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출이 연기력을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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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나
작품등록일 :
2024.08.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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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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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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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 반짝이는 꿈(1)

DUMMY

나는 드라마를 사랑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연기를 좋아한다.

한때는 드라마 주인공 같은 삶을 꿈꾸기도 했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딛고 결국은 빛나게 되는 그런 삶을.


사람들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그런 명품 연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박도준 씨, 연기에는 영 소질이 없네요.’

‘방금 그 연기로 뭘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본인이 한 거, 발연기라는 건 알죠?’

‘표정만 못 쓰는 게 아니라 몸도 영 사용할 줄을 모르네.’


그렇다.

난 연기에는 재능이 없었다.

카메라 앞에 너무 서고 싶었지만 기회를 한 번도 얻지 못했다.

그리고 선택한 게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


“박 PD, 보조 출연자에게 주의해야 하는 거 다 알려줬지?”

“박 PD야, 고양이 좀 내쫓아라. 자꾸 화면 안으로 들어오냐!”


지금은 MBS 사극 드라마 ‘달빛 위를 걷는 그림자’ 촬영 중.

나는 이 드라마의 막내 PD 박도준이다.


막내 조연출은 시키는 건 다 한다.

물론 시키지 않는 것도 다 해야 한다.


“컷! 서보람 배우 얼굴 클로즈업 씬 준비되는 대로 갑시다.”


지철중 감독의 사인에 고요했던 촬영장이 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감독님! 이렇게 폭염 주의보 내린 날에도 촬영을 꼭 해야겠어요?”


툴툴거리는 이는 문희중.

내가 막내 조연출로 있는 MBS 드라마 ‘달빛 위를 걷는 그림자’의 남자주인공이다.


“촬영 스케줄이 빠듯하니까 어쩔 수가 없네. 많이 덥지?”

“네. 더워 죽겠어요. 지금부터 서보람만 클로즈업해서 찍을 거면 밴에 가서 좀 쉴게요. 일사병 걸릴 것 같아요. 내가 이래서 여름 사극 안 한다고 했는데.”


아이돌 출신으로 팬덤은 많지만 연기력은 그닥.

그러면서 얼마나 콧대는 높은지.


딱 본인 얼굴과 몸이 걸리는 장면을 찍을 때에만 카메라 앞에 선다.

그렇지 않으면 쌩하니 사라지기 일쑤.

원로 배우들도 하지 않을 짓.


보통은 카메라 앵글에 자신의 얼굴이나 신체가 나오지 않더라도, 등장하는 씬이면 상대 배우의 감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게 예의고 너무도 당연한 관행.

하지만 문희중은 그렇지 않았다.


지철중 감독도 몇 번 타일러 봤으나 그럴 때마다 보복하려는 듯 더 발연기를 해서 이제는 그냥 보내고 있다.

주연 배우의 컨디션이 곧 드라마 촬영의 순탄함을 좌지우지 하니까.


문희중이 밴에 들어가는 걸 보며 지철중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자, 다음 장면 바로 가자.”


그럼 상대 배우가 연기하기 쉽도록 문희중이 해줘야 하는 대사는 누가 치냐고?

누가 치겠어.


“박 PD야, 다음 촬영 서보람 상대역 대사 좀 쳐라!”


막내 조연출인 내가 치지.


“네, 감독님. 갑니다.”


물론 나는 이 시간이 싫지 않다.

오히려 좋지.


막내 조연출이 하는 여러가지 일 중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배우가 아닌 막내 조연출로 상대 배우가 연기하기 편하게 대사를 읊어주는 일이지만, 매번 들떴다.


누군가 이런 내 속마음을 엿본다면.

재능도 없으면서 여전히 배우의 꿈을 못 버린 미련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 않나.

오히려 서보람이 연기하기 편하게 도움을 주고 있지.

그러면서 나도 홀로 즐기니까 여러모로 일석이조 아니겠어?


“박도준 PD님, 오늘도 잘 부탁드려요.”


어여쁘게 한복을 차려 입은 서보람이 싱긋 웃었다.

날 향해 손부채질까지 해주면서.


“PD님, 많이 더우시죠? 아까 보니까 고양이 내쫓느라 계속 달리시더라고요.”

“그게 제 일인걸요. 저보다 서보람 배우님이 더 고생 많으시지 않습니까.”


나는 카메라 앵글을 고려해 살짝 뒤로 물러났다.


“자, 스탠바이! 큐!”


서보람이 연기하게 편하게 상대 역의 대사를 읊었다.

물론 열심히 하지만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지철중 감독도 내게 그런 것까지 요구하진 않는다.

그저 편집을 할 때, 튀지 않도록.

상대 배우 대사와 교차 편집을 할 때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그 정도만 해주면 된다고 주문했으니까.


“컷! 좋다. 다시 한번 가자.”


한여름 38도가 넘는 야외 세트장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촬영.

서보람과 눈을 맞추고 대사를 쳐주고 있던 가운데 내 눈에 들어온 무언가.


‘저게 뭐지?’


서보람 머리에 꽂아둔 헤어 장식이 좀 이상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희중과 투샷을 찍을 때부터 꽂고 있었던 머리핀 주변에 노란색 반짝이 같은 게 생겼다.


‘말도 안 하고 헤어 소품을 바꿨을 리는 없는데? 왜 스크립터 선배도 아무런 말을 안 하지?’


분명 아까 찍을 때와 달라진 게 생겼으면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모두가 보지 못한 것처럼 말이 없다.


이거 이대로 두면 큰일이다.

이 장면을 다시 찍어야 할 수도 있잖아.

마음이 급해졌다.


“컷! 지금 서보람 배우 감정 너무 좋다. 한 번만 더 갈까?”

“잠시만요, 지철중 감독님.”


나는 서보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서보람의 머리 근처에 부유하는 반짝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거 뭡니······억????”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 탓에 너무 놀라 목소리가 갈라졌다.


뭐야.

설마 나 일사병 걸려서 기절한 거?

당황해하고 있는데 서서히 눈앞이 밝아졌다.


.

.

.


꿈을 꾸는 것처럼 제 3자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장면.

시상식이 열리는 공간이었다.


이게 다 뭐야.

환장하겠네.

나 진짜 쓰러졌나?


‘대망의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시상식 MC는 잠시 뜸을 들였다.


대뜸 이게 왜 보이나 모르겠으나 당황스러운 건 또 있었는데.


‘대상은······! 축하드립니다. ‘품격의 그림자’ 박도준님!!’


박도준?

설마 나?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 속에서 무대 위로 당당하게 올라가고 있는 놈은.


“미친. 진짜 나잖아?”


트로피를 받고 자신만만하게 웃던 나.

이윽고 기가 막히는 수상 소감을 뱉었다.


‘대상을 받을 줄 몰랐다는 진부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많이 받고 싶었고 꼭 받고 싶었어요. 이제 이 상은 제겁니다.’


하하하.

객석에서 다들 웃음이 터졌다.


뭐 저딴 수상 소감을 하고 앉았냐.

민망해서 내 얼굴이 불타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대 위 나는 조잘조잘 잘도 지껄였다.


‘많은 꿈을 꿨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나 선명하게, 마치 미래의 한 장면처럼 제 눈앞에 펼쳐지기도 했었죠. 그 꿈이 저에게는 한 줄기 빛처럼 반짝였고, 그 반짝거리는 빛을 따라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미치겠다.

여전히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속 열망은 있지만, 일사병으로 쓰러진 이 순간에도 저런 꿈을 꾸고 있다니.


‘저처럼 여러분의 삶도 영원히 반짝이길 바랍니다. 더 좋은 배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금 캄캄해진 시야.


.

.

.


“······박도준 PD님? 괜찮으세요?”


누군가 날 흔들었고, 서서히 눈앞이 밝아졌다.

익숙한 공간, 장소다.


뭐야.

쓰러진 건 아니었나?

멀쩡히 서 있네?


“박 PD, 뭐 하고 있냐!”


지철중 감독의 큰 목소리에 난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헛! 죄송합니다.”


분명 서보람의 머리 쪽에 있는 이상한 반짝이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손을 뻗었었는데.

지금 나는 서보람의 뺨을 감싸고 있었다.


와, 미친 놈이라고 오해하겠는데.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PD님?”


정말 다행히도 서보람은 화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


“예. 그랬었는데······ 어디 갔죠?”


반짝이.

노란 반짝이가 사라졌다.


“서보람 씨, 머리핀 혹시 중간에 바꿨어요?”

“아뇨? 저 아까부터 이것만 계속 꽂고 있었어요.”

“아까 내가 분명 머리핀에 붙어 있는 노란 반짝이를 봤는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서보람.

나 역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도 아니고 노란 반짝이가 더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박 PD, 시간 없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찍자.”

“예, 감독님.”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난 다시금 뒤로 물러나 서보람의 상대역 대사를 읊었다.

영혼이 반쯤 나간 채로.


***


촬영한 장면을 모니터링 중.

몇 번이고 돌려봐도 내가 본 반짝이는 보이지 않았다.

서보람의 말처럼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헤어핀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똑같았다.

그 근처를 부유하던 노란색 반짝이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혹시 몰라 스크립터 선배와 지철중 감독에게 다시금 확인했지만.


“너 신기루 같은 거라도 봤냐? 허허허.”

“박도준 PD, 은근 몸이 약하네. 우리 드라마 PPL로 들어온 홍삼이라도 하나 빨아 먹어.”


이런 취급만 받았다.


진짜 그냥 헛것을 본 건가.

소품으로 쓰고 남은 홍삼을 찾아보려고 하는데, 지철중 감독이 또 날 찾았다.


“박 PD, 저 집에 또 고양이 들어갔다. 잘 달래서 몰아내 줘.”

“네. 갑니다!!!”


홍삼은 고양이를 우선 촬영장 밖으로 보내고 먹어야겠다.


“어휴. 이번엔 또 뭐로 고양이 유인하냐.”


한숨을 내쉬며 메인 감독 지철중이 말한 집 쪽으로 향했다.


“야옹- 야옹-.”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양이를 찾기 위해 기왓집 대문을 열려는 찰나.


“어?”


문고리에 무언가 반짝이가 묻은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거 그거잖아! 내가 서보람 머리 쪽에서 발견했던 그 반짝이.”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색상이 틀렸다.

그때는 노란색 반짝이였는데 지금은 푸른빛이 돌고 있었으니.

눈을 비비고 다시 떠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거 봐. 내가 아까 이상한 거 본 거 아니었다니까?”


근데 이 반짝이는 내 눈에만 보이나?


지철중 감독의 별명은 배운 변태.

집요하고 깐깐하지만 세세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고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만약 이 반짝이를 먼저 봤더라면 내게 문고리를 박박 닦으라는 지시를 내렸을 텐데.

고양이만 내쫓으라고 한 걸 보면 보지 못한 모양이다.


이번에도 이걸 건드리면 이상한 장면 같은 걸 또 보여 주려나?


한 손에 대본을 든 채 문고리 근처에 떠 있는 반짝이로 손을 뻗은 순간.


“흐으읍???”


몸이 순간 붕 뜨더니 순식간에 시야가 점멸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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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두 얼굴(4) +2 24.09.19 1,630 57 13쪽
25 #25. 두 얼굴(3) +4 24.09.18 1,991 50 12쪽
24 #24. 두 얼굴(2) +4 24.09.17 2,064 56 14쪽
23 #23. 두 얼굴(1) +4 24.09.16 2,103 56 12쪽
22 #22. 거물들의 집착(5) +2 24.09.15 2,150 55 14쪽
21 #21. 거물들의 집착(4) +2 24.09.14 2,169 53 12쪽
20 #20. 거물들의 집착(3) +3 24.09.13 2,226 57 11쪽
19 #19. 거물들의 집착(2) +3 24.09.12 2,288 54 16쪽
18 #18. 거물들의 집착(1) +3 24.09.11 2,355 63 13쪽
17 #17. 조기 종영을 막아라(3) +5 24.09.10 2,413 68 17쪽
16 #16. 조기 종영을 막아라(2) +2 24.09.09 2,412 68 16쪽
15 #15. 조기 종영을 막아라(1) +2 24.09.08 2,487 63 14쪽
14 #14. 몸 잘 쓰는 신인 배우(2) +3 24.09.07 2,479 66 13쪽
13 #13. 몸 잘 쓰는 신인 배우(1) +9 24.09.06 2,539 57 14쪽
12 #12. 탁주 키스(2) +2 24.09.05 2,577 61 13쪽
11 #11. 탁주 키스(1) +2 24.09.04 2,568 68 12쪽
10 #10. 짜릿한 변화(5) +3 24.09.03 2,595 63 14쪽
9 #9. 짜릿한 변화(4) +3 24.09.02 2,628 69 12쪽
8 #8. 짜릿한 변화(3) +3 24.09.01 2,772 68 14쪽
7 #7. 짜릿한 변화(2) +4 24.08.31 2,898 68 15쪽
6 #6. 짜릿한 변화(1) +3 24.08.30 3,085 67 16쪽
5 #5. 반짝이는 꿈(5) +3 24.08.29 3,286 83 15쪽
4 #4. 반짝이는 꿈(4) +2 24.08.28 3,316 89 13쪽
3 #3. 반짝이는 꿈(3) +6 24.08.27 3,453 76 14쪽
2 #2. 반짝이는 꿈(2) +4 24.08.27 3,927 87 13쪽
» #1. 반짝이는 꿈(1) +3 24.08.27 4,731 8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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