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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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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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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DUMMY

내심 걱정이 됐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 한들 받아들이는 쪽에서 두려워할 수도 있었다. 잔혹한 왕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나다. 변덕을 염려해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 고민도 했다.


다행히 기우였다.


마땅히 토로할 곳이 없어 속앓이하던 백성들. 신문고의 순기능이 진정으로 필요했던 이들의 발길이 이어진 것이다.


첫날의 핵심 주제는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궁예는 미륵 신앙의 대명사답게 불교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가가 장려한 탓에 사찰은 우후죽순 늘어났고, 우스갯소리로 승려의 신분이 장군보다 높다는 말까지 돌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치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관료 중에 승려 출신은 아직도 나와 종간. 단 둘뿐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목적이 순수 수도임을 증명해 주었다.


이야기가 딴 길로 샌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어쨌든 불교의 주요 강령은 용서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도 힘든 백성이 불합리함을 포용할 리 만무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분쟁의 중재를 안건으로 들고 왔다.


‘위대하신 미륵 폐하. 소인은 달걀을 팔아 하루하루 먹고사는 장사꾼 촉새라 하옵니다.’


‘그래, 말해보거라.’


‘소인은 겨울을 나기 위해 방앗간 말복 영감께 보리 두 되를 빌린 적이 있사옵니다. 하여 추수기에 갚으려 했사온데, 시세가 바뀌었으니 다섯 되로 돌려달라는 게 아니겠습니까!’


‘폐하! 소인이 그 말복이라 하옵니다. 파종기와 추수기의 보리에 어찌 같은 값어치를 매기겠사옵니까. 모두가 촉새처럼 행동한다면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을 것이옵니다.’


라던지.


‘존······. 존경하고 위대하신 미륵 폐하. 저, 그······. 소인은 농사꾼 만식이라 합니다. 이런 말도 들어주시는 건지······.’


‘괜찮으니 편하게 털어놓거라.’


‘제가. 아니, 소인의 농기구가 망가져 대장간 꺽정이 영감께 값을 내고 수리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영감이 한참 뒤에 하는 말이 자신의 실력으로는 못 고친다며······.’


‘흠.’


‘그럼 다른 대장간으로 갈 테니, 값은 돌려달라 했사옵니다. 그러자 이는 자신의 시간을 들인 값이니 안 된다며 내쫓는 게 아니겠사옵니까? 어떻게든 고쳐야 농사를 짓는 소인으로서는 답답함에 울기만 하다 찾아······. 찾아왔사옵니다.’


라는 내용 말이다.


사실 그들의 하소연을 듣는 건 힘들지 않았다.


법원에서 공익 근무를 했었고, 학생 때 지구대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들었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한 시골 노인들의 마찰이라 생각하니 판결하기는 쉬웠다.


나름 성공해서 판사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내 가치관이 곧 정의가 된다. 그러한 부담으로 최대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기는 해야 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대신들의 불편한 눈길이었다.


백성들은 어휘도 어눌하고, 극존칭마저 생략할 때도 있었으며, 흥분한 채로 억울함만 토로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나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뿔이 나는 건 당연했다.


하도 아니꼽게 쳐다보며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터라, 어느 순간부터는 다 내보내고 안건에 따라 필요한 대신만 남겼다.


그 외의 안건으로는 불온 조직의 고발 정도가 있었다.


이는 치안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바로 내군이 동원되었다. 해당 백성에게는 포상금을 쥐여주어 더 많은 고발이 줄을 잇기를 유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슬슬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자.


‘폐하, 소인이 비록 죽을 날만 받아놓은 늙은이 오나 서원경(청주) 인근에 살 적에 농사할 때는······’


‘존경하는 미륵 폐하, 미천한 지식이나마 들어주십사하고 찾아왔나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이 있사온데······’


등의 편의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자신의 편의성을 보장해 달라기보다는, 각종 생활 전반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들고 온 것이다. 주로 나이 든 노인들의 후세대를 생각한 일종의 기부였다.


여긴 철원 평야가 있는 곳이다.


교통의 요지인 서원경이 상업에 치중했다면, 철원은 농업이 기반이 되는 지역이므로 농부들의 말을 흘려들을 순 없었다.


트랙터를 개발한다느니, 자동화 설비를 들이겠다는 게 아니다. 그저 조그마한 의견일지라도 수확에는 도움이 될 터였다.


마침 적당한 인재를 봐둔 적이 있었다.


“오늘은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려 하네.”


평탄하게 흘러간 조회 끝 무렵, 느닷없이 선언한 나였다.


이어서 대소신료들이 나열한 무리에서 횡 방향이든, 종 방향이든 가장 구석에 놓인 누군가를 불러냈다.


『염상 / 여세추이, 손재주, 창의력, 태만, 불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끌려 나온 염상이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자네 지금 소속이 어딘가.”

“최근에 금서성으로 부서가 확정되었습니다.”


금서성은 경적이라 하여 서경, 시경, 춘추, 논어 등의 옛 고서를 관리하거나, 축문. 그러니까 제사가 있을 때 신명께 고하는 글 등을 작성·관리하는 관아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궁중 도서관이다.


나라의 기틀을 잡음에 중요하다면 중요한 부서겠지만, 관심법에서 보여주는 그의 성향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었다.


여기서 썩게 둘 수야 없지.


“자네가 빠지면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거나 하더냐?”

“소신은 그저 말단 관리일 뿐이옵니다.”

“그럼 됐다.”

“무슨 말씀 이시온지······.”

“저자의 대장간은 농민을 위해 농기구를 만들고, 궁 내의 대장간 역할을 하는 기관은 나라를 위해 무구를 만들지.”

“그렇사옵니다.”


난 모두를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신문고를 진행하며 느낀 건 그 모든 걸 아우르는 부서의 필요성이었다. 때론 촌부의 지혜를 형상화하여 적용하고, 또 때로는 토목과 건축물을 유지·보수하거나 축성에도 도움을 줄 다목적 공업 부서를 일컬음이다.”


그야말로 공병 부대.


태봉의 공업부 장관.


난 도면이 있어도 완성품을 만들지 못하는 최악의 손재주를 가졌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난 왕이다.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할 필요가 없었다. 아주 딱 맞는 신하가 있거늘.


흔들리는 동공의 염상을 보며 쐐기를 가했다.


“자네가 령을 맡아주게.”

“소······. 소신이 말이옵니까?”


마치 들으면 안 될 것을 들었다는 염상의 반응을 끝으로 대전은 적막에 잠겼다. 내가 신하 중 하나였다면 파격도 정도가 있다며 수군거렸을 터였다.


마음대로 하라지.


난 물러날 마음이 없다고.


사실 염상의 진짜 정체는 고려의 이등 개국공신이었다.


고려에서도 특기를 살려 공병 사령관으로 활약했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하며 부유하는 성격이지만, 막상 지닌 재능은 비범하기 그지없었다. 능력에 비해 의욕이 없으니, 강제로 굴리면 결과물은 내놓을 인재라는 말이다.


관심법 속 불안의 의미도 예측건대 이렇다.


하급 관리의 신분으로 내 부름을 받아서 오는 긴장은 절대 아닐 터였다. 그저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두려움, 주목받고 싶지 않았던 신념이 깨지며 오는 당황스러움.


염상은 그런 인물이었다.


“폐하.”


누군가 의문을 참지 못해 따지고 들었다.


“폐하께옵서 이번 일을 기획하며 세우신 뜻은 이해하였사옵니다. 또한, 장기적으로 태봉이 성장함에 따라 발판이 되어줄 것임도 명약관화하다 보이옵니다.”

“알아봐 주니 고맙군.”

“하지만 꼭 저 자여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신예인지라 걱정이 앞서옵니다.”


난 대답 대신 염상에게 물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옥사를 증축할 때 조언을 건넸다고.”

“설계 담당자께서 조용한 곳을 찾다가 금서성 관사로 오셨던 적이 있습니다. 골머리를 앓고 계시길래 한 두 마디······.”

“염씨 가문 내 건축물의 설계도 모두 자네 작품이라더군.”


염상은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머뭇거렸다.


그러다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염상 / 여세추이, 손재주, 창의력, 태만, 자포자기』


“예, 폐하. 어릴 적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소질을 알아보신 부친께서 맡기셨지요.”

“인근 마을에 특이한 구조물도 많다고 들었다. 그 또한 자네의 솜씨라는 소문도 내 제대로 들은 것인가?”

“부친께서 워낙 인자한 성품을 지니셔서 촌부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달라 청한 적이 있사옵니다. 전부 농업에 도움이 되는 물건으로서 폐하께옵서 하시려는 원대한 뜻과 상통합니다.”


보이는 대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보였다.


그저 장귀평의 아이들 만세.


정보력이 가져다준 승리 만세다.


나는 이래도 검증해야만 하냐는 눈빛으로 대신들을 둘러보았지만, 들리는 것이라곤 무안한 헛기침뿐이었다.


“그럼, 본인을 포함해 모두 허락한 것으로 알겠다.”

“신 염상, 폐하의 은덕에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감축드리옵나이다, 폐하!”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신설 부서의 이름은 공조부라 칭하겠다.”


조선시대 육조 중 하나인 공조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하는 일이 비슷하니 이질감은 들지 않았다.


“과인은 개발과 건축에 아는 바가 없다. 그러니 휘하의 관료는 공조부령이 알아서 채우도록 하라. 신분과 직급에 연연하지 말고 손·발이 맞는 자를 찾아오면 배속시켜 주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사실상 특급 승진을 예고한 셈이다.


그러나 업무의 특성상 정치판에 영향이 없다 보니, 권력에 민감한 대신들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급한 업무가 있거든 지시할 테지만, 그 외의 상황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하라. 또한, 어느 현장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만 잘 보고한다면 등청하지 않아도 좋다.”


이어지는 파격 발언에 염상마저도 놀란 눈치였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철저히 효율을 우선시한 내용이었다. 종간 이하 모두도 느꼈는지 수긍의 목소리를 내었다.


“신문고가 가져온 안건이 쌓여 있다. 한시라도 빨리 해결해야 하는바, 공조부령은 퇴청하여 부서를 정상화하라.”

“미륵 폐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사옵니다!”


난 비로소 미뤄둔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었다.


염상이라는 이름을 하급 관료에서 발견하고는 어떻게 발굴해야 할지 고민했었다. 애초에 염상의 진가가 발휘되기 이전이었기에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귀평 이하 아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마침 신문고가 적절한 안건도 올렸다.


왕건이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기 전에 채가는 데는 성공했으니, 이제 확실하게 내 사람으로 만드는 일만 남은 셈이다.


염상의 진정한 특기는 축성과 진지 구축.


태봉의 국경과 요지를 요새화하기 위해서는 야전 사령관만큼이나 꼭 필요한 존재였다. 더불어 대야성과 같은 난공불락의 요새도 기대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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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 직구만 던지는 미친 강속구 투수. +1 24.09.16 105 9 13쪽
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18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39 10 11쪽
17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29 10 12쪽
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8 10 12쪽
»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40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6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0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8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4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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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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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2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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