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로 역대급 재능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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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mybob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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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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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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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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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로 역대급 재능 개화

DUMMY

4화.



난리가 난 훈련장 앞에 두 여인이 서 있었다.

산산조각 무너진 대리석 잔해를 보며, 허리춤의 장검처럼 키가 훤칠하게 큰 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팔라딘 길드 레이드 본부장. 그리고 한태무 회장의 둘째 자녀 ‘한사라’였다.


첫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국내 헌터 업계에서 보기 드문 영재였다.

어린 시절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괴수에 어머니가 죽임당한 뒤, 그녀는 독기를 품고 수련에 매진했었다. 그 독기 때문이었을까.

한기가 서린 그녀의 마나는 차갑기로 유명했다. 덕분에 그녀는 고작 스물하나의 나이로 A등급 헌터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길드에 입단해 무려 3년 만에 팀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오직 그녀의 힘만으로 말이다.


악명높았던 제주도 게이트 사태 때도 그녀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그 유명했던 서귀포의 A급 레비아탄을 말 그대로 얼려서 처치해버린 것도 바로 그녀였으니까.


“이걸 진짜 걔가 했다고?”

“네, 사라 본부장님.”


한사라가 인상을 썼다.


“그게 말이 돼?”


당연히 말이 안 됐다.

막내가 최근 고등 아카데미에서 졸업하면서 받은 최종 등급은 F였다.

평범한 학생으로 치면, 고등학교를 최하위 성적으로 졸업한 셈이었다.

즉, 수시는 고사하고 수능도 말아먹은 낙제생 신세인 거다.


‘말이 좋아 F다. 퇴학당하지 않고 졸업한 게 기적인 성적이었어.’


졸업 후에는 또 어땠는가?

방구석에서 뭘 하는지 도통 얼굴도 보기 어려운 녀석이었다.


‘백수라면 얌전하게 처신이라도 잘하든가.’


녀석의 망나니짓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었다.


‘한심한 놈.’


어제까지만 해도 삐쩍 말라서 헌터로서의 수련은 고사하고 사람 구실도 할까 싶던 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걸 박살 내? 고작 검 한 자루로?’


“회장님은?”

“현재 TF팀과 C5 게이트 토벌 중이십니다.”

“언제 돌아오시지?”

“예정대로면 일주일은 족히 남은 일정입니다. 하지만.”


한사라의 담당 비서관은 손에 들린 패드를 확인하곤, 말을 이었다.


“이따 잠깐 들린다고 하시는군요.”


한사라는 무너진 대리석 잔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최 비서. 자네 그거 아나?”

“무엇 말씀이십니까?”

“이 벽. 그냥 평범한 대리석 벽이 아니야.”


한사라는 손가락으로 박살이 난대리석 가루를 비비며 말했다.


“마나 크리스털을 섞은 벽이지.”

“······예?”

“보안상의 문제로 자택의 모든 벽은 튼튼하게 지으라 하셨거든. 아버지께서 말이야.”


한사라는 재미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걸 깨부순 거지. 우리 망나니 막내놈이 말이야······.”


뚫린 벽 너머를 바라보던 한사라는 돌아 나섰다.

흥미가 당겨 잠깐 들러봤지만, 이젠 슬슬 길드로 돌아가 팀을 점검할 시간이었다.

1팀을 이끄는 그녀는 그 누구보다 바쁜 몸이었다. 그리고 전력의 핵심이었다.


“슬슬 정규 훈련시간이네. 가봐야겠어.”


한사라가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녀석의 상태는?”

“의무실에 있다고 합니다. 마나폭주를 당한 것 같다 하더군요.”


한사라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래? 마나 폭주라······ 목숨은 부지했어도 팔 하나 정도는 날아갔겠구나. 졸도했을 테니 한동안 집이 조용하겠어.”

“······ 마나 폭주를 당한 건 맞습니다만.”


비서가 안경을 고쳐잡았다.


“도련님은 제 발로 의무실로 걸어갔다고 합니다. 졸도하지도 않았고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하답니다.”


***


엄청난 위력.

그리고 폭발.


‘역대급 재능이다.’


나는 의료진이 처치하는 팔을 보며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이건 기회야.’


내 안엔 S급 헌터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심장이 조용히 뛰었다.


‘망나니 한시언이 S급 헌터의 재목이었다니. 전생 땐 그렇게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S급의 재목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는데. 재미있군.’


몇 시간 전의 일을 떠올렸다. 내 손으로 마나가 빨려 들어오던 순간 말이다.


‘검은 소용돌이.’


여러모로 나의 능력은 블랙홀을 떠올리게 했다.


‘마나를 빨아들이는 거니까 마나홀이라고 불러야 하나?’


나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다른 마나를 빨아들여 성장하는 힘이라······’


헌터 매니저로 쌓아 올린 안목과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적절한 코칭과 기회만 있으면, 나는 엄청난 헌터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이다.

놈들을 도륙 낼 힘이, 내 안에 잠들어 있었다.


‘물론 갈 길은 멀어. 앞으로 손대야 할 걸 따지자면, 끝도 없지.’


어느 면으로 보나, 현재 가지고 있는 나의 자질은 형편없다.

고등 아카데미를 졸업하며 F급 판정을 받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상태였다.


‘하지만 난 성장할 거다. 그 누구보다 빠르고, 높게 말이야.’


나는 손바닥을 내려보았다.


‘게이트 너머에는 크리스털 말고도 마나를 머금은 것들이 많지.’


진귀한 무기와 장비들뿐만이 아니다.

나는 전생 때 책과 논문으로만 접했던 수많은 괴수를 떠올렸다.


‘그 모든 게,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다.’


처치가 마무리되는 팔을 보며, 나는 가슴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겠지.’


아직은 몸도 약하고, 마나 컨트롤 역량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말 그대로 비루하기 짝이 없는 상태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나는 F급 판정을 받은 헌터 후보생이다. 정식 헌터도 아니거니와, 체력과 마나 컨트롤 역량 등 모든 면에서 열등하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하지만 이 안에 잠들어 있는 잠재성, 그것만큼은 분명 S급 이상이다.’


나는 다짐했다.


‘난 S급 헌터가 되겠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련님, 모시러 왔습니다.”


그때, 낯이 익은 한 사람이 처치실로 들어왔다.

키는 족히 180cm의 사내였다. 우락부락하진 않지만, 건강하고 튼튼한 체격과 짧은 헤어스타일이 흡사 군인 같았다.


‘저 사람은······?’


그의 이름은 ‘박무공’.

아무래도 한시언의 담당 비서인 모양이다.


‘재미있네. 박무공이 한때 한시언의 담당 비서였다니 말이야.’


전생 때 박무공의 별명은 태산(泰山)이었다.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란 뜻이었다.


나는 전생 때 그를 만났던 기억을 짧게 떠올렸다.

전생 때 길드의 인사 총책으로서 유능한 헌터를 물색할 때 만났었는데, 만나자마자 공격을 해왔었다.


- 난 헌터란 새끼들이 싫어. 특히 너희 같은 길드 놈들은 증오하고.


육중한 방패의 아래 날로 내 목을 겨누며 녀석이 했던 말이었다.

길드 소속은 맞지만 헌터는 아니라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그런 걸 따질 분위기는 아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때 박무공의 눈빛은 죽어있었지.’


나는 전생의 기억 속 그를 떠올리며, 눈앞에 잔뜩 어리바리 긴장 타고 있는 박무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사정은 모르겠다만, 일단 지금은 그때처럼 비우호적인 태도는 없는 것 같군. 어쨌든 길드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야. 그나저나······’


나는 인상을 썼다.


‘왜 이렇게 얇아? 그때에 비하면 팔뚝이나 허벅지가 너무 얇은데?’


나의 눈빛에 박무공이 엉거주춤 차렷 자세를 했다.


‘그래도 결국엔 태산으로 클 인재다. 내 밑에 두고 잘 키워두면, 여러모로 든든하겠어.’


나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래. 너는 앞으로 내 방패가 되어줘야겠다. 놈들을 도륙 내고, 문 너머로 나아갈 때까지 말이야.’


위아래를 훑는 나의 시선에 박무공의 안색이 서서히 창백해졌다.


‘그나저나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이네. 전생에서 만났을 땐 산전수전 다 겪은 양반처럼 어두운 표정이었는데 말이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완전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군.’


내 웃음 때문이었을까.

끝내 박무공은 소름 돋는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 도련님, 회장님께서 보자 하십니다······!”


여전히 잔뜩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였다.


***


저택의 중심이자, 가장 깊은 곳.


천장이 뻥 뚫려 햇살이 드리워지고 있는 그곳엔 잘 꾸며진 정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검 하나가 햇살을 받으며 꽂혀 있었다.


오랜 시간 주인을 잃고 잠들어 있는 검이었다. 긴 세월 홀로 꽂혀 있었음에도 녹 하나 없이 위풍당당해 보였다.


한태무는 조용히 검을 쓰다듬었다. 오래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우수에 찬 눈빛이었다.


“부르셨나요.”


내 목소리에, 말없이 검을 바라보던 한태무 회장이 고개를 돌렸다.


‘회장님께서 게이트 토벌 중에 일부러 시간을 내셨다고 합니다!’


박무공이 귀띔해 주었던 말을 떠올리며, 나는 회장의 용건이 궁금해졌다.


‘별 이유도 없이 이렇게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을 터.’


잠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회장은 입을 열었다.


“그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어떻게 한 거냐?”


예나 지금이나, 용건부터 때려 박는 성격은 여전했다.


“그냥 훈련 중이었습니다.”

“그냥? 훈련?”

“네. 검에 마력을 싣는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대답에 회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러니까 네 대답은, 연습하다가 그 난리를 피웠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소란을 피운 점, 죄송합니다.”


‘죄송?’


예상치 못한 막내의 단어 선택에 회장은 속으로 꽤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그 이상의 기색은 내지 않은 채, 태연히 말을 이었다.


“어쨌든 네가 다시 검을 들기로 했다, 이 말이냐?”

“네. 맞습니다.”


나는 간결하게 답했다.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하.”


회장이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헌터가 되지 않겠다고 얘기했을 때, 아무리 묻고 다그쳐도 넌 그 이유를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어.”

“······ 그랬지요.”


내겐 없는 기억이지만, 회장이 갑자기 없는 얘기를 지어낼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루아침에 너무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 이상하게 여기려나.’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계속 밀어붙이기로 했다.

새로워진 나, 아니 한시언의 모습을 말이다.


‘회장의 성격상 이렇게 하는 게 더 좋다. 나의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선 회장의 인정도, 그리고 길드 안에서의 나의 입지도 필요해. 못난 망나니의 모습은 최대한 빨리 털어내는 게 맞다.’


나는 고개를 들어 회장을 똑바로 응시했다. 자신감은 넘치되, 예의를 갖춰서 말이다.


“생각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오늘부로 저는 정상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정상에 가겠다?”

“예.”


나는 눈빛을 빛냈다.


“앞으로 저는 최고의 헌터가 되려 합니다.”


회장이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래? 이유는?”


나는 조심스럽게 답했다.


“죄송하지만, 이번에도 이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회장이 내게 보여줬던 ‘문’에 대한 정보. 그것은 아직 망나니 한시언이 알 수 없는 정보였다. 어쩌면 지금의 회장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일지도 몰랐다.


‘문에 대한 얘기는 차차 수면 위로 올려도 되겠지. 일단 시급한 건 나의 성장이기도 하고 말이야. 지금 당장은 여기에 집중하고 싶군.’


회장은 입꼬리를 올렸다.

나의 대답에 언짠아하는 기색은 아니였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예상대로 그는 나의 태도에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똑 부러지게 당당한 모습도, 정상에 서겠다는 포부도 말이다.


“누굴 닮았는지 원, 고집하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좋다. 이번엔 또 무슨 바람이 들어서 다시 검을 들기로 했는진 묻지 않으마. 대신······.”


‘탁-’


회장은 시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너, 유학 가라. 미국의 UCHA 헌터 아카데미로. 듣기론 오늘이 접수 마감일이라고 했다.”


UCHA 아카데미.

뛰어난 헌터 영재들을 위해 설립된 상급 아카데미 중에서도 최고의 명문으로 통하는 곳이다.

그곳은 모든 헌터 지망생들의 꿈이자, 기회의 무대다.

일반 학생으로 치자면 대학교.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곳은 실무 교육과 훈련이 위주인 만큼 2년제다.


“난 여기에 네가 갔으면 한다.”


세계 TOP 100에 드는 헌터의 절반 이상이 UCHA의 졸업생이다.

게다가 TOP 10에 이름을 올리는 전설들은 단 한 사람만 빼고는 모두 이 아카데미 출신이었다.


‘UCHA 아카데미만 졸업한다면, 세계적인 길드에서 온갖 제의를 받을 수 있지.’


그뿐만 아니었다.

어쩌면 세계적인 길드의 설립자가 되어, 다음 세대를 호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물론 내겐 부와 권력보다는 복수가 먼저지만.


“입학 신청서와 추천서에 필요한 내 싸인은 다 해두었다.”


보아하니, 처음부터 회장은 내게 이 제안을 하기 위해 만나자고 한 모양새였다.


“단,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입학시험을 통과하는 건 네게 달렸다.”


오직 최고만을 육성하는 아카데미답게, 입학시험 난이도도 악명이 자자했다.


‘절대평가임에도 합격률은 늘 10%를 넘기지 못하지.’


회장의 눈짓에, 옆에 서 있던 1등 비서관이 내게 서류를 건넸다. UCHA 입학 지원서였다.


‘이제 이곳에 싸인을 하면, 나는 세계 최고의 아카데미에서 성장할 수 있다.’


나는 눈을 감고, 미소 지었다.


‘··· 그래. 나를 더 큰물에서 놀게 하고 싶으시겠지. 큰 전력으로 키워내고 싶으신 거야. 역시······ 회장님은 이 안에 잠들어있는 잠재력을 어렴풋이 느끼고 계셨던 건가?’


“대답은?”


회장은 내게 물었다.


‘회장님의 판단은 옳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

좋은 기회만 있다면, 나의 잠재력은 분명 화려한 꽃으로 개화(開花)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어떤 헌터보다도 더 화려하고 찬란하게 말이다.


‘그래. 좋은 토양에서 좋은 꽃이 피는 법이지. 내게 UCHA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아니, 모든 헌터 지망생들에게 꿈의 무대인 곳이다.’


나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망설임이나 걱정 따윈 없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아니, 아버지.”


그리고 힘 주어 대답했다.


“하지만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예를 갖춰, 가볍게 묵례했다.


“······뭐라?”

“제안은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유학보단 다른 걸 부탁드리고 싶군요.”


회장은 말없이 시가의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후우-


그리고 다시 뱉었다.


“말해 봐.”

“제게 권한을 주십시오.”

“권한?”

“네. 팔라딘 길드의 정식 헌터, 그 자리와 거기에 걸맞은 합당한 권한을 주십시오.”


잠깐의 정적이 무겁게 흘렀다.


“하하하하!”


예상치 못한 나의 제안에 회장이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 길드의 헌터 자리를 말이냐?”


웃음을 멈춘 회장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넌 이제 겨우 스무 살이다. 세상살이 나이가 전부는 아니야. 하지만 연륜이란 것의 중요성을 난 잘 안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 길드는 아무 헌터나 뽑지 않아. 명문 아카데미를 졸업하고도, 몇 년간 대단한 경력을 쌓은 헌터들도 낙방하는 자리다. 하지만 막말로 넌 상급 아카데미는 고사하고, 고등 아카데미도 겨우 졸업한 몸 아니냐?”


회장은 나를 지긋이 쏘아보았다.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호락호락하게 내어 줄 자리도 아니다. 그건 공정하지도 않고, 나 또한 용납할 수 없어.”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시험을 통과해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UCHA 입학시험이 아니라, 그보다 더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말입니다.”

“시험?”

“네, 제게 한 달의 시간을 주십시오. 두 달 뒤 아닌가요? 그때 열릴 길드 입단 자격시험에 지원해, 통과해 보이겠습니다.”


길드 입단 자격시험.

그것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F등급 수련생이 통과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었다.

그때, 1등 비서관 옆에서 대기하던 수행원이 입을 열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희 길드의 자격시험은 말입니다······.”

“C등급 이상의 헌터들에게만 지원 자격이 주어지지.”

“······.”


나는 수행원의 말을 잘랐다.


“근데 너, 내가 언제 대화에 껴들어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있나?”

“예?”

“아니면 내 아버지께서 그런 허락이라도 해두신 적이 있나? 그게 아니라면······.”


나는 무섭게 수행원을 노려봤다.


“당신은 정말 외람된 짓거리를 한 거야.”

“윽······.”


1등 비서관이 죽상이 된 수행원을 대신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를 데리고 먼저 퇴장했다.


물론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지금 내 수준은 헌터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그야 나는 F급 각성자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변하는 건 없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하찮은 등급을 C등급까지 올리는 것.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방금의 일로 나를 더욱 흡족하게 바라보는 눈치였다.

카리스마는 헌터에게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으니까.

나는 가볍게 묵례하며 말을 이었다.


“두 달 안에 시험에 응시할 자격 요건도 갖춰 놓겠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시험을 통과해 보이겠습니다.”


회장은 한동한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치이익······


그는 시거에 붙은 불을 손가락으로 비벼 껐다.


“좋다. 그리하도록.”


회장은 용건을 다 봤다는 듯, 자리를 떴다.

격식을 갖춰 묵례하고 있는 내 옆을 지나가며, 그는 내 어깨를 한 번 쳤다.


별다른 인사나 말없이 멀어져가는 회장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뭔가 익숙한 느낌이네.’


***


그날 밤.

나는 훈련에 필요한 준비물 리스트를 작성해 박무공에게 건넸다.


“······마나 크리스털로 만든 마네킹 300개. 메디컬 스톤 한 달 치, 연습용 검 100자루와 실전용 최상급 장검 1개랑 방패 하나, 그리고······.”


박무공이 잠시 뜸을 들였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땅을 전부 사두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치미를 떼곤 말했다.


“왜? 갑자기 촌구석 허허벌판인 땅은 왜 사나 싶어? 제대로 훈련하려면 넓은 땅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렇······군요?”


이해가 되는 듯,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질문 끝났으면, 그만 나가서 일 봐.”


박무공은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격식을 갖춰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두 달인가.’


내게 잠들어 있는 재능, 그것을 깨우겠다고 선언한 기한.


‘할 수 있어.’


한시언의 몸에는 피지 못한 꽃이 있다.

그리고 내겐 그것을 개화시킬 힘이 있다.


‘UCHA에 갔을 때보다 더 빠르고, 더 높이 성장하겠어. 그럴 방법과 능력이 내겐 있으니까.’


그날 밤, 나는 밤을 지새우며 전생의 기억들을 꼼꼼히 꺼내 펼쳐보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얻어야 할 것들을 철저히 계획하며.

그리고 내가 베어야 할 것들과 나아가야 할 곳을 가슴 깊이 새기며.


‘나는 할 수 있다.’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그 누구보다 강력한 헌터로 성장하겠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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