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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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갸.
작품등록일 :
2024.08.22 21:22
최근연재일 :
2024.09.18 20:3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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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63

작성
24.09.0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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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이성재(1)

DUMMY


“으윽. 머리야.”


눈을 떠보니 낯선 천장이었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니 하얀 가운의 사람들이 보였다.


병원이구나.


다시 눈을 감는데.


······.


근데 소윤이는 어떻게 됐지.


내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본다.


3교시 쉬는 시간,


소윤이를 찾기 위해 3학년 교실로 올라가던 중 덩치 큰 선배를 만났었다.


그 선배는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고,


난 어쩔 수 없이 싸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양아치들과 달리 선배의 주먹은 묵직했고,


한 방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금방 싸움이 끝날 것 같았었는데···.


『한태갑이 이런 애를 놓치고 있었다니···, 끅.』


묵직한 주먹치고 맷집이 약한 선배였고,


저 말을 끝으로 쓰러졌다.


그때 좀만 더 가지고 놀걸.


잔뜩 달아올랐을 때쯤 나가떨어져 아쉬운 마음이 컸었다.


그래서 한태갑의 증표라도 챙기면 찾으러 올까 싶어 검은색 뱃지를 주우려던 찰나,


『뽝!』


누군가한테 뒤통수를 맞았던 것 같다.


뒤통수를 만져본다.


조금 축축한가.


뒤통수의 얼얼함보다 싸움의 여운이 더 커,


“히히.”


나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가는데.


“성재야?”


그때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간이 의자에 앉아 날 빤히 바라보는 민지였고,


민지는 다급하게 의사 선생님을 찾는다.


“의사 선생님!!! 여기! 머리 다친 애가 실실 웃고 있어요!”

“아, 아니야!”


뒤늦게 말려보지만 이미 저 멀리서 의사선생님이 뛰어오고 계셨다.


===


“···CT결과 이상도 없는 것 같고 안정되시면 이제 가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뒤통수에 붙은 거즈를 확인하시고는 일터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에 꾸벅 인사하는 민지가 나를 째려보는데.


“야. 이성재. 이제 그만하면 안 돼?”

“응? 무슨 소리야. 민지야.”


싸움을 그만하라는 뉘앙스로 말한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 일관하는데.


민지는 답답한 듯 한숨을 푹 내쉰다.


“하아···. 이제 못 참겠다. 야. 재미있냐? 사람 속 터지게 그러면 재미있냐고.”

“어?”


평소와 같은 잔소리일 줄 알았지만,


지금까지 와는 달리 진지한 얼굴의 민지였다.


항상 웃어넘기면서 착한 척, 사람 좋은 척 해왔었는데.


더 이상 그걸 로는 넘어갈 수 없나보다.


민지는 질린 얼굴로 말들을 늘어놓는다.


“네 부모님도 못 말리는 걸 내가 어떻게 말리겠어. 근데 아줌마가 울면서 내게 말한 적이 있거든? 우리 성재 좀 말려 달라고. 어때? 이거 듣고 쫌 반성할 생각이 들어?”

“······.”


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내 겉옷을 만지작거리는 민지였고,


“무슨 변명이라도 해봐. 소윤이가 불쌍해서 가만히 못 있겠다는 둥, 네도 학교폭력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았냐는 둥 착한 척 해보라고.”

“······.”


난 반박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소윤이 핑계로,


학교폭력을 핑계로 싸움을 해왔던 게 사실이라 똑같은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착한 척은 안 통하니 솔직히 말해볼까.


그날 이후로 싸움이 재미있다고,


싸움에서 쾌락을 느낀다고···.


근데 민지는 싸움의 희열을 알 수나 있을까.


싸움이 커지길 바라며 학교폭력을 ‘방관해 온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민지의 눈치를 살피는데.


잔뜩 볼이 빵빵해진 민지는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입에 들어가 있었고,


두 눈엔 살짝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의 우정이 내 한마디로 깨질 것 같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

“오늘 왠지 한가할 것 같지 않아요?”

“어! 신입! 여기서 그런 말하면 안 돼! 빨리 퉤퉤퉤 해!”


저 멀리 잡담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눈도 마주치기 민망해 민지의 손을 보는데,


뚝. 뚝뚝.


손 위로 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그리고 짧은 흐느낌이 들려온다.


“흐윽. 개새끼. 씹새끼. 싸움에 미친 새끼. 이럴 거면 그때 잘해주지 말지 그랬어! 흑!”


탁!


민지는 거칠게 일어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응급실을 나갔다.


주위에서 흘깃 보는 게 느껴졌지만,


난 민지가 지나간 자리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결국 민지를 붙잡지도 못하고, 변명 한마디도 못했다.


아니.


더 이상 변명하기도 귀찮았던 걸까.


멀어져가는 민지를 볼 때도 후회보단 기대감이 앞섰다.


이제 싸울 명분이 민지에서 소윤에게로 바뀐 것뿐이기에 죄책감조차 들지 않았는데.


정상인이면 죄책감이 들어야하나.


나 때문에 깨진 우정에 죄책감을 느끼려고 노력하지만.


······.


쉽지 않네.


민지와의 우정은 아쉽게 됐다.


“패딩은 두고 가지.”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를 뒤로 내 옆에 핸드폰을 확인한다.


엄마에게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 있었고,


“벌써 학교 끝났겠네.”


내가 오래 기절한 것을 알 수 있었다.


===


탁.


“안녕하세요. 한국고등학교로 가주세요.”


응급실 수납을 마치고 택시를 탔다.


일단 가방이 있는 학교로 가려하는데.


“에이 씨. 학생. 한국고면 반대로 탔어야지.”


걸걸한 목소리의 택시기사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아. 네.”

“네~하고 끝날 게 아니라 어른이 말하면···”


건성으로 대답한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택시기사가 점점 언성이 높아지면서 나랑 싸우고 싶은지 쉬지 않고 말한다.


무심결에 이 좁은 택시 안에서 싸우면 어떨까 상상해보지만.


아. 싸워도 재미없겠네.


택시기사의 툭 튀어나온 배를 보자,


저런 체형의 사람하고 싸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느린 주먹을 몇 번 휘두르다 금세 지쳐 “헥헥.”거리던 사람.


주위에서 “문신돼지충.”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그 사람은 특수부대 출신이라면서 으름장을 놔 내게 기대감을 줬었지만,


견제로 날린 주먹 몇 방에 쉽게 나가떨어져,


싸움이라고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샌드백이라 하기에도 타격감이 물렁한 게···


“학생! 듣고 있어?! 어른이 말하면···”


인상을 잔뜩 찌푸린 택시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나하고 눈이 마주쳤다.


······.


어색한 아이컨택이 계속 지속되는데.


앞도 안 보고 날 응시하는 택시기사가 내게 뭘 바라는 걸까.


일단 죄송하다고 말해보는데.


“아. 죄송해요.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어, 그래! 당연한 거야! 요즘 학생들은 말이야! 기본이 제일 중요···”


내가 고개를 숙이니 그제야 앞을 보고 잔소리를 이어나갔다.


하. 이어폰 가지고 다닐걸.


학생하고 기싸움 하느라 앞도 안 보고 운전하는 택시기사.


순수하게 싸움을 좋아한 정도는 정상이지 않을까.


“민지가 이걸 봤어야 했는데.”

“···어? 학생 뭐라고?”


민지랑 같이 택시를 탔다면 좋게 마무리됐을 것 같았고,


내일 민지한테 뭐라 말해야 될지 생각해보는데.


······.


그냥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게 제일 나은 방법 같았다.


===


“내가 아들 같아서···”

“수고하세요.”


탁.


끝까지 말이 많던 택시에서 내려 번호판을 확인한다.


저건 다신 안타야지.


학생들은 대부분 하교해 조용한 교문 앞이었고,


노을 진 운동장을 향해 걸어간다.


흙먼지 속을 걸으면서 내가 응급실로 실려 간 후,


소윤이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혹여나 잘못돼 복수를 한단 명분으로 싸워야하나 생각이 들 때 쯤 내 이름이 들려온다.


“성재야. 이성재.”


저 멀리 벤치에 앉아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는 사람은 소윤이었다.


항상 날 무시하던 소윤이었는데.


갑자기 저렇게 밝은 모습으로 손을 흔드는 게 이상해 보였지만,


저러는 편이 변명하기 쉽기에 내심 기뻤다.


내가 지금까지 잘 대해줬던 게 드디어 빛을 보는구나.


친한 친구사이마냥 나 또한 소윤이를 향해 손을 흔든다.


“어! 소윤아!”


소윤이에게 달려 간다.


그리고 차마 민지한테 못했던 질문들을 하려 하는데.


“소윤아. 괜찮···”

“성재야. 업어줘.”

“어?”


벤치에 앉아 다짜고짜 업어 달라 손을 뻗는 소윤이었다.


영문 모를 소리였지만 동그랗게 뜬 눈을 보자 거절하지 못했고,


일단 소윤이를 등에 업었다.


여자를 처음 업어 본 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업어 본 여자 중 제일 가벼웠다.


그리고 살갗이 닿는 부분은 부드러웠고,


뒤로 업혔음에도 묘하게 좋은 냄새가 코끝에 맴도는데.


등에 퍼지는 따뜻함도 잠시, 소윤이가 내 목을 끌어안았다.


“커헉. 소, 소윤아?”


점점 내 목을 세게 조이며,


“일단 민지를 울린 벌이야.”


라며 내 귀에 속삭였다.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을 소윤이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새 민지가 소윤이에게 말했나?


근데 둘이 그렇게 친한 사이였나?


“케헥! 케헥!”


점점 숨이 막혀와 질문보다 소윤이의 팔을 툭툭 쳐 한계임을 알린다.


“큭. 그, 그만.”

“엄살은. 아직 더 참을 수 있거든.”


다급히 소윤이의 손을 쳐도 소윤이는 더 세게 목을 조일뿐이었고,


살짝 히죽대며 또 다시 속삭인다.


“히히. 이렇게 해도 다음에 또 민지를 울리겠지만, 그러면 안 돼?”

“으, 응.”


내 대답을 듣고서야 서서히 목을 풀어주는데.


“아. 아니다. 한동안 또 여기 안 올 테니까 더 벌줘야지.”

“크윽.”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또 다시 내 목을 조이는 소윤이었다.


당장이라도 소윤이를 내팽개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민지를 울렸음에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기에 소윤이가 말한 대로 벌을 달게 받았다.


“오케이. 끝.”


소윤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참고 있던 숨을 거칠게 몰아쉰다.


“케헥. 커헉. 하악.”


살짝 시야가 흐려지고 나서야 목을 풀어줬는데.


정확히 경동맥을 압박해 딱 기절하기 전까지 조르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괴롭힘을 받으면서 숙달됐나.


소윤이가 지금까지 어떤 괴롭힘을 받았을까 상상하게 되는데.


“너 또 이상한 상상하지. 안 되겠다. 더 벌을···”

“아니야! 아무런 생각도 안 했어!”


내 등에 업힌 채 몸을 흔드는 소윤이를 다급히 말렸다.


두 번 당하면 진짜 기절할 거 같았기에 일단 소윤이를 업은 채 정처 없이 걷는데.


교문으로 가는 방향을 소윤이 또한 원했는지 말없이 한동안 걸었고,


소윤이가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보고는 말한다.


“성재는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어서 그런가. 일일이 설명을 안 해도 돼서 참 좋아.”


면전에 대고 사이코패스 같다 욕하지만,


걸고넘어지면 또 목이 졸릴 거 같아 말을 아꼈다.


소윤이는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린 후,


다시 말한다.


“성재야. 이제 왼쪽으로 꺾어서 재개발구역으로 가자.”

“어? 나 가방만···, 그래. 가자.”


살짝 소윤이가 내 목을 감싸는 게 느껴져 순순히 소윤이가 말하는 대로 간다.


벌써 어두워져 가는 거리를 보고 있자니 그제야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떠올랐다.


택시에서 전화한다는 걸 까먹었네.


흐음···. 내일하자.


소윤이는 알 수 없는 노래를 흥얼거렸고 몸도 박자에 맞게 조금씩 흔들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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