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굴의 아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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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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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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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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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마실리스는 춥고 척박하다.

라파엘라가 처음에 그 말만 들었을 땐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다.

춥고 척박해봐야 얼마나 힘들겠는가?

다 사람 사는 곳인데.

기차가 설원을 헤치고 나아가 마실리스의 관문이 보이기 전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와······ 저게 대체 무슨···”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도 없이 솟아 오른 산이 보였다.

산은 새하얗게 물들어 있었고 그 봉우리는 구름에 가려져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용의 척추처럼 뻗어진 산맥이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져 있었으며 인간의 영역은 그 밑에 있었다.

산에 기대듯이 벽이 세워져 있었다.

눈으로는 그 크기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흑회색으로 물든 성벽에 드문 드문 구멍이 나 있었으며 그곳엔 병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낮은 곳에는 거대한 관문이 있었는데 기차는 그곳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기차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했는지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소리를 토해내며 관문이 움직였다.


“어떠냐? 대단하지?”


“예··· 엄청납니다.

저걸 대체 어떻게 지은 겁니까?

아니, 저것만큼 거대한 댐 같은 것도 있으니 짓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겠죠.

대체 어떻게 유지하는 겁니까?”


“마실리스의 모든 백성이 동원되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천연 자원도 풍부하고 뭣보다 1년 내내 마물을 사냥하니 자금이 부족하지도 않아.”


말만 들으면 마실리스는 지상 낙원 같은 곳이다.

영지의 모든 이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있고, 자원과 돈이 풍부하다니.

요즘 같은 세상에 이만큼 좋은 나라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없지 않나?

그러니 마실리스도 그런 나라는 아니란 소리다.


“물론 그렇게 해도 무조건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내가 어렸을 때도 한 번 관문이 돌파 당해서 시내까지 마물이 쏟아져 나온 적이 있으니까.”



“예!?”


아이젠의 말을 듣고 있던 라파엘라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성벽을 바라보았다.

마력으로 자신의 시력을 강화시켜 성벽의 외부를 자세하게 살폈다.

성벽 곳곳에 뚫린 구멍, 요컨대 초소에는 어지간한 병기는 모두 있었다.

그리고 성벽 꼭대기로 올라가면 곡사포라던지 고정포 같은 화력 병기도 준비되어 있었다.

지금 실시간으로 불을 뿜어내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각하께서 어렸을 때라고 해도 저런 병기들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대체 어떻게 뚫린 겁니까?”



“각하?”


“예?”


라파엘라는 뭐가 문제인지 몰라서 고개를 돌렸다.

아이젠은 애매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분이 나쁜 건지, 아니면 놀란 건지 어쩌면 화가 난 건지도 모르겠다.

라파엘라는 그제서야 아차 싶었지만 아이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굳이 작위에 우열을 나눈다면 대공 쪽이 더 높긴 하겠지만 유의미한 차이는 없잖나?

그렇게까지 극존칭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듣자하니 아멜리아의 후배라면서?

그럼 나보다 한 살 많다는 건데 그냥 편하게 불러라.”


“아멜리아··· 아 비서스 선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존대할 필요가 없대도.”


“아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이게 편합니다··· 습관이 되어서 말이죠.”


“그러냐? 그럼 네가 존대하는 입장으로서 충고 하나만 해도 되겠지?”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귀족이라면 권위를 놓지 마라.

너나 나나 비록 후계자에 불과하지만 귀족임에는 틀림이 없다.

무릇 귀족이라면 설령 남작이라고 해도 고개를 숙이면 안 된다.”


“아무리 그래도 남작 정도면 각하라고 존대를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존대를 하는 것과 고개를 숙이는 게 어떻게 똑같다는 거냐!”


아이젠이 덜컥 소리를 질렀다.


“힉!?”



“분명 말하는 것에 있어서 존대라는 건 상대를 높이는 것이지.

존대라는 것 존중에서 나오며, 존중이란 인정에서 비롯된다.

허나 고개를 숙인다는 게 뭐냐?

굴복하고 복종하겠다는 뜻이 아니냐?

후일을 위해 잠시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라면 모를까, 너에게선 그런게 느껴지지 않는다.”


“윽···”


“어디까지나 내 직감이니 넘겨짚은 걸 수도 있겠지만···

라오라 경의 의중이 엿보인 것 같군.”



아이젠은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보고만 있던 라파엘라는 죽고 싶을 정도의 울적함을 느꼈다.

마음 속에서는 이미 엉엉 울고 있었다.


“널 배려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생각이었다만 생각이 바뀌었다.

라피아드에서 이 먼 곳까지 대체 무슨 이유로 온 거냐?”



“그건······”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을, 아카데미아에서의 기억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머리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며.

마치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 입을 묶었다.


“······들으려고 하면 들을 순 있다.

내 팀원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너하고 같은 아카데미아에 다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겠다.

언젠가 네 입으로 말할 수 있게 해주마.”


“넷···?”



목소리가 꽤나 살벌해서 진짜로 눈물이 튀어나왔다.


“넌 아무튼 근성이 부족하다.

하지만 뭐··· 나도 사람이니 오늘부터 바로 훈련을 할 수는 없겠지.”


“예??? 뭐라고요??”



“일단 손님으로 온 것이니 아버지부터 뵈러 가는 게 우선이지.

짐은 얼마나 있나?

사람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해라.

아니다 그냥 몸만 움직여라.

나머진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하지.”



“아니 그럴 필요는 없···”


“시끄럽다!

지금 너 같은 녀석을 공작가의 영애라고 소개하면 귀족 전체의 위신이 떨어진다!”


아이젠은 그렇게 일갈하며 라파엘라의 등을 세게 후려쳤다.


“컭!?”



뼈가 삐그덕 거리는 불쾌한 소리와 함께 갈비뼈 안쪽이 크게 울렸다.

라파엘라는 마른 기침과 함께 침과 눈물을 토해냈다.


“우선 그 정신 머리부터 뜯어 고쳐주마.

따라와라! 우선 아버지에게 인사부터 하겠다!”



따라오라고 말한 주제에 억지로 팔을 잡아 끌었다.




아이젠이 말한 아버지, 즉 마실리스 대공은 마실리스 중심에 있는 성에 위치해 있었다.

거리가 상당히 되었기에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러는 내내 아이젠은 라파엘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반면 라파엘라는 지난 밤에 먹은 음식들을 모조리 토해낼 뻔했다.

마실리스의 모든 도로가 인도하는 곳, 마실리스의 성.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 마실리스 대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 갈 때까지 쭉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했다.

대공과 대면할 때까지 계속.


“······ 그래서 분위기가 그 모양인 거냐···?”



“예.”


“······”


마실리스 대공, 자카르 폰 마실리스 앞에 섰다.

그는 라파엘라의 생각과는 다르게 굉장히 푸근한 인상의 사내였다.

키도 크고 체격도 단단해서 겉보기론 살벌하기 짝이 없었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라파엘라도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아이고 이 녀석아···

상황도 모르면서 막무가내로 무슨 짓을 벌인 거냐?

너야말로 그 아이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 아니냐?”


“알고 한 짓입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다는 거야!”


뭣보다 귀족 다운 권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마실리스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군복이 아니라면 귀족이라는 생각조차 못했을 거다.

지금도 거리낌 없이 아이젠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미안하다 라파엘라야.

우리 아들이 무례를 범했구나.”


“아, 아닙니다.

무례할 정도는···”



“지금은 그런 식의 빈 말은 하지 않아줬으면 좋겠구나.

난 진심으로 이 녀석을 혼내고 있는 거다.”


“예?”


“지금 이 마실리스에서 너는 나와 아이젠 다음으로 높은 귀족이다.

마음 같아선 온 나라가 나서서 환영을 해야 마땅하지만······”


자카르는 그렇게 말을 흐리며 손에 들고 있는 서류 뭉치를 쳐다봤다.

어제 밤, 아이젠의 부하들이 급하게 쓴 보고서 뭉치였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미안하구나.”


라파엘라는 어제 봤던 마물을 떠올렸다.


“어제 아이젠 각ㅎ, 아니 소공작은 프레데터란 마물의 변종이라고 했었습니다.

변종이라는 게 그렇게 위험한 겁니까?”



“응? 내가 어제 너한테 그런 말도 했던가?”



“윽··· 그게···”


“위험하지.

데이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데이터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이 매우 위험하단다.”


그녀느 아이젠의 의구심 어린 눈빛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궁금한 것을 물었다.


“오, 오면서 봤습니다만, 이곳의 성벽을 마물 같은 게 쉽게 뚫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소공작이 어렸을 때 뚫렸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솔직히 믿기 어렵습니다.

마물이란 것이 그토록 위험한 겁니까?”



“그래.

해안가를 품고 있긴 하지만 라피아드 령의 중심지는 충분히 내륙 쪽에 위치해 있지.

그렇다면 인식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겠구나.

라파엘라야.

오면서 봤다고 했으니 관문도 봤겠지?

그럼 네가 만약 침략자라고 가정했을 때, 어떻게 관문을 돌파하겠니?”



“예?”


“가능성의 여부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방법을 상상을 해보렴.”


라파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또한 명령이라고 하면 명령이다.

잡념은 비우고 오로지 상상에 집중했다.


“관문의 벽의 두께가 상당했으니 외벽을 뚫고 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할 겁니다.

조용히 기습을 한다고 해도 분명 들키겠죠.

문 쪽은 상대적으로 얇았으니 그쪽을 공략할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그게 아니라면?”


“안쪽에서 문을 연다거나?”



“정답이다.”


“예?”


“마물 중에 의태 능력을 가진 녀석이 있다.

기존에는 대응책이 충분이 마련되어 있어서 식별하는 건 쉬웠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변종이 나타났다.”


“어떤 식으로 변한 겁니까···? 의태가 완벽해졌다거나.”


“아니.

눈으로 의태했다.”


“엣?”



“자그마한 눈덩이 같은 건 아니다.

마물이 가진 자체적인 질량은 변하지 않는 선에서 눈으로 의태했다.

사람 만한 눈 더미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하지만 눈은 눈이지.

밤에 그런 게 갑자기 나타나면 눈치챌 수 없다.

마물이 눈 같은 무기물로 변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으니까.”


“하, 하지만 눈이라고 해도 대체 어떻게 관문을 뚫는다는 겁니까?”



“관문 근처엔 경계 근무를 서는 병사들이 이용하는 통로가 있다.

크기가 작고 감춰져 있어서 쉽게 찾아낼 수는 없지.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어디로 어떻게 드나드는지 정도는 알 수 있다.

눈으로 의태한 마물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병사들이 교대하는 순간을 노려 침입했다.”


“그게 무슨······”


그건 마치 인간이 아닌가?

되려 인간이었다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적이 인간이라는 걸 알면 갑자기 나타난 눈 덩어리 같은 건 의심할 게 뻔하다.


“그걸 한 번 겪고 나니 변종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잠을 잘 수가 없구나.

게다가 전술을 이해할 정도의 지능이 있다고?

후우··· 오늘도 자긴 글렀군.”



“제가 있는 한 그 때처럼 되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무슨 소리냐 넌 그때도 있었는데.”


“5살 밖에 안되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저라도 그 때부터 칼을 들고 휘두르지는 못했습니다.”



“그 땐 엘레오노르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이 그 때보다 훨씬 나아진 건 사실이지.”


“그보다 이 녀석은 어떻게 할 겁니까?

역시 제 방식대로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하다 못해 손님인데 쉬는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나도 크루소 자식한테 제대로 사정을 들어야겠다.”


라파엘라는 그 이름을 흘러 들을 수 없었다.


“크루소··· 에? 국왕 폐하 말씀이십니까···?”


“그 녀석 맞다.”


“ㅇ, 왜 저에 대한 것을 폐하께 여쭙는 겁니까···?”


“그야 널 마실리스로 보내기로 결정한 게 그 녀석이니까 그렇지.

라오라가 끝까지 반대했는데도 억지로 밀어붙였다고 알고 있는데 아니냐?”



자카르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장인 어른(였던 것)이 자신을 마실리스로 보냈다는 게 된다.

라파엘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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