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금의환향(錦衣還鄕)(4)
34화. 금의환향(錦衣還鄕)(4)
우와아아아!
산속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귀한 의복들은 물론, 실용적인 여러 물건들과 더불어 화려한 음식들이 나오자 화전민들은 눈을 떼지 못하였다.
“촌장님이 부럽다!”
“아들 잘 둬서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사, 사천당가라면 그 오대세가에 속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잖아?”
화전민들 대부분은 경악하며 곤명 촌장을 향해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형님?”
어린 시절 어렴풋하게나마 곤산을 기억하고 있는 곤정이 다가갔다.
“나를 기억하고 있느냐?”
“희미하지만 잊혀지려고 할 때마다 부모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사정이 나아진다면 반드시 큰형을 찾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곤정 역시 감격한 눈으로 곤산을 향해 다가갔다.
곤명 부부의 딸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모든 가족들이 만나 해후를 즐기며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헌데 어떻게 사천당가까지 흘러가게 되었니? 분명 그 개방의 거지가 널 잘 키워주겠다고 했는데.”
곤산의 어머니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네?!”
그 말에 곤산은 놀라고 말았다.
알고 보니 그 거지는 개방의 소속도 아니었으며 그저 체구가 좋은 곤산을 굴려 어떻게든 착취할 계획뿐이었다.
‘그렇구나. 부모님께서도 속은 거구나.’
이제야 어느 정도 과거 사정을 깨닫게 된 곤산은 현재의 상황에 만족했다.
격한 감정이 진정되자마자 곤산은 곽의민을 가족들에게 소개하였다.
“이 분은 제가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곽의민 형님이십니다.”
곽의민은 곤산의 가족들과 통성명을 하며 정중히 인사를 했다.
동생의 가족은 곧 곽의민의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 맛있는 음식과 값비싼 비단옷까지, 모두 형님께서 사주신 것들입니다.”
“뭐야?!”
“아이고, 도련님!”
이 모든 것을 곽의민이 준비했다는 말에 곤명 부부는 곽의민이 정말로 지체 높은 도련님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겉으로 보았을 때 중원에서 보았던 어지간한 세가의 공자들보다 더욱 귀티가 흘렀던 것이다.
“별 말씀을. 언제나 곤산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약소한 보답일 뿐이지요.”
곽의민은 더 해줄 것이 없어 민망해하던 도중.
주르륵!
화전민 마을의 촌장을 맡고 있는 곤명의 뒤통수에 흐르는 핏줄기를 발견하였다.
“음?”
“아! 별 거 아닙니다. 저 곡림채 산적들이 쳐들어 왔을 때 살짝 스쳤을 뿐입니다.”
곤명은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하였으나 곤산이 웃으며 말하였다.
“아버지. 곽의민 형님께서는 무공 실력도 최고지만 특히 독공과 의술 실력은 당가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십니다. 명의입니다, 명의.”
그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켜세워주는 말일 뿐이라며, 아직 어린 곽의민의 의술 실력이 대단해봤자 얼마나 대단하겠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스윽!
곽의민은 거절하는 곤명의 뒤통수를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재생고를 꺼내들어 발라주었다.
상처는 얕았지만 제대로 처치를 하지 않으면 쇳독, 즉 파상풍(破傷風)이 생길지도 모른다.
특히나 산적들의 무기들이 녹슬고 비루했으므로 더욱 주의해야 했다.
“어깨에 약한 탈골(脫骨)도 있으시군요.”
곽의민은 동생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않았다.
진맥은 하지도 않고 슬쩍 바라보기만 했는데도 뒤통수의 상처를 눈 깜짝 할 사이에 새 살이 솔솔 돋아나게 만든 것은 물론,
파밧, 파바밧!
곤명이 만류할 틈도 없이 어깨를 향해 신들린 솜씨로 시침하였다.
이제 죽침이 아닌 질 좋은 은침으로 침술을 행하는 약선의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라?”
곤명은 위기감에 빠져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뻑적지근함이 커져가던 차였다.
헌데 곽의민이 순식간에 침술로 고통을 완벽히 잡으며 나아가 어깨가 돌아가도록 해주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시, 시원해!”
급기야 곤명은 시원함까지 느끼며 곽의민의 의술을 극찬하였다.
그 모습에 곤산은 자신이 다 뿌듯해하며 웃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형님 독공과 의술은 최고라니까요!”
곤산은 오늘 부족한 자신을 대신하여 체면을 세워주는 곽의민의 활약에 너무나도 기뻤다.
동생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곽의민도 마찬가지였다.
“상태가 위급한 환자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모두 부축하여 제 앞으로 데려오신다면 치료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때마침 구명단을 비롯하여 여러 약재와 환단을 구비하고 있었고 죽은 사람을 제외하면 심각한 중상을 입은 자는 드물었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설령 중상자라고 해도 약선은 능히 고칠 자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곽의민은 꼬박 반나절 만에 다친 화전민들을 모조리 치료하며 모두가 경악하고 만족하는 성과를 낳았다.
우와아아아!
화전민들은 탕약을 마시자마자 낫고 침을 맞자마자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가히 신선(神仙)님이시다!”
“전설의 명의께서 강림하셨어.”
“세상에, 우리까지 미천한 것들에게도 이런 귀한 의술을 베푸시다니.”
급기야 화전민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언제나 가난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있어 의술은 사치였고 탕약과 침은 부자들이나 경험하는 것이었다.
헌데 오늘날 곽의민이 치료를 해주며 그 손길과 회복을 느끼자 너무나도 기뻤던 것이다.
‘모처럼 오랜만에 느끼는 보람이다.’
화전민들이 기뻐하자 곽의민도 만족해하며 웃었다.
마치 전생 약선 시절로 되돌아 간 느낌이랄까?
곽의민의 활약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근방에 존재하는 약초 아니, 잡초라도 좋습니다. 뭐든지 따서 오시면 제가 쓸만한 약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매일매일 질병에 시달리는 화전민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 * *
곽의민이 모처럼 솜씨를 발휘하며 생존에 필요한 모든 약재를 만들어준 것은 물론,
“곡림채 산적들은 괴멸하였지만 혹시 또 침입자들이 다가올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다른 산적이나 불한당들이 들이닥칠 때를 대비하여 곽의민은 대응할 수 있도록 몇 가지 방비도 마련하였다.
낮에는 약재와 환단을 만들어주었다면 밤에는 독공을 익히지 않아도 던지기만 하면 독무를 생성할 수 있는 독의 환단을 만들어주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이 투구꽃의 꽃잎을 잘 빻아 농기구나 무기에 바른다면 매우 치명적인 독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스치기만 하더라도 마비가 오기 마련이죠.”
대응할 수 있는 독공의 강의를 해주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곽의민이 종횡무진으로 활약하고 있을 때 곤산은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었냐 하면 천만의 말씀.
“이 바위가 밭 정중앙에 갇혀 개척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만 빠진다면 좋을 텐데.”
화전민들이 일군 소중한 밭 정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
곤산은 그 바위에게 다가가 차분히 손을 털었다.
“하아아아아압!”
그리고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며 내공심법까지 사용한 끝에!
우드드득!
뿌리 깊은 나무처럼 밭 가운데에 깊이 박혀 있던 바위는 보기 좋게 쏙 빠지고 말았다.
그 바위의 크기가 어찌나 크던지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집채만 한 수준이었다.
우와! 우와아아아!
말 그대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산을 뽑을 것만 같은 강한 괴력을 발휘하는 곤산을 지켜보며 화전민들은 환호를 터뜨렸다.
특히 아직 어린 곤정은 또래 친구들을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봤지? 우리 큰형이 이렇게 세다고!”
일찍이 떠난 곤산을 대신하여 어린 동생들의 맏형 노릇을 해오던 곤정이었다.
그는 언제나 든든한 형님을 바라고 있었는데 곤산이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곤정의 말에 또래 친구들은 부러워하며 코를 흘렸다.
곤정이 기뻐하기는 일렀다.
“아버지, 그리고 정아.”
곤산은 바위를 뽑아 내던진 다음, 가족들을 소집했다.
그가 구태여 아버지와 곤정만 호출한 까닭은 따로 있었다.
“제가 자주 마을에 들릴 거지만 이곳에 머물면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정이에게 제가 배운 무공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뭐라?”
“형님. 진짜입니까?”
그 말에 촌장 곤명은 놀라고 곤정은 기뻐하며 팔짝팔짝 뛰었다.
“네. 두 사람께는 제가 배운 태력권법과 군자보를 알려줄 계획입니다.”
곤산이 말했다.
이 무공은 본래 곤산의 것이 아닌 그를 무척이나 아끼는 팔방군자 당일심이 낭인 시절 발휘하던 무공이었다.
그래서 혹자들은 곤산 네가 주인도 아닌데 함부로 무공을 전수해줘도 되겠느냐 생각하겠지만 곤산은 경솔한 인물이 아니었다.
-곤산, 태력권법과 군자보는 현재 사장된 무공으로 나 또한 젊은 시절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단다.
그러니······ 별로 대단하지 않은 무공이나마 네 뜻대로 처분해다오.
이왕이면 너처럼 이 무공이 간절하게 필요했던 자들에게 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구나.
당일심은 그야말로 군자(君子)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해당 무공을 아까워하거나 폐쇄적으로 굴 수 있는데도 이제 그 무공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곤산이니 후인들을 물려주라며 의사를 밝혔다.
‘당일심 교관님. 제게 알려주었던 그 소중한 무공을 아무에게나 전파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제가 목숨처럼 아끼는 아버지와 곤정 동생에게만 전수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곤산의 계획이었다.
아버지는 해당 무공을 익히며 기본 호신(護身)의 방비를 할 것이고 아직 어려 무공 입문에 용이한 곤정은 태력권법과 군자보의 후인으로 삼기 제격이었다.
“다른 화전민 분들에게는 기본 무공을 알려주겠습니다.”
곤산은 가족들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화전민들에게도 기초 무공을 알려주어 비상 사태시 제대로 대처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곤산과 곽의민의 활약으로 인해 보잘 것 없던 화전민 마을은 어느새 생기를 찾게 되었으며 사망자를 수습한 채 다음 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다른 행운이 마을을 찾았다.
“찾았다!”
“산적들이 놓고 간 마차를 찾았습니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산적들이 있지 않나 곽의민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속 낱낱이 살피고 있을 무렵이었다.
산적들이 남기고 간 마차를 노획하였는데 이럴 수가.
“제법 많이 해먹었잖아?”
곽의민은 산적들의 마차에 즐비한 여러 곡식과 자질구레한 은자들, 무구들을 보며 기뻐했다.
알고 보니 곡림채 산적들은 화전민 마을을 재미삼아 습격한 것보다도 그 터전을 차지하여 새로운 산채를 꾸릴 계획이었다.
말 그대로 이전을 꿈꾸었으니 가지고 있던 모든 재화를 마차에 실은 채로 이동했던 것이다.
산적들이 알뜰살뜰 모았던 그 재물과 재화들은 결국 피해를 입은 화전민 마을 운영 자금으로 쓰이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화전민들의 촌장, 곤명은 날이 갈수록 번영하고 풍요로워지는 마을을 바라보며 곽의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하는 것은 곤산도 마찬가지였다.
형님께 미안하고 고마워 고개를 들 수 없다는 눈치였다.
“곤산의 아버지라면 제 아버지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다른 아들이라 생각하시고 편히 받아주십시오.”
곽의민은 거듭 웃으며 마차에 모든 재화는 물론,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금자마저 나눠주었다.
그리고 곤산은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내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형님을 지키겠다. 곽의민 형님을 위해서라면 이 목숨도 내어줄 수 있어.’
남자는 자신을 제대로 알아주고 또 자신의 가족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해주는 사람을 따르는 법이다.
곤산은 이전에도 곽의민을 신뢰하며 좋아했지만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 그를 위해서라면 대신 죽을 용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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