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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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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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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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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DUMMY

“찔러!”

“하!”


박술희는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물론, 지금에 이르기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폐하의 명령대로 절반 치를 죽이는 불상사는 없었으나, 39명의 인원이 군기를 위해 사라져야만 했다.


죽은 생선 눈알의 산적도 잘 먹이고, 잘 씻겨 놓으니 제법 탄탄한 신체를 자랑했다. 쉼 없이 산을 타며 단련된 체력과 박술희의 훈련이 합쳐진 결과리라.


그렇게 총 124명으로 구성된 인부 겸 잠복 부대는 날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박술희 / 절개, 교관, 잠재력, 담력, 청렴』


궁예가 보았다면 이러한 창이 떠올랐을 터였다.


자신의 또 다른 재능을 개화한 박술희에게 내군 병사가 다가왔다. 빠른 걸음과 굳은 표정이 평범한 보고가 아니라는 걸 예고했다.


“신원 미상의 2인이 접근 중입니다.”


박술희는 곧바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하던 일을 멈춘 채 정해진 은폐·엄폐 임무를 수행했다. 누군가는 횃불을 끄고, 또 누군가는 병장기를 파묻으며 연못 터 아래로 집결했다.


소음 속에서도 휘파람 소리에 반응하도록 반복 또 반복한 성과였다. 보안 문제다 보니 본능에 각인시킨 셈이다.


한층 더 깊어진 연못 터는 바로 인근까지 접근하지 않으면 보일 염려가 없었다. 박술희 외 모두는 숨을 죽인 채 벌어질 상황에 대비했다.


“견훤의 도움을 받는 날이 올 줄이야.”


마군 일인과 최소 백인장 급은 되어 보이는 장교가 은밀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때마침 군을 일으켜 주어 다행이었지요. 만일 아무 일도 없었다면 또 어떤 언쟁을 통해 출진을 허락받았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시일이 좀 이르긴 하지만, 미리 주둔해서 나쁠 건 없지.”


장교는 서신을 내밀며 덧붙였다.


“신 장군께 전달하라는 주군의 명령이다. 명심하거라. 식사도 말 위에서, 휴식도 말 위에서 해야 하느니라.”

“목적지에 닿기 전에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겠습니다.”


마군은 남문 방향으로 사라지고.


장교는 왔던 길을 따라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박술희는 주위의 풀벌레가 다시 울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비로소 아군만 남았다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경계를 해제했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내군 병사의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술희는 자신의 권한을 아득히 넘어서는 중대사를 엿들었음을 느꼈다. 저들이 말하는 주군은 왕건임이 분명했고, 신 장군. 즉, 신숭겸의 임무는 아군을 향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주둔지와 꿍꿍이를 알아내야만 했다.


뒤를 쫓아야 했지만, 은밀한 장소에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급히 공수하려 한다면 누군가에게 들킬 위험도 있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꺽쇠, 빨빨이, 서당개.”


키가 크고 눈썰미가 뛰어난 꺽쇠.


어지간한 정식 군졸보다 체력과 근지구력이 좋은 빨빨이.


유일하게 글을 깨우친 서당개.


미리 개개인의 특성을 파악해 놓은 박술희가 선정한 이번 일의 돌파구였다. 호명된 삼 인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다가와 명령을 기다렸다.


“저자를 추적하라.”


박술희는 즉시 수정했다.


“정확하게는 신숭겸이 부대를 이끈 곳을 찾아내야 한다. 적지 않은 인원이 이동했다 보니 흔적을 다 숨길 수는 없었을 터. 너희가 머리를 모은다면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전문 분야입니다.”


씩 웃어 보이는 그들을 향해 덧붙였다.


“다만, 임무에 실패할지언정 잡혀서는 안 된다.”

“우리의 주적은 누군가의 의심을 받는다는 사실조차 몰라야 한다. 장군님께서 매일 하시던 이야기 아닙니까. 절대 들키지 않고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가져오겠습니다!”


능글거리며, 그러나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는 서당개였다.


박술희는 어느새 동조된 표정으로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건 여비로 쓰도록. 무운을 빈다.”


그들의 신의는 의심하지 않았다.


푼돈과 함께 주어진 짧은 자유.


고작 그 정도에 새롭게 얻은 긍지를 버릴 만큼 어리석은 자는 없었다. 저들은 이제 군인이었다. 단지 어깨에 걸린 짐이 너무도 귀중한 것이라 걱정이 될 뿐이었다.


박술희는 고개를 저으며 읊조렸다.


“그래, 고민은 내 역할이 아니다. 보고 들은 것을 주군께 전해드리고 판단이 내려질 동안 단련에 충실하면 된다.”


**


“하하.”


잠은 다 잤네.


박술희가 가져온 소식이 연신 뇌리에 맴돌았다.


야심한 새벽에 퇴청한 장귀평을 부를 수도, 찜찜함을 안고 다시 누울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오랜만에 명상 아닌 명상으로 사색에 잠겨보기로 했다.


정황상 신숭겸은 전장으로 삼은 지역에 머무르려는 듯했다.


애초에 혹시 모를 견훤의 북진은 아랫동네의 역량에 맡기고, 역으로 그를 핑계 삼아 부대를 빼돌린다. 계획적이고도 발칙한 작태가 연신 날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나마 소득이라면 시일이 아직 멀었다는 장교의 말.


봉기가 코앞보다는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소리였다.


“이백의 마군과 신숭겸, 그리고 박술희와 산적 부대.”


확실히 내 조커가 왕건의 조커보다 열세였다.


만일 전혀 모른 채로 후방을 내주었다면 큰 낭패를 봤을 전력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박술희가 보여준 침착한 대응을 칭찬해 주고 싶었다.


이제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피하느냐, 맞서느냐.


“장소는 왕건과 홍유가 세운 계책을 마무리할 결정체지. 순순히 발을 들일 이유가 있나 싶다가도······.”


걱정스러운 어투와 달리 내 입가에 새겨진 미소는 짙었다.


“들이박는 게 시원하지 않겠어?”


자신들의 결전지라 여기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이 땅의 주인은 나라며 능숙하게 맞받아친다면 제아무리 왕건과 홍유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절망한 얼굴을 직관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문제는.


“정확한 장소를 알아야 역으로 포위망을 형성할 텐데.”


박술희는 돌쇠인지, 까불이인지, 훈장님인지를 믿어보라 했지만, 국가 중대사를 차선책도 없이 결정하는 건 위험했다.


“남문을 나가 닿을 만한 곳이라. 숙수, 궁녀, 제초꾼, 악공의 조합을 들었을 때의 이상한 예감과 관련이 있는 걸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실마리가 너무 답답했다.


무엇보다 제초꾼은 일 년에 몇 번 마주치지도 않는 인원이었다. 아니, 그냥 마주칠 일이 없다고 봐야 했다. 기껏해야 벌초 작업이 있을 때 우연히 시간대가 겹치면.


“어?”


나 방금 무슨 생각을 했지?


다시 천천히.


기껏해야 벌초 작업이 있을 때?


“아.”


깊다.


저 조합과 마군이 빠져나간 방향은 관련이 아주 깊었다.


비로소 진실을 깨닫고 나자, 구석으로 미뤄놨던 궁예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고 들어왔다. 지금껏 자신을 외면한 나를 원망이라도 하듯이 세차게 주장을 건넸다.


궁예가 신라를 멸도라 칭하는 가장 큰 이유는.


왕족임에도 서자라는 신분과 출생 당시에 있었던 비과학적인 오명을 한가득 덮어쓴 채 버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버린 나라, 아버지, 어머니.


그러나 유일하게 궁예의 편에 서준 자가 있었다.


목숨 걸고 궁예를 살려내 도망쳐 준 유모. 비록, 사고가 있어 평생을 애꾸로 살아가게 되었지만, 신생아에 불과했던 궁예를 애지중지 키워준 유모는 일생의 은인이라 할 수 있었다.


궁예는 소년이 되기까지 유모를 어머니로 알고 살았다.


자신도 그저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평탄한 일상이 요동친 건 유모로부터 출생의 비밀을 듣게 된 이후였다. 궁예는 단 두 가지 단어만을 떠올렸다.


복수. 그리고 은혜.


신라를 땅 위에서 없애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유모의 삶을 보살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대의를 잠시 미룬 적도 있을 정도였다.


둘은 진정으로 모자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은 비켜 나가지 않았다.


“유모가 죽던 날, 궁예는 온 힘을 다해 울었지.”


그 기일이 목전에 다가와 있었다.


난 왕건이 장소를 미리 정해둔 게 이상했었다.


알고 보니 애초에 유인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가야만 하는 곳을, 가야 할 날짜에 맞춰 결전의 날로 삼은 것이다. 유모와 궁예가 태어난 날짜는 다를지라도 죽는 날짜는 똑같이 맞춰주려는 갸륵한 정성과 함께 말이다.


“위인이 아니라 사이코패스네, 이거.”


욕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 미친 반사회적 성격장애잖아. 인간이 할 짓이야?”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아니다.


궁예가 더했으면 더했지. 착하게만은 살지 않았다.


다 알지만, 이상하게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차올랐다. 점차 궁예와 동기화가 되어간다는 걸 느끼며 진정하려 애썼다.


“적을 알고 나를 알게 됐다. 부족한 게 있을까?”


최대한 침착하게 현황을 되뇌었다.


전장에서 보여줄 나와 왕건의 능력치, 배신 걱정 없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 돌파를 책임질 장수의 무위, 활용할 수 있는 계책과 지속적으로 수집할 정보력까지 모든 걸 검토했다.


그 결과.


지금이라도 보강해야 할 부분이 눈에 띄었다.


“종간이 필요한데······. 아?”


그럼 불러야지.


난 어느새 환해진 주위를 깨닫고는 목소리 높였다.


“밖에 있느냐!”


**


해괴할지 몰라도 내가 눈여겨본 부분은 선전이었다.


각종 가정 속 유불리 계산은 집어치우고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나와 왕건이 대립한다면 세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국왕 왕건과 광치나 왕건이 검을 겨눈다.


그렇다면 왕건은 반역일지라도 정의라는 인식이 씌워질 것 같았다. 내 업보가, 정확하게는 궁예가 쌓은 업보가 뒤늦게 칼날이 되어 내 목을 겨누는 거다.


적어도 응원은 받지 않더라도.


광치나께서 반역을 일으키셨어? 업적이 있으시니까 더 좋은 나라를 만드시지 않을까? 라는 여론은 없어야 했다.


이러한 웅성거림은 호족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다.


지금은 무조건 나라에서 지방관을 내려보내는 시대가 아니다. 각 지역의 호족과 유지에게 자치권을 내리고, 충성을 서약받는 시대다. 즉, 언제든 줄을 갈아탈 수 있다는 뜻이다.


이탈은 흐름을 타고 이어질 여지도 있다.


“신문고라 하셨습니까?”


내가 생각한 해답을 종간이 되물었다.


“하루에 시간을 정해 백성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가진다. 억울한 일을 토로해도 좋고, 건의 사항을 내놓아도 좋다. 요지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

“그들로서는 대전에 들어설 때까지 용기가 필요할 터. 하여 신문고라는 북을 설치하자는 이야기다. 시원하게 몇 번 치고 오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호소하는 효과도 있겠지.”


종간 답지 않게 긴 침묵을 유지했다.


사실 아직 조선도 들어서지 않은 현대의 시각으로 볼 때, 앞서 나간 느낌은 있었다. 감히 천민이 국왕의 면전으로 찾아와 자유롭게 떠벌린다? 신라였으면 즉결 심판이다.


종간이 염려하는 부분도 같은 맥락이었다.


“유사 이래 이처럼 획기적인 정책이 있었나 싶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종간은 승려 출신이다.


찬성할 수밖에 없으리라.


“뒤집어서 생각해 보자면 오직 폐하이기에 가능한 정책이겠지요. 대신들의 반대는 소신이 설득해 보겠사옵니다.”

“자네라면 지지해 줄 줄 알았네.”

“그 뜻과 노리는 바가 명확하니, 어찌 막아설 수 있겠사옵니까. 폐하께옵서는 폐하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소서.”


역시 든든해.


음, 말도 이쁘게 잘하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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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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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40 7 11쪽
»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7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1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9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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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3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5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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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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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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