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출이 연기력을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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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나
작품등록일 :
2024.08.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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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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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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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짜릿한 변화(4)

DUMMY

내가 알고 있는 신인 배우, 그리고 단역 배우가 1회당 받는 출연료는 20~30만 원.

그런데 지철중 감독이 내민 내 계약서에 적힌 금액은 200만 원 이었다.


“왜 그래, 박 PD?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네, 있습니다.”

“말해봐, 뭔데.”


뒤에 0을 하나 잘못 붙인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갸웃 하면서 의아해하는데 최영인 작가가 지철중 감독을 툭- 쳤다.


“감독님, 내가 말했잖아요. 저거 아니에요.”

“잠재력에 비해 대우가 좀 터무니 없지?”

“그럼요.”


이내 지철중 감독이 계약서를 다시 가지고 갔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한 것 같네. 국환아, 이거 다시 뽑아와라.”


조연출 선배가 나가기 전, 내가 황급히 말을 꺼냈다.


“감독님, 그 전에 한 가지 제안 드려도 됩니까?”

“그래, 말해 봐.”

“무율 장면이 더 늘어나서 8부까지 출연할 예정이잖아요. 그 회차 찍는 동안은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을까요?”


반짝이를 찾아 다니려면 시간과 업무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 좋다.

까다롭다고 생각할까 싶어 난 황급히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좋은 연기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 기간 동안 월급은······.”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려는데 내 말을 지철중 감독이 잘랐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그리고 박 PD 월급은 건들지 않을 거야. 배우로서 참여하는 거지만, 우리 드라마에 결국 도움 주는 거잖아?”


그동안 쉬는 날도 없이 일한 걸 치면 더한 보상이라도 주는 게 맞다며 지철중 감독이 덧붙였다.


“또 바라는 건?”

“카메라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세트장 구석구석 좀 돌아다녀도 됩니까?”

“뭘 그런 걸 물어. 당연하지. 하여간 날 닮아서 디테일에 집착하는 그 모습, 아주 보기 좋아.”


그런 건 아니지만, 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국환아, 방금 우리가 나눈 내용 추가해서 빨리 인쇄해와라. 출연료는 아까 우리끼리 이야기 했던 금액으로!”


그리고 잠시 후.

안국환 조연출이 가지고 온 새 계약서를 보고 나는 다시금 눈을 의심했다.


‘뭔데. 왜 페이가 더 올라갔지?’


20만 원으로 정정되어 올 줄 알았는데, 지금 적혀 있는 회차당 출연료는 300만 원이었다.


‘이 사람들 단체로 더위 먹었나.’


단역 배우에게 회당 저런 금액을 줄 정도로 우리 드라마 예산이 널널하지 않다.

누구보다 내가 예산 관리를 했으니 가장 잘 안다.


“이게 맞나요? 아, 혹시 PPL 새로 들어왔습니까?”


그래서 전체적인 예산이 늘어난 거라고 하면 말이 된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지.

누가 신인 단역 배우에게 이만큼의 출연료를 줘.


최영인 작가가 빠르게 끼어 들었다.


“벌써 개인 PPL도 노리고, 박도준 배우 정말 야심가야! 박도준 배우 분량 방송 나가면 PPL 문의 많이 들어올 거니까 그건 걱정말아요.”

“안 들어오는 게 이상하지. 우리 드라마 끝나고 CF도 계약 하는 거 아니냐, 박 배우? 하하하.”


지철중 감독과 최영인 작가, 김칫국을 이렇게 잘 마시는 사람들이었던가?

그나저나 PPL이 새로 들어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출연료를 퍼주지?

시청률도 안 좋아서 방송국 내에서 예산을 더 늘려준 것도 아닐텐데.


지철중 감독은 내 손을 슬며시 잡더니 탁탁- 두드렸다.


“우리 식구라 더 챙겨 주고 싶은데 지금은 그게 최선이야. 내 마음 알지? 박 PD가 무율로 나오면서 기존에 찍으려고 했던 군중씬을 아예 날리기로 했어.”


빈 공백을 무율과 이휘의 몸이 바뀐 뒤,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로 채우려는 계획.

그 덕분에 예산이 많이 줄어 내 출연료로 넣었다는 소리였다.


이야.

가만히 있었는데 출연료가 내가 사지 않은 주식 마냥 쑥쑥 오르네.


“계약 할 거지?”

“네, 만족스럽네요.”


혹여라도 말을 바꿀까 싶어 나는 빠르게 날인했다.

막내 피디가 신인 배우가 되는 순간이었다.


“박도준 배우 출연 말인데. 신비주의 컨셉으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

“복면 쓴 장면 방송 나간 뒤, 한참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사실 우리 드라마 막내 PD였다는 식으로 홍보하면 먹힐 것 같아서 말이지.”

“이해했습니다.”

“다른 스텝들도 입 단속 우리가 잘 시킬게.”


신비주의 컨셉까지 장착한 채로.


***


촬영장 구석.

나는 벅찬 마음을 억눌렀다.


“이런 날이 다 오네.”


배우가 되었다.

지상파 금토 드라마에서 나름 비중 있는 단역을 맡으며.

평균적으로 업계에서 통용되는 페이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받은 것 때문에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댔다.


서보람 머리쪽에 있던 반짝이를 건들고 봤던 미래가 현실이 되는 날도 오는 걸까.

차근차근 배역을 맡고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높은 곳까지 올라가게 될지도.

배우를 꿈꾸던 때에는 대뜸 샤워하다 샤워기를 트로피마냥 들고 수상 소감을 주절주절 외친 적도 있었다.

나도 안다.

얼마나 허황된 뜬구름을 잡는 소리였는지.


“이제는 안 될 것도 없지.”


그러고 보니 출연 소식을 가족들에게는 전해줘야 하려나.


“에이, 됐다. 내 드라마 재미 없어서 챙겨 보지도 않을텐데.”


배우 준비를 하던 시절.

집에서 몰래 대본 연습하다 누나에게 몇 번 들키고 그 뒤로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지 모른다.


“괜히 말했다가 또 방송 챙겨보고 놀릴 생각하면······. 어우, 말을 말자.”


이윽고 갑작스럽게 울려대는 휴대폰.

어릴 때부터 친한 형이자 연예 매체 어쎈 기자인 고지혁이었다.

냉큼 전화를 받았다.


“어, 형.”

-야! 살아있냐? 나 지난 번에 촬영장 갔었는데 그때 너 현장에 없어서 얼굴을 못 보고 왔네.

“언제? 나 거의 다 촬영장에 있었는데?”

-윤형진 사고 터진 날!


난 꿀꺽 침을 삼켰다.

이거 다 알고 전화한 거다.


‘어쩌지. 방금 전까지 신비주의로 화제성 한껏 끌어 올리자고 했는데.’


아무리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고지혁이라고 할지라도 그 연기를 한 게 나라는 인정을 할 수는 없는 노릇.


“다 봤어?”

-어. 현장 압살하면서 날아다니는 거 다 봤지.

“아아. 다 봤구나.”

-내가 진짜 너무 안 믿겨서 그러는데 그 연기한 놈 차도운 정말 아니야?


차도운?

차도운이 또 여기서 왜 나와.

감히 동일 선상에 놓일 수도 없는 톱스타인데.


“차도운 아니야. 근데 형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와, 너가 아니라면 아닌건데. 나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다. 내가 본 그 배우는 그럼 대체 누구냐?


나 역시 당황스러워서 펄쩍 뛰겠다.

우리가 본 세월이 몇 년인데 얼굴 반쯤 가렸다고 날 몰라 본다고?

서운한데 이거.

그러면서 또 입꼬리는 자꾸만 올라갔다.

차도운이랑 그림자도 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날 보고 그 사람을 언급하고 있었으니까.


“형, 기사 쓰려고?”

-당연하지. 몸도 더 좋아지고 액션 연기도 더 물 올랐다면서 차도운 빨아주는 기사 하나 써줄라 그랬거든. 근데 차도운이 아니라니.

“그 날 너무 더워서 제대로 못봤나보다. 차도운보다 몸이 더 좋을 리가······.”

-네가 그 날 현장에 없어서 잘 모르나본데 어깨가 무슨 태평양만했어.


난 휴대폰을 들지 않은 손으로 내 어깨를 슥 만져봤다.

그정도는 아닌데 이 형 너무 MSG가 과하네.


칭찬을 받았으니 나도 공개할 수 있는 소소한 정보 하나는 줘야지.

왜 그 연기를 한 놈이 나였다는 걸 말 안 해줬냐는 서운함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형, 그 배우 분량 더 늘어날거야. 이건 대외비인데 형한테만 말해주는 거다!”

-너 밖에 없다. 끊어. 나 그 배우 누군지 제대로 파헤쳐봐야 해서 시간 없어.


집념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남기더니 고지혁은 통화를 끊었다.


“파헤칠 건 딱히 없을텐데.”


생각보다 그 장면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네.

이제 앞으로 내 비중은 점점 더 커질테니 제대로 준비해야만 했다.


“갑자기 반짝이가 사라지진 않겠지?”


판은 이렇게 다 키워놓고 정작 필요로 하는 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우, 상상도 하기 싫다.

반짝이 사라지기 전에 야무지게 뽑아 먹어야 겠는 걸.


나는 우선 구석에 앉아 최영인 작가가 수정한 대본을 펼쳤다.

곧장 반짝이를 찾아 아공간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기존과 어떤 게 달라졌는지까지 그 안에서 분석할 수는 없었으니까.


천천히 대본을 훑던 나.


“뭐야, 최 작가님이 이걸 대뜸 넣으셨네?”


두 눈을 의심했다.

최영인 작가의 전작 ‘쉿! 이건 네 몸이야’ 중 가장 반응 좋았던 장면을 패러디한 게 추가되어 있었다.


“내가 이 장면을 연기 해도 되는 게 맞나?”


원래라면 남자주인공이 해야 할 법한 꽤 중요한 에피소드.

그런데 무율에게 그 중요한 씬 하나가 배당되었다.

이휘의 영혼이 들어 온 무율이라는 설정 때문에 딱히 이상하진 않지만.


너튜브를 통해 ‘쉿! 이건 네 몸이야’ 속 명장면을 보던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거 제대로 표현 못하면 진짜 큰일이다.”


그 장면을 연기한 전작 배우와 비교당하는 건 물론, 여기저기 떠돌며 개그 소재로 조롱 당하기 딱 좋으니까.


“무한 반복만이 답이겠어.”


반짝이를 찾아 연기 연습을 하기 위해 난 냉큼 몸을 일으켰다.


***


저녁 10시.

서울의 한 가정집.


‘달빛 위를 걷는 그림자’를 틀어 놓고 소파에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은 박도준의 모친 기영희.

소파에 등을 기대고 감자 과자를 먹고 있는 이는 박도준의 하나 뿐인 누나 박지연.


“엄마, 잘거면 들어가서 자라니까?”

“엄마 안 잔다.”

“안 자긴. 방금 코도 골았어.”

“하암. 그래도 도준이가 만드는 드라마인데 생방송으로 봐야지.”

“걔가 만들기는. 현장에서 그냥 냅다 심부름만 하는 막내 PD인데.”


그러는 사이, 드라마가 시작됐다.


“지연아, 근데 이 드라마 재미 없는 편이지?”

“박도준이 막내 PD고 내가 담당하는 배우가 출연하니까 모니터링 삼아 보긴 하는데 객관적으로 재미 더럽게 없어.”


TV는 틀어져 있으나 두 모녀는 드라마에는 관심이 없다.

들리는 대사에 귀만 열어두고 심드렁하게 각자 할 일을 하는 사이.

TV에 모습을 드러낸 복면 쓴 사내.


벌떡-

소파에 시체처럼 누워 있던 기영희가 몸을 냉큼 일으켰다.

휴대폰을 만지던 박지연의 손 역시 그대로 굳었다.


“엄마, 방금 봤어?”

“옴마야! 저게 뭐니!”


두 모녀는 아예 벌떡 일어나서 TV 가까이로 다가갔다.


여전히 화면에 나오고 있는 복면 쓴 사내.

검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긴박한 음악까지 더해져 아주 장관이었다.


박지연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엄마 이거······. 엄마 아들 맞아?”

“우리 도준이 맞네, 맞아!”

“얘 여기서 대체 뭐해? 배우 되고 싶다고 노래 부르더니 진짜 TV에 나오네?”


소란스러운 가운데 박도준의 부친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TV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녀를 보고 쯧- 소리를 냈다.


“그 드라마 재미도 없다면서 왜 꾸역꾸역 보고 앉았어.”

“여보, 우리 아들 TV 나와.”

“뭐? 그 새끼 사고쳤어? 메인 뉴스감이야?”

“아니! 연기한다고, 연기.”

“어디.”


하지만 이내 끝나버린 장면.


“뭐여. 없구만. 에라이, 장난도 정도것이지.”

“아냐! 아빠, 진짜 박도준이었다니까? 이상한 복면 쓰고 칼을 막 휙휙 날렵하게 휘둘렀어.”

“어어. 정말 내 아들 맞았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이윽고 울려대는 벨소리.


“아이고. 내 친구들 이 드라마 봤나보다.”

“우리 회사 사람들도 드라마 보고 있었나보다. 저 배역 엄청난 배우가 잘 소화했다고 하더니 설마 그게 엄마 아들일 줄이야!”


전화를 받으러 모녀가 사라졌다.

문희중이 어색한 연기를 하는 장면만 나오고 있는 드라마.

아무리 봐도 박도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상황.


“도준이가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둘이서 짜고 나 속이나?”


박도준의 부친만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TV를 보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배우가 됐다고? 나 몰래?”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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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두 얼굴(4) +2 24.09.19 1,622 57 13쪽
25 #25. 두 얼굴(3) +4 24.09.18 1,987 50 12쪽
24 #24. 두 얼굴(2) +4 24.09.17 2,062 56 14쪽
23 #23. 두 얼굴(1) +4 24.09.16 2,101 56 12쪽
22 #22. 거물들의 집착(5) +2 24.09.15 2,145 55 14쪽
21 #21. 거물들의 집착(4) +2 24.09.14 2,162 53 12쪽
20 #20. 거물들의 집착(3) +3 24.09.13 2,221 57 11쪽
19 #19. 거물들의 집착(2) +3 24.09.12 2,281 54 16쪽
18 #18. 거물들의 집착(1) +3 24.09.11 2,349 63 13쪽
17 #17. 조기 종영을 막아라(3) +5 24.09.10 2,406 68 17쪽
16 #16. 조기 종영을 막아라(2) +2 24.09.09 2,405 68 16쪽
15 #15. 조기 종영을 막아라(1) +2 24.09.08 2,483 63 14쪽
14 #14. 몸 잘 쓰는 신인 배우(2) +3 24.09.07 2,475 66 13쪽
13 #13. 몸 잘 쓰는 신인 배우(1) +9 24.09.06 2,533 57 14쪽
12 #12. 탁주 키스(2) +2 24.09.05 2,573 61 13쪽
11 #11. 탁주 키스(1) +2 24.09.04 2,564 68 12쪽
10 #10. 짜릿한 변화(5) +3 24.09.03 2,593 63 14쪽
» #9. 짜릿한 변화(4) +3 24.09.02 2,627 69 12쪽
8 #8. 짜릿한 변화(3) +3 24.09.01 2,767 68 14쪽
7 #7. 짜릿한 변화(2) +4 24.08.31 2,895 68 15쪽
6 #6. 짜릿한 변화(1) +3 24.08.30 3,082 67 16쪽
5 #5. 반짝이는 꿈(5) +3 24.08.29 3,284 83 15쪽
4 #4. 반짝이는 꿈(4) +2 24.08.28 3,313 89 13쪽
3 #3. 반짝이는 꿈(3) +6 24.08.27 3,449 76 14쪽
2 #2. 반짝이는 꿈(2) +4 24.08.27 3,919 87 13쪽
1 #1. 반짝이는 꿈(1) +3 24.08.27 4,722 8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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