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법으로 삼국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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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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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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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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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DUMMY

“바로, 오늘!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리라!”

“와아아!”


안 그래도 기다리던 참이다.


견훤을 견제한답시고 일단의 마군과 함께 출진했던 신숭겸. 날 겨누고 있던 매복군. 놈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힘겹게 내 검을 막아낸 김락이 입술을 뒤틀었다.


“쉽게 쉽게 갑시다. 예?”


하? 이놈 보소. 입을 터네?


고려에서나 중신이었지.


태봉에서는 말단 중의 말단인 김락이다. 세상이 뒤바뀌는 마당에 말 몇 마디 건네는 게 대수라고 여겼던 것일까. 그만큼 작금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포기하라 이 말이더냐.”

“말년에 추하게 이게 무슨 일입니까. 대세를 따르시옵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폐. 하.”

“크크크.”


충성심과 호기를 갖춘 맹장 김락.


내 눈에는 그저 귀여운 애송이로 비쳤다.


“그 건방진 머리로 잘 되뇌어 보아라.”


어차피 신숭겸의 출몰은 예측 범위 안이다.


허둥지둥 돌아서서 은부를 돕기보다는 적의 예봉을 꺾는 일이 더 중요했다. 한때 수십의 호족을 휘어잡았던 궁예의 전장 감각이 여전하다는 걸 드러내는 일 말이다.


검을 한층 더 내리누르며 말을 이었다.


“대세를 따르라?”

“크······크흡!”

“내 몇 가지 묻겠다.”

“무슨 힘이······!”


일그러지는 얼굴처럼 점점 찌그러지는 김락의 몸.


내 힘을 이겨내지 못해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인 김락이었다.


“복지겸이 발각된 게 그저 운이 없었다고 여기느냐? 배후에 왕건이 존재하고, 형미 대사가 말을 맞춰줬다는 걸 모를 줄 아느냐? 죄인으로 위장해 잠입해 있던 부대가 풀려난 게 우연이라고 생각했느냐? 네놈들의 거사 날이 오늘이라는 걸 정녕 모를 줄 알았느냔 말이다!”


가까스로 뿌리친 김락이 소리쳤다.


“가타부타 시끄럽다!”


울분도 함께였다.


“다 집어치우고 현재만 보면 된다. 주군을 위한 전장이 만들어졌다. 우리의 일념이 향할 쏘아질 목이 도주를 택하지 않았다. 그럼 된 거다. 어차피 끝난 싸움이라고!”


맹공이 쏟아졌다.


나만 죽어 없어져 준다면 난세가 종식되리란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래, 뭐. 마냥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천명을 받은 사나이인 왕건이 통일국가를 건설하긴 하니까.


근데.


있잖아.


어쩌라고?


비록, 내 의지로 궁예의 몸에 깃든 건 아니지만, 난 지금의 환경에 백 번 만족한단 말이지. 그런데 원 역사에서 패배자였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역사에서도 순순히 물러나야 할까?


아이고 왕건느님, 태조가 되시옵소서.


하며 자리를 비켜드려야 해?


“까고 있네.”


가볍게 휘두른 반격.


하지만 김락은 균형을 잃고 크게 휘청거렸다.


내겐 훤히 보였다.


검이 날아드는 경로, 김락의 다음 수, 주변시로 들어오는 전체적인 전황의 양상까지 모두 느껴졌다. 첫 전장이지만, 내 감각은 익숙하다는 듯이 날뛰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궁예가 내가 아니라는 자각만 있을 뿐, 신체 능력은 대부분 구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용장 그 자체였던 궁예. 박술희나 은부와의 대련으로 흡수하려 애썼던 나.


잘 닦여 있는 길을 거침없이 달려온 셈이다.


“네까짓 게 감히 넘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적응은 끝났다.


“크헉!”


허리를 노리고 쏘아져 간 중단 베기.


김락은 그 단순한 동작을 막아내지 못하고 검을 놓쳐버렸다. 속전속결. 무방비가 된 녀석에게 후속타를 날렸으나.


“쯧.”


허명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검을 날려버린 내 힘을 순간적으로 역이용해 낙마를 택했다. 아쉬운 대로 허공에 떠오른 녀석의 검을 낚아채 집어던졌다.


“백부장님!”


그러나 곁에서 지켜보던 마군 무리가 겹겹이 둘러싸 구원해 내는 모습이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돌파해 목을 쳐버릴 수 있었지만, 사안의 경중을 따져야 했다.


“이 손 놓아라!”

“지금은 물러나셔야 합니다!”


낙마의 충격으로 덜렁거리는 김락의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지휘관의 이탈.


그것은 이쪽 전선에 공백이 생긴다는 말과 같았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장이다. 더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굳이 피라미에게 시간을 쓸 여유는 없었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이 새끼들아 정신 똑바로 차려!”

“오늘만을 바라보고 흘린 땀을 기억하라. 뚫어야 한다!”

“근 몇십 년 동안 너네처럼 많은 실전을 치른 부대도 없을 거다. 하던 대로만 해! 우리는 강군이야!”

“내가 앞장서겠다. 뒤를 따르라!”

“충돌에 대비해!”


처절한 은부의 외침이 귓가를 울렸다.


『신숭겸 / 신궁, 백발백중, 투혼, 충절』


상대는 당연하게도 신숭겸이었다.


하늘을 수놓은 기러기 떼 중에서 왕건이 지목한 기러기를 정확하게 쏘아 맞혔다는 야사. 삼국통일을 견훤이 이뤘을 수도 있었던 전투인 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대신한 희생.


그 대표적인 일화들이 오롯이 담긴 관심법 문구였다.


유비에게 조운이 있다면.


조조에게 전위가 있다면.


왕건에게는 신숭겸이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그런 장수가 이끄는 매복군이 나와 은부 사이를 갈라놓은 채 방어진을 두드렸다.


형세만 봐서는 갇혀 있는 신숭겸이다. 하지만 내가 말머리를 돌릴 리가 없다는 걸 알기에. 우리가 서로를 구원하지 못하도록 길목을 막고 있는 모양새라고 봐야 했다.


“계획대로군.”


당연하게도 이는 의도한 바였다.


열어준 허점.


맛있게 물어준 신숭겸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목이 쉬라고 포효하는 은부를 잠시 지켜보았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잠시 마주친 눈빛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어서 가십시오. 형님!’

‘버티거라.’


마음 속으로 답해주고는 발길을 돌렸다.


은부는 은부의 역할을.


나는 내 대임을 완수해야만 했다.


김락의 부재로 뚫린 공간 너머로 다음 목표로 삼을 만한 두 장수가 보였다. 사실상 진정한 수뇌이자, 전장의 향방을 가를 만큼 영향력이 있는 자들이었다.


『홍유 / 왕좌지재, 봉추, 전략가, 달변가, 자긍심』


영원한 오른팔.


홍유는 마군의 중군을 맡아 전체적인 지휘를 책임졌다. 따라서 대면하는 경로에 산적한 장애물이 어마어마했다. 헤쳐 나갈 수야 있겠지만, 적잖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자칫 발목이 묶였다가는 역공의 빌미가 되리라.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배현경 / 다재다능, 만인의 모범, 총명, 검재』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이런 수식어가 따라다녔을 것이다.


엄친아의 정석.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면모를 갖춘 배현경이었다. 심지어 외모까지 훤칠한 것이 무릇 모든 아들들의 적이 되었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전생이 되어버린 과거의 나와는 정반대의 인생을 살았을 배현경의 청소년기가 떠올려졌다. 질타와 위축과는 뜻과 의미가 모두 달랐을 녀석의 삶 말이다.


절로 투기가 샘솟았다.


물론, 사적인 감정이 아니더라도 지닌 재능만큼이나 전력상 차지하는 비중도 대단할 터였다. 왕건의 수족 중 가장 탐나는 문무겸장이지만, 지금은 꼭 쓰러트려야 할 적일 뿐이었다.


“저놈이 맥이다.”


신숭겸과 왕건이 은부의 무력화를 1순위로 두고 있듯이, 우리 쪽에서는 배현경을 노리는 게 합당해보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김락의 이탈을 인지한 녀석도 날 바라보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지며 격돌지가 될 장소가 정해졌다. 묘소로 이르는 길목의 초입. 울창한 나무가 배경으로 자리 잡은 그곳. 난 끌려 올라가는 걸 입꼬리를 참을 수 없었다.


“잡았다.”


저들이 잊고 있던 한 남자.


그가 이끄는 한 무리.


“이 육시랄 놈들아!”

“오늘을 위해 찌르고, 뒹굴고 반복했던 혹독한 훈련······. 니미! 다 죽여버리겠다!”

“관군도 배때기 뚫리면 뒈지나 한 번 보자꾸나!”


겉은 정규병이지만, 어휘는 아직 산적 티를 벗지 못한 저들의 매복 장소가 이곳이었다. 통발에 잡힌 실한 월척 배현경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꺽쇠, 빨빨이, 서당개.


보고 차원에서 본 적 있는 그들이 한 맺힌 울분을 토해내며 선두를 차지했다.


그리고 바로 뒤.


“네놈들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욕설을 허용한다. 역적들에게 우리가 등장했음을 똑똑히 알려주거라!”


땡볕에 시커멓게 타버린 박술희가 부르짖었다.


“어떤 새끼가 폐하를 대면하는 첫 전장부터 설렁설렁 뛰어! 너랑 너는 살아남아도 내게 친히 죽여주마!”

“으아아! 살려주십시오!”

“적군의 머리통 10개를 가져와라. 그래야만 사면이다.”

“개잡놈들아! 내 창을 받아라!”


음.


서로 정반대였던 두 부류가 만난 결괏값이 예상 밖이랄까.


산적의 정규군화를 위해 붙여놓았건만, 어쩐지 박술희가 산적화가 되어 돌아온 기분이었다. 뭐, 무뚝뚝한 원리원칙 사나이보다는 적당히 야성미를 겸비하니 훨씬 보기는 좋았다.


“분!”


그러나 상대도 만만치 않은 야성남들이었다.


배현경의 결단 어린 한마디에 무리가 둘로 나뉜 것이다. 비율로 치면 8:2가량.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는 걸 보니, 이러한 상황을 위한 전술인 듯싶었다.


배현경은 8을 이끌고 박술희의 매복 부대를 에워쌌다.


2가 내 발목을 잡을 동안 빠르게 정리하겠다는 심산이리라.


“살벌하군.”


아주 극소수의 특임대.


단숨에 짓밟고 지나갈 수 있어 보이는 그들.


하지만 격돌이 이루어진 내 첫 감상은 쉽지 않겠다였다.


애초에 마군은 태봉의 각 부대 중에서도 정예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훈련에 뛰어난 수완을 보이는 배현경의 직속 부대. 그에 더해 소수로 다수를 견제하기 위해 창설된 분대.


눈앞의 이들은 전문가였다.


물론, 하나하나의 무위는 날 능가하지 못한다.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구나.”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수준급의 병사들이 모여 작정하고 방어와 회피로 일관하니, 틈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친위대와 합세하여 포위해 봤지만, 쓰러트리는 속도는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그렇게 지연된 시간은 왕건에게 기회를 주었다.


“숭겸!”


이쪽 전황을 파악한 그가 신숭겸을 호출한 것이다.


“내군장군은 내가 맡겠다. 그대는 배 장군을 도와 폭군이 더는 날뛰지 못하도록 저지하라!”

“머리는 붙여두겠습니다.”

“놈의 처형은 저자 한복판에 이뤄져야 한다. 부탁하마.”


미친놈들이?


듣는 폭군 어이없어지려 하네.


순순히 당해줄 마음도 없건만 신숭겸은 일단의 부대를 이끌고 곧장 전선을 이탈했다. 하지만 믿을 만한 장수 층이 얇은 우리로서는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형님!”


시선을 돌리지 못하도록 퍼붓는 왕건의 맹공.


은부가 할 수 있는 건 애처롭게 날 부르짖는 일뿐이었다. 내게 달려오고 싶지만, 올 수 없는 처지가 표정 가득히 드러났다. 그 모습은 왕건에게 희망과 우월감을 주었다.


너무도 눈물겨운······.


연기였다.


“광대로 태어났어도 저자를 휩쓸었겠어.”


내게 없는 인재상이 왕건에게 있듯이.


왕건에게 없는 인재상은 나에게 있었다.


행동하는 행정가.


주력 분야가 아니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강단의 소유자.


“쏴라!”


대립이 시작되자마자 아무도 모르게 모습을 감춘 종간이 마침내 등장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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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 포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 NEW +1 22시간 전 84 9 12쪽
21 21화 - 직구만 던지는 미친 강속구 투수. +1 24.09.16 105 9 13쪽
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39 10 11쪽
17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29 10 12쪽
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8 10 12쪽
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39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6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0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8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4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64 9 11쪽
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3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4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8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2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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