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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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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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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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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DUMMY

시찰에 나섰다.


모름지기 성군이라면 신문고를 통해 귀만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살피며 필요한 부분을 살펴야 한다. 그로 인해 국정을 이끎에 동기 부여와 기운을 나누어 받고······.


음.


거짓말이다.


실은 종간과의 짧은 대화 때문이었다.


왕건에게 바른 생활 사나이 배현경이 있다면, 내게는 어쩐지 눈치 봐야 할 것만 같은 생불 종간이 버티고 있었다.


오늘도 각지에서 쏟아진 서류 파일을 들여다보며 흡사 회사원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겨우 마무리하고 바람이나 쐬러 나가려는데 어디론가 걸어가는 종간이 보였다.


“어디 가는 길인가?”

“폐하를 뵈옵니다.”


마침 잘 되었다는 종간의 눈빛은 내 착각이었을까.


“소신은 늘 이 시간쯤에 시찰 한 바퀴 돌고 들어옵니다.”

“자네가 직접?”

“업무에 귀천이 어디 있겠사옵니까. 가장 한가한 사람이 산책 삼아 걷고 오면 되는 것이지요.”


종간은 너스레 떨며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본인이 누구보다, 심지어 나보다도 더 바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대단할 뿐이었다.


“사실 소신이 자청해서 하는 일입니다. 지치려다가도 백성들의 삶에서 느껴지는 애환, 활력, 의지를 겪고 돌아오면 오후를 보낼 힘이 생기곤 하지요. 어떻게 같이 가시겠습니까?”


어쩐지 과거의 내게 질책하는 듯했다.


아니, 나 말고 궁예.


나는 잘하고 있잖아?


그래도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부끄럽게 만드는 충언이었다. 궁예였다면 콧방귀 뀌며 손을 내저었을 테지만, 나는 종간의 권유에 담긴 배려를 읽을 수 있었다.


흐린 눈으로 애써 무시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내 곁을 떠나 자유로이 좋았나?”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오늘은 오로지 자네 손에 내 목숨이 달려 있으니, 긴장 좀 해야 할 걸세. 아, 내봉령의 목숨까지 지켜야 하네.”

“그······. 소신은······. 아닙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떠들썩하게 나서는 시찰은 의미가 없다.


단출하게 움직이면서도 최소한의 호위는 있어야 했다. 그래서 박술희를 불렀다. 어차피 훈련은 밤에 이루어지고 낮에는 공사 점검뿐이니 시간은 넉넉했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장난 좀 쳐봤더니 반응이 찰지다.


이거 중독될 것 같은데?


그나저나 막상 나와보니 왠지 암행어사가 된 것 같은 색다른 묘미가 느껴졌다. 과거의 내 삶이나 다름없는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기분 전환을 시켜주었다.


종간도 옛 생각이 나는지 내게는 기억일 뿐인 추억을 읊어댔다. 한창 대화가 무르익어 갈 즈음,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음, 그러니까.


비유가 아니다.


“좀 움직여라, 이 녀석아! 제발 이 애물단지 자식아!”

“푸르릉!”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속 시원하게 말이라도 해보던가!”

“킁, 히히힝!”

“너도 나랑 살기 싫잖아. 다른 집에서 행복하면 되잖아!”


말은 대답 대신 꼬리로 사내를 툭툭 건들 뿐이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처음 보는 광경에 호기심이 동했다. 종간과 박술희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기에 다가가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보면 몰라서 물어! 이 망할······. 망할 말이······. 어?”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젓던 사내는 힐끔 쳐다본 것을 끝으로 행동을 멈췄다.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내 안대와 머리와 살벌한 기세의 박술희를 번갈아 보기만 했다.


마침내 얼굴에서 핏기가 지워졌다.


“혹······. 혹여 폐하······. 맞으십니까?”

“그렇긴 하다만.”

“아이고!”


비로소 사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는 납작 엎드렸다.


“미륵 폐하를 뵈옵니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부디 소인의 결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배움이 짧은 터라······.”


곤란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는데.


우선 종간을 시켜 용서의 말과 함께 일으켜 세우려 했다.


“폐하가 오셨다고?”

“태봉의 성군께서 저자까지 나오셨어?”

“다들 뭐하고 서 있어! 영접하러 가야지!”

“미륵 폐하, 만세! 만만세!”


뜻밖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은 그때 연출되었다.


행차를 알아챈 백성들이 주위로 몰려들며 날 연호한 것이다. 관망하는 이들도 있기야 했지만, 절대다수가 길거리에서 연예인을 만난 팬처럼 달려들었다.


박술희는 내군을 데려오지 않은 걸 후회하는 듯했다.


긴장한 얼굴로 근접하지는 못하도록 경계하며 돌발행동을 주시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게 관심법을 통해 보이는 나로서는 희열을 느꼈다.


궁예가 떴다는 소식이 들리면 두려워하던 이들.


좌판도 뒤로하고 최대한 눈에 띠지 않기 위해 숨던 이들.


그랬던 이들이 성군이니, 영접이니 하며 날 추앙한다. 변화라고는 신문고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준 것밖에 없다. 선전으로 민심을 회복하려던 계획이 보기 좋게 들어맞은 셈이다.


왕건 자식, 속 좀 쓰리겠는데?


“보람이 느껴집니다.”


종간의 짧은 소감 속 담긴 뿌듯함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 와중에 경고를 통해 장내를 정리한 박술희였다. 백성들은 내게 예의를 지킬 수 있을 만한 거리까지 물러나, 존경하는 폐하가 어떤 행보를 걷는지 궁금한 얼굴로 무릎 꿇었다.


“이 자는 어떻게 처리하실 건지요.”

“히익······!”


한숨 돌린 박술희가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마주 사내의 뒷목을 잡고는 물었다. 손가락만 까딱했다가는 곧바로 목을 베어버릴 기세였기에 조심스럽게 만류했다.


내가 누군지도 몰라서 범한 무례보다.


저 이상한 말이 가진 사연에 더 흥미가 동했기 때문이다.


“떠들썩하게 행차를 알리지 않은 건 있는 그대로의 삶을 원해서였다. 이제 과인의 질문에 답을 해주겠느냐.”


북적이던 인파는 내 존재가 드러남과 동시에 고요해졌다.


땅을 딛고 서 있는 인원은 우리뿐이었고, 모두가 고개를 조아린 채 귀를 기울였다. 그 중심에 놓인, 사건의 원흉이 되어버린 사내가 겨우 입을 열었다.


“소······ 소인은 작게나마 말을 키워다 파는 말 장수이옵니다.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한 마리, 한 마리를 정성껏 키워 제값을 받기 위해 애······ 애······ 애쓰고 있습지요.”

“쯧, 자네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게.”


뒷목을 놓았더라도 기합이 잔뜩 들어간 박술희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살짝 멀어지고 나서야 제대로 된 어휘를 구사하는 마주 사내였다.


“그중에서도 이놈은 가장 건강하고 체격도 좋아 비싸게 팔 수 있으리란 기대로 공을 들였사옵니다. 실제로 마 시장에서 관심이 쏟아졌고, 우수한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데, 팔리지 않았군?”

“그게, 사람을 태우려 하지 않습니다요.”

“으흠.”


갈수록 흥미진진해졌다.


“농마로 팔아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조건 탓에 훈련도 시켜보았습니다. 그러나 훈련사를 비롯해 용감하게 올라탄 마을 청년 몇이 심하게 다치는 바람에 골칫덩이가 되었사옵니다.”

“아무도 사려하지 않겠구나.”

“하여 오늘을 마지막으로 종마로라도 쓰려했는데, 갑자기 멈춰서서는 움직이지를 않는 바람에. 그래서, 그래서 감히 폐하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발 목숨만 살려주시옵소서!”


나는 사연을 듣자마자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로 영웅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명마가 있기 마련이다. 여포의 적토마, 항우의 오추마가 그 대표 격이지 않은가.


또 다른 일례로 김유신의 명마는 노래에도 등장한다.


내게도 왕을 위한 자칭 명마가 여럿 진상되었지만, 이거다 싶은 놈은 없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놈이 날 끌어당겼다. 그 시끄럽던 말이 조용히 내 눈만 바라보며 의지를 건넸다.


서로가 서로를 원한다는 걸 서로가 느끼고 있었다.


종간과 박술희가 무어라 의견을 주고받는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릎 꿇은 말 장수의 콧물도 중요하지 않았다.


“과인이 사겠노라.”

“폐하!”

“어어?”


선언과 함께 곧장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


사람 잡는 말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박술희가 허둥댔다. 이놈이 흉마임을 아는 누군가도 걱정스레 탄식을 내뱉었다.


“히히힝!”


하지만 반항은 없었다.


자신은 그런 말이 아니라며 변명이라도 하듯이 기분 좋은 울음을 들려주었다. 앞발을 치켜들며 환호하는 녀석의 목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곧장 지은 이름을 속삭였다.


전통적으로 아주 딱 맞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앞으로 적로라 부르겠노라.”


**


이 나라의 주인인 궁예와는 다른 신념을 지닌 무리.


나아가 새로운 신념에 대한 확신으로 진리에 도전하는 자.


그중에서도 모두를 이끌 역량을 갖춘 선구자.


“거사가 내일로 다가왔다.”


어느 역사에서는 태조라는 묘호가 붙었을 선구자 왕건의 음성에 홍유, 배현경. 그리고 중임을 맡은 신숭겸을 대신해 자리한 김락의 얼굴에 투기가 피어올랐다.


다만, 홍유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성격이었다.


“모든 게 순조롭지만, 궁예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만만치 않은 배현경이 말을 받았다.


“엊그제도 한바탕 소란이 있지 않았습니까. 궁예가 명마를 얻었다느니, 흉마를 제압한 영웅이라느니 말입니다. 저자에서부터 도성까지 온통 그 이야기로 떠들썩했었지요.”

“시찰에 나섰다는 사실부터가 눈에 띄는 변화입니다.”

“확실히 신문고를 운영한 이후로 민심이 좋아진 게 느껴집니다. 궁예도 그것을 알기에 밖으로 더 활보하는 것이지요.”


태봉은 장귀평이 이끄는 순군부가 전략을 주도했다.


물론, 백제도 신라도 그런 머리 격의 기관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왕건 일파는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발의할 수 있는 환경을 의도적으로 조성했다.


마군이라는 부대가 주체가 되어 발전한 무리이기에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문사 계열의 반군을 끌어들이기에는 집단이 추구하는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심을 잡는 이는 있었다.


유일하게 참모 역을 겸임하는 홍유.


홍유는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의견을 정리하여 계획의 기틀을 잡는다. 그렇기에 변수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에 비해 흐름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홍유는 왕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도 변경 없이 거사를 밀어붙이시겠습니까?”

“궁예는 호랑이였지.”


고저 없는 목소리의 왕건이 홍유의 물음에 답했다.


“하지만 이빨은 빠지고 발톱도 깨져나간 지 오래다. 뒤늦게 날뛰어봤자 놈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미 놈의 추태를 지겹도록 겪어오지 않았더냐.”

“이빨이 없으면 잇몸에서라도 독을 만들어 낼 독사 같은 놈입니다. 그 점을 간과하여서는 안 됩니다.”

“홍유, 자네가 그토록 걱정한다면 내 분명하게 약속하마.”


왕건은 씹어먹듯이 단어를 내뱉었다.


“어떤 수작도 부리지 못하도록 머리를 베어버리겠다. 내 모든 걸 걸어서라도 짓밟고야 말겠다. 믿고 따라와다오.”

“제 몸이 찢겨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곁에서 돕겠습니다. 대업을 달성하실 수 있도록 궁예의 사지를 붙들어 놓겠습니다.”


서슬 퍼런 눈빛의 김락이 거들고 나섰다.


『김락 / 견마지로, 다혈질, 투지, 호협함』


궁예가 관심법으로 보았다면 이러한 창이 보였을 터였다.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만인의 부장이 되길 원하는 김락이다. 나쁘게 이야기하면 사냥개고, 좋게 이야기하면 맹장의 덕목을 갖춘 김락을 잘 표현해 주는 단어뿐이었다.


“신 홍유, 주군의 결심을 느꼈나이다.”


홍유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괜히 머뭇거렸다가는 복지겸의 희생이 물거품이 될 여지도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반대 의견을 낸 건 거사에 앞서 의지를 다잡을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사건으로 흔들리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까.


왕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선언했다.


“내일이 되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미치광이 폭군은 한 줌 흙이 되어 사라지고, 첫발과 동시에 썩어버렸던 태봉은 지도상에서 지워지게 된다. 그리고 그 거름을 양분 삼아.”


모두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리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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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 직구만 던지는 미친 강속구 투수. +1 24.09.16 105 9 13쪽
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18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39 10 11쪽
17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29 10 12쪽
»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9 10 12쪽
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40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6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0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8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4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64 9 11쪽
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3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4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8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3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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