 자객들의 위협에 언제나 벌벌 떨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쥐었지만 누구보다 불행했던 황제는 평온한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괴롭혀온 모든 고통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짐이···. 이 영정이, 죽는구나···. 황후가 오래 기다렸을, 터인데···.”


불로도, 불사도 얻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모든 고통들로부터 해방된 황제는 평온한 미소와 함께 기구했던 일생을 끝냈다.


기원전 211년.

전국시대를 종결시키고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제(秦始皇帝)가 영면에 빠졌다.


전국에 지방관들을 파견하여 다스리도록 하는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였고, 각국마다 모두 달랐던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여 사후에 이어질 2천 년 역사의 초석이 되었다.


천하통일에 이어 북으로는 흉노를 정벌하고 남으로는 남해를 정복했다.


말년에는 토목공사를 남발하고 불로불사의 미신에 집착하면서 전국의 백성들에게 원성을 사게 되었다. 일부를 제외한 수많은 서적들을 불태우고, 그에 반대했던 유학자들까지 생매장하면서 무자비한 악행을 떨쳤다.


전무후무한 업적들을 쌓았지만 사나운 폭군이었다.


비록 폭군이었으나 생전의 업적들만큼은 찬양을 받아 마땅했다.


위대한 폭군.


천하를 제패했던 위대한 폭군의 치세가 30여 년의 세월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 * *



하내군(河內郡)과 하동군(河東郡)의 태수들은 거병에 가세하고자 참전하였으나 상장군(上將軍) 몽염에게 대패하면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관동의 군현들이 반역에 개입했다.


그로 인해 관동은 치안이 불안해짐과 동시에 민심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전쟁과 살육을 좋아하는 미치광이 황제가 군세를 보내어 관동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는 불길한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었다. 진나라의 폭정과 차별에 시달려온 관동의 백성들은 혼비백산하여 고향과 집을 버리고 달아났다.


“길이 막혔소이다! 온통 핏물과 시체들로 가득하오!”

“젠장,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황릉의 토목공사에 징발된 역부들을 이끌던 호송대가 관동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산으로 향하는 길목들마다 도적떼가 출몰하면서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혼란을 틈타 도망친 역부들이 발생했다.

처음에 한두 명씩 달아나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인원이 반절도 남지 않게 되었다.


“회양군에서 징발된 역부들은 물론, 이제 우리들까지도 모두 죽은 목숨이네!”


하루라도 기한이 늦어지면 모두 사형에 처한다.


법가를 숭상하는 진나라의 법률은 일말의 예외 없이 사형을 선고하는 살인적인 험악함을 자랑한다. 이미 수많은 전례들이 존재했기에 사형을 회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죽을 수밖에 없다.

여산에 도착하자마자 참형에 처해지겠지.


관동에서 발생한 변란이 원인이었지만 진나라의 법률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도망친 탈영병들을 추살하듯 떼죽음을 당하게 되리라.


“우리들을 원망하지 마라. 네놈들의 불운을 탓해라.”


극단적인 억압은 언제나 더욱 극단적인 반발을 촉발시키기 마련이다.


호송임무를 수행하던 병사들이 선택한 방안은 ‘역부들을 모두 죽이고 달아나는 것’이었다.


역부들을 살려둘 순 없었다.

여기서 인정을 베풀어 풀어줬다간 관아로 달려가서 범행을 고변할 테니.


“커헉!”


하지만 살해당한 쪽은 극단적인 방안을 꺼내든 진나라의 병사들이었다.


역부를 대표하던 두 명의 둔장(屯長)들이 검을 빼들어 배후를 찔렀기 때문이다.


“진나라 놈들아! 우리들이 죽으라면 죽는 개돼지처럼 보이더냐!”


날카로운 칼끝으로 병사의 목을 찔렀다.


그리고 뒤에 있던 병사들까지 베어버리면서 온몸에 뜨거운 핏물을 뒤집어썼다.


“나라도 없는 비천한 잡것이···! 진나라 병사들을 죽이고도 살아남길 바라느냐! 황실과 조정에서 알면 네놈은 처형대로 보내질 게다!”

“닥쳐라! 감히 누구더러 잡것이라는 게냐!”


호송대를 지휘하던 무관까지 목을 베어 살해했다.


진나라의 장졸들을 살해하는 대죄를 범한 둔장은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무관의 머리를 한손으로 번쩍 들어올렸다.


“비천함과 부귀함이 어떻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겠는가! 어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단 말이냐!”


진승.


그리고 오광.


두 명의 둔장들이 호송대를 모두 살해하고 무리를 이끌었다.


작가의말


진승과 오광.


어쩌면 유방과 항우보다도 골 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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