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출이 연기력을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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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나
작품등록일 :
2024.08.27 11:34
최근연재일 :
2024.09.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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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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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조기 종영을 막아라(3)

DUMMY

“방금 뭐라고 했나, 최 CP?”


‘달빛 위를 걷는 그림자’ 시청률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는 함 국장.

1%대를 전전하고 있던 망한 드라마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시청률이 2배씩 오르고 있었다.

2%가 4%가 될 때까지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는데 오늘 방송된 건 8%가 넘은 것.

이 정도 반등은 사실 드문 편이었다.


올해 MBS 드라마는 대부분 시청률이 안 좋았다.

짜기라도 한 것처럼 1~2%대를 전전해서 MBS 드라마 보는 눈 바닥에 달렸다는 소리까지 듣고 있는 중.

‘달빛 위를 걷는 그림자’ 역시 이대로는 끌고 가는 게 의미가 없어 조기 종영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 보는 중이었다.

그 예산을 빼서 후속작으로 예정되어 있는 ‘두 얼굴의 아내’를 밀어주려고 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변해버렸다.


“최 CP, ‘달빛 위를 걷는 그림자’ 원래 16부작 예정이었지?”

“맞습니다. 지금 그래도 물 타기 시작했는데 조기 종영은 좀 지켜보시는 편이 어떠실지요.”


조기 종영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

차라리 될 놈에게 밀어주자는 생각이었으니까.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밀어줄 작품이 바뀌었을 뿐.


“조기 종영을 왜 해. 노 저을 타이밍인데.”

“온라인에서 입소문이 퍼지는 중입니다. 너튜브에서 제일 먼저 반응이 오고 있어요.”


최 CP의 말처럼 시청률만 올라간 게 아니었다.

문희중과 서보람의 SNS에 박도준의 사진이 올라오면서 1차적으로 팬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희중이가 SNS에 멤버가 아닌 다른 사람과 찍은 사진을 올리는 날이 올 줄이야.

-멤버들 빼고 희중이가 형이라고 부르는 연예인 처음 봐!

ㄴ이 배우 유명한 사람임?

ㄴ아니, 신인 배우. 근데 연기력 미쳤음

ㄴ이런 질문 하는 걸 보니까 ‘달걷그’ 한 번도 안 봤냐구나?

ㄴ그 망한 드라마를 왜 봄?

ㄴ안 망했거든! 무율 나오고 훨씬 재밌어 짐. 츄라이 해봐.

-존잘남 옆에 존잘남. 여기가 천국이다


그리고 한 너튜버가 만든 박도준vs차도운 연기 비교 영상이 큰 흐름을 타며 ‘달빛 위를 걷는 그림자’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박도준 액션 연기, 차도운에게 절대 꿀리지 않음. 반박 안 받음.

-탁주 키스에서 박도준 눈빛으로 끼 부리는 거 봄? 돌았나 봐.

ㄴ커피 키스 이제 한물 갔다. 대세는 탁주 키스임.

-박도준 연기 영상 더 보고 싶은데 왜 없지?

ㄴMBS는 대체 메이킹 영상 안 풀고 뭐 하는 거임?

ㄴ도준 영상 더줘더줘!


이렇듯 드라마 시청률이 올라간 중심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인 배우 박도준이 있었다.


“박도준이 맡은 무율 캐릭터 등장하고부터 아예 다른 드라마가 됐더라.”

“국장님이 보시기에도 재미있으시죠?”

“재밌지. 드라마도, 박도준도.”


물론 박도준의 출연만으로 시청률이 반등했다고 보긴 힘들다.

다만 상황을 전해 듣기로는 무율 캐릭터가 생기면서 드라마에 활력이 돌았고, 그래서 최영인 작가가 대본을 더 잘 뽑기 시작했다고.

배우들도 더 열정을 불태우며 촬영 중이라고 하니 불길의 시작은 박도준이 맞았다.


함 국장은 잠깐 고민을 하더니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반응 오기 시작할 때 잘 이용해야지. 박도준이 누군지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홍보팀 나서주고 지 감독 촬영장에 인력 필요하면 최대한 지원해 줘.”


이렇게 된 이상 ‘두 얼굴의 아내’ 추가 예산 지급은 힘들어졌다.

곽슬기 PD에게 알아듣게 설명해 주기 위해 함 국장은 회의실을 찾았다.


***


“류준영 캐스팅 엎을 거라고?”


하나가 해결되니 하나가 터지는 행복한 드라마 업계.


“그래도 박도준 덕분에 내일 아침 캐스팅 확정 기사 나가기 전에 발 뺄 수 있어 다행입니다, 국장님.”


곽슬기 PD는 자세히 알아보지 못하고 캐스팅을 강행한 것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높게 질끈 묵은 머리카락이 관성을 못 이기고 흘러 내리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

셀프 자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최대한 빠르게 남자주인공 역할 낙점 짓고 촬영 서두르겠습니다.”

“서둘러도 첫 방송일 못 맞추겠는데, 곽 PD.”


함 국장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촬영 다 끝내고 편성 기다리는 땜빵 드라마 있는지 알아볼 테니 속도보다 퀄리티에 집중해라.”

“네, 국장님.”


회의실을 나가려던 함 국장.


“그러고 보니 박도준 너는 여기 왜 있냐?”

“도준이 저희 드라마에 캐스팅 하려고요. 그래서 부른 건데 류준영 소식을 물어왔습니다.”


함 국장은 박도준을 빤히 쳐다봤다.


‘달빛 위를 걷는 그림자’에 출연하며 연기하기도 바쁠 텐데 이미 차기작까지 제안받다니.

물론 그가 보여준 연기력을 보면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다만 본인이 맡은 배역만 챙기는 게 아니라 드라마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


‘2년 차 조연출이긴 해도 PD였다 이거지.’


지금껏 저런 행보가 있었던가?

연기하다 연출 쪽으로 발을 넓히는 배우들은 많이 봤어도 그 반대로 넘어가는 건 박도준이 처음이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 같은 놈이 튀어 나왔나 몰라.’


어떻게 보면 MBS 드라마 두 개를 연속으로 살린 거나 마찬가지다.


“잘 보고 있다, 도준아. 친구 아들의 은밀한 일탈 보는 것 같고 좋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준이에게 ‘두 얼굴의 아내’ 서지혁 역할 맡길 거지?”


함 국장에게 아직 보고한 적 없는데 단번에 맞춘 걸 보아하니 딱 박도준과 어울리는 배역이라는 소리였다.


“맞아요. 어울릴 것 같지 않아요?”

“박도준이랑 다시 배역 미팅하는 날, 나도 불러. 그리고 도준아, 사직서는 언제 낼 거냐?”

“예?”

“PD일이랑 병행할 수는 없을 거 아냐. 평생 우리 방송국 드라마만 찍을 거도 아니고 영화 쪽으로도 나가려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맞지. 안 그래?”


박도준도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그의 미래 계획을 함 국장이 대신 세워주고 있었다.


***


서울 강남에 위치한 오로라 엔터테인먼트 사옥.

대표실 중앙에 놓인 소파에는 튼실한 팔뚝을 자랑하는 대표 김복수와 오로라 엔터테인먼트의 간판 배우 중 한 명인 이정훈이 앉아 있다.


입고 있는 반팔 셔츠가 터질 것처럼 팽팽한 근육을 자랑하는 김복수 대표.

생긴 것과 어울리지 않게 조그마한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이정훈이 직접 쓴 시나리오 ‘마지막 한 발’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2년 전에 네가 가지고 온 첫 시나리오보다 더 재밌어졌네. 여기 등장하는 주연 배역에 어울리는 놈 하나가 있는데······.”

“복수 형, 그거 아니야.”

“야잇! 내가 브루스 킴이라고 부르랬지. 너만 빼고 다 그렇게 부른다니까?”


다소 촌스러운 본인 이름이 약간 부끄러운 김복수 대표.

이정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가 헐리우드도 아니고 뭔 영어 이름 타령이야. 그리고 형이 추천하는 그 배우 쓸 일 없다?”

“잘 들어봐. 걔가 비록 이별 통보 받았다고 엉엉 울면서 촬영장 뛰쳐 나가 잠적하긴 했지만 그러니까 이번 네 작품에 잘 어울린다는 거야.”

“어울리긴 개뿔. 복수 형, 우리 소속사도 아닌데 걔를 왜 그렇게 밀어?”


이정훈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훈아, 단편 영화도 제작비 든다? 그 친구 쓰면 투자 빵빵하게 해준다고 약속 받아왔어.”

“내 사비 다 터는 한이 있어도 걘 안 써. 첫 연출작에 똥물 자꾸 뿌리는 소리 할래?”


너무도 완강한 이정훈.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둔 캐릭터랑 비슷한 배우 안 나타나면 영화 제작 안 할 거야.”

“아휴,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언제는 내 의견 듣기나 했냐.”


김복수 대표는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형, 도운이 드라마 촬영은 언제 끝난다고?”

“차도운 차기작 줄줄이 있어서 네가 아무리 탐내도 그 영화 출연은 못 할 걸. 걔가 몸이 두 개가 되지 않는 이상.”

“아깝네. 내가 2년 전에만 이 정도로 시나리오 뽑아냈어도 제대로 일 벌리는 건데.”


이정훈이 제작할 영화에 대한 논의가 끝나기 무섭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배우팀 정 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안 그래도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요즘 잠을 못 자. 도운이가 추천한 박도준 배우랑 미팅은 했어?”

“아뇨, 아직 촬영 중이라 명함만 우선 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KZ 액터스랑 다른 곳에서도 다 눈독 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뭐어?”


김복수 대표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에스프레소 잔을 들어 남은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꽤 안달 났다는 뜻.


“그 놈 지금 잡아두지 않으면 영영 못잡는다는 거 우리만 알리가 없지. 정 실장이 보기에 우리랑 미팅 한 번 할 것 같어?”

“확답은 못 드리겠습니다.”

“어제 드라마 보니까 진짜 더 탐나던데.”


미련 많은 얼굴을 하고 있는 김복수 대표.

그로 말하자면 해외에서 개인 헬스 트레이너를 하다가 한국으로 와 배우가 된 케이스.

무명 생활이 꽤 길었지만 결국은 빛을 봤고, 한동안 연기하더니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직접 배우가 되어 연기하는 것도 좋지만 재능 많은 배우들이 무명 생활을 짧게 하고 일찍 꿈을 이루도록 서포트하고 싶었기에.

그렇게 오로라 엔터테인먼트를 세웠고 단숨에 국내 TOP3 소속사로 키워낸 인물이다.

겉으로 보기엔 운동 중독이라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지만 속은 꽤 여린 인물이기도 하다.


“안 되겠다. 박도준 배우 연락처 좀 알아봐 줘.”

“대표님께서 직접 연락하시게요?”

“콧대 높은 척 거만하게 있다가 다른 소속사에 뺏기면 나 한 달은 잠 못 잘 거 같아.”


김복수가 신인을 탐내는 건 오랜만이었다.

데리고 있는 배우들만 잘 케어해도 1년에 작품이 쏟아졌으니까.

그랬지만 늘 괜찮은 원석 발굴하고자 하는 갈증이 내면에 있다는 건 이정훈도 너무 잘 알고 있는 일.

누굴지 궁금하긴 했으나, 지금은 그것까지 머리에 담을 여력은 없었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와 어울리는 배우를 찾아다니기 바빴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하나 있었다.


“형 눈길 끄는 신인 배우 하나 있다고 하니까 너무 잘됐네. 그 친구한테 집착하고 내 시나리오엔 관심 좀 꺼줘. 나 간다.”


***


어느새 ‘달빛 위를 걷는 그림자’ 박도준의 마지막 촬영 날.

드라마의 딱 중간까지 왔고, 후반부를 위한 동력이 될 장면들을 남겨놓고 있다.


8부에서는 무율과 이휘의 영혼이 바뀌게 된 이유를 알게 된다.

세자 이휘에게 흠집을 만들어 왕위를 계승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우의정이 저주를 건 것.

그리고 그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무율이나 이휘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한다.


‘다른 방도를 내 찾아보겠다.’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하.’


무율은 이미 이휘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까지 한 상태.


‘어명이다. 내 허락 없이는 단 한 순간도 멀어지지 말거라.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휘 역을 맡은 문희중이 한껏 몰입한 상태로 눈물을 흘린다.

어색한 발연기가 아닌 정말 소중한 벗을 잃는 사람처럼.

박도준의 엄청난 몰입 덕분에 문희중 또한 상황에 완벽하게 동화된 상태.


‘저하, 어차피 죽어야 하는 목숨이라면 명예롭게 죽겠습니다.’


동궁전을 박차고 나간 무율.

그리고 그 뒤를 밟는 우의정의 세력.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되었기에 무율을 먼저 처단하려고 한다.


추격전이 벌어지고 화려한 검술을 뽐내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무율.

민첩하게 날아다니는 무율의 모습이 풀샷으로 담긴다.


이내 멀리서 날아오는 독이 묻은 화살.

분명 피할 수 있지만, 무율은 그러지 않고 눈을 감아버린다.


“윽!”


모두가 사라지고 무율은 혼자 외롭게 나무에 기대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다.

분명 몸에 퍼져나가는 독 때문에 힘겨운 상황.

하지만 무율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천천히 번진다.

이 선택으로 인해 이휘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쁘다는 캐릭터의 욕망을 보여주는 장면.

정말 생을 마감해 본 적 있는 사람처럼 초월한 표정을 짓고 있다.

클로즈업으로 잡힌 박도준의 표정 연기에 스텝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윽고 멀리서 달려오는 여인 연유정.


“나리!!!”


무율을 품에 안고 애처롭게 울어댄다.

연유정을 발견하고 난 뒤, 평온하던 무율의 얼굴에는 미묘한 변화가 생긴다.

아쉬움과 애절함, 그리고 그리움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을 통해 그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시는 게 대체 어디 있습니까! 지금 곧장 의원을 부르면 살아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젓는 무율.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연유정을 응시한다.


“많이······ 고마웠소.”


그리고 무율의 몸이 힘이 픽- 빠진다.

연유정은 무율을 더욱 세게 끌어 안으면서 오열한다.

지켜보던 몇 명 스텝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커엇!! 크아아!!”


반박자 늦게 지철중 감독이 컷을 외쳤다.


“마지막까지 정말 최고만 보여주는구나, 박 배우!!”


지철중 감독의 칭찬에 너도나도 고생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뚝뚝 흘러내린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서보람도 말을 걸었다.


“박도준 배우님 오래 사세요!”


감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고마운 덕담을 날렸다.


“서보람 씨도요.”


문희중도 다가와서는 대뜸 박도준을 안았다.


“혀어엉, 연기를 왜 그렇게 해요. 진짜 슬프게.”


문희중은 거듭되는 촬영 동안 꽤 많이 친해진 탓에 이별이 아쉬운 듯 보였다.


“무율, 다음 회차에서 다시 살리면 안 되나요?”


문희중의 농담에 촬영장 분위기가 그래도 좋게 반전됐다.


“박 배우, 정말 고생 많았어! 우리 드라마 시청률 잘 나오고 있어서 스페셜 방송 편성도 받았다!”

“와아아!”

“박 배우, 최영인 작가 전화왔어. 받아 봐.”


후반부 집필 때문에 촬영장에 오지 못해 너무 아쉽다던 최영인 작가.

전화를 받자 상기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박 배우우! 나 정말 마음 같아서는 다음 화에 사실 무율은 안 죽었습니다 하고 살려 내고 싶은 거 있지?

“그러면 막장 드라마 되는 겁니다, 작가님.”

-그런 소리 들어도 좋으니 살려 낼 방법 없을까 하루종일 고민 중이야! 그리고 다음에 흉부외과 의사 역할 꼭 한 번 맡아줘!

“흉부외과요?”

-박도준 배우 때문에 내 심장 다 고장났단 말이야. 고쳐줘야지. 여튼 고생했어! 우리는 회식 때 봐.


드라마 속 주인공이 칠 법한 대사를 최영인이 읊어댄 탓에 박도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되는 박도준의 마지막 촬영.


“박 배우야, 차기작 제안 벌써 받았다며? 곽슬기 걔가 참 될 물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박도준 배우님, 이제 그럼 다시 조연출로는 안 오시는 거예요?”

“당연히 배우 하시겠지! 저런 연기력을 왜 썩혀. 낭비야.”


지철중 감독은 박도준의 어깨를 토닥이며 응원을 불어 넣었다.


“훌륭한 PD 후배 하나 잃는 건 좀 아깝지만, 그래도 연출자로서 생각하면 마냥 슬픈 것도 아니야. 다음에 또 나랑 작업 하자! 곽 PD 촬영장에 놀러갈게.”


***


사직서는 꽤 빠르게 처리됐다.

내 마음이 더 끌리는 건 드라마 PD가 아니라 배우였기에 고민을 오래 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물론 이제 다시 몸 담을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


‘혼자서 활동은 말도 안 되는 거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소속사를 고르는 게 필수.


촬영장에서 제안 받은 명함을 펼쳐 놓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때맞춰 누나가 귀가했다.


“소속사 고르게?”

“어.”

“오로라 엔터가 제일 나을 걸. 우리 소속사랑 계약해도 필드에서는 우리 남매인 거 비밀이다.”

“나도 바라는 바야.”


Rrrr-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막내 조연출로 내 번호가 공공재처럼 퍼져 있기에 그런 연락 중 하나일거라고 생각하고 받은 전화.


-안녕하세요, 박도준 씨. 브루스 킴입니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느끼한 말투, 약간 어눌한 한국어.

첫 대화부터 사기꾼 냄새가 폴폴났다.

보이스피싱으로 활약하던 김미영 팀장이 진화해서 요즘은 브루스 킴이라는 영어 이름을 쓰나?


-박도준 씨 잠재력을 높게 평가합니다! 좋은 기회를 한 번 같이 만들어보고 싶은데요. 원하는 건 뭐든 다 맞춰 드립니다. 인생을 같이 바꿀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거니까 절대 의심 하지 마시고요.

“좋은 기회요?”

-네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브루스 킴이에요! 딱 시간 5분만 나랑 통화 합시다. 제가 아주 믿음직스럽게 원하는 건 다 지원해 줄 수 있으니까, 절대 전화 끊지 마시고······.


뚝-

보이스피싱 전화를 너무 열정적으로 걸어와서 중간에 끊기가 미안했다.

하지만 나 또한 심각한 고민을 해야해서 오래 들어주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내 인생을 잠깐 맡겨야 할 소중한 소속사를 구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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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두 얼굴(4) +2 24.09.19 1,631 57 13쪽
25 #25. 두 얼굴(3) +4 24.09.18 1,992 50 12쪽
24 #24. 두 얼굴(2) +4 24.09.17 2,066 56 14쪽
23 #23. 두 얼굴(1) +4 24.09.16 2,104 56 12쪽
22 #22. 거물들의 집착(5) +2 24.09.15 2,151 55 14쪽
21 #21. 거물들의 집착(4) +2 24.09.14 2,170 53 12쪽
20 #20. 거물들의 집착(3) +3 24.09.13 2,226 57 11쪽
19 #19. 거물들의 집착(2) +3 24.09.12 2,289 54 16쪽
18 #18. 거물들의 집착(1) +3 24.09.11 2,356 63 13쪽
» #17. 조기 종영을 막아라(3) +5 24.09.10 2,414 68 17쪽
16 #16. 조기 종영을 막아라(2) +2 24.09.09 2,412 68 16쪽
15 #15. 조기 종영을 막아라(1) +2 24.09.08 2,487 63 14쪽
14 #14. 몸 잘 쓰는 신인 배우(2) +3 24.09.07 2,479 66 13쪽
13 #13. 몸 잘 쓰는 신인 배우(1) +9 24.09.06 2,540 57 14쪽
12 #12. 탁주 키스(2) +2 24.09.05 2,577 61 13쪽
11 #11. 탁주 키스(1) +2 24.09.04 2,568 68 12쪽
10 #10. 짜릿한 변화(5) +3 24.09.03 2,595 63 14쪽
9 #9. 짜릿한 변화(4) +3 24.09.02 2,629 69 12쪽
8 #8. 짜릿한 변화(3) +3 24.09.01 2,772 68 14쪽
7 #7. 짜릿한 변화(2) +4 24.08.31 2,899 68 15쪽
6 #6. 짜릿한 변화(1) +3 24.08.30 3,085 67 16쪽
5 #5. 반짝이는 꿈(5) +3 24.08.29 3,287 83 15쪽
4 #4. 반짝이는 꿈(4) +2 24.08.28 3,318 89 13쪽
3 #3. 반짝이는 꿈(3) +6 24.08.27 3,454 76 14쪽
2 #2. 반짝이는 꿈(2) +4 24.08.27 3,928 87 13쪽
1 #1. 반짝이는 꿈(1) +3 24.08.27 4,732 8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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