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아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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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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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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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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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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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DUMMY

라파엘라는 마실리스 성곽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당분간은 달리는 훈련만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대공의 이름 아래, 난폭하거나 위험한 훈련은 전면적으로 금지된 덕분이다.

급격하게 차가워진 마실리스의 가을 바람을 느끼며 걸음을 늦췄다.


“올 때도 추웠지만 지금은 한 겨울만큼이나 춥군.

아직 9월 밖에 안됐는데도 이 날씨면 진짜 겨울에는 얼마나 추울련지.”


물론 추위 같은 건 라파엘라한테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다.

기계든, 돌이든, 나무든 극한의 추위에서는 망가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인간은 오죽할까?

마실리스의 인간들은 이 추위와 마물의 공세 속에서 어떻게 생존했을까?

한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했다.


“그보다 먼저 요거스 교단 수색이 먼저겠지.

하아··· 떠올리기만 해도 위가 쓰라려.”


어느날 갑자기, 변종이라고 불리는 마물들이 나타났다.

변종들은 마물들의 생태계에서 크게 벗어난 형태로 변화했었다.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작한 것처럼.

마실리스와 셀레스티아, 양국이 필사적으로 조사했지만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돌연 라파엘라가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마왕이라는 단어와 함께 요거스 교단이 인위적으로 개입했을 것이란 가능성을 말이다.

두 국가는 이제껏 자연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만약, 그것들이 인위적인 개조로 태어난 진짜 괴물들이었다면?

그 가능성을 가지고 아이젠이 작전을 구상했다.

결행은 앞으로 2주 뒤, 10월이 시작되기 전부터 1주일 전까지다.

당연히 라파엘라도 그 작전에 참여한다.

나아가서 회의에 참석해 작전의 발상과 착안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현장에서도 뛰어야 한다.


“이렇게 뛰기만 한다고 정말 도움이 될까···

체력이 붙은 건 맞지만··· 결국 싸우려면 마법을 갈고 닦아야 하는데.”


여동생을 강사로 붙여주겠다.

그렇게 제안하고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여동생 분은 작전에도 참여한다고 했으니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기대감과 초조함, 그리고 불안감까지.

갖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끝없이 의심하고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황은 계속 흘러가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게 다 아이젠의 정신나간 추진력 덕분이다.

허나 생각한다고 해서 뭔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결국 한숨을 크게 내쉬고 다시 뛰었다.

숨이 차오르니 잡념이 사라졌다.

더욱 속도를 내서 성곽 밑으로 내려갔다.

마실리스 군이나 온갖 병기들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서로에게 별로 관심을 주지 않는 이상적인 관계였다.

그대로 시내를 향해 달렸다.

가장 가까운 시내까지 2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렸다.

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흐엑··· 흐엑···”


호흡에 필요한 산소와 달아오른 체온은 마력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터덜터덜 허수아비처럼 발을 옮기며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소위 함바식당이라고 불리는, 군인이나 노동자들을 위해 마련된 뷔페였다.

이곳에서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라파엘라의 하루 루틴 중 하나였다.

귀족, 그것도 공작가의 영애가 발을 들이기에는 더 없이 누추한 곳이었지만 당장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은 상태에서 그런 것을 가릴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가장 가까운 식당은 함바가 전부지만.


“아이고, 젊은 아가씨 오늘도 왔네?

저기 자리 비워뒀으니까 조금만 쉬고 있어요.

금방 갖다 줄게~”


라파엘라가 들어서자마자 카운터를 보는 직원부터 얼굴을 알아보았다.

식당 안은 군인들과 성벽 노동자들로 들끓었다.

10명 가까이 되는 직원이 모두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꼭 한 자리만 비어 있었다.

거기가 바로 라파엘라의 자리였다.

시선이 끌리기 전에 재빠르게 발을 놀렸지만 그런 걸로 감춰질 만한 외모가 아니었다.

그녀가 지나가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렸다.


“뭐야 진짜 왔네!?”


“거봐 임마!

내가 오늘도 온다고 했잖아.

오늘 점심은 네가 사는 거다 알겠냐?”


“이봐 아가씨!

오늘은 좀 덜 힘들어 보이는데 그새 또 체력이 붙은 거 아냐?”


“얘야··· 허벅지가 말처럼 튼실해졌구나···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만지게 해다오···”


“오늘은 아가씨가 좋아하는 와인이 잔뜩 들어왔다고!

전에 어떤게 맛있는 건지 알려준다고 했잖아!

기억하고 있지?”


온갖 환대를 받았다.

라파엘라는 얼굴이 폭발할 것처럼 새빨개져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칫했다 가는 물리적으로 폭발할 수도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필사적으로 심호흡을 했다.


“으으아아아 배고파아아···”


하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어쩔 수 없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번개같이 고개를 들었다.

최대한 품위를 지키며,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국에 밥을 말았다.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은 탄수화물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었다.

나트륨과 감칠맛으로 범벅이 된 뜨끈한 고기 육수를 한 술 떠서 먹으니

강행군으로 말라 비틀어진 입천장에 스며들고 혓바닥을 유린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고기의 감칠맛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비너스 가문의 영지에서 나온 쌀로 만든 적당히 식은 밥이 고기 육수를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밥 알갱이 속으로 뜨거운 육수가 스며들며 알갱이 깊은 곳까지 퍼져 나갔다.

적당하게 풀어진 밥알을 퍼서 입안에 넣으니 달콤하고 짭조름한 탄수화물 덩어리가 온 입속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밥을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품위와 체통을 지키며 마셨다.

밥 한 공기, 국 한그릇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미 여러 그릇이 준비되어 있었다.

라파엘라는 고급스러운 손동작으로 다음 그릇에 손을 댔다.

그때부터는 반찬에도 시선이 갔다.

아무렇게 썬 두툼한 고기조각을 감자와 함께 달콤짭짜름한 소스에 볶은 고기볶음.

시큼하고 짠 맛이 인상적인 마실리스의 특산물과 각종 나물 무침들이 가득했다.

여전히 반찬들의 이름은 몰랐지만 맛은 있었기에 거부감 없이 먹었다.


“이야··· 진짜 잘 먹네.

그렇게 맛있어요?”


“웅! ······응?”


어느새 앞에 누가 앉아 있었다.

라파엘라보다 어린 소녀였다.

군인이나 성벽 노동자는 아니었다.

식당 직원은 더더욱 아니었다.

척 봐도 귀하게 자란 티가 났으니 분명 마실리스 귀족 중 한 명일 것이다.


“이 시간에는 여기에 있을 거라더니 진짜네요.

언니는 매일 매일 똑 같은 루틴대로 행동하는 거예요?

나 같으면 지루해서 그렇게 못할 텐데.

밥 먹고 일어나는 시간 정도만 맞추면 충분하지 않나?”


라파엘라는 입 한가득 품고 있던 밥을 급하게 삼키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 크흠. 누구 십니까?”


“아··· 일단 식사부터 끝내고 얘기하죠.

저도 아직 점심 안 먹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전체불명의 소녀와 함께 동석을 하게 되었다.

라파엘라는 불편함 속에서도 주어진 음식들은 전부 먹어 치웠다.


“뭔가 이것저것 아픈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잘 먹네요.

오빠가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아픈 사람이라니요... 그보다 오라버니라는 분이···”


“여긴 좀 시끄러우니까 나가서 얘기할까요?

소화도 할 겸 걷죠.”


소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먼저 일어났다.


“아··· 누군지 알 것 같네.”


소녀의 행동거지를 보니 당장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사람이 맞을 것이다.

그녀의 말한 대로면 그녀는 라파엘라를 찾아다녔다는 뜻이니까.


“여기 산책하기 좋죠?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군수공장 쪽이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사람이 없으니 멍 때리기 좋아요.”


“맞습니다.

길을 가는데 누가 없다는 건 좋죠.

쳐다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쵸.

누가 쳐다보면 괜히 불편하죠.

게다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정말 귀찮아요.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없고.”


“맞습니다.

그냥 무시했다가는 나중에 주변에서 무슨 말을 들을지···”


뒤에서 씹어대듯이 앞에서도 은근히 말을 흘리며 사람을 공격하겠지.

주변에도 악담을 퍼트리며 맘편하게 비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힘이 있다면 노골적으로 못하겠지만, 힘이 없다면 그저 물어 뜯길 뿐이다.


“저는 뒤에서 씹어대는 사람이 있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언니는 라피아드 가문 후계자라고 들었는데, 언니 같은 사람도 막 씹어대고 그래요?”


“씨, 씹어댄다는 표현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이 많으니까요.

아카데미아 같은 곳에선 어른들이 없으니 작용하는 알력도 달라서 저러고 꼭 떠받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도가 지나치지만 않으면 어른들도 그냥 넘어가는 편이고요.”


“네? 그래도 졸업하면 끝 아니에요···?

공작이면 왕하고 입지가 비슷한 수준 아닌가요?

그런데도 막 그··· 하여튼 괴롭히고 그래요?

후환이 두렵지 않나···?”


그 거침없는 질문에 잠시 라파엘라의 뇌가 오작동을 일으켰다.

초점 없는 눈이 소녀를 응시했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어쩌면 나중에 두고보라는 식으로 버텼을지도 모르겠군요.

졸업하고 나면······”


졸업하고 난 뒤를 상상하며 그녀는 사납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갑이니까.”


“와우······ 그래도 그게 맞죠?

괜히 봐주면 봐주는 대로 체면이 안 서니까요.”


“그래도 되도록이면 그 전에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 뭐냐.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손으로 직접 끝을 내고 싶습니다.”


“직접 패고 싶다는 뜻인가요?”


“······ 그건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오빠한테 물들었네···.”


“그보다!

아직 자기 소개도 못한 것 같은데 일단 서로 인사라도 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 맞다 그러네요. 아직 통성명도 안했네요.”


두 사람은 나란히 걷다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라파엘라는 먼저 악수를 건넸다.


“라파엘라 데 라피아드입니다.”


“스텔라 셀레스티아··· 그리고 폰 마실리스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라파엘라 언니!

오빠한테 얘기 들었을 때부터 만나보고 싶었어요.

몸을 오빠처럼 쓴다면서요?”


“부탁이니 제발 표현 좀······”


“마력을 사용해서 직접 상처를 회복하는 걸 말하는 거예요.

그거 원래 인간은 못하는 짓이니까요.”


“치유 마법하고 같은 것 아닙니까?”


“근본적인 부분에서 완전히 달라요.

길가에서 설명하긴 좀 그런데··· 어디 카페라도 갈까요?”


“여기서 가장 가까운 카페는 2시간 정도 걸어야 합니다.”


“······까짓 거 걷죠 뭐.”


그렇게 5분 정도를 걸었다.


“제가 그냥 오빠 부를게요.”


스텔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전화를 꺼냈다.

전화가 끝나고 10분 정도 지났을 때, 도로 끝에서 전차 하나가 굴러오고 있었다.

전차의 뚜껑이 열려 있었는데 위에는 사람이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젠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그는 도로변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스텔라를 보더니 버럭 소리쳤다.


“야 임마!

비상 전화를 그렇게 함부로 쓰지 말랬지!”


“뭐래.

그럼 일반 전화로 걸 때 좀 받던가!

맨날 부재중이면서!”


전차는 두 사람 앞에서 멈춰섰다.


“뭐냐? 라파엘라하고 같이 있었냐?”


“응! 지금 카페에 가려고 했어.

가장 가까운 곳도 2시간 정도 걸어야 한대.”


“그래서 부른 거냐···”


스텔라는 아주 익숙하게 전차에 올라탔다.

반면 라파엘라는 우물쭈물한 채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대관절 올라가는 방법을 몰랐다.


“에휴··· 뭘 멍하니 있냐 너도 올라와야지.

전차를 뛰어서 따라잡을 셈이냐?”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젠이 손을 뻗었다.

라파엘라는 자연스레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았다.


“소공작께서는 따라잡지 않습니까.”


“그건 나니까 가능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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