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사 아카데미의 소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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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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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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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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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른 아카데미 07

DUMMY

7.


소른 아카데미는 무척이나 넓다.


아카데미는 하나의 작은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같이 신선한 식재료를 납품하는 상인들은 물론이고 아카데미 내부에 상업 행위를 허가받은 이들의 수도 상당했기 때문.


아카데미의 재학생과 교수들은 대부분이 귀족 가문의 자제들이었기에 상인들 또한 최소한의 계급과 출신성분이 보장된 이들뿐이다.


윌리엄은 갑자기 생긴 환자를 위한 죽을 끓이기 위해 신입생과 나란히 들어갔다가, 의도치 않게 ‘새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옆에서 장을 보고 있는 신입생. 안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했지만.


“미안하다. 안나.”

“네? 뭐가요?”

“···어차피 며칠 지나면 사라질 헛소문들이지만, 그래도 나랑 얽혀서 괜히 불편할 수 있으니까······.”

“선배님이랑 얽혀서 뭐가 불편한데요?”

“······.”


약간의 쌀과 파, 향신료와 이상하리만큼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뭉텅이로 바구니에 담던 안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회색빛을 띄는 검은 머리가 찰랑이는데, 윌리엄은 순간 흠칫했다.


크루그먼은 대귀족이었고, 후계자인 윌리엄에게는 가문에서 미리 정해둔 약혼자가 없었기에 아카데미에 재학중인 영애들에게는 ‘언제 다시 올 지 모를’ 인생역전의 티켓이었다.


걸어다니는 계급역전의 찬스라고나 할까. 윌리엄을 노리는 미혼 여성, 혹은 기혼 여성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크루그먼이라는 성을 얻는 것도 좋지만, 문제는 그가 잘생겼다는 거다.


그것도 엄청.


윌리엄 크루그먼이 처음 소른 아카데미에 입학할 당시에는 졸업을 앞둔 선배들뿐 아니라 몇몇 여교수마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윌리엄이 부러 학생회에 들어온 것, 그리고 학생회장 직위를 유지하고 있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여자들을 피하기 위함. 교수들과도 자주 보고, 아카데미의 운영과 관련해 조금이지만 주장을 할 수 있는 위치는 그 권한만큼이나 책무도 상당했다.


하지만 뭣도 모르고 성적 우수자로 학생회에 들어온 안나는 그런 윌리엄을 보고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윌리엄은 그런 안나가 무척 신기했다.


“그러고보니, 부총장님도 번개 정령. 선배랑 같은 뇌조를 소환수로 두고 있네요?”

“···내 누님이시다.”

“네에에?!”


이상한 데에서 놀라기는··· 크루그먼이라는 성을 공유하는데, 모를 수가 있나?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누님에게 늘 들어왔기에 윌리엄은 가볍게 넘어갔다.


소른 아카데미는 아르메니아 대륙 전역에 명성을 떨치는 우수한 소환사 양립 기관.


제국은 물론이고, 대륙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는 종족연합에서도 간혹 소환사가 되고자 입학하는 이들이 있었다.


“전혀 몰랐어요. 그럴게, 여기 귀족 분들은 다 처음이여서요. 관습도 어색하고. 아, 나쁘다는 건 아녜요. 낯설다는 뜻으로 한 말, 무슨 뜻인지 아시죠? 선배.”


안나는 마지막으로 양고기를 담으며 말했다. 대체, 죽을 끓이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고기가 필요하던가? 의아했지만 손수 음식을 만든 경험이 드문 윌리엄은 계산부터 했다.


어쨌든, 크루그먼은 대가문이다. 금전적인 걱정 따위는 한 순간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고향이 어디라고 했었지?”

“‘검은 땅’이에요. 아, ‘종족연합’이 더 잘 알려졌으려나? 어차피 그게 그거지만요.”

“···그렇군.”


역시나 했는데, 이 묘하게 밝은 성격의 신입생은 대륙의 끝에서 넘어온 것이다.


아카데미가 안전하고 훌륭한 강사진들이 있다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윌리엄은 ‘먼 타향’에서 고생할 안나를 조금은 더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레이디’라서가 아니라, 멀리서 온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느낌으로.


계산을 마치고 보니 식재료는 상당했다.


보기만 해도 묵직한 봉투를 들려던 윌리엄은 안나가 아무렇지 않게 한 손으로 껴안는 것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안 무겁나? 그보다······.


“내가 들도록 하지. 내 부탁 때문에 온 건데, 그런 것까지 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 별로 무겁지도 않은 걸요. 그리고, 저 선배님들한테 배웠어요. 윌리엄 선배는 학생회장님이고, 가문도 엄청 대단한 가문이니까 무슨 일 하면 바로바로 옆에서 거들어주라고요.”

“뭐?”


기가막혔다.


작년. 2학년 때부터 학생회장을 역임한 윌리엄은 언제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자신이 하려고 했다. 적어도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윌리엄은 동급생이나 선후배들을 시종이나 노예처럼 부릴 생각이 없었다. 실수로라도 그런 일을 하지 않고자 했다.


애초, 아버지와의 약속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립하는 진짜 남자가 되는 것이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그거 잘못된 일이야. 적어도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에는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중을 받고 싶지 않다. 이리 주겠나?”

“어··· 무거우실 텐데.”

“여자인 너도 드는데, 내가 못 들리가··· 억!”


허리가 빠질 뻔했다. 아니, 그 전에 봉투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나마 가는 길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글쎄요, 학생회장님. 생각보다 힘이 없으신 것 같더라고요. 허우대는 멀쩡한데, 실속은 영······.’ 같은 말들이 나돌았을지도 몰랐다.


부끄럽다. 소른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래 처음 겪는 민망함에 윌리엄은 억지로 힘을 주어 허리를 폈다. 그런데, 자꾸만 봉투가 아래로 내려간다······.


“제 말이 맞았죠? 제가 들게요. 선배님.”

“···부탁한다.”


윌리엄은 소른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래, 처음으로 타인에게, 그것도 고작 삼주 전에 입학한 신입생에게 ‘부탁’했다.


안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봉투를 품에 안아들고는 야생 노루처럼 날렵한 걸음걸이로 앞서 걸었다.


“여긴가요? 부총장님이 급히 와달라고 하신 곳이?”

“그래.”


윌리엄은 민망함으로 벌개진 얼굴을 끄덕였다.


도둑이 들어도 훔쳐갈 것이 없다는 양, 활짝 열린 정문은 링크처럼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실타래로 얽힌 두 사람을 초대하고 있었다.



* * *



“그러니까, 내가 약한 게 문제다? 빨리 먹고 근육도 키우고 링크도 단단하게 만들어라?”

“그렇다!”

“······.”


브리시카는 ‘마력 탈진’ 증상에 기절했다 겨우 눈을 떴다. 심한 갈증에 겨우 물 한모금을 마시고 나니, 사라발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브리시카. 너는 나와 계약한 소환사로서 더 강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고기를 먹어야 하지! 먹고 먹고 또 먹어서 누구도 감히 건들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는 거다! 미스터 언체인, 아니 미세스 언체인이 되는 거다!”

“······.”


초보 소환사. 연약한 링크. 소환수의 능력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할 정도로 콩알만한 마력양까지. 사라발은 브리시카에게 없는 것들을 나열했다. 아, 물론 마지막은 사실인지라 반박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브리시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보통 이런 건 반대가 아닌가?


소환사는 출중하나, 소환수의 능력이나 의지 따위가 그에 미치지 못해서 닦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기초 강의에서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러다가 소환수와의 관계가 엉망으로 치닿고, 결국 ‘좋지 못한’ 방법으로 계약 해지가 된다는 경우도 있다고.


그런데, 사라발은 브리시카가 무어라 항변할 빈틈 하나도 없이 다방면으로 그녀의 ‘소환사’로서 모자란 부분을 두들기고 있었다. 소환수가, 소환사에게.


한바탕 설교 아닌 설교를 한 사라발에게 브리시카는 지친 가운데 울분에 차 대꾸했다.


아니, 내가 약하고 싶어서 그래? 타고난 마력량이 콩알만한 게 잘못이야? 이것도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서 영약 사서 키운 거라고!


“그래서, 허여멀건 죽 같은 것보다 고기 위주의 식사를 해야 한다? 이거, 그냥 네가 먹고 싶은 걸 말하는 거 아냐? 사라발?”

“이런, 들켰군. 어떡하지 카밀라? 생각보다 내 주인이 똑똑한 것 같다! 브리시카가 조금만 더 멍청해지면 좋겠는데!”

“······.”


부총장. 이 희대의 소환사-소환수 커플의 다툼을 지켜보던 카밀라도 할 말을 잃었다.


이 소환수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하고 있을까?


소환사의 부족함을 닦달하는 사라발의 언행은 그야말로 계약 관계가 뒤바뀐, 주인과 위치가 뒤바뀐 노예처럼 보였다.


물론, 모든 소환사와 소환수는 대등하다는 것을 소른 아카데미의 교육 이념으로 삼고는 있지만··· 현실과 이상은 늘 다른 법 아니던가?


이렇게 정면으로 작금의 현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행동은 어린 나이부터 고생한 카밀라 크루그먼조차 할말을 잃게끔 했다.


“사라발. 진짜 나 힘들어. 마력 탈진은 나도 처음 겪는 일이지만, 교수님들이 강의하실 때 들은 것 이상으로 지친단 말이야······.”

“이게 무슨 냄새지?”

“···지금 내 말 무시한 거야?”


브리시카의 짜증 서린 목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사라발은 훌쩍 뛰어 침대 아래로 뛰어내렸다.


‘고기! 고기다!’ 하는 외침과 함께 우문고비의 산군은 딱 새끼 호랑이 하나만 드나들 정도로 열린 문 사이로 뛰쳐나갔다.


“아, 진짜······.”

“고생길이 열렸구나, 하고 그냥 받아들이렴. 브리시카. 그래도 사라발 정도 되는 소환수씩이나 돼서 원하는 건 제법 단순하잖니. 고기만 잘 먹이면 되니까.”

“제가 사라발의 식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전 자신 없어요.”

“······.”


카밀라는 브리시카의 진실된 발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발더 교수에게 들었지만, 점심 때 먹은 양만 하더라도 어마무시했다고. 그런 걸, 하루 세끼, 아니 어떻게든 타협해서 두 끼만 챙겨 먹인다고 해도 정교수 월급은 순식간에 날아갈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다루기 쉽지 않은 소환수긴 해.”


카밀라는 자신의 소환수가 대단한 ‘식탐’을 부리지 않는 뇌조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생선 비린내가 떨어질 새가 없다고 짜증을 부리던 과거를 반성했다. 어쨌거나, 산더미처럼 쌓은 고기를 매일같이 먹어치워야 하는 사라발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가성비로 계약을 유지해주는 소환수인 것이다.


다루기도 쉽고, 말도 잘 듣고, 의사소통도 크게 지장 없을 정도로 똑똑한 뇌조는 모든 소환사가 바라는 최고의 소환수라 아니할 수 없었다.


“꺄아악!”

“···이런.”


카밀라는 급히 일어섰다. 처음 사라발이 ‘고기 냄새가 난다!’ 할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윌리엄이 온 것이다. 환자가 먹을 ‘죽’을 해줄 사람과 함께. 어린, 소녀의 것임이 분명한 고성에 카밀라는 급히 뇌조와 함께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윌리엄! 괜찮은 거ㅡ”


하지만 카밀라 크루그먼 부총장이 본 건, 굶주림에 정신이 나간 우문고비의 산군에게 산채로 잡아먹히는 불쌍한 아카데미 재학생이 아니었다.


“이 못된 호랑이! 아직 손질도 안한 걸 함부로 먹으면 안 돼요!”

“내, 내려다오··· 내가 잘못했다······ 저거, 한 덩이만 먼저 먹으면 안 되겠느냐?”

“나쁜 호랑이는 벌이야!”


부웅- 부웅-!


“······.”


카밀라 크루그먼은 역으로 사라발의 머리를 붙들어, 마치 강아지를 훈육시키는양 굴고 있는 신인생을 보았다. 곁에 있는 윌리엄의 얼굴을 보니 카밀라는 어린 이복동생이 품고 있는 감정이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쁜 호랑이는 벌이야! 때찌!”

“아파! 아프닷! 엉덩이 그만 때려··· 꼬집으라는 말이 아니었다!”

“주인 허락도 없이 고기 훔쳐먹는 호랑이는 나쁜 호랑이야. 알겠어?”

“······알겠다. 그러니까, 이제 혼났으니 먹으면 안 되겠느냐?”

“이거 줄게. 양고기인데, 오늘 도축했다고 하더라.”

“좋구나! 그대는 착한 사람이다!”


사라발은 안나가 내민 양고기에 얼굴을 파묻고 와구와구 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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