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사 아카데미의 소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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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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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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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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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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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02

DUMMY

2.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눈을 떴을 땐, 나는 환수계에 동쪽 산맥을 지배하는 호랑이가 되어있었다. 말 그대로 정말 ‘집채’만한 호랑이가.


원인? 당연히 찾을 수 없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건 단 하나, 아니 둘 정도는 되려나.


‘신. 아니면 악마겠지.’


나는 지루함을 날려보내고자 호통을 쳤다.


“어흥!”

“끄아악! 산군께서 진노하셨다!”

“모두 돔황챠!”

“데챠아아앗!‘


“······.”


하지만 이런 짐승, 아니 호랑이로 환생한 것에 크게 불만은 없었다.


환수계를 네 구역으로 나누어 저마다 왕처럼 지배하는 사신수. 그 중에서도 ‘산군’ 소리를 들을 정도로 크고 강력한 호랑이인 나는 그야말로 ‘왕’이었으니까.


이곳 환수계에도 사람이나 지적생명체가 존재했더라면 바로 꼬랑지 말고 더 깊은 산맥으로 숨어들어갔겠으나, 다행스럽게도 환수계는 오직 나 같은 환수들만 사는 세계였다.


“사라발 님. 장난이 과하십니다.”


푸드득. 쏟아지는 계곡물 앞에서 장난을 치니 여지없이 잔소리꾼이 납셨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아무튼, 내 선조와도 직접 대화했었다는 올빼미 환수 샤르가 날아왔다.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혹은 자아?)을 견디지 못하고 새로이 동부 산맥의 지배자가 된 내게 잔소리 같은 조언을 하는 간신? 아니 충신이구나.


아무튼, 샤르는 어머니가 내게 남긴 신하 중 하나였다.


“그냥 장난 한번 쳤을 뿐이야. 너무 잔소리 하지마. 샤르.”

“선대께서 사라발 님의 이런 모습을 보시면 한탄하실 겁니다.”

“듣기 싫어.”


벌러덩. 배를 보이며 사람처럼 편히 눕자, 샤르가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내 위에 앉았다. 무엄하기는. ‘산군’이라면서 산군님의 배에 그렇게 올라타도 되는 거야?


“됩니다.”

“그렇구만.”


줄무늬가 없고, 비교적 하얀 털로 가득한 내 배에 올라탄 샤르는 부산스럽게 부리를 움직여 내 몸에 달라붙은 날벌레를 잡아먹었다.


아, 거기. 그쪽. 아··· 간지러웠는데, 시원해졌어.


“사라발 님. 선대께서는 사라발 님께 이 산맥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사라발 님을 곁에서 지키고 조언을 아끼지 말라는 책무를 주셨고요. 이대로 산맥을 순찰하지도 않으시고, 매일 장난이나 치시면 ‘약속의 땅’에 갔을 때 제가 그분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약속의 땅은 무슨. 죽으면 다 흙으로 돌아갈 뿐이야.”

“사라발 님.”

“···알았어. 오늘 순찰은 해야지. 하는 김에, 같이 갈래?”

“올빼미는 야행성입니다.”

“제기랄. 또 배신당했어.”


‘산군’으로서 의무를 다하라고 조언을 한 샤르는 너무 울창해 햇볓이 들지도 않는 깊은 산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마냥 탓하기만 할 수도 없는 것이, 낮동안에는 내가 어머니께 물려받은 끝없는 여름이 계속되는 동부 산맥을 순찰하지만 밤에는 샤르가 나를 대신해 순찰을 한다.


순찰을 돈다고 해봐야 사실 ‘우문고비’를 침입해 올 적은 없지만.


그래도 샤르는 매번 ‘선대께서’ ‘조상님들을 뵐 면목이 없다’며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 잔소리를 해댔다.


어찌하겠는가? 나를 낳고서 급히 병색이 짙어진 어머니를 대신해 나를 정성으로 키운 건 샤르였다.


나는 호랑이고, 샤르는 올빼미지만. 그래도 우리는 서로 쫓거나 쫓기는, 보통(?)의 환수계에서 일어나는 관계와는 전혀 달랐다.


어머니도 샤르를 잡아먹을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도 했고.


간혹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돌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눈치껏 샤르가 내가 쫓지 못할 정도로 높은 나무 위로 도망가니까 괜찮다.


‘···괜찮은 거 맞겠지?’


모르겠다. 가끔 새로 태어난 몸. ‘호랑이’의 본능이 ‘인간’이었던 자아보다 더 강하게 주도권을 쥐고는 했다.


대부분은 인간이었던 시절의 기억으로 이성적인 산군으로 행동하지만, 그래도 며칠 굶거나 하면 ‘사냥꾼’으로서의 자아가 더 비대해지고는 했다.


“어흥.”

“꺅! 도망쳐! 사라발 님이시다!”

“어딜 도망가. 이리 와 우넥.”

“켕!”


어머님도 ‘약속의 땅’으로 가고, 의무와 책무로 가득한 ‘산군’ 노릇을 하다 나도 모르게 장난을 친 탓에 내 백성들. 그러니까, 우문고비의 온갖 짐승들이 나를 피해다니기 급급했다.


나는 내 배처럼 하얀 우넥의 꼬리끝을 지긋이 밟아 도망가지 못하게 했다. 음, 만나서 반갑군. 우넥.


“위, 위대하신 우문고비의 지배자 사라발 님,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별 건 아니고. 샤르가 순찰 좀 돌라잖아. 심심한데 같이 돌자고.”

“아하. 알겠습니다.”


어차피 ‘우문고비’의 백성들은 지구에서의 진짜 동물들처럼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사냥을 할 필요가 없다.


샤르나 우넥 같은 환수들은 필멸자들이 겪는 생리현상의 불편함을 알지 못한다. 환수계에 풍만한 영력이 있어서 숨만 쉬어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


‘난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하지만.’


‘먹는 즐거움’을 모르는 이 띨빵한 환수들이 내 고충을 어찌 알겠는가?


더욱이, 서로 영역을 정해 침범하지 않기로 한 나와 같은 다른 사신수들은 대기중에 떠다니는 영력 덩어리로는 부족한 영력을 채우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엔 어디로 순찰 나가시는 건가요?”

“우넥. 난 이제 어머님을 대신해 우문고비의 산군이야. 좀 더 우러러 보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우러러 봐요? 전 항상 올려다 보는데?”

“···아니다. 오늘은 이쪽으로 가자. 어제는 반대쪽으로 돌았잖아.”

“네! 산책이다! 신난다!”


폴짝폴짝. 아주 신이 나서 앞서가는 우넥의 풍성한 여우 꼬리를 쫓아 나는 ‘산군’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사실 의무라기보단, 내가 드넓은 우문고비 산맥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신수는 물론이고 일부 ‘맹수’로 태어난 음흉한 환수 놈들이 엄한 짓을 하지 못한다.


조금 지린내가 나는 묘사지만, 나는 중간중간 큼직한 나무나 바위가 보일 때마다 내 흔적을 남겼다. 개처럼 보이는 곳마다 영역표시를 했다는 뜻이다.


“냄새! 오늘도 훌륭한 찌린내에요!”

“우넥. 찌린내라는 말은 누구한테 들은 거야?”

“샤르님?”


이번엔 진짜 샤르로 탕을 끓여 먹겠다고 다짐하며 우문고비의 외곽 지대까지 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폴짝폴짝 앞서 가던 우넥이 지친 탓에 내 등에 태웠다. 순발력은 좋지만 지구력이 영 아니올씨다다.


내 요청 아닌 요청에 따라나온 거니 우넥 하나를 등에 업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나도 지루한 ‘순찰’에 동행이 필요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나는 우문고비의 산군이 아닌가. 지칠 줄 모르고 한번 어흥! 울면 모든 산맥의 백성들이 자지러지는 무시무시한 지배자.


최근 들어선 내 백성이라 할 수 있는 환수 놈들에게 조금 짓궂은 ‘장난’을 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내 영지를 순찰할 때면 나도 모르게 선대 우문고비의 산군들을 떠올리게 된다. 조금은 ‘왕’처럼 군다는 뜻이다.


내 영지의 ‘외곽’ 지대라 할 수 있는 곳. 산맥이 끝나고, 들판이 시작되면서 멀리 불과 용암에서 튀어오른 달궈진 돌들이 굴러다니는 ‘경계선’을 보자 의외의 환수가 보였다.


“다 왔다······ 그런데, 내 영지에 있으면 안 되는 놈이 있는 것 같은데.”

“너무 그렇게 인상 쓸 것 없잖아? 모처럼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러 온 건데. 사라발.”

“그래서, 내 영지에는 무슨 일이지? 에닉스토.”

“흐응.”


에닉스토. 끝없이 타오르는 불로 이루어진 새. 불사조 되시곘다.


에닉스토는 환수계에서 동쪽을 다스리는 나와는 달리, 남부를 다스리는 사신수였다.


원체 뜨겁게 타오르는 불로 이루어진 몸뚱이 덕분에 어딜 가더라도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 불에 ‘타기’ 좋은 산맥 우문고비를 다스리는 나와는 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선대인 내 어머니께서도 에닉스토가 우문고비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어금니를 세웠더랬지.


근처에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에닉스토가 날개를 펄럭이며 빨래터 수다쟁이 아줌마처럼 말했다.


“흐응. 안 들으면 후회할텐데? 요즘, 우문고비에서도 갑자기 사라지는 네 ‘백성’들이 있지 않아?”

“···한번 들어보지.”


‘어머님’은 에닉스토를 경계했지만, 나는 꼭 그렇게 선을 긋고 ‘접근금지!’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문고비를 비롯한 환수계가 그렇지만 변화는 적고, 재밌는 소식은 진짜 드물다.


에닉스토는 자신의 영지를 비워두고 다른 사신수의 영지로 찾아갈 정도로 소식통. 굳이 저가 얘기하고 싶어서 열이 난(실제로도 열을 뿜어내지만) 나와 동급의 사신수를 쫓아낼 필요는 없을 거다. ···라고 생각한다.


‘사라발 님. 이거 샤르님이 알면 또 잔소리 듣지 않을까요?’

‘너만 입 다물면 몰라.’

‘앗, 넵.’


에닉스토 못지 않에 수다쟁이인 우넥을 믿느니, 차라리 내 잠꼬대를 믿는 편이 낫겠지만 그래도 ‘어흥’ 한 번 하면 한 사흘은 입을 다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어차피 샤르에게 들킬 테지만, 그래도 당장은 수다쟁이 에닉스토가 할 ‘믿거나 말거나’인 소문을 듣고 싶었다.


“설마, 네 영지에서도 사라진 백성들이 있어?”

“맞아. 정말 똑똑하구나. 네 엄마는 그러지 않았는데.”

“······.”


이게 누구 앞에서 패드립이야? 하고 싶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사람처럼 서로 말을 하고 대화를 하기는 하나, 진짜 ‘사람’처럼 똑똑한 환수는 없다. 솔직이 ‘어머님’도 그러한 건 크게 다르지 않았고. 마찬가지로 사신수인 에닉스토도 그렇다. 아니, 더 심하다.


말이 좋아 ‘불사조’지, 자기가 하고 싶어서 활활 타오르는 날개로 다른 사신수의 영토까지 침범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놓고서도 돌아선 다음 금방 잊는. 말 그대로 ‘새대가리’인 환수가 에닉스토니까.


‘용케도 이번 일은 안 까먹었나 보네.’


굳이 에닉스토처럼 생각한 걸 바로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환수계에 널린 멍청한 환수가 아닌, 사람의 기억이 있는 진짜 똑똑한 사신수였으니까.


“전에 갑자기 사라진 내 백성 하나가 있는데, 다시 보이길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거든. 그러니까 새순이라는 이름의 불새인데······.”

‘아오, 오프닝 제발 스킵 좀!’


간절히 스킵 키를 눌러도 에닉스토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남부. 화염 산맥을 다스리는 에닉스토의 수다스러운 부리는 닫힐 줄을 몰랐다.


슬슬 귀에서 신령한 호랑이 피가 새기 전에 겨우 에닉스토가 겨우 본론으로 넘어갔다. 나 이상으로 지루해한 우넥이 한소리 한 것이다.


“지겨워요!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이래요?”

“아, 그렇지. 이런 얘기를 할 것이 아니었어. 아무튼, 내 백성 가운데 하나인 새순이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왔다고 하더구나.”

“다른 차원?”

“!!”


설마,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넘어가면 막 초능력에 마법에 무공까지 쓰는 퓨전 현대 판타지가 배경인 지구고?


“무슨 이름이었더라······ 아! 기억났다. 이번엔 진짜 새대가리 아니다. 똑똑하게 기억해뒀어. 너, 속으로 나 멍청하다고 욕하고 있었지? 다 알아! 이 에닉스토님을 속일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위대한 불새 에닉스토. 환수계를 수호하는 사신수의 일각을 내가 왜 욕하겠나? 그러지말고, 그 세계의 이름이 뭐라고?”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대륙!”

‘이런.’


지구는 아니군. 속으로 혀를 차고 있는데 에닉스토가 더 할 말이 있는지 부리를 쉬지 않고 움직였다.


“거기서 사람? 인간? ···잘 모르겠는데, 우리처럼 말하는 놈들하고 게약이라는 걸 해서 거기서 지냈었대. 완전 좋다는데? 소환사랑 계약하면 맛있는 것도 먹게 해주고, 여긴 없는 신기한 것들도 막 구경시켜준다고 하더라고.”

“!!”


에닉스토의 잘 돌아가지 않는, 한 세기는 방치된 멧돌처럼 뻑뻑한 머리를 최대한 굴리도록 다독여 어찌 된 일인지,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아내었다.


“아, 지쳤다. 부리 아파. 이제 갈래. 내일 봐?”

“내일 보긴. 썩 꺼져.”

“흐흥.”


불꽃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펼치고, 에닉스토가 별들이 반짝거리는 환수계의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녀는 내게 물결치는 호랑이 모양의 불꽃을 남기고는 제 영역으로 날아갔다.


“우와··· 신기해요. 저도, 아르메니아 대륙이라는 곳에 가볼 수 있을까요? 쿠키라는 거, 저도 먹어보고 싶어요!”

“넌 나중에. 나부터다.”

“네에?!”


우넥의 뒷덜미를 물어 ‘집’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흔들려요! 너무 어지러워··· 으으······!”

“아차.”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 모양이다. 최근 갑자기 자취를 감춘 내 백성들. 분명하다. 에닉스토가 말한 것처럼, ‘아르메니아 대륙’이라는 낯선 차원으로 소환된 모양이었다.


‘감히 아랫것들이 산군인 이몸을 두고 먼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 괘씸한 것 같으니라고!’


그땐 몰랐다. 너무 오래도록 ‘호랑이’로 지낸 영향이 내 영혼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당시의 나는 ‘아르메니아 대륙’으로 소환되는 것을 간절히 바랐다.


에닉스토가 해준 말은 반은 거짓이고 남은 반은 흘려들어야 함을 알고 있었음에도, 두근거림은 멎지 않았더랬다.


그렇게 당시의 나는 내 ‘백성’들이 사라진 장소. 즉 소환사들이 차원문을 자주 여는 지역을 찾아다니는 것에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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