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레이트의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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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주
작품등록일 :
2024.08.2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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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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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으로 (3)

DUMMY

2군 경기가 열리는 고양 국가대표 야구 훈련장.


6회 초 2사 2, 3루.

카운트는 투 볼 투 스트라이크.


투수도, 타자도 연신 긴장한 표정이었다.

결과에 따라 흐름이 달라지니까.


30|40|30|25|35


눈앞에 뜬 숫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투수의 가장 좋은 공은 포크볼이라고.


포크볼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딱!

따악!

딱!


3연속 파울.

투수가 비 오듯 땀 흘리자 저쪽 더그아웃에서 소리쳤다.


“유리하다! 유리해!”

“하나 가자! 파이팅!!”


누가 봐도 투수가 불리한 상황.

코너에 몰리자 투수는 내 요구를 받아들었다.


‘낮게. 무조건 낮게···.’


휙!


공이 날아왔다.

포심처럼 뜨다 급속히 가라앉는 볼.


부웅!


배트는 허공을 돌았고, 나는 몸을 숙이며 바운드 된 공을 상체로 막아냈다.


“큭!”


외마디 비명과 함께 1루로 뛰는 주자.

스트라이크 낫아웃 상황이었으나 나는 여유롭게 공을 잡아 1루로 송구했다.


팡!


아웃이었다.


-나이스!!

-마지막 공 좋았다!!!


팬들의 칭찬 속에 투수가 다가왔다.


“진작 포크 던질걸.”

“아뇨. 선배 생각이 맞았어요. 포심 두 개 로케가 좋았어요. 그래서 속은 거고. 선배님 덕입니다.”

“···넌 좋은 포수 되겠다.”


더그아웃에서도 칭찬이 이어졌다.


좋은 포구였다, 침착하게 잘 막았다.

그런 가운데 감독님이 날 부르셨다.


“마루야.”

“네 감독님!”

“잘했다. 잘했고,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네?”


무슨 소리지? 교체? 왜?

그러자 배터리 코치님이 웃으셨다.


“방금 연락 왔다. 짐 챙겨. 1군 간다.”

“······정말요?”

“그래. 아직 경기 안 끝났으니까 너무 티 내지 말고. 들어가서 준비해.”


고개를 꾸벅 숙인 뒤 먼저 숙소로 돌아가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기분이 묘했다.

1군, 내가 1군이라니.


물론 조짐은 있었다.


배선호 선배님의 언질

부쩍 늘어난 관계자들의 질문

계속 이어진 선발 출전까지


묵묵히 짐을 정리한 나는 카톡을 돌렸다.


-자랑스러운 강씨 집안의 막내아들, 강마루 1군 올라갑니다.


바로 폰이 울었다.

샛별이었다.


「···1군? 진짜?」

“천잰데 당연한 일 아냐?”

「얼씨구. 2군에서 3할도 못 때리면서 무슨.」

“힘 봉인 중이었거든.”

「개소리 말고. 진짜 1군?」

“어. 그럼 가짜 1군도 있게? 짐 다 쌌고 이제 곧 매니저님 오실 거야.”

「······.」


침묵.

전화 끊겼나? 봤더니 정상이었다.


“여보세요? 임샛별 씨?”

「···1군 올라가는 게 뭐가 대단하다고.」

“목소리가 떨리는데요?”

「감기 걸려서 그래. 감기.」

“큰일 났네. 입원해야 하는 거 아냐?”

「적당히 놀려라 진짜.」

“맨날 놀리는 게 누군데.”


나는 작게 복수했다.


별이는 옛날부터 그랬다.

감기 걸릴 때마다 여름 감기는 바보도 안 걸리니 뭐니 주절주절.


그러면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난리를 피워댔다.


나는 누나니까 동생 챙겨야 한다고.

생일도 몇 달 차이 안 나면서 진짜.


「웃어?」

“어. 그때 너도 감기 걸렸었잖아. 둘 다 걸렸는데 그러니까 웃겨서.”

「난 기억 없는데.」

“네네. 그러시겠죠. 어쨌든, 응원 부탁할게.”


별이는 평소와 같은 말을 꺼냈다.

야구 똑바로 해라. 못하면 죽는다고.


누가 들으면 오해할지도 모르나 내겐 최고의 응원이었다.


***


“······.”


믿어지지 않았다.

설마 마루가 1군에 올라가다니.


물론 강마루가 흔한 유망주가 아니라는 건 안다.


신인 드래프트 전체 1번 지명자니까.

모든 관심이 쏠리고 성장 속도에 따라 팀의 미래도 달라진다.


하지만 강마루였다.

언제나 코 찔찔 흘리고 장난치기 바빴던 이웃집 남자애.


한참 투수로 승승장구하던 강마루는 뜬금없이 고백했다.


나 투수하기 싫어. 포수 하고 싶어.


무슨 애도 아니고 타박하려다 말았다.

강마루의 눈은 죽어 있었으니까.


활기차던 애가 그러고 있으니 괜히 신경 쓰였다.

별로 걱정하는 건 아닌데, 진짜 아닌데 저러고 있으니 기분이 좀 그랬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너랑 안 어울린다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


임샛별은 시선을 돌렸다.

서울 피닉스 모자, 기념구, 굿즈··· 나중에 비싸게 팔릴 거라고 억지로 받은 2군 실착 유니폼까지.


그 너머 액자 하나가 보였다.

병원을 배경으로 찍은, 어린 시절의 강마루와 임샛별이었다.


‘야! 강마루?! 괜찮아?!’


탐험 놀이를 하던 두 사람은 뒷산에 놀러 갔다가 다쳤다.


하루 만에 퇴원했으나 대신 흉터가 크게 남았다.

강마루는 왼쪽 손목에

임샛별은 오른쪽 팔꿈치와 어깨 사이에


강마루는 괜찮다고 했으나 임샛별은 모든 게 자기 잘못 같아 엉엉 울었다.

오빠, 마루네 언니, 부모님 모두 괜찮다고 했으나 주체 못 할 정도로 울었다.


그때부터였다.

강마루는 내가 지켜야 한다고.

나는 누나니까.


지금도 남아 있는 흉터를 떠올리며 임샛별은 중얼거렸다.


“···다치지만 마. 바보야.”


***


“환영해. 온다고 고생했어.”


고척돔에 도착하자 직원이 환영해주셨다.


직원들은 있었으나 그 외엔 인기척이 없었다. 지금 피닉스 선수들은 인천 원정 경기를 끝내고 오는 중이니까.


“미안해. 내일 천천히 와도 되는데.”

“아뇨. 아닙니다. 괜찮아요. 불렀는데 바로 와야죠. 미국도 아니고.”

“그래? 그럼 다행이고. 보자. 친한 선수들은 있어?”


라커룸 배정 때문이었다.


“많지는 않아요. 몇 개월 안 됐고, 동기들은 다 2군에 있어서.”

“배선호 선수랑 황도윤 선수는 친하지 않아?”

“어떻게 아셨어요?”

“신신당부하더라. 2군에서 올라오는데 잘 챙겨주라고. 어찌나 많이 말했는지 귀에 딱지 생겼어.”


나는 두 선배님을 떠올렸다.

베테랑 야수 배선호 선배는 좌익과 지명을 오가며 출장 중이었고, 황도윤 선배는 좌타자 원포인트로 간간이 나오고 있었다.


“그 정도의 위인은 아니에요.”

“정말? 배 선수 이런 말도 하던데? 겉은 모범생인데 속엔 구렁이가 있다고.”


선배님도 정말.

신인인데 너무 힘주는 거 아냐?


“전혀. 다들 기대 많아. 나도 지나가다 이런저런 말 듣거든.”

“······감사합니다.”

“그래. 힘내고. 자리는 보자··· 여긴 어때? 괜찮아?”


나는 직원에게 고갤 숙인 뒤 짐을 하나씩 풀었다. 조용한 라커룸에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이 정도면 됐나.”


짐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붙였다. 하나는 가족사진, 또 하나는 나와 별이.


사진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영원한 1군은 없다.

베테랑이어도 슬럼프가 찾아오고 컨디션 조절차 2군에 가는 일도 많다.


하지만 하루라도 더 오래.

몇 시간이라도 더 오래 이곳에 있고 싶었다.


내 꿈, 메이저리그를 위해.


“오! 강마루 왔냐?”

“마루야 왔어?”


배선호 선배와 황도윤 선배였다.

원정 끝나고 왔는데 왜 집에 안 가고.


“선배님들? 왜 여기?”

“왜긴 왜야. 너 왔다고 해서 왔지.”

“그래. 내일 보지만··· 왠지 섭섭해할 거 같아서.”


나는 연기에 돌입했다.


“선배님들 사랑에 눈물 날 거 같네요.”

“얼씨구. 마음에도 없는 소릴. 안약 줘?”


우리는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케이크도, 현수막도 없었으나 그저 즐거웠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야구로 흘러갔다.


“오늘 경기는···.”

“하. 말도 마라. 제대로 깨졌다 진짜. 이겼다 싶었는데 야금야금 따라잡히더니 졌어.”

“응. 파이터즈, 야구 잘해.”


인천 파이터즈.

이름만 봐선 상남자들이 득실하고 굵직한 야구를 할 것처럼 보이나 소총 부대에 작전 야구 중심이었다.


“BQ가 높아. BQ가. 우리 팀 몇몇 빡대가리와는 다르게.”

“···형, 그런 말 해도 돼?”

“뭐 어때.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날 건 혼나야지.”


배 선배 요약에 따르면 아래와 같았다.


안 줘도 될 점수 주고, 안일한 플레이에 경기가 뒤집혔다고.

특히 결정적인 건 8회 말이었다.


“멍청한 놈. 거기서 냅다 홈으로 던지면 어떡하라고! 어차피 잡기 어려운데 커트맨한테 던져야지. 커트맨한테. 어깨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배선호 선배님은 배쌤이라 불릴 정도로 선수단 인망이 좋았으나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었다.


“야구에 성역이 어딨어. 에이스도 정신 나가면 혼내야지. 베테랑도 마찬가지고.”

“저도 못 하면 혼 나겠네요.”

“물론. 눈물 쏙 빼게 해줄 테니까 기대해. 넌 뭐,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렇게 말한 배 선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집에 가자고.


***


작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1번 유망주의 1군 콜업.


당연히 반응은 갈렸다.


어떻게 얻은 전체 1번인데 망칠 일 있나.

맞다. 투수도 아니고 포수를? 이건 최악이라고.


반면 지지하는 이도 많았다.


아마 때부터 발전 속도 빠르다고 칭찬받던 선수다. 2군보단 1군이 맞다.

그리고 팀 성적이 이 꼴인데 뭐라도 해야하지 않냐고.


그만큼 서울 피닉스 성적은 좋지 않았다.

10위로 리그 압도적 꼴찌.


조덕출 감독이 온 뒤로는 2할 승률에서 탈출했으나 탈꼴찌는 여전히 멀어 보였다.


당연히 기자들의 관심은 신인 포수에게 쏠렸다.


“어떤가 싶어서 올려봤습니다. 선발 출전? 아휴, 기자님도 정말. 아직 19살 아닙니까. 19살. 메시도 후반전 교체로 1군 데뷔했어요. 무리하면 안 되죠. 글쎄요. 잘하면 경기 후반에는 올릴 수도 있겠죠. 일단 지켜보고요.”


조덕출 감독이 답하고 있을 무렵.


“여보!”

“응 왜요?”

“내 선글라스 못 봤어? 분명히 여기 놔두었는데.”


임샛별 아버지 임창섭은 아내에게 물었다.

야구장 직관 갈 때만 쓰는 아끼는 선글라스였다.


“글쎄요. 늘 거기 두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분명히 여기 놔두었는데.”


임창섭은 시즌권을 끊을 정도로 피닉스를 사랑했는데 요샌 기분이 더 좋았다.


바로 친구 아들이 1군에 데뷔했으니까.


선발 라인업에 든 것도 아니나 오늘만큼은 꼭 가야 했다.

야구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조덕출 감독 성향을 고려하면 후반에 나올지도 모르니까.


예비 사위가 떡하니 그라운드에 나왔는데 예비 장인이 없으면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었다.


“여보 슬슬···.”

“······거참 어쩔 수 없지.”


밑엔 강마루의 아버지 강학철과 어머니 주현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가려는 순간.


“······여보.”


아내가 폰을 내밀었다.

막내딸 임샛별은 아버지가 아끼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것도 고척돔 앞에서 유니폼을 입은 채.

딸이 피닉스 광팬인 걸 모르는 이는 없으나 오늘은 어째 표정부터 달랐다.


“······딸?”


언제 갔대. 그리고 잠깐. 저건.


“당신이 아끼는 스카프 아냐?”

“저 카메라도 당신이 아끼는···.”

“······.”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셋팅이었다.

마치 전쟁에 나가는 전사 같았다.


분명히 오늘 친구들이랑 놀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딸 : 같은 팀 팬이면 친구 아닐까요. 아끼시는 물건들은 제가 소중히 쓰겠습니다.


“···관심 없는 척하더니.”

“당신 딸답네요.”

“무슨 소리야. 당신 딸이지.”

“야구 말고는 관심 없다고 했던 사람이 누군데요.”

“어허! 그건 말이지! 당신이 너무 예뻐서 그만··· 크흠!”


두 사람은 투덕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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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탈꼴찌를 향해 (1) +3 24.09.07 3,547 99 12쪽
13 늘어나는 기회 (3) +7 24.09.06 3,551 100 12쪽
12 늘어나는 기회 (2) +5 24.09.05 3,702 94 12쪽
11 늘어나는 기회 (1) +7 24.09.04 3,814 109 12쪽
10 첫 선발 출장 (3) +4 24.09.03 4,022 103 12쪽
9 첫 선발 출장 (2) +6 24.09.02 4,147 107 12쪽
8 첫 선발 출장 (1) +3 24.09.01 4,309 98 12쪽
7 갑작스러운 데뷔 (3) +4 24.08.31 4,614 101 13쪽
6 갑작스러운 데뷔 (2) +8 24.08.30 4,784 1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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