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길드 마스터의 천마재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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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진명
작품등록일 :
2024.07.22 18:18
최근연재일 :
2024.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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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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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혹은 무공

DUMMY

"..."


나는 의자에 앉은 채, 상철호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댄 채 그대로.


꺠질 듯한 살얼음 같은 침묵이 침실 안에 맴돈다.


그저 탁자 위에 놓인 촛불 하나만이 가련하게 흔들릴 뿐.


그 짧은 대화의 간극을 먼저 깬 것은 상철호였다.


그는 다리를 펴고 일어나서, 무릎을 털며 말했다.


"드디어 장로님이 자리를 비우셨으니,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밝히고 가겠네."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은 냉철했다.


"나는 자네가 천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네."


'그래보이긴 했지.'


제단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내내, 상철호는 노 장로에게 마지못해 따른다는 느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관찰하기도 했다.


...참 맞춰주기 피곤하다. 한 명은 내가 무조건 천마라고 하고, 한 명은 천마가 아니라고 의심하고.


"자네도 봤겠지만, 본당에서 시행하던 천마 부활 의식은 노 장로께서 얼마 남지 않은 본교의 서적들을 뒤적이면서 찾은 자료들을 자기 멋대로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만든 것일세.


본래 성공할리가 없었지.


노 장로께서 반드시 나더러 의식에 참가하라고 명령하였으니 같이 의식을 행하기는 하였으나,


그저 이것도 장로님의 천마에 대한 집착을 달래주는 임시방편이겠구나, 그리 여겼지.


그런데..."


그는 나를 흘끗 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고 방 안을 걸어다니기 시작한다.


"...자네가 제단 위에 나타난 걸세."


"제가요?"


"기억 나지 않는가?"


"저는 그저 어두운 동굴에서 눈을 뜬 기억 밖에는 없습니다."


"흠..."


상철호는 기억을 잃었다는 내 주장조차도 의심스럽다는 듯 낮게 침음하였다.


"...한창 장로님께서 의식을 거행하던 도중이었네.


갑자기 제단 위로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한 빛이 쏟아지며,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이 별안간 불어오더니,


빛이 걷히고 바람이 가라앉자 모두가 제단 위에 누군가 누워있는 것을 보았고..."


"혹시 그게 저인가요?"


"그래."


음, 진짜 무슨 주술적인 힘에 의해 소환되는 것처럼 등장하긴 했었군.


"다들 처음엔 당황했지.


제단 위에 천마가 아닌, 왠 처음보는 갈색 머리의 초록색 눈을 가진, 이국의 사내가 누워있으니 말일세.


그렇게 교인들이 어쩔줄 몰라 당황할 때, 노 장로께서 그들에게 외쳤지.


'천마님께서 새로운 육신으로 환생하셨다!'"


"예?"


"...절박함에 누가 나왔건 일단 천마라고 믿고 싶으셨던 모양이었겠지.


차라리 그때 내가 확실하게 무례함을 무릅쓰고서라도 이자는 천마가 아니라고 장로님께 단호하게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상철호는 후회한다는 듯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후... 여기까지가 자네가 이곳에 나타날 때의 상황이라네."


'밝은 빛과 거센 돌풍이라... 단거리를 텔레포트 마법으로 이동할 때는 그렇게 요란한 이펙트가 남지 않아... 어지간한 장거리를 전이하는게 아니고서는... 이 남자가 말한 정도로 스펠의 후폭풍이 강하려면... 진짜로 차원이라도 뛰어넘은건가? 거참...'


"이보게!"


"네, 네?"


"뭘 그리 생각에 빠져있는가? 아까부터 불렀네만."


"아... 죄송합니다."


"크흠.


그래서 교의 호법으로서, 자네가 교에 해가되는 자가 아닐지 자네를 지켜보겠다 이걸세.


장로님께서 자네가 천마라고 맹신하고 계시기에 나도 일단 그분의 지시를 따라 대외적으로는 자네를 천마로서 호위하겠네만,"


상철호가 점점 내게 걸어와, 의자에 앉아있는 내 앞에 우뚝 서서 나를 고압적인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정말로 자기가 천마라도 되는것마냥 착각하지는 말게.


자네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이야. 알겠나?"


'하...'


그냥 이 양반 때려 눕히고 도망치는게 나을 것 같은데. 그다지 세보이지도 않고.


'아니, 여기서 좀 더 정보를 수집해야한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가진 것도 없다.


그래도 일단은 사람이 사는 곳이기는 하니, 최대한 정보와 물자를 얻고 탈출을 감행하건 해야한다.


일단 이자의 비위를 맞춰주기로 결정한 나는 우호법에게 대답하려 했다.


"네. 명심하겠습..."


그때,


쿠웅! 쿠궁!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려오며 침실을 포함한 동굴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뭐, 무슨 일이지?"


상철호가 크게 당황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때, 문 너머 저멀리에서, 노찬 장로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발소리와 그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통로 벽에 반사되어 울려퍼졌다.


"마존이시여, 부디 마교를 구원하소서!"


노 장로가 침실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천마...님...헉, 허억... 지금, 교에... 교에 요수(妖獸)가...크헉..."


그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터져 나오는 기침을 가슴을 부여잡고 억누르며 말을 이으려 했다.


몸 군데 군데 베인 듯한 상처가 보이고 머리를 다치기라도 했는지 얼굴 한쪽이 피로 뒤덮였다.


"노 장로! 괜찮소?"


상철호가 급히 노 장로를 부축하려 했다.


"괜찮소, 우호법... 외상...만 좀 입은... 쿨럭... 것이오."


"그럴리가, 말조차 제대로 못하면서!"


"이건... 그냥 숨이 차서..."


"아..."


상철호는 무안해져서 부축하려고 뻗었던 손을 거뒀다.


...나도 깜빡 속을 뻔했다.


노 장로는 허억, 후욱하는 소리와 함께 거친 숨을 연신 내뱉다가, 겨우 호흡을 진정시켰다.


"아...!"


겨우 평정을 찾나 싶었더니, 무언가를 깨닫고서는 헐레벌떡 한쪽 무릎을 땅에 꿇고 인사를 올렸다.


"천마님을 뵙사옵니다."


'...이제 기가 차지도 않는구만.'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예를 차리다니, 역으로 이 노인네에게 감탄하게된다.


"천마님, 강림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신(神)체를 온존하시어야 할 때인 것을 아옵니다만, 교에 너무나 중대한 위기가 닥치어 노부가 무례를 무릅쓰고 천마님께 감히 구원을 청하고자 하옵니다."


"그..."


나는 대답을 하기 전에 상철호를 보았다.


그는 보일듯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미를 이해한 나는 얼른 헛기침을 하고 연기를 시작했다.


"좋다, 청하는 것을 허락하겠다."


"다름이 아니라, 산 아래의 마을에 요수(妖獸)가 나타나 교인과 주민들을 가리지 않고 해치고 있사옵니다.


교의 무력대가 퇴치하려 했으나, 되려 심각한 타격을 입고 패퇴하여 요물을 막을 자가 아무도 없사옵니다.


이에 천마님께 요수를 퇴치해주실 것을 감히 간청드리고자 하옵니다."


요수, 방금 떠오른 이쪽 세계의 지식에 따르면 몬스터에 해당하는 존재인 것 같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사는 마을을 몬스터가 습격했으니 도와달라 이건데...'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면 못하겠다고 거절하는게 맞긴 하다.


그 몬스터가 어떤 종인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면서 그것과 맞서는건 헌터로서 무조건 피해야하는 상황이다.


하물며 일면식도 없는 심지어 수상하기까지한 컬티스트(Cultist, 이교도)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바보같은 짓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가슴 한편이 끓어오르는걸.'


헌터로서의 본능이 속삭인다.


새로운 몬스터를 만나볼 기회 아니냐고.


헌터 생활만 20년 가까이 하면서 이제 만나볼 만한 몬스터들은 다 한 번씩 경험해봤다.


그런데 미지의 대륙, 거기에 살고 있는 미지의 몬스터들이 눈 앞에 펼쳐졌는데 외면하는건,


'헌터 실격이지.'


탐구혼이 끓어오른다고 해야하나.


"알겠다. 안내하거라."


노 장로의 표정이 어찌나 급격하게 밝아지던지 얼굴에 진 수많은 주름들이 삽시간에 펴지는 듯한 착각까지 할 지경이었다.


"천마님의 은혜에 감복하옵니다!"


'뭐, 겸사겸사 좋은 일도 할겸.'


"얼른 안내하거라."


"예!"


노 장로가 벌떡 일어나서 먼저 밖으로 나가고, 나와 상철호가 그 뒤를 따랐다.


"잘했네. 일단 장로님께는 계속 그렇게 천마 연기를 하게나.


내가 나설 것이니 실제로 자네가 싸울 필요는 없을 것일세."


좁은 통로를 달려가면서 내 뒤를 따라오는 상철호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뭐, 손에 피 안묻히고 멀리서 관찰만 할 수 있다면 더 좋은일이지.




통로를 되돌아 나오고, 의식이 치뤄지던 공동을 가로질러 마침내 동굴 밖으로 뛰어 나왔다.


동굴의 입구는 산의 중턱, 그리 높지 않은 위치의 작은 절벽 위에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산세(山勢)를 감상하기도 전에, 시야 한 구석에서 연기가 타오르는 작은 마을을 발견했다.


여기서 직선거리로 900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저곳인가?"


나는 계속 천마를 연기하며 노 장로에게 물었다.


"예! 잠시, 지금 습격한 요수에 대해 미리 말씀을 드리겠..."


노 장로의 말을 신경쓰지 않고 절벽 아래를 내려다본다.


바닥까지 20m 좀 넘는 안되는 높이였다.


"그리 높지 않으니 뛰어내려서 가는게 빠르겠는데."


"예?"


"먼저 가겠다."


나는 노 장로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위에서 둘이 뭐라 외치는 듯 했으나 그들의 목소리는 내 귀를 찢는 바람소리에 흩어져 버렸다.


마법을 시전하기 위해 마나 하트를 활성화 시키려는데...


"어?"


마나가 적다.


정확하게는 내 마나 하트가 시간이 되돌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작아져 있었다.


마치 어렸을 때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어어어?"


이럼 안되는데.


안티-그래비티(Anti-gravity, 반중력) 스펠로 무게를 경감시켜 착지 데미지를 줄일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빈약한 마나로는 그런 고위 마법을 사용할 수가 없다.


"잠깐-"


몇 초 뒤면 바닥이다.


"이런 씨...!"


방법이 없다.


일단 하급 스펠인 헤이스트(Haste)로 각력을 최대한 강화해서 버텨볼 수밖에.


죽지는 않겠지만, 착지하면서 다리에 상당한 데미지가 올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마나를 쥐어짜내서 다리로 보내려는 그때-


'운영보(雲泳步)'


머리에 미지의 이름이 떠오른다.


'앗!'


그리고 거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헤이스트를 시전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발이 땅에 닿고-


탁,


20m 위에서 떨어지다 착지하는 것 치고는, 너무도 가벼운 발소리다.


탁, 타닥,


내 발이 무의식적으로 스텝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왼쪽으로 반원을, 그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반원을.


반대되는 방향의 반원을 연달아 밟으며 나무들 사이를 달려간다.


분명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달리는 중 일텐데, 이상하게도 착지의 충격도, 다리의 피로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무공, 그 중에서도 경공(輕功).'


아랫배에서 태동하는 미지의 기운이 느껴진다.


"구름을 헤엄치듯이, 곧게 뻗는 것이 아니라 흐르듯이 휘어서."


나도 모르게 내가 알지 못하는 문장을 읊조린다.


이것도 그 빌어먹을 놈이 억지로 내 머리속에 쑤셔넣은 지식 중 하나인 것 같지만...


'이건 괜찮은데?'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아랫배의 에너지를 써서 다리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도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기술이다.


'이쪽 세계 식으로 표현하자면 단전의 내공을 순환시키며 경공(輕功)을 시전하는 것이군.'


신이 나서 마을을 향해 속도를 높여 달려나간다.


'이거, 혹시...'


문득 아이디어가 하나 떠오른다.


"헤이스트."


아까 미처 쓰지 못한 각력 강화 스펠을 시전한다.


그대로 땅을 박차 올라, 나무들 위로 솟아오른 다음-


탁.


나무의 꼭대기에 깃털처럼 내려 앉는다.


타닥, 탁,


나무 꼭대기들을 반원을 그리며 밟아 나간다.


밟힌 나무들은, 자신이 밟혔다는 사실조차 미처 깨닫지 못한듯 살짝 흔들리더니 다시 잠잠해진다.


"같이 쓰면 더 좋구만!"


신이 나서 외쳤다.


드래곤과 같이 죽은 후, 계속 이해할 수 없는 일만 겪으며 가슴에 답답함이 쌓여갔는데, 나무 위를 뛰어다니면서 다 날아가는 느낌이다.


나무 위에 올라서니, 다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 좀 만 더 달려가면 도착할 거리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네. 가보자고!"


작가의말

해당 회차는 8/20일 자로 리뉴얼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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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걸 누가 합니까? 24.08.24 21 0 11쪽
8 광소(狂笑)와 천마대행 24.08.23 26 0 9쪽
7 승전보, 그 후에. 24.08.22 35 0 12쪽
6 화작참연검(花斬斫連劍) 24.08.21 38 1 14쪽
5 요수사냥 24.08.16 56 0 10쪽
» 마법 혹은 무공 24.08.14 67 0 12쪽
3 임기응변 24.08.10 76 1 13쪽
2 마존강림 24.08.07 84 1 12쪽
1 끝에서, 끝나지 않다. 24.08.05 14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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