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의 연금술(1)
51화 현자의 연금술(1)
“최 소장님! 저번에 말씀드린 김하준 등선자 님이세요.”
“반갑습니다.”
처음 본 최 소장은 40대 초반으로 보였으나, 상당히 깐깐해 보이는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Lv 61]
[최부철]
‘워우.’
깐깐할 만한 레벨이었네.
최 소장은 무려 고위 등선자로 분류되는 7층의 등선자였다.
“······특성이 연금술 계열이십니까?”
최 소장은 자못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 위아래를 훑어봤다.
“아, 예.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정확히는 <현자>라는 특성에서 파생된 전용 스킬이긴 하다만.
어쨌든 나도 연금술사로 분류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긴 하니 틀린 말은 아니지.
“흠. 따라오시죠.”
깐깐해보이는 최 소장을 따라 설화 클랜 연구소의 내부로 진입했다.
“전에 아가씨를 통해 확인한 자료는 요약본이고, 이게 연구자료의 진본입니다.”
최 소장이 건네주는 연구자료를 받아 들고 차분히 살펴보았다.
저번에 한가인이 보여준 것보다 훨씬 방대한 양의 자료들이 적혀 있다.
‘이게 다 이해가 되네.’
난 서류를 슥슥 넘기며, 어지간한 연금술의 지식이 없다면 이해가 가지 않을 내용들이 머리에 콕콕 박히는 경험을 체험했다.
“하준 씨, 가능하시겠어요?”
내가 서류를 넘기는 게 이해를 못 해서 대충 슥슥 넘기는 것으로 보였던 걸까.
한가인이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되묻는다.
“에. 충분합니다. 가능해요.”
요약본으로 보나 이걸로 보나 결과는 같다.
문제가 뭔지 확실하고 해결법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쉬이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흠.”
내 말에 최 소장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닌가요?”
“복장을 보면 연금술사가 맞는지도 모르겠는데···.”
“으음. 아가씨가 데려온 이유가 있겠지요.”
동시에 <현자> 특성 덕에 밝아진 귀로 저들끼리 쑥덕거리는 연구원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이거, 내가 너무 쉽게 말했나 보네.’
최 소장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최 소장 레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제법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강했을 거다.
그런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퍼붓고도 실패한 프로젝트를 웬 전투계열의 애송이로 보이는 청년이 와서 ‘아, 예. 쉽네요.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으니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 쉽다는 말은 않지 않았더냐?
‘그렇긴 한데, 지금 내 어조나 어투가 저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야.’
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그냥 실력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어차피 이 바닥, 실력만 있으면 지위고하 막론하고 존중받는 바닥이라는 걸로 알고 있거든.
세계 1위의 연금술사, 헤르마뇽 또한 굉장히 어린 나이로 알고 있다. 아마 나보다 어렸던가? 그런걸로 알고 있는데.
그 친구도 초기에는 어린 나이 때문에 굉장히 무시받았지만, 결국 실력으로 모두가 인정하고 존중하는 세계 최고의 연금술사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바로 준비해도 되겠죠?”
“···그러시죠.”
최 소장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실험실.
나는 실험실에서 구비된 재료를 확인했다.
‘강철 가루는 있고. 오, 강철풀도 있군. 마나 수정 가루도 있고···.’
과연 5대 클랜의 연구소라고 해야 할까.
어지간한 재료는 다 구비되어 있었다.
다만 내가 필요한 재료는 아직 부족했기에 최 소장을 향해 필요한 재료를 요청했다.
“철거미 거미줄과 은빛 나뭇잎. 그리고 빙하수가 필요합니다.”
원래 진짜 미스릴 같은 단단한 피부를 가지는 포션을 만들려면 더 상위급의 재료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건 양산은 힘들 거다.
그러니 딱 이들이 원했던 목표의 <강철 스킨> 정도 수준의, 그리고 양산이 가능한 수준의 재료만 있으면 된다.
“철거미 거미줄···. 허. 은빛 나뭇잎? 빙하수? 이런 게 필요하단 말입니까?”
척 보기에 내가 요구한 재료는 <강철 스킨 포션>과 연관이 없어 보이긴 했다.
그래서 그런지 최 부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예. 꼭 필요합니다.”
“···바로 구해드리지요.”
그는 내 눈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응하고 있다는 눈빛을 읽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있어 보이는데 저런 재료들을 추가한다고 뭐가 달라질진 모르겠네요.”
“이게 자신감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긴 하죠.”
“아···. 그래도 저 간절한가 봐요. 제발 저분이 성공했으면 싶어요.”
“수환 씨 말고도 여기 있는 분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저들의 목소리는 상당히 간절해 보였다.
3년간 실패했다더니.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인가 보다.
‘이거 반드시 원트에 성공해야겠네.’
혹시 실수로 실패라도 했다가는 저들의 실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거 괜히 부담되네.
자, 그러면 정신 집중해서 실수 없이 한큐에 성공해보자고.
***
설화 클랜의 클랜장 한상철.
그는 클랜장실에서 비서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가인이가 연금술사를 데려왔다고?”
“예.”
“호오.”
한상철이 턱을 쓰다듬었다.
저번에 한가인과 저녁 자리에서 <강철 스킨 포션> 프로젝트에 앓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그 소릴 듣고, 제 딴에 어디서 연금술사를 수소문해 온 모양이다.
‘기특하긴 하다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사실 그 누가 와도 성공할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시작부터 잘못 설계된 프로젝트.
왜 그렇게 확신하냐고?
‘헤르마뇽조차 고개를 저었으니 그 누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 사실 한가인에게 말은 안 했지만, 한상철은 인맥을 총동원해 전 세계 연금술사 1위라 불리는 헤르마뇽을 비밀리에 만나고 온 적이 있었다.
- 죄송합니다. 이건 저도 해법이 보이지 않네요.
헤르마뇽조차 방법이 없다고 선언한 프로젝트.
이건 의술로 치면 전설의 화타가 와도 못 살리는 불치병에 걸린 프로젝트였다.
‘만약 가인이가 데려온 자가 헤르마뇽보다 뛰어난 연금술사라면 희망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건 꿈같은 이야기.
애초에 망상에 가까운 소리였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망상이라도 좋으니 실낱같은 동아줄을 잡고 싶은 심정이로군.’
그가 얼마 전 자신을 닦달하던 투자자들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강철 스킨 포션>은 무려 10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자받아 진행한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과거 <하늘탑> 등장 전, 신약 개발에 평균 2.5~3.5조가 들어갔던 것보다 3~4배나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 프로젝트.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 시절 바이오 연구원들보다 <연금술사>라는 등선자들의 몸값이 더욱 비싸기도 했고, <하늘탑>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 또한 그 가격이 궤를 달리할 정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대신,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성공만 하면?
앞선 기회비용과 리스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영업이익을 거둘 수가 있다.
‘하지만 실패를 목전에 둔 지금, 설화 클랜은 자금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설화 클랜에서도 상당히 많은 돈을 직접 투자했다.
투자자들의 신용을 잃는 건 둘째치고.
설화 클랜이 투자한 자금이 회수가 안 되었을 때는 운용 중인 사업체 몇 개를 매각해야 할지도 모르는 판.
실패가 거의 명확하게 된 지금 이 시점에서.
한상철로서는 상당히 초조한 상황이기도 했다.
‘평소 기적을 믿지는 않지만···. 부디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군.’
***
부르르!
비커에서 기포가 올라온다.
<철거미 거미줄>이 <은빛 나뭇잎>과 마력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 저거 뭐예요?
“저 조합식에서 마력 반응이 나온다고요?”
처음에는 다들 반쯤 체념한 태도로 일관하던 연구원들의 얼굴에서 점차 놀라움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강철 스킨 포션>의 결합식과는 전혀 연관이 없어요.”
“처음부터 식을 바꾸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은데···.”
뛰어난 청력 덕분에 연구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다 들려온다.
난 그 말에 속으로 대답해 주었다.
‘걱정들 마시죠.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거든요.’
미리 준비되어있던 강철 가루와 강철풀, 마나 수정 가루 등을 따로 배합하기 시작한다.
이건 저들이 <강철 스킨 포션>의 성공 목전까지 갔다가 실패의 고배를 마셨던 과정.
“기존식은 그대로네요.”
“후우. 역시나인가···.”
뒤에서 들려오는 체념 어린 한숨들.
3년간 숱한 실패만 경험해 와서일까?
굉장히 초조해 보이는 기색들이었다.
‘사실상 3일 뒤에 프로젝트가 폐기라니까 더 초조하겠지.’
실제로 말은 안 해도 손톱만 계속 물어뜯고 있는 연구원들도 더러 있었다.
난 그들의 반응을 뒤로한 채, 조합식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그러면 이제 빙하수를 넣고.’
부르르르!
<철거미 거미줄>을 넣어두었던 비커에서 기포가 폭발적으로 치솟기 시작한다.
이대로 놔두면 마력 폭주로 이어진다.
하지만 그래선 되겠나.
‘현자의 연금술!’
파아아앗.
내 손에서 흘러나오는 <현자의 연금술>의 마력.
동시에 내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다.
내가 자랑하는 <마나 통제>의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부르르르르!
그와 함께 폭주할 것처럼 요동치던 마력 입자들이 고분고분 안정화가 되어간다.
- 성공이로구나!
알레온이 잘했다는 듯이 탄성을 터뜨렸다.
그래.
이제 이제 여기까지 왔으면 구부능선은 넘은 셈이었다.
‘이대로 합성을 진행하면 된다.’
앞선 과정보다 더욱 간단한 과정.
난 두 비커에 든 액체를 한 곳으로 섞었다.
부르르르르르!
그러자 다시 한번 요동치는 비커 안의 액체.
이건 <강철의 거미줄>이 녹아들 때처럼 마력 폭주가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다.
반대로 <마력 융합>이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고오오오오!
비커 안의 액체가 스스로 소용돌이치더니, 물 안에서 회오리를 만들어 낸다.
이 또한 성공으로 내달리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어? 어?
“두, 두 조합식이 결합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서, 설마?”
죽은 동태눈깔로 내가 실험하는 과정을 지켜보던 이들의 눈동자에서 기대감이 싹트기 시작한다.
난 그들의 시선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포션 병을 내밀었다.
“완성됐습니다. 강철 스킨 포션.”
포션 병 안에는 루비 같은 새빨간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정말··· 이게 완성이라는 겁니까?”
그때, 뒤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최 소장이 나섰다.
그 또한 기대 반, 불신 반이 뒤섞인 눈동자다.
난 여러 감정으로 일렁이는 최 소장의 두 눈을 바라보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완성됐습니다.”
“음. 확인해 보겠습니다.”
내 말에 최 소장이 낮게 침음하더니 내가 내민 포션병을 받아든다.
그리고 곧장 포션 테스트용 마력핵 위에 병 안의 액체를 쪼르르 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우우우우우웅.
마력핵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원래 실패했다면 아무런 반응도 없어야 했다.
지금껏 이들이 3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뭐, 뭐야.”
“서, 설마···!”
“진짜··· 라고?”
3년 만에 보는 마력핵의 반응 앞에 연구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찰나.
번쩍!
마력핵에서 환한 빛을 토해내며, 내가 조합해낸 <강철 스킨 포션>의 결과물이 발현됐다.
- 작가의말
(9/19) 연구원 대화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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