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사 아카데미의 소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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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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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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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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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04

DUMMY

4.


브리시카. 그러니까, 나와 계약을 한 소환사가 말했다.


“그게, 저였었다고요?”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어리고 미숙한 계약자, 브리시카와 나는 이제 마력으로 이루어진,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링크가 연결되어 있었다.


수환수 계약이 제대로 체결된 것이다.


“환수계를 다스리는 사신수라라니··· 이건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일이야. 브리시카 학생? 이번 일을 학계에 생각인데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려도 되겠나? 아니, 차라리 내 전용 조교로······.”

“네? 고, 공동 저자요? 조교?”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인간. 내 소환사한테서 떨어져.”


으르렁···! 제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몸을 굳게 만드는 사신수만의 특별한 기술··· 도 뭣도 아니다.


보통의 호랑이. 그러니까, 지구에서의 성체 호랑이라면 전원 사용 가능한 울음소리를 냈을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자신을 발더 교수라고 소개한 인간 남성 따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


공동저자에 이름을 올리는 거? 그건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전용 조교라는 말은 참을 수 없다. 겨우 얻은 나만의 소환사를 사람 좀비로 만드는 대학원생(혹은 노예)으로 보낼까보냐.


“이름만 올리도록.”

“예, 예···!”


간단히 서열정리를 마친 나는 내 계약자(혹은 소환사)를 보았다. 브리시카라고 했던가? 일렁거리는 듯한, 흐릿한 상을 통해 보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그러니까, 내 취향의 미인이라는 뜻이다.


‘지금도 좋지만, 이대로 일이년만 더 지나면 완전··· 어우야.’


덕중에 덕은 양덕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이제는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엘프의 긴 귀를 지닌 브리시카는 후줄근한 소환사 로브와 밋밋한 단색 교복(혹은 제복?)을 입고 있음에도 꽃처럼 아름다웠다.


만개한 오월의 장미보다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만개할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봉오리 진 꽃망울 같았다. 미래가 창창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곳은 뭐하는 곳이더냐. 환수들을 불러와 나처럼 소환사-소환수 계약을 맺는 장소? 비밀 제단?”

“어감이 조금 그렇긴 합니다만··· 대체적으로 맞습니다. 사라발 님.”


대답은 내 소환사 브리시카가 아닌 발더 교수가 대신했다.


교수라고 하더니, 약하긴 해도 내 초저주파에 당하고도 금새 정신을 차린 것이 과연 아카데미의 교수는 교수다 싶었다.


“그래서, 난 뭘 하면 되는 거지? 이 차원에서 계속해서 지내려면 소환사와 계약이 필요해 보여 바로 계약은 했다만, 멋대로 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다른 정령이나 환수들도 마찬가지지만, 소환사가 노예처럼 멋대로 부릴 수는 없습니다. 소환사와 소환수는 대등한 입장이니까요. 제 뱀돌이도 그렇습니다. 사라발 님.”

“뱀돌이?”

“아, 제 소환수의 이름입니다.”

“······.”


교수에 대한 평가가 조금 올라간 것이 바로 그 이상 깎였다. 에닉스토랑 대등할 정도로 심각한 네이밍 센스라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아,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브리시카 양. 그냥 환수도 아니고, 환수계를 다스리는 네 왕 중 한분과 계약하다니··· 사신수라는 정보조차 없었는데. 이런 건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계속 아카데미에 다니셔도 됩니다. 아니, 오히려 추가 장학금이 나오겠군요.”

“!!”


‘장학금?’


그게 뭐였더라? 싶다가도 계약자가 된 브리시카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홍조 때문이고, 둘은 링크를 통해 이어진 마력의 실을 통해 그녀의 감정이 ‘있는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소환사-소환수 계약은 단순히 이 차원에 머물게 해주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브리시카, 장학금이 무어냐? 뭔지는 몰라도 추가 장학금이라는 말을 듣고 네 기분이 좋아졌구나.”

“아, 사라발 님. 추가 장학금은요······.”

“소른 아카데미에서 성적이 좋거나,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선별해 지원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이 무엇인지는 아십니까?”

“돈? ···아! 알고 있다. 우넥이 반짝이는 돌멩이를 모으면 다른 돌멩이랑 교환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인가?”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비슷합니다.”


음, 이해했다. ‘추가 장학금’은 ‘돈’이다.


다른 사신수들과는 다른 똑똑하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 우문고비의 산군께서 완벽하게 뇌내 데이터 보관소에 입력했다 이거야.


‘뇌내 데이터 보관소? 그건 또 뭐지?’


우문고비의 산군이 된 이래, 아니 ‘사라발’로 빙의되고서부터 나는 ‘인간’이었던 기억이 점차 옅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도 그런 것들 중 하나겠지.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브리시카, 나만의 ‘소환사’가 있으니 이런 기억의 상실은 금방 만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새대가리인 에닉스토와는 다른 멋지고 위대하고 무시무시한 산군 사라발이니까.



* * *



환수계를 다스리는 ‘산군’의 위엄을 지키고자 최대한 돌려 말했다.


“여긴··· 굉장하구나.”


브리시카를 따라 ‘밖’으로 나가니 별천지였다.


‘아카데미’라길래 설마 했는데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더럽고 냄새나고 못난 놈들이 서로 못잡아먹어 안달인 차원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번쩍번쩍하고 반질반질한 건물이 얼룩 한 점 없이 솟아 있었다. 한두개만 그런 게 아니라, 보이는 모든 건물이 그러했다. 간혹 멀리서 자신의 ‘소환수’와 오가는 사람들이나 그 소환수들도 차림새가 모두 깨끗하고 단정했다.


“소른 아카데미는 동부왕국연합과 인류제국이 공동 창립한 소환사 아카데미입니다. 그야말로 대륙 최고의 교수진과 지원을 받지요. 환수계에는 이런 건축물이 없는 겁니까?”

“없다. 우린 손이 없지 않느냐.”

“하하.”


발더 교수가 웃었다. 괘씸함에 다시 ‘어흥!’ 할까도 싶었지만 환수계의 실정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내 양심상 그럴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샤르를 찾는다는 핑계로 이런 차원으로 건너온 것이 썩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딜 가는 것이냐? 난 이곳의 음식을 먹고 싶다.”

“식사도 하시는 겁니까? 보통 환수들은 소환사의 마력만으로도 충분한데······.”

“나는 사라발. 우문고비의 산군이다. 평범한 환수들과는 다르다.”


근엄하게 말했지만 사실 대단한 게 아니라 오히려 불편하기만 하다. 사신수는 넘쳐나는 영력을 그만큼 보충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평범한 환수들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먹어야만’ 하므로.


물론, 진짜 지구의 호랑이처럼 제대로 식사를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맛없는 ‘식사’를 하기 싫어서 굶으면 제아무리 사신수인 이몸이라 할지라도 쇠약해지고, 강력한 ‘권능’도 쓰기 힘들어진다.


“환수라고 다 같은 환수가 아니군요. 제 뱀돌이도 간식을 주면 먹긴 합니다만, 보통은 마력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이건 정말 대단한 발견입니다!”

“시끄럽다. 내 소환사를 멋대로 대학원생으로 만들 생각은 하지 마라.”

“어? 설마 사라발 님이나 사신수 님들은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도 가진 겁니까?”

“그러면 내가 신이게. 얼굴에 다 써 있다.”

“아하.”


발더 교수가 지치지도 않고 말을 걸어왔다. 내 소환사는 브리시카인데, 왜 자꾸 덜렁거리는 남정네가 말을 거는 건지. 기분이 나쁘다.


으르릉······!


“바, 발더 교수님. 빨리 식당으로 가요.”

“그러는 편이 좋겠군요.”


산군의 늠름함에 정신을 차린 브리시카가 급히 ‘식당’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식당? 이건 뭔지 기억한다. 밥 먹는 곳이지. 보슬보슬하고, 갓 지은 쌀밥에 김 한장 얹어서 먹으면 그렇게 밥도둑이 또 없는데··· 군침이 새어나올 것 같았다.


“이곳이에요. 사라발 님.”

“음. 좋군. 맛있는 냄새가 난다!”


내 멋지고 근엄한 호랑이 얼굴이 보일 정도로 반짝이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는 정말 맛좋은 냄새가 났다.


매번 떨어진 영력을 채워넣느라 맛도 없는 과일이니 꽃봉오리니 하는 것을 억지로 씹어 삼켰을 때와는 달랐다.


아직 국물 한 방울 맛도 안 봤는데 벌써부터 ‘맛있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식당에 퍼진 냄새는 아주 그윽하고 진했다.


“뭐, 뭐야? 호랑이?”

“설마, 저것도 환수인가?”

“발더 교수님이랑··· 브리시카? 쟤 아직도 퇴학 안당했어?”


뭐야 이 꼴뚜기들은. 그래도 곱게 차려입은 모양새가 내 소환사인 브리시카와는 다르게 돈이 있거나 권력이 있거나 그게 아니면 둘 다 갖추고 있는 놈들처럼 보였다.


곁에는 흐물가리는 반투명하면서 환수들과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기운을 풍기는 놈들이 있는데 아마 저것이 ‘정령’인듯 싶다. 환수계에는 판타지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정령이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더랬지.


아마 우리 환수가 정령 대신인 것 같지만. 나폴거리는 형형색색의 정령들은 소환사의 곁을 맴돌다 나를 발견하고는 급히 제 주인의 안주머니나 품으로 호다닥 숨었다.


“우왓! 갑자기 왜 이래?”

“갑자기가 아니라! 식당에 이렇게 큰 호랑이가··· 환수 맞긴 해? 이렇게 큰 환수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는데······.”

“바, 발더 교수님? 저 환수 제대로 링크 이어진 거 맞나요?”

“걱정할 것 없다. 다들 진정하도록. 이 호랑이는 브리시카의 소환수다. 그러니까, 그렇게 놀랄 필요 없다. ······아마도.”


아마도? 하는 말은 너무 작아 가까이에 있는 나와 브리시카 말고는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호랑이 환수라니··· 최소 A랭크잖아.”

“와··· 저게 된다고? 3번째 소환 의식에는 정령석도 부스러기만 준다는데.”

“진짜 미쳤네. 신입생 수석 바뀌는 거 아니야?”

“부럽다. 내 소환수는 D랭크인데··· 아! 아파! 미안해!”


제 소환수와 남의 소환수(나다!)를 비교하다 부리에 쿡쿡 찔리고 있는 멍청한 소환사도 있었다.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


“고기. 고기를 다오. 제대로 양념을 해서 굽거나 찌거나 익히거나 삶은 그런 고기를 다오.”

“네, 네···!”


브리시카가 낡은 교복(신입생인데 왜 교복이 낡았지?) 치마를 펄럭이며 급히 ‘고기’를 받아왔다.


전반적으로 식당은 뷔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발더 교수가 앞서 자랑한 바와 같이 식사에도 돈칠을 한 것이 분명했다.


“오, 오오···! 이것이 바로 진짜 고기······!!”

“······.”


뒤늦게 제 몫의 받아온 브리시카가 내 옆에 앉았다. 반대편에는 발더 교수가 착석했는데, 아무래도 ‘산군’인 이몸을 처음 영접하는 어리석고 우매한 인간 놈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게끔 하려는 것 같았다.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냥 ‘제대로 된 요리’를 씹지도 않고 삼킨 것만 기억난다.


나는 혀로 소스가 잔뜩 묻은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브리시카! 계약해줘서 고맙구나! 이렇게 맛있는 걸 먹을 줄이야! 환수계로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브리시카가 다섯 번 정도 추가 배식을 받아온 끝에 나는 만족스러운 ‘첫 식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발더 교수와 식당에 있던 학생들이 산처럼 쌓인 뼈의 무덤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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