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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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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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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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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DUMMY

사람 심리가 그렇다.


하지 말라고 하고 싶고, 하라면 하기 싫고.


복지겸도 막상 욕해보라니까 잠시 머뭇거리며 입을 달싹거렸다. 이 같은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하나였다. 지금과 같은 모습은 모두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


누구를 위해?


왕건을 위해.


“어지러운 시국.”


그래도 죽음을 앞둔 마당에 두려울 게 있으랴.


예의 독종 눈빛을 다시 장착하고 말을 이었다.


“을 깨운 태초의 움직임인 원종과 애노의 난이 있었다. 비록 끝까지 살아남아 그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유지는 모두에게 전해졌다. 신라는 망해야 할 나라다. 우리는 새 시대를 열어야만 한다. 그 외침에 반응한 자들이 생겨났다. 동시에 권력을 얻을 기회라 여긴 놈들도 꿈틀거렸다. 난 네 놈의 초기 행보를 바라보며 전자라 여겼다. 하지만!”


복지겸의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아라. 양길, 기훤, 긍준을 비롯한 수많은 호족을 기억하는가. 모두 나라를 좀먹는 도적을 처단한다는 명분 아래 네 손에 죽어 나간 자들이다. 그들과 넌 무엇이 다르더냐. 정도를 걷겠다던 신념은 어디 가고 패악질만 일삼느냔 말이다! 가슴 안에 응어리만 남아 화적이 된 자들도 제 부인과 자식을 개·돼지 취급하며 죽이지는 않는다.”


참을 인을 발휘하며 콧김을 내뿜는 장정 둘.


침이라도 뱉으면 닿을 법한 거리까지 다가간 나.


압박감이 느껴질 텐데도 복지겸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마치 하나의 유언장을 남기듯이 쏟아내라는 말에 충실했다.


“원종과 애노는 노비였다. 넌 버림받은 왕족이라지?”


그러나 궁예의 최대 치부라고 할 수 있는 약점을 후벼팔 때는 조소를 숨기지 않았다.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왕족은 지랄. 네놈이야말로 개·돼지다. 짐승보다 더한 짐승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원종과 애노라는 노비에게 무릎 꿇고 휘하로 들어가겠다. 근본도 체계도 없는 농민과 함께 신라의 군대를 맞아 싸울지언정, 네놈이 있는 쪽으로는 앉지도 않으리라. 아니! 언젠가는 찾아가 죽여버리겠다!”


말하다 보니 점점 본심이 나오는 듯했다.


감정에 잡아 먹힌 복지겸은 비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본인이 암계를 꾸며야만 했던 이유, 잡힌 몸이지만 당당하게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 누구보다 고려를 원했던 이들 중 하나이기에 말할 수 있는 진심이었다.


음, 문제는 내게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다.


마음고생이 많았겠네. 궁예가 그렇게 변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런데 이걸 어쩐담. 네가 저주하는 그 사람은 이제 없어. 그 잘못들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쯧.


가볍게 혀를 차며 묻어둔 말이었다.


복지겸의 저주 아닌 저주, 호소 아닌 호소가 끝나고 옥사는 침묵에 잠겼다. 직접적인 대상이 된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아서였는데, 혹여나 폭발할까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에 잠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처럼 복지겸을 도발한 건 바라는 답이 있어서였다.


왕건은 무엇을 위해 태봉을 뒤엎으려 하는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알 수 있다면 받아치기 쉬울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흥분한 복지겸이 말실수라도 해주길 원했지만, 딱히 기대했던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불만을 품은 주체가 본인이라 주장하는 치밀함까지 선보였다.


단독 범행이다.


대대적인 반란이 아니라 나 혼자 저지른 사고에 불과하다.


왕건을 위하는 빌어먹게도 갸륵한 마음이 엿보이는 그때.


“형님 폐하!”


생각보다 오래 참은 은부였다.


“왜 듣고도 가만히 있냐고 묻고 싶은 게지?”

“제발 제게 저 입을 찢어버리라 명하여 주십시오!”

“아직도 모르겠느냐, 아우야.”


때아닌 설교가 이어졌다.


“놈은 지금 죽여달라 시위하고 있다. 모든 죄목을 자신이 업고 갈 테니, 대역죄인으로써 어서 목을 쳐달라는 것이야.”


그제야 조용히 시립해있던 장귀평이 나섰다.


“그는 홀로 벌인 일이라 주장하지만, 고작 마군 장군이 계획하기에는 사안의 크기가 너무도 크옵니다. 옥사의 경계를 강화하고 시간을 두어 천천히 배후를 파헤치시지요.”


우리의 대화가 복지겸의 발작 버튼을 또 누른 모양이다.


더욱 거세진 비하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는지 논리적으로 오목조목 반박하는 장귀평과 죽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가면을 쓴 복지겸의 대립이 흥미롭게 이어졌다.


그러나 내 관심을 끈 건 고작이라는 단어였다.


고작이라.


현재만을 본 장귀평의 평가와 달리 복지겸은 월척이다.


사실 지금도 미륵상 테러범의 정체가 복지겸인 것이 얼떨떨한 지경이다. 마치 농수로 도랑에 장난삼아 뜰채를 대봤는데 민물 장어가 낚인 격이라고나 할까.


손쉽게 잡은 수확치고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거물이었다.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봤을 때, 왕건의 왼팔 하나를 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지금이다.


그러니 복지겸 선에서 끊는 것도 방법이다.


괜히 왕건의 이름을 내뱉게 하려다가는 혁명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어차피 아는 배후의 정체 따위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자!”


이윽고 내 입이 열리자, 설전은 중단되었다.


내가 도출한 결과를 듣기 위해 집중했다.


“종 내봉령에게 신료를 모으라 이르도록. 안건은 역도 복지겸의 처우다. 저자 한복판에서 거열형에 처할 것이며, 삼족을 멸하겠다. 은부는 참석하지 않아도 좋으니, 미리 출발하여 복씨 가문의 누구도 도망치지 못하게 조치하라. 알겠느냐!”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복지겸은······.”

“이견은 받지 않겠다.”


단호한 어투와 함께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또한, 여기 모인 삼 인과 내봉령은 처형식이 거행되는 날 밤에 따로 기별할 터이니, 그리 알고 의문은 묻어두어라.”


**


당연하게도 어전의 공기는 차갑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궁예로서의 첫 장면일 때와 비교하면 그 성격이 사뭇 달랐다. 공감 없는 두려움이 아닌 함께 분노하였기에 생기는 냉담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극소수의 누군가는 잔혹성에 인상을 찌푸리고, 우군을 잃을 위기인 어떤 무리는 비통함에 젖었다.


그래도 반대하고 나서는 자는 없었다.


반란은 현대에서도 살인, 강간, 방화 등 그 어떤 범죄보다도 엄중하게 처벌되는 행위였다.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은 개인에 그치지 않기에 당연한 말이기도 했다.


“은신처, 범행 도구, 자백에 이르기까지 증거가 이토록 명백하니, 폐하의 처사가 실로 합당한 줄 아뢰옵니다.”

“하루빨리 식을 거행하여 본보기를 보여야 하옵니다.”

“살아서 숨 쉬는 것조차 사치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부추는 인원까지 생겨났는데.


나도 그 의견에는 동의했다.


괜히 시간을 줬다가는 왕건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될 수 있었다. 탈출 혹은 구출 따위의 참사 말이다.


저 살벌한 눈빛 좀 보라지. 저거. 저저.


문득 쳐다보니 지금 당장에 옥사로 쳐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눈빛이었다. 내게만 보이는 감정도 그것을 증명했다.


『왕건 / 왕재, 덕왕의 자질, 천명, 인복, 용장, 영걸, 와신상담, 울분, 화광충천』


얼씨구?


『왕건 / 왕재, 덕왕의 자질, 천명, 인복, 용장, 영걸, 와신상담, 침착, 냉정』


뭐야?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꼴이 제법 통쾌했다. 가능만 하다면 나는 네가 좌지우지할 수 있던 궁예가 아니라며 비웃어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더 이상의 도발은 우발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비웃을 기회야 앞으로 많을 테니, 제쳐두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유난히 따갑게 느껴지던 시선이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주시하던.


『장귀평 / 신기묘산, 책략가, 추진력, 줏대, 지각』


그럼 그렇지.


새삼 관심법이 굉장히 편하게 느껴졌다. 상대방의 이상 행동을 이해해 보려 고민하지도, 후일 물어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읽으면 되니까 말이다.


보이는 것처럼 장귀평은 무언가를 깨달은 눈치였다.


내가 자신 있게 복지겸을 지목한 이유, 별다른 심문도 없이 처형하려는 이유, 최근 만남이 잦은 4명을 따로 부르는 이유. 내가 배후를 이미 알기에 가능한 일이라 짐작하는 듯했다.


하여간 예리하다니까.


허공에서 마주친 시선에 어쩐지 질문이 담겨 있었다.


‘믿을 만한 이를 가려내려 하십니까.’


난 그저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다.


“자, 반대의 목소리는 없는 것 같으니 이만 퇴청하겠다. 세부적인 건 종 내봉령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라.”


**


그날 밤.


복지겸의 처형 준비와 미륵상 재건으로 어수선한 틈을 타 7인의 사내가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


가장 상석에 앉은 사내.


그러니까 왕건을 필두로 고려의 공신이 될, 정확하게는 원 역사에서는 되었던 인물들이었다. 말석에 자리한 사내가 얼굴을 감싸 쥐며 읊조렸다.


“어떻게 복 장군의 은신처가 발각될 수 있었을까요. 혹 정보가 새어 나간 건······.”

“말씀을 조심하시오.”

“주군을 옹립하려는 이들의 신의를 의심한다면 절대 큰일을 도모할 수 없소이다.”


곧바로 질타가 쏟아지며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복 장군은 실수할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궁예가 운이 좋아 벌어진 일도 아닐 테지요.”


이내 왕건의 바로 앞쪽에 앉은 사내들이 대화를 주도했다.


“장귀평의 존재. 아무래도 그의 중흥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 궁예가 미쳐 날뛰며 그를 배척하였을 때 거사를 서둘렀어야 했다는 생각마저 드는군요.”

“배 장군, 그가 태봉의 부흥을 이끌었을 만큼 유능하나 한들, 우리 모두를 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또한, 궁예는 언제라도 다시 비정상적인 행동을 벌일 만한 위인이기도 하지요.”

“하긴 한 번의 기행이면 공든 탑은 단번에 무로 돌아가겠군요. 상대의 무능을 응원해야 하는 상황이 퍽 우습습니다.”


배 장군이라 불린 사내는 쓴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정녕 이대로 복 장군을 포기해야 할는지요.”


그 질문은 기폭제가 되었다.


“구해야 합니다.”

“복 장군께서는 주군을 위해 모든 짐을 짊어지셨습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궁예가 누군가를 의심할 실마리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 손 놓고만 있자는 말씀입니까!”

“안타깝지만 거사가 우선입니다. 복 장군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더 철저히 미래를 도모하는 수밖에요.”

“복 장군께서도 우리가 포기해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누군가 물었다.


“홍 장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홍 장군은 배 장군과 더불어 왕건의 바로 앞자리에 위치한 사내였다. 그는 대답 대신 왕건을 쳐다보았다.


“장귀평이라는 변수를 넣어 계획을 다시 점검하겠습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복지겸은.”

“모두.”


왕건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오늘의 울분을 기억하라. 또한, 다짐하라.”


그가 침묵으로 일관한 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의 비통함을 감출 길이 없어서였음이다.


“우리가 희생을 담보로 흉계를 꾸미고, 오늘과 같은 치욕을 당하는 건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명분이 부족해서도 아니며, 심계가 뒤틀려서는 결코 아니다.”


왕건의 숨소리만이 공간을 지배했다.


“나라가 없어서다.”


모두가 눈에서 이채가 감돌았다.


“신라, 백제, 태봉. 그들은 전부 국가라는 탈을 쓴 도적 단체다. 우리가 이념을 모아 세우기로 한 나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니 오늘의 울분을 기억하라! 지금 흘린 피와 땀은 초석이 되어 성국(盛國)의 기틀을 다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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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18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39 10 11쪽
17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29 10 12쪽
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9 10 12쪽
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40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5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7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1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9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5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65 9 11쪽
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3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5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8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3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7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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