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사 아카데미의 소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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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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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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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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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른 아카데미 04

DUMMY

4.


짐은 얼마 되지 않았다.


‘보통’의 신입생들이라면 우겨넣은 짐가방만으로도 ‘비좁은’ 기숙사 방이 가득 찼을 테지만, 브리시카에게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녀의 짐은 다른 신입생들의 것보다 작은 짐가방임에도 불구하고, 겨우 반을 채울 뿐이었다.


채 삼분도 필요치 않은 신속한 ‘짐정리’는 브리시카가 얼마나 ‘겸손한’ 생활을 해왔는지 옅볼 수 있게끔 했다.


‘사신수라고 했었지. 진짜인지는 몰라도, 학장님께서 따로 별관까지 내어주신다고 했으니 진짜배기 소환수겠지. 다행이네. 정말.’


카밀라는 ‘가난한’ 이들을 아카데미의 사람들보다 ‘잘’ 알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가 소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서 향한 곳은 ‘귀족 나으리’들이라면 평생 가볼 일 없는 곳들이었던 것이다.


소른 아카데미의 부총장은 모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곧바로 안락한 새장 밖을 떠돌았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으로 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녀는 깨우쳤다. 가문과 뒷배, 유사시에 서로를 밀고 당겨줄 귀족 사회의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았다.


그 속에서, 카밀라는 ‘밑’을 보았다. 절망하고, 하루를 벌어 하루조차 벌어먹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그녀는 크루그먼 백작 가문의 영애로 태어났으나 스스로 귀족 사회에서 멀어지기를 힘썼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아카데미로 돌아와 그녀가 은연 중에 혐오하게 된 ‘귀족 사회’로 복귀했지만.


어쨌거나, 가난과 질병. 불행을 없애기 위해선 ‘높으신 분’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그래야지만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변화는 없다. 그런 일은, 천 분의 일. 아니 만 분의 일이라도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카밀라 크루그먼이 짧은 ‘방황’ 끝에 얻어낸 결론이었다.


“잊은 건 없니? 이게 전부야?”

“네. 다 챙겼어요. ···아, 이걸 잊을 뻔했네요. 고맙습니다, 부총장님.”


브리시카는 책상 아래 있는 자그마한 서랍을 열어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카밀라는 조금 놀랐다.


‘겸손한’ 브리시카가 가진 것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은으로 된 줄에 매달린 시계였다. 딸깍. 브리시카는 뚜껑을 열어 안을 보여주었다.


“보시다시피 시계예요. 어머니가 물려주신 거죠. 여기, 어머니 사진도 있어요.”

“어머니는, 지금 뭘 하고 계시니?”

“······돌아가셨어요.”


묻지 말걸.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는 법. 카밀라는 미안함이 담긴 손으로 브리시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괜찮아요. 엄마랑 약속했거든요. 최고의 소환사가 되기로요. 그렇게 되면······ 아, 이건 비밀이에요.”

“뭔지는 몰라도 응원할게.”

“고맙습니다.”


굳이 발더 교수가 대신해서 짐을 들어줄 필요도 없어 보였다. 카밀라도 마찬가지였고.


브리시카는 그 나잇대의 아이들이 보일 법한 ‘어리광’이나 ‘철없는’ 언행, 혹은 분위기가 조금도 없었다.


‘이미 어른이야’. 카밀라는 브리시카가 안쓰러웠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없는 것 같았고. 모친은 돌아가셨다고 했으니··· 카밀라는 세상에 나가 본.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모습과 브리시카가 겹쳐 보였다.


그래도, ‘바깥’에서 지내는 아이들에 비하면 지금 브리시카는 나은 편이다.


하루종일 몸이 부서져라 고된 노동을 하고 ‘성인’이 받는 품삭의 반절도 채 받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한 영지가 얼마나 많은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 나왔군. 짐은 그게 다인가?”


정문 밖에는 기다렸다는 듯 총장이 서 있었다. 발더 교수와 같이. 하지만 사라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집’처럼 큰 호랑이가 어디로 숨는단 말인가? 새내기 소환사인 브리시카는 물론이고 ‘사신수’의 일각을 보겠다며 은근히 기대하던 카밀라도 고개를 갸웃했다.


“아, 사라발을 찾나? 소환수는 계약한 소환사와 링크로 언제나 연결되어 있지. 브리시카 양. 사라발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겠나?”

“앗, 네.”


총장. 막시밀리앙의 말에 브리시카는 급히 정신을 집중했다. 새내기 소환사라 할지라도 ‘소환사-소환수’ 계약은 단단히 유지된다.


다른 한쪽이 계약에 실증을 내거나 단순한 변덕으로 깨뜨릴 수도 있을 정도로 ‘무른’ 계약이기는 해도, 계약은 계약이다.


심지어 사라발은 자기주장이 강한 환수이기는 해도 당장 환수계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브리시카도 강력한 소환수인 사라발을 필요로 했고.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브리시카는 희미하지만 자신과 이어린 가느다란 선. 링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사라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사라발? 이거, 사라발 맞아요?”


브리시카의 앞에는 ‘새끼’임이 분명한. 아주 작은, 그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호랑이가 아르릉- 거리고 있었다.


“무엄하기는. 소환사가 자기 소환수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면 어찌하려는 것ㅡ 켁! 숨 막힌다!”

“아앗. 미안해, 사라발. 너무 귀여워서···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작아진 거야? 그것도 갑자기? 원래부터 작아질 수 있었어?”

“한 번에 하나씩만 물어보거라. 머리 아프다.”


사라발은 총장의 그림자에 숨어 있었더랬다. 작은 ‘아기 호랑이’처럼 변한 상태로. 그 모습에 브리시카는 자기도 모르게 사라발을 끌어안았다.


모든 동물은 새끼일 때 귀엽긴 하지만, 성체일 때 무시무시한 맹수들은 기이할 정도로 새끼일 때 ‘더’ 귀여웠다.


호랑이 환수인 사라발도 그러한 건 다르지 않아서 카밀라 부총장도 브리시카의 품에 안긴 사라발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르릉! ···완전 새끼 고양이처럼 앙탈을 부리는 사라발을 보며 카밀라는 어쩔 줄 몰라했다.


“세상에나! 너무 귀엽다! 브리시카? 잠깐 네 소환수를 안아봐도 될까? 응?”

“싫다! 브리시카 말고 다른 사람이 함부로 만지지··· 아르릉! 자꾸 머리 쓰다듬지 말란 말이다! 난 우문고비의 산군··· 카악! 만지지 말랬다!”

“사람 가리는 거니? 엘론이시여, 진짜 귀엽다! 얘 하악질 하는 것 좀 봐!”


브리시카는 거의 반강제로 카밀라 부총장에게 사라발을 넘겼다.


‘주인’과는 다른 마른 절벽과도 같은, 푹신함 따위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감각에 사라발은 짜증을 부렸으나 이윽고 연륜 있는 소환사의 손길에 얌전해졌다.


아, 거기. 생각보다 잘 쓰다듬네. 기분 조아아··· 헤응······.


“이게 ‘집채만한’ 호랑이 환수라고요? 발더 교수님?”

“일이 조금 있었습니다.”


발더는 소른 아카데미의 정교수답게 부드럽게 돌려 말했다. 제대로 된 사정을 설명해준 건 총장. 막시밀리앙이었다.


“발더 교수가 딱히 거짓말을 한 건 아닐세. 몇몇 환수들은 제 크기를 ‘크게’ 만들 수 있지. 내 밤소잉도 그렇고. 사라발도 그런 기술을 익혔을 뿐이네. 단지, 반대로 ‘작아지게’ 만든 것일뿐.”

“하지만 총장님. 그거 어지간한 환수라도 빨라야 일 년은 배워야 쓸 수 있는 기술 아니었나요?”

“사신수는 타고난 재능이 다르더군. 여기, 증거가 있지 않나?”

“그만 만져라. 난 브리시카가 좋다. 이 절벽.”

“···호호, 브리시카? 나중에 소환수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지 따로 특별 강의를 할 테니까 꼭 들으렴?”

“네, 네에···!”


파직-. 미약하지만 전류가 튀는 것이 카밀라와 계약한 번개 정령. 뇌조가 제 주인의 감정에 호응한다는 뜻이었다.


발더와 막시밀리앙은 학원의 자랑이자 대표하는 미인 부총장에게서 한 걸음, 아니 세 걸음 물러섰다.


총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른 교수나 부총장보다 소환사의 역량이 빼어난 건 아니다.


소른 아카데미의 총장에 역임한 전대 총장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대의 총장은 소환사로서의 자질은 그냥저냥이었다.


막시밀리앙 레드리프가 총장에 취임하게 된 데에는 빼어난 소환사여서라기 보다는 그의 ‘상관’이 동부왕국연합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높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이유는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이유 아닌가.


“진정하게나. 카밀라 부총장. 이 나이에 전기 맞으면 뼈도 못추린다네. 그렇게 전류 흘리면 관절 마디마디가 쑤신다네.”

“죄송합니다. 총장님.”


으득. 이를 가는 부총장은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새끼 호랑이를 노려보았다. 애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사베르한의 서리가 서려 있었다.


“어서 가자! 브리시카. 이 늙은이가 우리가 살 ‘집’을 준다고 했다! 건물 한 동도 다 쓰지 못하는 기숙사보다 훨씬 크다고 들었다. 완전 좋지 않느냐?”

“하, 하하··· 예. 엄청 좋네요. 아니, 좋아요.”

“후후, 이 몸의 존귀함을 알아본 것이지. 앞으로도 계속 알아모시도록. 막시밀리앙 레드리프. 그렇다면 가끔 머리를 쓰다듬어도 물지 않으마.”

“그거 참 영광이군요.”


총장은 브리시카의 품에 안겨 으스대고 있는 새끼 호랑이. 사라발의 머리를 몇 번 쓸었다.


‘작아지게’하는 기술을 잘 쓰는 건 좋은데, 너무 잘 써먹어서 그만 ‘외형’까지 어린 시절로 되돌린 것이 기이했지만 이에 대해서 막시밀리앙은 말을 아꼈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 그가 소른 아카데미의 총장에 임명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서 가자! 나는 ‘새 집’을 보고 싶다. 지금 당장!”


사라발이 버둥거리며 브리시카의 어깨에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했다. 어깨에 매달린 것이 새끼 호랑이가 아니라, 잘 붙여놓은 호랑이 인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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