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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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

DUMMY



중거부령(中車府令) 조고.


늙은 환관이 밧줄에 포박된 채로 국문장에 도착했다.


환관들의 수장.

흉계와 모략으로 진나라를 장악했던 독무대의 단주.


황제의 권위에 비견되는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러온 권신(權臣)이 아니던가. 조정대신들조차 벌벌 떨게 만들었던 늙은 환관의 무거운 위압감이 국문장을 짓눌렀다.


“조고···!”

“저, 정말 압송될 줄이야!”


천하를 농락했던 중상모략의 괴물이다.


결조(決曹)의 관원들은 혹시라도 늙은 환관과 시선이 마주칠까 두려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중거부령 조고가 폐하를 뵙사옵니다.”


국문장에 압송된 자신의 심복들이 팔다리가 바스러진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조고는 평소처럼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황제에게 예를 취했다.


살아있는 귀신을 보는 듯했다.

온화함마저 느껴지는 조고의 낯빛에 관원들은 기가 질리고 말았다.


암살시도의 최종적인 배후로 밝혀졌으니 심복들과 함께 극심한 고문을 받게 되겠지. 진나라의 법률과 산법에 해박한 늙은 환관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한낱 허장성세인가.


아니면 상황을 반전시킬 묘수가 존재하는 것인가.


국문장에 참석한 모든 인원들의 시선이 황제와 늙은 환관에게 집중되었다.


“독무대를 동원하여 부소를 죽이려 했다지.”

“부소 공자의 암살시도에 독무대가 동원되었다는 증좌를 발견했습니다. 소신은 첩보를 입수하자마자 암살시도에 연루된 독무대의 불순분자들을 모두 체포했사옵니다.”


독무대의 자객들이 동원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본인은 이번 참상과는 무관하다.


노여움으로 가득한 황제의 물음에도 조고는 담담한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철면피를 수십 장씩 덧댄 것처럼 주름으로 자글자글한 낯짝은 요지부동을 고수했다.


‘황제의 적장자를 죽이려 했던 대역죄보다는 부하들의 단속에 실패한 직무태만을 덮어쓰는 편이 죗값을 훨씬 덜 받겠지. 지금까지 세운 공적들이 참작되면 가벼운 죄목으로 풀려날 테고.’


조나라 왕실의 후예였던 조고가 황제에게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은 복잡하면서 난해하기로 유명한 진나라의 법률을 불과 수년 만에 모두 깨우친 천재였기 때문이다.


법률에 능숙하고 능통하다.


그 말은 법률의 허점 또한 족집게처럼 꿰뚫고 있음을 의미했다.


조고의 태연한 모습을 지켜보던 부소는 대담한 뻔뻔함에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여우들 중에서도 특히 늙은 여우가 무섭다지. 과연 그 말이 맞군.”


얼굴이 주름으로 뒤덮이고 허리가 굽었음에도 교활한 처세술은 여전했다. 황제는 본인에게 처세술을 알려준 스승에게 감탄을 보냈다.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하명을 기다리고 있던 재상이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조고가 모략의 괴물이라면 이사는 법가의 괴물이다.


황제를 옆에서 보필해온 환관과 개혁가는 동전의 양면처럼 극단적으로 달랐다.


조정대신들은 승상(丞相) 이사를 평가할 때마다 결벽(潔癖)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어떤 오차와 혼탁함도 용납하지 않는 독선적인 공명정대를 추구하는 괴짜였기 때문이다.


너무 깨끗한 물에선 물고기가 살 수 없다.


조정의 실무를 총괄하는 승상의 직책임에도 파벌이 없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이사. 황실을 능멸한 늙은 역적을 진나라의 국법에선 어찌 처단하는가?”

“황실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자결이 마땅할 것이옵니다.”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발겨도 모자랄 대역죄를 범했음에도 명확한 증좌가 없었다. 독무대의 자객들은 끝까지 단독행동임을 주장하면서 조고를 변호했기에 수괴로 엮는 것도 불가능했다.


조고가 자신의 심복들을 ‘불순분자’라고 규정하면서 체포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꼬리 자르기가 끝났다.

독무대를 털어봤자 심복들만 관여했다는 증거만 나올 터였다.


그렇기에 황실의 명예를 어지럽혔다는 명분으로 자결을 판결했다. 황실과 조정의 명성을 더럽힌 모독죄는 증거가 없더라도 즉결심판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

“대죄를 범한 고관대작에게 자결을 명령하는 오랜 통례를 따랐을 뿐입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시신만큼은 온전하게 건질 수 있다.


하지만 조고는 그것을 치욕으로 받아들였다.


자력으로 목숨을 끊든 저잣거리에서 참형을 당하든 죽는 것은 똑같지 않은가.


이대로 개죽음을 당하진 않겠다.

법가의 개혁가에게 자결을 종용당한 늙은 환관이 발악하듯 온몸을 비틀었다.


‘자결이라···. 자결로 끝내버리기엔 너무 심심한데. 뭐, 본래 역사에선 시황제의 유서를 위조해서 부소와 몽염에게 자결을 명령했으니까. 어떤 의미로는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부와 권력을 위해 반평생 중상모략을 일삼은 역적에게 가장 끔찍한 최후를 안겨주고 싶다. 지금까지 범한 수많은 원죄들에 비해 자결은 너무 자비로운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자결을 선고했기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자결.

달갑진 않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궁중에서 조고가 사라지면 호해는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탈락될 수밖에 없다. 진나라의 멸망을 불러올 원흉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셈이었기에 국문장의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 * *



황실의 명예를 실추시킨 중거부령 조고는 자결하라.


국문장에서 선포된 황명이 알려지자 거센 여파가 안읍(安邑)을 강타했다.


조고가 죽는다.

그것은 환관들의 세상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소식을 접한 조정대신들은 만세를 삼창하면서 결과를 받아들였다. 해충처럼 부와 권력에 빌붙어서 기생해온 궁중의 환관들을 모두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폐하! 중거부령은 진나라 황실과 사직을 위해 봉행해온 충신이옵니다! 그런 충신을 어찌하여 죽이려 하십니까! 게다가 중거부령은 우리 호해의 스승이지 않사옵니까!”


조고가 국문이 열리는 안읍으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인 호씨가 도착했다. 한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비보를 접한 호씨는 황제에게 읍소하듯 매달렸다.


울분에 찬 목소리가 울렸다.


오랜 야망이 찰나의 물거품으로 전락할 것임을 알기에 매우 필사적이었다.


“그동안 조고를 총애하여 최대한 허울을 덮어주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불가하다. 감히 황제의 적장자를 도모하였으니 죗값을 치러야겠지.”

“부소와 몽염의 모함이옵니다! 중거부령을 없애고 태자에 오를 심산이 아니겠습니까?”


조고의 무죄를 내세웠다.


심지어 부소와 몽염의 모함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호씨의 격앙된 목소리를 듣던 궁인들이 대경실색하는 반응을 보였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심과 비뚤어진 모성애를 토해내는 호씨는 마치 광인에 가까웠다.


“그럼 독무대가 조고를 배신하고 부소와 함께 암살을 조작했다는 말이더냐.”

“국문장에서 궤변을 늘어놓은 위철이라는 작자는 평소부터 중거부령을 음해했습니다! 분명 중거부령을 내쫓고 본인이 그 자리에 앉으려는 속셈으로 부소에게 접근했을 것이옵니다.”


부인 호씨는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총비(寵妃)였다. 수많은 처첩들을 두었지만 언제나 부인 호씨에게 침궁(寢宮)을 맡겼다.


하지만 궤변과 거짓말을 들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특히 황제는 인내심과 참을성이 많은 도덕군자가 아니었다.


본인의 경거망동을 그제야 깨달았는지 필사적으로 매달리던 호씨가 잠시 물러났다. 그리고 석고대죄를 하듯 바닥에 엎드린 채로 자비를 요청했다.


“중거부령을 살려주시옵소서. 소첩의 간곡한 애원이옵니다···! 일전에 소첩이 연나라의 자객으로부터 폐하를 구해드렸을 때, 폐하께선 소첩의 간청을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사옵니까?”

“······.”


촤르륵 펼쳐지는 죽간.


안에 숨겨둔 날카로운 비수.


단 한 번의 필살(必殺)을 위해 자신을 내던졌던 사내.


반평생 수많은 암살위협을 받았지만 바로 면전에서 칼끝을 마주했던 것은 그때가 유일했다.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호흡이 거칠어짐과 동시에 현기증이 밀려들었다.


연나라의 자객은 지독하게 의심암귀로 남아 심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날카로운 비수를 겨누면서 위협하던 자객의 흉상이 악몽에 등장할 때마다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좋다, 네 간청을 들어주마. 목숨만 살려주면 된다는 뜻이렷다.”

“···예, 그러하옵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그대로 자결하길 바랐을 정도로 끔찍한 형벌이 내려지리라.


다른 비빈들을 몰아내고 총애를 독차지했던 총비가 지아비의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호씨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삭탈관직에 처해지더라도 중거부령의 심복들은 여전히 건재해. 자결을 물리는 조건으로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되겠지만··· 그로 인해 초나라 계집의 아들을 더욱 증오하게 되겠지.’


조고에게 있어 호씨와 호해는 만인지상의 권력을 거머쥐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호씨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형벌을 받게 되더라도 목숨만 부지한다면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 암살시도의 실패로 인해 심대한 타격을 입었지만 궁중을 장악해온 조고의 영향력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폐하, 오늘 얼마나 고단하셨사옵니까? 소첩이 폐하를 모시겠사옵니다.”

“혼자서 쉬고 싶다. 이만 물러가라.”


전국순행 도중에 벌어진 불온한 무리들의 암습 때문일까. 아니면 세월이 흐를수록 악화일로를 거듭하는 본인의 건강 때문일까.


위독한 수준에 이르렀다.

낯빛이 창백해지고 두통이 극심해졌다.


심지어 온몸의 감각이 산송장처럼 둔해지는 전신마비 증상마저 보였다.


불로(不老)를 추구하여 장기간 복용했던 ‘물처럼 흐르는 은’ 때문임을 알고 있다. 악화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스스로 맹독을 마시고 있음을 알아차린 호씨는 황제와 동침할 때마다 수은을 권유했다.



* * *



황명이 번복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특히 진나라는 법가를 숭상하는 국가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중거부령 조고에게 빈형(臏刑)을 명령한다.

오늘 새벽에 자결을 선고했던 황명이 번복되어 결조(決曹)로 전해졌다.


“과연 중거부령께선 운이 좋소. 자결만큼은 다행히 면하셨구려.”

“···설마 공자께서 형을 집행하실 줄은 몰랐군요.”


빈형.


무릎을 끓어내어 평생 앉은뱅이로 만드는 형벌이다.


황제가 빈형을 명령하자 부소는 집행인을 자청했다. 조고의 부하들이 형벌을 위장하는 간계를 벌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중거부령은 진나라를 위해 반평생을 헌신한 충신이지 않나. 특별히 칼을 쓰진 않겠네.”

“······.”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고자 백면서생인 척하면서 속였던 간악한 놈이 어설프게 자비를 베풀 리가 없었다. 분명 연골을 도려내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방법으로 형벌을 집행할 터였다.


무슨 속셈이냐.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눈길로 부소를 노려보았다.


“집행하라.”


조고를 흙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두 다리를 뻗게 만든 채로 고정시켰다.


구르르르-.

커다란 수레가 바퀴소리를 내면서 다가왔다.


수레에 모래를 채운 포대들을 산더미처럼 쌓았으므로 만근처럼 무거웠다. 집행에 동원된 장졸들이 가쁜 침음을 토해내면서 수레를 밀었다.


“그, 그만! 멈춰라! 내가 감히 누구인 줄 알고···! 나는 중거부령 조고란 말이다!!”


자신의 부하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국문장에서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였던 중상모략의 괴물이 추레한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움직이기 시작한 수레바퀴를 막을 순 없었다.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가속을 시작한 수레바퀴는 정해진 경로를 따라 나아갔다.


그리고 흙바닥에 움푹 파인 자국을 남기던 목제바퀴가 늙은 환관의 두 다리를 깔아뭉갰다.



꽈득───!!



한 움큼 들어올린 나뭇가지들을 동시에 부러트린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늙은 환관은 두 눈을 까뒤집은 채로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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