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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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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DUMMY

내가 말한 독대는 단어 그대로의 뜻임을 이해시키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절대 비열하게 해코지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하게 드러낸 뒤에야 대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그러니까 과거. 궁예. 나 말고 진짜 궁예!


제길.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이 복잡한 정체성 때문에 고생 좀 하리란 예감이 들었다. 오히려 너무 쉽게 변화를 받아들였기에 더 헷갈리는 건지도 몰랐다.


벌써 궁예인 내가 마음에 들어버렸으니 말이다.


아무튼 궁내에 그럴듯하게 꾸며진 정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끈질기게 따라붙던 호위조차 말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물렸다. 게다가 궁예의 조치였는지 정자 주위에는 사람이 모습을 숨길 수 있을 만큼 우거진 식물은 없었다.


그야말로 사담을 나누기에는 제격인 야외였다.


“좋군.”


홀로 장귀평과 마주한 이유는 간단하다.


내 취약점인 정보 부족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 앞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데 다방면으로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이였다. 간단하게 뉴 궁예의 오른팔 낙점이라는 말씀.


여기서 비밀 한 가지.


사실 난 궁예의 기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때나 꺼내어 볼 정도로 뚜렷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성능 좋은 모니터로 세상을 보다가 느닷없이 흑백 브라운관 TV로 채널이 돌려진다고 해야 할까.


현실감이 대폭 떨어졌다.


기억 속에 담긴 정보는 엿볼 수 있지만, 나라는 자각이 쉬이 들지 않아서 교차검증의 욕구가 솟구쳐 오른다.


“그리도 좋으십니까.”


내 읊조림을 들은 장귀평은 추억에 잠기며 고개를 돌렸다.


“전장을 전전하며 살아온 폐하의 삶은 꽃, 연못, 휴식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었지요. 그래서인지 901년 태봉의 전신인 고려가 건국된 후, 정원의 존재를 강력히 원하셨습니다.”

“그랬지.”

“나라고 피를 보는 게 즐거운 줄 아느냐! 내 눈도 아름다움으로 호강하고 싶다! 라시며 역정에 가까운 투정을 부리셨습니다. 하여 소신이 계획부터 건설까지 참여하였지요.”


곰곰이 궁예의 기억을 파헤쳐 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살짝 보태자면 장난감을 원하는 아이처럼 찡찡거렸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의 궁예는 지금과 달리 친근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스스럼없이 사졸과 농담을 주고받는 최고 지휘관 위치였다면 믿어지는가.


“내 닦달에 두 배로 힘들었을 테고 말이야.”

“매일 같이 찾아오셔서 진척 상황을 캐물으셨으니까요.”


가볍게 미소 띤 장귀평이 말을 이었다.


“물론. 결과물을 확인하신 폐하의 표정으로 보답받았습니다. 그리도 환하게 웃으시는 걸 오랜만에 뵀었지요.”


오해하지 마시라.


방금까지 죽느냐 사느냐 요단강을 건널뻔했던 장귀평과 즐겁게 추억 여행을 떠난 장귀평은 틀림없이 동일 인물이다.


이 같은 강심장적인 면모만 봐도 난 놈임은 분명했다.


가진 재능 또한 범상치 않았다.


젊어서는 궁예의 지낭으로 활동하며 건국의 기틀을 다지고, 이후로는 태봉의 군사 지휘 본부인 순군부의 으뜸인 령이 되어 보좌해 준 인물이 바로 장귀평이다.


내게만 보이는 장면만 봐도.


『장귀평 / 신기묘산, 책략가, 줏대, 추진력, 평안』


그가 왜 순군부령인지 증명하려 아우성치고 있었다.


체념을 체념하고 평안을 되찾는 정신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이처럼 함께해 온 세월, 실패와는 거리가 먼 통찰력, 죽이려고 했음에도 앙금 하나 남기지 않는 충성심까지.


오른팔이자 교차검증의 답지로 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지.”

“무엇을 답하면 되겠사옵니까.”

“내 자네에게 바라는 건 답이 아니다.”


고개를 조아린 장귀평을 향해 덧붙였다.


“아이의 눈을 틔워주는 보모 역할이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지 답지 않게 말을 버벅거렸다.


“······제가. 소신이 누굴 돌보아야 하는지요.”

“나다.”

“예?”


나는 입꼬리를 접어 올리며 의문을 풀어주었다.


“내가 산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아이라고 생각하여라. 넌 그 아이가 세상에 나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들려주는 것이다. 올해가 몇 년도인지부터 시작해서 인접한 국가는 몇 개가 있으며, 정국이 흘러가는 양상까지 모두 다 말이다.”


사실 터무니 없는 요구였다.


어렵다기보다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수학자가 덧셈·뺄셈을 알려달라는 말과 무엇이 다르랴.


오직 궁예라서.


돌발 행동을 밥 먹듯이 하는 궁예가 나라서 가능한 시도였다. 고작 이런 일로 이상하다며 여기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귀평은 순순히 서두를 열었다.


“당년은 918년 6월 초입을 지나고 있습니다.”


음?


“아국 태봉의 수도는 바로 이곳 철원으로써 북쪽으로는 대동강 일대, 남쪽으로는 웅주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영토가 폐하께 충성을 바치고 있습니다.”


웅주를 내가 아는 지명으로 바꾸면 충남 공주가 된다.


“아직 반기를 치켜드는 땅도 물론 존재합니다. 반드시 사라져야 할 멸도를 포함하여 백제의 견훤. 그리고 멸도와 협력하는 듯하면서 독자 노선을 놓지 않는 사벌주의 아자개, 강주의 왕봉규가 그 불온 무리지요.”


멸도는 신라를 일컫는다.


신라를 향한 궁예의 적개심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본디 대륙에는 당나라가 존재했으나, 십여 년 전 멸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갈가리 찢겨 수많은 나라가 생겨난 추세지요. 게다가 대동강 너머로 거란, 말갈, 발해가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북쪽에 대한 경계도 소홀할 수 없는 형국입니다.”


발해라.


현대까지 전해진 기록이 극히 미미한 국가였다.


그들의 실상을 엿보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거란에 의해 멸망하는 시기가 머지않았다. 사실 지금도 한반도 북부의 땅은 말갈족의 영토나 마찬가지인 실정이었다.


우선 삼국에 조금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삼국의 주요 전장은 크게 나주와 대야성입니다.”


각각 태봉vs백제, 백제vs신라였다.


“아국은 백제의 금성군을 습격해 승전을 거두고 나주라 개칭하였습니다. 907년에 잠시 빼앗기기도 하였으나, 뱃길을 통해 재탈환. 이후 백제를 향한 주요 거점으로 부상했습니다.”


백제의 수도는 전주다.


견훤으로서는 빼앗긴 나주가 턱밑의 비수처럼 느껴질 터였고, 우리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요충지나 다름없었다.


“대야성은 대가야 때부터 명성은 이어온 난공불락의 요새입니다. 멸도의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보루나 마찬가지지요. 그래서인지 견훤의 두 차례 맹공에도 불구하고 굳건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장귀평의 설명은 이어져 내부 상황에 닿았다.


“민감한 내용이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폐하의 통치로 급성장을 맞이한 태봉은 작은 폐단을 앓고 있습니다. 바로 병합된 시기별로 파벌이 형성됐다는 것이지요.”


대외적으로도 삼국이더니, 대내적으로도 삼파전이다.


일개 장군이던 시절부터 궁예를 따르던 초기 인사.


파죽지세로 세력을 넓히던 궁예의 위세에 놀라 한마음으로 귀부한 황해도와 평안남도 인근의 패서지역 출신의 인사.


숙적 양길을 처단하고 흡수한 영토인 충주, 청주, 괴산 지역의 충청북도 출신의 인사.


이제야 통촉 지옥 중간에 이루어진 대화가 이해되었다.


장귀평은 누가 뭐래도 초기 인사의 중심축이다.


순군부령이라는 직책이 내 곁에서 실권을 휘두를 힘이 있는 만큼, 다른 파벌로써는 탐이 나는 자리였을 것이다.


장귀평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다며 두둔하던 쪽이 초기 인사 쪽, 내가 정신 차리지 못하도록 열심히 딴지 걸던 쪽이 청주로 대표되는 충청북도 인사 쪽이었다.


쯧.


안팎으로 엉망이라는 소리군.


“아국의 정책 상황으로 넘어가자면.”


설명은 점차 심화되어 각종 내정 수치로 넘어갔다.


그러나 내 흥미를 잡아끌 수는 없었다.


혹시 모르니 가볍게 기억해 두는 정도로만 들어넘기면서 진정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다시금 되뇌었다.


지금이 918년 6월이라.


내가 아는 어떤 사건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기였다.


왕건의 역성혁명.


궁예를 몰아낸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여 태조가 되는 시기가 딱 이때였다. 이걸 바꾸어 말하자면 궁예가 된 내 남은 수명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보리 이삭을 훔쳐 먹다가 걸리지 않으면 며칠 더 살 수도 있겠지만, 비참하게 살길을 찾아 연명해야 하는 건 똑같다.


크큭.


절로 쓴웃음이 흘렀다.


탱자탱자 놀다가 잠들었는데 궁예가 되었다. 즐길 거리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건만 시한부 카운트가 돌아가고 있다.


이게 실화냐?


참고로 꿈이라는 의심은 접기로 했다.


아까 정자에 오르는 과정에서 무릎을 부딪쳤는데 고통이 몰려옴을 느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생생한 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내 처지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제부터 나는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발버둥을 쳐보더라도 늦거나, 대처가 시의적절하지 않아도 죽는다.


즉,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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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39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6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0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8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4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64 9 11쪽
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2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4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7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7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2 8 12쪽
»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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