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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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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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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DUMMY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음냐음냐.


“폐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음? 뭘 한다고? 독촉?


아무래도 자기 전에 보던 드라마를 끄지 않은 모양이다. 시끄러운 마음에 리모컨을 찾으려 손을 더듬거렸다.


그런데 손바닥을 타고 전해져오는 촉감이 이상했다.


의아함에 슬며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언제부터 내 방이 4D 영화관이 됐지?”


그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날 맞이해 주었다. 한순간에 싹 달아난 잠기운을 떨쳐버리고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해 보려 애썼다.


“폐하!”


알았어. 알겠다고.


좌우로 일정하게 정렬된 사극 차림의 사내들은 지겹지도 않은지, 똑같은 소리만 반복해 댔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길래 처지를 굽어살펴달라며 호소하는 것일까.


단서가 될 만한······.


아니, 저건 또 뭐야?


유일하게 중앙에 꿇어앉아 있는 이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가만히 들여다보는데 얼굴 옆에 조그마한 빨간 점이 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그림처럼 허공에!


내 시선을 받은 점은 오래지 않아 모습이 변화했다.


『장귀평 / 신기묘산, 책략가, 줏대, 추진력, 체념』


하핫.


이게 뭐야.


관심법도 아니고 대상의 역량과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그래, 인정한다. 내가 잠들기 전에 후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하 사극을 보고 있었다.


궁예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인상 깊었기로서니, 이런 해괴망측한 꿈을 꾸는 건 좀 과하지 않나 싶었다.


심지어 상대의 이름이.


어라? 장귀평?


단순히 동명이인이라 치부하기에는 내가 잘 아는 인물과 성향이 일치했다. 드라마에는 등장하지 않은 인물인지라 시각적인 이미지는 없었지만, 어쩐지 저렇게 생겼을 것만 같았다.


날카로운 눈매와 전형적인 문사의 복장.


살짝 흥미가 동했다.


조금 더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이들과 나의 눈높이가 느껴졌다. 흘깃 보이는 금 테두리와 사각의 등받이가 왕좌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재밌게 돌아가네.”


평범한 이라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할 것이고, 한낱 겁쟁이라면 압박감에 눈을 질끈 감아버릴 것이다. 어쨌든 두 놈 다 꿈이라면 빨리 깨게 해달라며 애원할 터였다.


하지만 난?


깡다구 빼면 송장이나 다름없는 백수 출신이다.


당장 마지막 과거의 기억도 기상 이후 8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라면으로 한 끼 때운 뒤, 드라마 시청이다.


그러한 생활에 미련이 있을 리도,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두려움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자만심만이 나를 에워싸는 거라면 몰라도 말이다.


일단 난 높은 신분이다.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 잘못했다고 목이 베어질 일은 없다. 조금 더 여유를 가져도 좋을 듯하다는 거다.


아, 섹시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결론과 함께 호소에 귀를 기울였다.


“순군부령 장귀평의 억울한 점은 소신이 증명할 수 있사옵니다! 부디 시일을 주시옵소서!”


드디어 대화다운 문장이 튀어나왔다.


통촉 지옥에서 벗어난 걸 축하라도 해주듯이 그의 말을 받는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건너편의 대열에서였다.


“내봉령 어른, 외람되오나 단어 선택을 잘하시지요.”

“무슨 말인가.”

“억울이라니요. 폐하께서 죄도 없는 자에게 누명이라도 씌운단 말씀입니까?”


내봉령이라 불린 사내는 나와 가장 가깝게 위치한 두 명 중 일인이었다. 서열이 꽤 높다는 뜻이지만, 중간쯤에 자리한 상대방의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내 눈치를 보며 말을 꺼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에 반해 상대방은 여세를 몰아 더욱 압박해 나갔다.


“폐하께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심계를 꿰뚫어 보시는 지존이십니다. 진정으로 순군부령을 위한다면 감히 폐하의 결정이 잘못되었다며 반박해서는 아니 된단 말입니다.”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히려는 생각은 없었사옵니다. 소신의 충심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내봉령의 백기를 본 상대는 가볍게 조소를 지으며 외쳤다.


“폐하의 뜻이 진리라는 걸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단지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하는 소신들의 심정을 굽어살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자, 정리해보자.


확실한 사실 중 하나는 순군부령 장귀평의 생사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결정된다. 그것도 내 독단에 의해 만들어진 자리이며, 거의 대부분 죽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심지어 체념이 가득한 장귀평 본인조차 말이다.


적어도 내봉령은 말려보려는 의지는 내비쳤지만, 은근히 부추기는 반대편 세력을 당해낼 재간은 없어 보였다.


아무리 봐도 통촉 지옥을 끝내기 위해선 답을 내려야 했다.


이제야 배경지식을 쌓아가는 내가.


한 생명을 살릴지 말지를 정하는 것이다.


“큭.”


나도 참 정상은 아닌 게 중압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어 죽겠다는 웃음만이 입꼬리를 비집고 나왔다.


그리고 그건 수십 명의 대소신료를 정적으로 몰아넣었다.


꿀꺽-


긴장한 누군가의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대전 안을 울릴 뿐이었다. 이럴 때 나설 수 있는 담력을 지닌 자만이 고위직에 어울릴 인물일 테고, 그건 역시나 내봉령의 몫이 되었다.


“미륵이자 지존이신 태왕 폐하.”


라는 서두로 시작된 내봉령의 말을 요약하자면 제발 흥분하지 말고 진정하라는 뜻이다. 이게 엄살이 아니라는 근거는.


『장귀평 / 신기묘산, 책략가, 줏대, 추진력, 체념, 두려움』


장귀평을 필두로 모두에게 새롭게 새겨진 단어 때문이다.


두려움.


이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그건 장귀평이라는 이름에서, 내봉령과 순군부령이라는 관직에서 추측해 볼 수 있었던 내 정체와 연관이 있었다.


어쩐지 한쪽이 먹먹한 듯한 시야도 충분한 증거였다.


위의 관직은 태봉 초기에서 고려 초기에 사용되었다.


그 시기에 활동한 애꾸 중에 왕좌에 앉을 만한 이가 누구겠는가. 적어도 나는 하나의 이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궁예.


아무래도 난 궁예가 되어버린 것 같다.


이유? 모른다.


이제부터 내가 궁예라면 기존의 궁예는? 모른다.


그래서 이게 꿈이라고, 현실이라고? 역시 모른다.


이처럼 의문만이 가득한 현 상황인데도 치켜 올라간 내 입매는 도무지 내려올 줄을 몰랐다. 내 폭정이 두려워서 벌벌 떠는 신하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어서는 절대 아니다.


그래, 내가 아무리 비정상적이라도 그건 아니다.


현대의 사극 마니아를 모아놓고 어느 시대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8할 이상은 여말선초를 꼽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 정몽주, 최영, 하륜 등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의 기재들이 뚜렷한 신념으로 격동기를 선보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드라마로 다뤄지고 또 다뤄져도 매번 새로운 해석으로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2할에 속하는 사람이다.


대한 삼국지라 홀로 지칭하는 나말여초야말로 내 가슴에 불을 지핀 시대라 할 수 있었다. 백수 인생에 자발적으로 공부라는 걸 하게 해줬다면 설명이 좀 되려나 싶다.


이른바 덕후이며 관련 지식은 전문가와 맞먹는 수준이다.


생각해 보라.


이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중심인물인 궁예가 나다.


성공한 덕후로서 심장마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환호도 아니고 고작 미소로 자제했으니, 제법 감정을 다스리는데 소질이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무작정 에헴! 납신다! 거릴 순 없다.


내가 가진 정보는 아직 미약한 수준이니까.


그렇다면?


“내가 이전에 무슨 말을 했든 간에 전부 철회한다.”


문득 튀어나온 내 발언에 대전의 분위기는 사뭇 요동쳤다.


그도 그럴 것이 애먼 장귀평을 죽이겠다고 발악했을 텐데, 갑자기 없던 일로 치고 살려준다니 황당하긴 할 터였다.


아마 미친놈으로 보일 테지.


하지만 태봉이 건국된 이후의 궁예는 미친놈이 맞으니, 새삼 놀라울 일도 아니다. 은근히 장귀평의 죽음을 바라던 몇몇 이들만이 아쉬운 기색을 내비칠 뿐이었다.


“대신 몇 가지 물어보지.”


얼떨떨해 보이는 장귀평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하문하십시오, 폐하.”

“여기 말고 단둘이서.”


흠칫.


내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내봉령을 비롯한 대소신료가 다시금 통촉 파티를 시작했다.


아니, 통촉해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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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7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0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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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4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65 9 11쪽
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3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5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8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3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7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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