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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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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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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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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 어전이란 본디.

DUMMY

“빠짐없이 모였군.”


어전이란 본디.


긴장감이 가득하거나, 파벌끼리의 치열한 투기가 오간다거나, 진중하게 나라를 위한 대화가 나누어져야 하는 곳이다.


장난스레 행동했다가는 당장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신성한 장소이기도 했다. 절대 권력자인 국왕. 나와의 대면이란 그만큼 가벼운 사안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쩐지 묘한 기류가 흘렀다.


바로 저들과 나.


극명하게 다른 두 무리의 표정 차이 때문이었다.


대소신료들은 그 누구나. 심지어 종간과 장귀평조차도. 연신 싱글거리며 웃는 내게서 낯섦을 느꼈다. 친우 관계였다면 왜 실실거리냐며 타박이라도 하고 싶은 얼굴들이었다.


마침내 왕건이 총대를 메고 용기를 내었다.


“기쁜 일이라도 있으시옵니까.”

“이보게 광치나, 행복은 찾아오는 게 아니라네. 직접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가?”


왕건은 참을성을 발휘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소득을 거두신 모양입니다.”

“한 번 들어보겠나?”

“소신들에게도 혜안을 나누어 주시옵소서.”


그래그래.


내 깨달음을 들어라.


그리고 절망해라.


“그 전에 자네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부족한 과인을 만나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였지. 가슴 속에 응어리가 있다면 어렵겠지만 부디 풀어주게나.”

“폐하!”

“체통······. 위신을 지키시옵소서!”

“황송하옵나이다!”


대전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이 형법은 누가 뭐래도 왕에게 특화되어 있었다.


뚱뚱한 왕에게 뚱뚱하다고 하면 죽는다. 여색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충언을 던지면 죽는다. 실수를 콕 집어서 무안을 줘도 죽는다.


그런데 내가 내 입으로 사과를 건넨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무례였다. 신료들은 재빨리 무릎을 꿇고는 부디 발언을 철회해달라며 매달렸다.


“우선 끝까지 들어다오. 이건 어명이다!”


짐짓 힘을 주어 소리치자 겨우 진정되었다.


“요지는 발자취에 문제가 많았다는 걸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의에 빠져 두문불출하겠다는 의미는 또 아니다.”

“고견을 들려주시옵소서!”

“경청하겠나이다.”

“과인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는 대충 묻어두겠다는 회피가 아닌 의지니라!”


돌고 돌아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넘어야 할 관문이 많을 것임은 안다. 그 첫걸음부터 걷고자 하니, 의형대령은 그 명을 받들라.”


의형대의 령은 뜻밖의 호명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명을 받잡나이다.”

“현재 수감 중인 모든 죄수를 사면하라.”


어찌나 당황했는지 대답조차 못 하는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다른 신료들의 어버버 또한 내 목소리에 덮어졌다.


“과거의 나는 판단력이 흐려진 상태였다. 억울하게 잡힌 죄인이 없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바, 재수사를 진행하기에는 그 인력과 시간이 아깝다. 하여 무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겠다.”


대체 왜?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라는 눈빛으로 서로 시선을 주고받던 신료들이었다. 하지만 이유를 듣고 나자, 하나둘 납득하는 기색을 보였다.


넘겨짚기식으로 지어낸 말이었지만, 궁예는 실제로 억울했던 자를 가뒀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의형대령의 대답 너머로 동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합당한 처사라 사료되옵니다.”

“그들은 폐하의 은덕에 감사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역시나 종간은 꼭 필요한 질문을 해주었다.


“차후 죄인을 처벌함에 있어 바뀌는 부분도 생기는지요.”

“물론, 지금부터 선언하겠다. 첫째로 죄인을 선별할 때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죄목 별로 처벌 범위를 명확히 해둘 것이니라.”

“호오.”

“둘째로 세가 낮다 한들 호족이 죄를 지었다면 과인이 직접 참관하겠다. 이는 의형대령의 권한에 간섭하는 게 아닌 압박감을 주어 범죄율을 낮추기 위함이다.”


크.


내가 생각해도 정말 그럴듯한 명분이었다.


철저히 공익만을 위하는 마음이 아닌가. 이 내용에 딴지를 건다면 그냥 내가 싫은 거라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그 싫다는 사람이 훤히 드러났다.


구태여 관심법으로 보지 않아도 구분이 될 정도였다.


왕건을 비롯한 일등 공신들과 의형대령의 표정은 황당을 넘어 해탈에 가까웠다. 관심법 공식 달변가인 홍유라 할지라도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해 입만 우물거렸다.


하긴 왕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어쩔 거야.


아닙니다! 억울한 자가 있더라도 다 잡아 족쳐야 합니다!


라고 할 거야?


그 건방진 계책은 이제 폐기해라, 자식들아.


**


“잠깐 걷겠나?”


궁금증 가득한 얼굴의 장귀평을 기다렸다는 듯이 낚아챘다.


“많이 놀랐나 보군.”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난 왕건에게 대처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여 옥사를 나오자마자 은부와의 상의 끝에 곧바로 소집을 열.


상의 끝에······.


음?


생각해 보니 은부는 맞장구만 쳤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왕건의 계책을 파훼하는 것에 그치고 싶지 않았다. 역이용하려 구상을 해보았는데 미진한 부분이 있어 장귀평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옥사로 향한 경위부터 왜 그러한 결론에 이르렀는지까지 전부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는 내 그림을 들려주려던 차였다.


“형님 폐하!”


마침 그림의 첫 시작을 맡은 은부가 다가왔다.


“알아보라던 것은 어찌 되었지?”

“왕건이 잠입시킨 무리를 제외하고 순수 산적 등의 범죄자는 백오십여 명에 이릅니다.”

“생각보다 많은데.”

“이곳 도성과 관할이 되는 인근 현들의 범죄자를 모두 합한 수치입니다. 의형대령이 아주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여서 상세히 알아 올 수 있었습니다!”


뭐.


아주 잘 통하기까지 어떤 행위가 오갔는지는 몰라도 협조는 받아왔으니 상관없었다. 은부는 세부적인 배치와 정확한 출감 날짜, 인근 환경에 대해서 읊었다.


내가 한낱 죄수의 동선을 따는 이유야 있다.


왕건 일당은 궁예의 몸이 나로 변하기 전부터 내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해 왔다. 나와는 출발선부터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역사를 안다고는 하나, 현실엔 수많은 변수가 즐비했다.


절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왕건이 모르는 나만의 패. 나만의 부대를 조직하고 싶었다. 결전의 날을 대비한 숨겨진 검 정도는 있어야 든든할 것 같았다.


출처 없는 병사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때마침 태봉 건국 이전부터 꾸준히 토벌하던 산적을 일거에 풀어주게 되었다. 왕건의 계산에는 없는 칼잡이. 그들을 내가 품으려 했다.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한참을 듣던 장귀평의 의문이었다.


“그들은 난세를 버틸 여력이 없어서 산적이 된 것이다. 먹고 살 기반만 마련해준다면, 옷만 바꿔 입히면 바로 군인이 되는 세상 아니더냐.”

“심지어 형님 폐하께옵서는 군기를 잡는다는 목적으로 절반을 죽여도 좋다 하셨습니다.”

“새어 나갈 입이 있는 대규모 부대보다 철저하게 비밀을 지킬 정예 부대가 낫지 않겠나.”


비로소 이해했다는 듯이 끄덕인 뒤, 하나의 의문을 보탰다.


“지휘관은 누구를 염두에 두고 계시는지요. 아무리 윽박지른다 한들 통제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을 듯합니다.”


사실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은 없었다.


은부는 왕건이 주시하는 인물 중 하나다.


제3의 인물을 찾자니 무위, 통솔력, 충성심을 검증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현재 보직에서 벗어날 합당한 명분이 필요했다. 갑자기 내가 누군가를 지명한다면 왕건 일당이 뒷조사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돌고 돌아 박술희였다.


어차피 내 호위야 내군 중에서 아무나 뽑아다 써도 이상하지 않다. 어린 축에 속하는 내군 부장 하나 안 보이는 것쯤이야 변덕이겠거니 싶을 것이다.


게다가 경험 많은 내군도 통솔하는데 산적 하나 제압하지 못할까. 여러모로 적임자는 정해져 있던 셈이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내 자네를 찾은 이유는 그들이 훈련할 장소 때문이라네. 일백이 넘는 인원이 아직 파악이 덜 된 왕건 일당의 눈을 피해야 하는 문제가 남지 않았나.”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던 장귀평은 어울리지 않은. 그래서 더 무서운 비열한 미소와 함께 운을 뗐다.


“왕 광치나는 음흉하게도 모든 암수를 인근에 배치했습니다. 마치 이런 곳에 숨겨둘 줄은 예상하지 못하리라. 라는 심정으로 폐하를 능멸한 것이지요.”

“똑같이 되갚아 주자는 말이군.”

“폐하께옵서는 변화를 천명하셨습니다. 그럼, 과거의 때가 묻지 않은 장소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안정된 심신으로 바른 취미를 행할 정자라든지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튕겼다.


왕이 된 자로써 경박한 행동이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다를 실행하기에 딱 좋은 묘수인데.


“술과 고기가 아닌 시와 차를 즐길 누각 정도는 지어야겠군. 적당히 깊은 연못을 파낸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장귀평도 흐뭇한 얼굴로 답했다.


마치 이 정도의 말만 해주어도 알아듣는 게 기특하다는 표정이었다. 갑과 을이 바뀐 듯한 모양새지만, 장귀평의 신기묘산. 재능을 생각한다면 자존심이 상할 일도 아니었다.


“폐하의 건실한 일상을 반대할 리도 없습니다.”

“이제 건설에 참여할 인부로 산적 무리를 데려온다면 잠입은 성공한 셈이로다.”

“나아가 성 내를 마음대로 드나든다는 건 어불성설이니, 완공까지 숙식을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주둔까지 형통입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막혀있던 문제가 뚫리고 나면 왜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단순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지금 내가 그랬다. 장귀평과 난 마주 보며 서로가 있어 든든하다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으음.”


이 끈끈한 유대에 끼지 못한 은부가 겨우 말을 골랐다.


“박 부장에게 전달만 해놓겠습니다. 나중에 의도 같은 건 폐하께서 한 번 더 설명해 주셔야 합니다.”


**


“후욱······.”


깊은 밤.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퇴청한 궁 안.


긴장한 표정으로 연신 숨을 내쉬는 사내가 있었다.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몰라야 한다는 듯이 어둠 속을 전전하던 그가 마침내 걸음을 멈췄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건설 현장이었다.


쌓인 목재와 흙, 연장 너머로 관복을 입은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을 빼면 말이다. 그중 하나가 다가와 보고했다.


“본보기 징벌 차원으로 1명, 훈련을 따라오지 못하던 2명, 다툼으로 인해 2명이 추가로 줄었습니다.”

“그럼, 오늘로 13명이 사망한 셈이군.”

“연이은 노동과 훈련을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강도를 줄여야 할까요?”


사내는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답했다.


“절반으로 줄어도 상관없다는 명령을 잊었나? 낙오되는 자는 버린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건 오합지졸을 겨우 벗어난 부대가 아니라는 걸 잊지 마라.”


현장의 중앙으로 다가가자 깊게 파인 공터가 있었다.


설계대로라면 연못이 채워질 자리지만, 지금은 더할 나위 없는 훈련장으로 탈바꿈되었다. 달빛과 은은하게 피운 횃불을 시야 삼아 창을 찔러대는 장정들이 그 안에 자리했다.


사내는.


이들을 이끌 장수인 박술희는 재차 의지를 다잡았다.


“폐하께옵서 내리신 밀명이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명을 수행하여 나라에 이바지하겠다. 나는 그분의 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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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 직구만 던지는 미친 강속구 투수. +1 24.09.16 105 9 13쪽
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18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39 10 11쪽
17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29 10 12쪽
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9 10 12쪽
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40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7 8 11쪽
»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1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9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4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65 9 11쪽
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3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5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8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3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7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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