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법으로 삼국통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새글

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최근연재일 :
2024.09.17 21: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447
추천수 :
190
글자수 :
113,734

작성
24.09.13 07:50
조회
128
추천
10
글자
12쪽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DUMMY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지금, 이 행렬에 참여한 이들의 심정일 것이다.


제사 준비는 언제나처럼 종간이 맡았다.


고인 유모에게는, 그리고 궁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차피 이번 제사는 진행되지 못한다. 나도 알고 왕건도 안다.


그러나 의심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평소처럼 준비하라 일렀다. 엄중하면서도 화려한 행렬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해마다 진행해 왔다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거창했다.


궁예에게 유모가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는 단면이리라.


“아주 끝장을 볼 기세로군요.”


은부가 가까이 말을 몰며 속삭였다.


“제 딴에는 오늘을 위해 얼마나 참았겠느냐. 반드시 결실을 보아 돌아가는 길에는 선두에서 당당히 걷고 싶을 터.”

“내군 부장이 아주 큰 일을 했습니다. 저들의 결실을 무너뜨리고 나면 술 한 잔 크게 사줄 생각입니다.”

“정확하게는 말똥인지, 꺼벙이인지가 고생했다고 들었다. 가장 중요한 정보를 산적 출신이 해결해 줄 줄이야. 허허, 침투까지는 이해한다 쳐도 성공은 장담하지 못했건만.”


그러니까 이름이.


꺽쇠, 빨빨이, 서당개였던가?


박술희가 몰래 붙여놓은 산적 출신 삼인방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를 보내주었다. 반드시 알아야 했던 신숭겸 이하 복병의 배치 현황을 꾸준히 보고해왔던 것이다.


“이백이던 놈들이 삼백이 되고, 각 가문의 사병을 긁어모아 사백이 되더니, 최종적으로 오백에 육박한다니. 쳇!”

“일이 틀어질 경우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아니겠느냐. 오히려 우리로서도 일망타진의 기회로다.”

“이래서 잘 해줘 봐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옛말이 있는 겁니다. 다 키워놨더니 은혜도 모르고, 쯔쯧.”


음.


궁예가 왕건을 키웠다는 말은 어폐가 좀 있긴 한데.


알게 뭐람.


어질고 성실한 궁예의 믿음도 몰라주는 순수 악인 왕건 자식. 밥 먹듯이 배신만 일삼는 천민 출신 백정의 아들놈아.


날조에는 날조로 받아친다, 이거야.


어쨌든.


지금까지 관측된 양상으로 보면 왕건의 전략은 이러했다.


신숭겸과 마군을 지휘관 삼아 사병을 운용.


주 전력으로 분류하여 제사에 열중하는 나를 친다. 동시에 왕건을 비롯한 공신들이 일제히 궐기하여, 내군이 진형을 갖추지 못하도록 교란하며 중앙군을 휘젓는다.


또한, 약속한 시각에 포섭해 둔 관료가 옥사를 개방하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감옥에 투입해 둔 특공대가 빠르게 도성을 점거. 개선장군 왕건을 맞이하여 개혁을 선포한다.


“기분 나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었군.”


은부가 알아듣고는 말을 받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옥사도 그렇고, 미륵상도 그렇고 형님 폐하의 혜안이 아니었다면 힘든 싸움이 되었을 겁니다.”

“하긴 거기부터 시작이었지. 그들의 첫수를 잘 끊어냈어.”

“내봉령의 침착한 대응이나 순군부령의 전략. 내군 부장의 작전 수행 능력까지 더해지니 질 수가 없어졌습니다.”


아.


내가 눈치가 없었네.


“전쟁이 어디 탁상 놀음으로 끝나는 것이더냐. 우리 아우가 없었다면 맞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터. 든든하구나.”

“실전에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흐흐.”


어쩐 일로 혓바닥이 길다 했다.


비로소 원하는 말을 쟁취한 은부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근데 정정할 건 정정하고 넘어가야겠다.


힘든 싸움?


애초에 전투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왕건이 본색이 드러냄과 동시에 궁예 일파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을 것임이 역사를 통해 이미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현장에 있었어도.


거사 날짜를 알고 있었어도.


오늘과 같은 대비를 갖추지 못했다면 승산은 없었다. 그 정도로 왕건과 홍유가 심혈을 기울인 준비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오지 않을 미래다.”


뒤를 돌아보았다.


종간과 은부의 얼굴에서 긴장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와 함께라면 승리하리라는 믿음, 우리의 전술이 저들의 전술을 파훼하리라는 자신감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었다.


바로 오늘, 새로운 역사의 첫 장이 펼쳐지는 날이다.


**


어디 보자.


그러니까.


이게 제사라는 말이지?


병사를 제외하고도 행렬의 규모가 예사롭지 않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종간이 준비한 평소대로. 는 내 예상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현실 제사를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이건 뭐랄까.


각종 매체에서 방송해 주는 기품 있는 종갓집의 명절이나, 정치인들의 현충원 참배 풍경보다 더 웅장했다.

종묘와 사직을 위하는 조선시대 사대부라 할지라도 이보다 신성하게 접근하지는 않았으리라 감히 넘겨짚어 보았다.


유모.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궁예의 감정을 이어받았으니 남이라 부를 수는 없었다. 오히려 님이라 칭해야 옳았다. 그러한 존재의 묘소가 곧 전장으로 변한다는 사실이 그저 송구스러워졌다.


‘일단 살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


나라를 지켜내고 내 안전을 확보한 이후에, 반드시 다시 찾아와 용서를 구하겠노라 다짐했다.


“송악에 터를 잡은 해상 가문의 적자 왕건.”


예법에 능통한 종간의 주도하에 식은 막힘이 없이 흘렀다.


어느덧 신료들의 대표가 내게 예를 건네며 본격적으로 제사를 시작하는 순서가 되었다. 대표는 당연히 서열 1위 광치나 왕건의 차지였다.


그런데.


저 새끼 서두가 이상한데?


“태봉의 검이자 방패였던 신분으로 내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은 왕대비를 기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행하려 한다.”


왕건은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덧붙였다.


“제 배 아파 낳지 아니한 자식인데도 사랑으로 키웠으나, 올바르게 자라지 않은 한 아이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군.”


대중들의 시선은 나와 왕건의 사이를 바삐 오갔다.


예년과 다른 진행.


지금, 이 풍경이 사전에 약속된 내용인지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은부가 나서려는 걸 제지하고는 담담히 뒷말을 기다렸다. 놀랍지도 않은 변절이니만큼 주장을 들어보고 싶었다.


내심 흥분해 주길 바랐던 것인지 왕건의 인상이 살짝 찡그러졌다. 아마도 내 추한 모습을 끄집어내고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장면을 그려온 듯했다.


시작부터 어그러진 왕건이 말을 이었다.


“아이는 자신이 난세를 종식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었다. 실로 오만방자한 착각임을 누구도 일깨워 주지 않았다. 무지에서 비롯된 그 대가는 애꿎게도 선량한 이가 져야만 했다.”


왕건은 궁예의 생애를 읊어나갔다.


한참을 듣던 내 감상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애쓴다.


어떻게든 제 행동을 정당화하려 애쓰고 있었다.


궁예가 누굴 죽였다느니, 정치적으로 한 지역을 배제했다느니,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패악을 저질렀다느니 하는 내용.


모두 사실이다.


나도 악행이 사실은 선행이었다며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궁예가 되어버린 내가 지고 가야 할 업보였으니까.


그런데 건방지게 유모를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시간순으로 진행되어야 정상이 아닌가 싶었다.


영웅적인 풍모를 드러냈던 청년기를 쏙 빼놓은 것도 모자라, 내가 몸을 차지한 이후 보여준 변화까지 없던 일로 치부하는 건 설득력을 스스로 깎아내는 행위였다.


약점만 후벼파는 모습.


군주가 아니라 정치인의 전형적인 행실이었다.


“곧 있을 무례에 대한 사죄는.”


묘소를 향해 큰 절도 두 차례 올려 보인 왕건이다.


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연기. 그 모든 준비를 끝마친 왕건이 마침내 검을 뽑아 들었을 때.


“저승에서 만나실 한 아이가 대신······!”

“놈!”


기다렸다는 듯이 일갈했다.


제아무리 왕건이 통일국가를 건설할 자질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의 자리가 정체성을 완성하는 법이다.


어쨌거나 지금의 왕건은 신하의 신분.


나는 미륵이라 선포한 제왕.


누구의 목소리에 무게감이 실릴지는 뻔한 이야기였다.


“설명이 필요하다 생각지 않는다.”


은부 이하 내군이 검을 뽑아 들었다.


“설득이 필요하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홍유 이하 마군도 진형을 꾸렸다.


“왕건은 충의를 저버린 것도 모자라, 고인을 욕되게 하는 패륜도 서슴지 않고 행했다. 그 끝은 역모로 귀결되니, 통탄을 참을 수가 없도다.”


나는 적로에 올라 적장을 하나씩 가리켰다.


“마군 장군 홍유와 배현경, 어딘가에 숨어 신호를 기다릴 마군 장군 신숭겸, 갸륵하게도 엇나간 충심으로 산화한 복지겸까지. 수좌 왕건의 지시 아래 오래도 숨어있었구나.”


검을 높게 치켜들었다.


“나라의 환부를 도려내고 기강을 바로 잡겠노라!”


내군에도 마군에도 속하지 않은 중앙군이 술렁거렸다.


사실 이 부분이 유일하게 불안 요소가 있는 곳이었다.


나도 왕건도 사전에 포섭하지 못한 중앙군.


제사의 안보를 위해 함께 따라온 수백의 그들을 끌어들이는 일 말이다. 계획이 새어나갈 위험을 감수하느니, 거사 직전에 명분을 앞세워 우군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누가 어느 정도를 가져가느냐에 따라 전황이 달라지리라.


“와아아!”

“저놈은 더 이상 존경받던 광치나가 아니다!”

“폐하를 지켜라!”


대다수의 무리가 내군과 열을 맞췄다.


사실 오늘을 위해 중앙군 내에서도 건국 이전부터 궁예를 따랐던 병사 위주로 선발해 왔다. 장귀평의 치밀함이 빛을 발하며 여론은 급격히 내 쪽으로 기울었다.


“······그래도 좋은 세상은 광치나께서 열 수 있지 않을까?”

“난 폐하의 악행이 잊히지 않아.”


물론, 마군 쪽으로 돌아서는 이가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비율로 따지면 9:1에 육박할 정도의 강세였다.


최근에 보여준 내 행보.


그 행보가 자신들이 기억하는 궁예의 전성기를 연상케 해준 덕이리라. 왕건의 영웅적인 면모보다 내가 다시 변하리라는 희망에 걸어준 중앙군이 가세했다.


이제 중립은 없다.


아군, 그리고 적군만 있을 뿐이었다.


“시작부터 잘못 쌓아 올려진 나라였다. 본인도 그것을 알기에 국호도 여러 번 바꾸고 도읍도 천도해 가며 반전을 꾀했지. 차라리 무너트리고 기초부터 다지는 게 최선인 것을.”


왕건은 입술을 꽉 깨물며 소리쳤다.


“순순히 내놓지 않겠다면 힘으로 가져가마!”


왕건이 내게 검을 겨눴다.


홍유가.


배현경이.


궁예와 함께 전장을 전전했을 병사들이 내 목을 노린다.


“역도를 멸하라!”


내 외침이 더해졌다.


중앙군의 병사를 압도적으로 당겨온 덕에 순수 머릿수만 따지면 아군의 우세였다. 하지만 지휘관의 역량이 더해진다면 그다지 유리한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은부는 약속한 움직임인 방어진을 펼쳤다.


나는?


그 누구보다 선두에 서서 사냥감을 탐색했다.


지금의 전투는 평범한 대립이 아니었다. 누구의 이념이 옳은지 증명해 내야 하는 내전이다. 즉, 내가 은부의 위치에서 방어와 지휘에 치중한다면 믿음을 줄 수 없었다.


“달린다. 죽인다. 이긴다.”


오로지 3가지만 되뇌어야 했다.


미리 선정해 둔 친위대가 내 뒤를 받쳤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왕건에게 다가가 결단을 내고 싶었지만, 용맹과 만용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김락 / 견마지로, 다혈질, 투지, 호협함, 흥분』


그리하여 낙점된 희생양을 눈에 심었다.


나타난 특징답게 제 안전을 도외시한 돌파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오늘을 위해 단련한 마상전이다. 곧장 다가가 검을 내지른 순간, 후방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관심법으로 삼국통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21:00 입니다. 24.09.08 94 0 -
22 22화 - 포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 NEW +1 22시간 전 84 9 12쪽
21 21화 - 직구만 던지는 미친 강속구 투수. +1 24.09.16 105 9 13쪽
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18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38 10 11쪽
»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29 10 12쪽
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8 10 12쪽
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39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6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0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8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4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64 9 11쪽
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2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4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7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2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5 8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