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아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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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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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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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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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DUMMY

달빛 내리는 설원, 맹렬히 질주하는 기차, 그것을 뒤쫓는 끔찍한 괴물의 무리.

그리고 한 남자가 있었다.

폭발이 남긴 눈안개 속에서 그가 내달릴 때마다 은빛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라파엘라의 시점에선 그 반짝거림만 겨우 볼 수 있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야.”


그녀는 양쪽 눈에 마력을 불어넣어서 시력을 강화시켰다.

마법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아주 기초적인 마력행사였지만 효과는 탁월했다.

카메라 렌즈의 배울이 올라가듯이 확대된 시야로 그 남자를 포착했다.

하지만 제대로 쫓아갈 수가 없었다.


“윽··· 뭐가 저렇게 빨라!?”


“이 거리에서 눈으로 볼려고 하면 머리 터질걸.

내가 망원경 빌려줄게.”


비서스는 자신의 보급품 주머니에서 망원경을 꺼내 건넸다.

라파엘라는 눈을 질끔 감으며 망원경을 쥐었다.


“감사합니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렌즈 너머에 있는 그를 포착할 수 있었다.




눈밭에 뭔가 있다.

마물들이 알 수 있는 건 고작 그정도였다.

인간들의 성가신 무기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력이나 체온 등 가시광선 이외의 것으로도 사냥감을 포착할 수 있었지만 뚜렷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별 거 없겠지.

무기나 마법이 없는 인간은 보잘 것 없이 나약하다.

뭉쳐 있으면 위협적이지만 한 둘 정도는 신경쓸 필요없다.

한시라도 빨리 저 달리는 철덩어리 안에 있는 거대한 마력원을 포식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성가신 공격도 멈췄겠다, 속도에 박차를 가하기 의해 몸을 앞으로 기을인 그 순간이었다.

달빛이 번뜩였다.


“키약!?”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리의 가장 앞에 있던 동족이 돌연 기울어지더니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깔끔하게 잘려나간 상체가 눈밭을 굴러다녔다.

속도를 잃은 동족의 시체는 그대로 고꾸라져서 순식간에 무리에서 이탈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지?

인간의 무기 따위로는 저런 식으로 동족을 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마법을 부리는 인간이 숨어 있는 걸까?

하지만 마력 따위는 감지할 수 없었다.

마법을 부리면 필연적으로 마력의 요동이 느껴지기 마련.

그렇다면 대체 뭐란 말인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상황이 움직였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눈안개를 뚫고 순백색의 불빛이 튀어나왔다.


“키아아악!!!”


그것은 명백한 인간이었다.

자신들의 절반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인간 말이다.

그것이 고작 무기 하나만 손에 쥔 채 자신들을 향해 뛰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동족이 살해당했다.

찰나였다.

또 다시 동족 하나가 머리를 잃고 눈밭을 나뒹굴었다.

바로 앞에서 보고 있었음에도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알 수 없었다.

마물의 무리는 그제서야 상황을 깨닫고 추격을 멈췄다.

서로에게 등을 내어주고 응전 태세를 취했다.

희미했던 눈안개조차 모두 날아갔다.

이 황량한 설원에서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달빛은 마물의 편이다.

기습 같은 걸 당할 리가 없다.


“뭐야 밀집대형이냐?

마물이 전술을 이해하는 날을 내 눈으로 볼 줄이야.

정말이지 짜증나는군.”


달빛 아래에서 습격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작 한 명의 인간이었다.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비서스 선배··· 저 마물들, 실은 엄청 약하다거나 그런 겁니까?”


“키가 5미터가 넘으면 그냥 동물이라도 엄청 강하지 않을까?

덩치도 저렇게 큰데?”


“그렇긴 합니다···”


“갑피도 엄청 튼튼튼해서 권총탄 같은 걸로는 흠집밖에 안나.

소총도 각도 제대로 잡고 관절부에 화력을 집중해야 부술 수 있다고.

그리고 엄청 빨라.

아까 봤지?”


“제가 총기류는 잘 몰라서 와닿지는 않지만 검으로 벨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응. 참고로 대장이 쓰는 검은 특별한 거 없는 보급품이야.

대장 전용이라서 일반 도검류보다 튼튼하지만 저런 건 못하지.”


“그럼 순수하게 저 사람 실력이라는거군요.”


비서스의 말대로면 마물의 신장은 5미터.

저 남자가 아무리 키가 커봤자 인간이다.

마물의 절반도 안된다.

그걸 단순한 도약으로 극복했다.

총알처럼 튀어 올라서 일격에 마물의 머리를 벴다.

허공에 떠오른 상태에서도 자유롭게 몸을 움직여 마물들의 공격을 피했다.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마물 하나가 죽었다.

끔찍했던 마물들이 어느새 시체만 남긴 채 침묵했다.

라파엘라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망원경을 내렸다.


“저게 진짜 사람······?”


괴물 같은데.


마지막 말만큼은 가까스로 집어 삼켜서 머릿속에만 남겨뒀다.


“아마 아닐걸.”


“예!?”


“···농담이니까 그렇에게 놀라지는 말아주겠니.”


“예···”


두 사람과 몇 명의 마실리스 군은 기관차 안으로 돌아갔다.

몸을 녹이며 귀환하는 남자를 기다렸다.

달려서 온 것은 아니고 주변을 엄호하고 있던 차량을 탄 것이다.

기차의 속도를 천천히 낮추었기 때문에 사고 같은 건 발생하지 않았다

남자가 기관차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비서스가 경례를 올렸다.


“처리는 내가 했으니까 보고서는 너희가 올려.

특이사항은 변종 프레데터가 밀집대형 전술을 실행한 것 같은 흔적을 발견했다.

기술국에 알려서 즉시 상황을 파악하라고 전해.”


“뭐!? 그정도 사안이면 그냥 대장이 다이렉트로 각하께서 전달하는 게 빠르지 않아?”


“그건 당연히 할 거다.

하지만 절차대로 보고를 올리는 건 다른 얘기야.

정확한 사료를 위해서 문서로 남길 필요가 있으니까.”


“라져~ 그보다 손님 왔어.

서로 인사는 한 거야?”


“넷?”


비서스는 아주 친근한 태도로 라파엘라의 팔을 잡아당겼다.

라파엘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서로 얼굴을 익힌 사이인 건 맞지만 어디까지나 아카데미아 학생회의 선후배 관계일 뿐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비즈니스 관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고보니 아직 제대로 인사도 못했군.”


남자는 선뜻 악수를 청했다.

라파엘라는 어떨결에 악수를 받아주었다.


“아이젠 폰 마실리스다.

만나서 반갑다.”


“라파엘라 데 라피아드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응?”


시선이 부딪쳤다.

라파엘라는 덜컥 겁을 먹고서 눈을 돌리고 싶어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마치 그의 눈동자에 강력한 중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계속 그 눈동자를 응시했다.

맑고 푸르며, 그러면서도 투명한 그의 푸른 눈동자를.


“잠깐 마실리스···?”


“네가 라오라 경의 딸이구나.

생긴 건 하나도 안 닮았군!”


“엣? 아버님을 아십니까?”


“그야 라피아드하고는 합동 훈련도 종종 했으니까 얼굴을 알고 있지.

그런데 눈동자가 똑같구나.”


라파엘라가 그의 눈동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마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것 같다.”


“······”


대꾸는 없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처음 보는 사이에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어디까지나 라파엘라의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그녀의 뇌는 완전히 작동을 멈춘 상태였다.

넋이 나갔다고 볼 수도 있었다.

반면 아이젠은 딱히 그런 기색은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그 사이에 껴서 눈치를 보고 있던 비서스였다.

그녀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끼어들었다.


“두 사람 다 뭐 해 쳐다만 보고.”


“아니,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럼 손을 놓지? 그리고 가서 쉬어.

도착하려면 아직 반나절도 넘게 남았잖아.”


“중간에 속도를 올려서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꽤 걸리니까 가서 쉬도록.”


그제서야 아이젠은 손을 놓았다.

그리고 무심하게 등을 돌리고는 혼자 기관차 밖으로 나갔다.

라파엘라와 비서스, 그리고 그 밖에 마실리스의 군인들은 애매한 침묵을 유지했다.




아이젠의 말대로 기차는 상당히 긴 시간을 달렸다.

창 밖의 풍경은 여전히 황량한 설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라파엘라는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잠을 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뭔가······ 뭔가네.”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기쁜 것도 아니었다.

너무 애매해서 자기 자신조차 자신의 기분을 이해하기 어려운 오묘한 상태였다.

그녀가 말한대로 뭔가, 뭔가였다.

기관차에서 돌아온 뒤부터 계속 이런 상태였다.

머릿속에서 깊은 생각이 떠돌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계속 시체처럼 넋을 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라파엘라의 마음을 움직인 건 다름아닌 본능이었다.

즉 배고픔이다.

배에서 격렬한 소리가 울린 것이다.


“그러고보니 어제 밤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구나···”


주린 배를 부여잡는 것도 잠깐이었다.

다시 멍하니 넋을 놓았다.

하지만 한 번 느껴지기 시작한 허기는 무시할 수 없었다.

소리가 점점 커졌다.

새벽에 깬 갓난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걷잡을 수 없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더 이상 허기를 견딜 수 없게 된 라파엘라는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으윽··· 안되겠다.

뭐라도 먹어야겠어.”


잘은 모르지만 뭐라도 있겠지, 싶은 마음에 무작정 객차를 나섰다.

다행히 군인들이 계속 돌아다니고 있어서 식당을 찾는 건 쉬웠다.


“뭐야 너도 끼니를 거른거냐?”


문제는 식당에 아이젠도 있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시간인 만큼 다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 있지 말고 와서 앉아라.”


뭣보다 같은 귀족으로서 그냥 지나치는 건 결코 예의가 아니었다.

라파엘라는 속으로 울음을 지으며 아이젠의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불편하게 했다면 미안하다.”


“아, 아닙니다! 불편하다니요! 그런 건 결코 아닙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군.

표정이 영 안 좋아 보여서 말이지.”


“제 표정이 안 좋습니까···?”


라파엘라는 질문을 하고서도 스스로를 비난했다.

자기 자신의 표정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다니!

하물며 마실리스 같은 대귀족에게!


“안 좋고 말고.

친족 장례식에 참석한 듯한 얼굴을 하고 있잖냐.”


“엄청나게 구체적이군요···”


“들은 게 없어서 사정은 잘 모른다만 썩 유쾌한 일로 온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마실리스가 관광지 같은 곳은 아니잖냐.”


아이젠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쓱 들었다.

식사를 들고 있는 라파엘라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다가 시선이 마주치기 전에 다시 고개를 처박았다.


“학자나 마법사에겐 좋은 곳이지만 일반인에겐 유쾌한 곳은 아니다.

평민이든 귀족이든.

좌우지간 매일같이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야.

뭘 구경하러 올만한 곳은 아니지.”


라파엘라는 몇 시간전에 있었던 전투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것을 정말 전투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의 눈엔 꼭 한 편의 영화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실성이 없었다.


“하지만 안전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야.

그러니까 여기에 머무는 동안에는 마음 편히 지내도 돼.”


“그러고보니 저는 언제까지 머물면 되는 겁니까?”


“뭐?”


“저도 오늘··· 아니 이제 어제라고 해야겠군요.

어제 아침에 급하게 온 거라서 들은 바가 없습니다.”


아이젠은 심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망명이라도 온 것 같군······”


“마, 망명이요?

그 말을 들으니 꼭 틀린 말은 아니네요.”


“뭐?”


아이젠은 벙찐 얼굴로 라파엘라를 쳐다봤다.

그 얼굴이 너무 바보 같았다···

아니 지금까지 보여준 분위기하고는 너무 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라파엘라는 덜컥 웃음을 터트렸다.


“실은 사고를 쳤습니다.”


“사고를··· 쳤다고?”


“예. 귀족으로서, 여성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실수였습니다.”


라파엘라의 눈동자에 서글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반면 아이젠의 눈동자가 덜덜 떨렸다.


“그··· 미안하다. 내가 실수했군.”


“예? 뭐가 말입니까?”


“아니, 아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마실리스에는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러도 된다.

평생 있어도 돼. 내가 허락하마.”


“예? 평··· 생?”


이번엔 라파엘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묘하게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 것 같았으나 두 사람은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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