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법으로 삼국통일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새글

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최근연재일 :
2024.09.17 21:00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3,452
추천수 :
190
글자수 :
113,734

작성
24.08.31 18:00
조회
192
추천
8
글자
12쪽

3화 - 비상사태다.

DUMMY

아니!


좆됐다고 해서 순순히 좆됨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업보를 쌓은 사람은 마음 편하게 존재가 묘연해져 버리고, 느닷없이 빈 자리를 차지한 내가 책임질 수는 없지 않은가.


비상사태다.


나는 생존을 목표로 머리를 회전시켰다.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일.


궁예가 원 역사에서 하지 않았던, 내 강점이라 할 수 있는 기록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일.


그건 인재의 확보였다.


냉정하게 말해 현재 왕궁에서 날 위해 싸워줄 내 편은 눈앞의 장귀평을 포함해 딱 세 명뿐이었다. 왕건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을 충성심과 기량을 모두 갖춘 이만 셈한 수치다.


나머지 둘은 기록에도 잘 남아있었다.


왕건이 혁명 직후 처형시킨 종간과 은부가 바로 그들이다.


벌써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초반에 보았던 설전 당시 장귀평의 억울한 점을 풀어주겠다며 나선 내봉령을 기억하는가.


그가 바로 종간이었다.


극초기부터 궁예를 보필한 전직 승려, 태봉의 재상이나 마찬가지인 고위 관직 내봉령, 전투에는 문외한이나 올바른 신념으로 나라의 기반을 다진 정치가.


종간을 나타내는 수식어였다.


이처럼 종간이 문을 담당한다면 은부는 무를 휘어잡았다.


조선의 금군처럼 궁궐과 임금의 경호를 맡은 내군의 책임자로서 왕실 친위대와도 같았다. 마찬가지로 극초기부터 궁예의 곁에서 각종 전투에 참여한 인물이었다.


둘 다 전해지는 기록으로만 따지면 아첨을 일삼는 소인배지만, 궁예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며 반박하고 있었다.


이는 왜곡해야 할 만큼 그들의 역량이 뛰어났음을 뜻했다.


어서 빨리 소집해 회의라도 해야 할까?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여기까지 하면 되겠습니까?”


왕궁 내 각 기관의 용도를 읊던 장귀평이 물었다.


내 수신호를 오해한듯했다.


그러나 아직 홀로 수립해야 할 계획이 남아있었고, 듣다 보니 유용한 정보가 제법 많아서 멈추기는 아까웠다.


“아니다. 계속하지.”


무엇보다 적당한 백색소음은 집중에 도움을 주는 법이다.


장귀평의 강의라는 ASMR을 다시 재생했다.


돌아와 계속 이야기하자면 종간과 은부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따를 거라는 점이 역사로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구태여 부족한 시간을 투자해서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계산적이어야 할 때였다.


현시점의 궁예는 폭정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다.


명망 높은 고승인 석총을 때려죽이고, 유일한 왕후였던 강비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모자라 두 아들도 처형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아니었다면 측근 장귀평도 죽였을 터.


이미 돌아오지 못할 강은 진작에 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판국에 조금만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면?


다른 이들은 몰라도 종간과 은부라면, 과거의 영광을 기억하는 둘이라면 먼저 찾아와 힘을 보탤 것이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중추는 충분히 안고 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려 측 초기 인사만 해도 유능한 이가 한 트럭이다. 힘의 균형이 왕건 쪽으로 기울어졌음을 느꼈다.


나는 일거양득을 노리기로 했다.


이왕 기존의 궁예와 다르게 행동할 거라면 친 왕건파를 회유하거나, 아직 발굴되지 못한 고려의 공신을 낚아채는 거다.


“오랜만에 대련이나 하고 싶군.”

“태봉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장귀평은 문장을 끝맺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이 내 얼굴을 훑었다.


재상, 장군, 모사는 이미 확보했다.


내전을 앞두고 있으니 그럴듯한 행동대장 정도는 한 명 있어야 앞으로 일을 꾸리기에 수월하리라 생각했다.


마침, 내 레이더에 포착된 고려 측 무인이 이미 있었다.


뜻밖에도 아주 가까이에 말이다.


**


『박술희 / 절개, 잠재력, 담력, 청렴, 곤혹』


그러고 보니 내게만 보이는 이 창은 대체 무엇일까.


궁예가 지녔다는 관심법이 실존했다면 이런 식이었을까.


사실 정체든, 이유든, 명분이든 아무렴 좋았다.


내가 아는 정보와 비교해서 어긋나는 단어도 없으니, 신뢰도는 믿을 만하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었다.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익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철저히 이용하여 성장해 주리라 다짐했다.


어쨌든 나열된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박술희는 잠재력이 아주 충만한 무인이었다. 더불어 내가 대전을 나선 순간부터 따라붙었던 호위의 총책임자였다.


앳된 얼굴. 그와 대비되는 탄탄한 몸.


원 역사에서 박술희는 어린 나이에 능력을 인정받아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건 고려가 개국한 이후인데, 여러 전투에서 활약하며 왕건의 신임을 얻는다.


그를 대표하는 단어인 절개와 청렴.


왕건은 박술희를 태자 왕무의 후견인으로 삼는다. 물론, 이 같은 결정은 끝내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했지만, 왕건이 어느 정도 신뢰했는지는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왕건이 후대 왕을 위하여 남긴 유훈인 훈요 10조.


이마저도 유일하게 붕어 직전에 전수받은 측근이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처럼 한직에 머물러 있을 때, 왕건이 아직 그의 진면목을 알지 못할 때 내 사람으로 만들 기회였다.


“폐, 폐하······.”


박술희는 여전히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다.


먼발치에서 날카롭게 지켜보는 장귀평도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아무도 없는 대련장에서 서로를 향해 검을 뽑아 든 채였다. 자고로 무인과 가까워지려면 함께 땀을 흘리는 게 제일인 법이다.


어쩌다 보니 왕이라서 이유도 없는 전쟁을 일으킬 수도 없으니, 대련만 한 선택지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사실 나도 떨리기는 매한가지였다.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참는 중이다.


운동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내가 자신만만하게 나선 근거는 있었다. 궁예를 그저 미친 폭군 광인으로만 보는 이들이 많지만, 자세히 살펴본다면 전혀 반대였다.


정신이 나가버린 말년을 제외한다면.


왕건보다도 더 영웅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사내였다.


이는 궁예와 기억과 미래의 기록이 모두 증명했다.


흔히 게임으로 표현하는 방식인 통무지정매로 예를 들자면 모두 90 이상인 S급 인물이었다.


왕건의 군사 업적 중 하나로 나주 점령을 꼽는 이가 많다.


하지만 왕건은 당시 해상 관리 담당자이자, 뺏고 뺏기는 공방전 속 재탈환을 지휘했을 뿐이다. 최초로 깃발을 꽂은 건 궁예의 판단이었으며, 전면에서 직접 군사를 이끈 결과였다.


이는 과감한 작전 수행과 더불어 대규모 부대도 문제없이 통솔할 능력이 된다는 증거가 될 터였다.


무력 또한 기마와 궁술에 능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떠돌이 승려의 신분으로서 장군의 자리에 올랐고, 사졸을 휘어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반박이 불가능했다.


지력과 정치는 거의 100에 가까웠다.


힘을 모으던 당시 지휘관이라 하여 홀로 대우받지 않았고, 수익은 균등하게 분배하였으며, 점령지를 수탈하기는커녕 베풀어 주며 순행하니 민심을 휘어잡는 결과를 가져왔다.


적당한 시기에 북원의 군벌 양길을 등지는 선택.


옛 고구려의 유민을 끌어모으기 위해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고 짓는 등 시의적절한 피아 구분도 한몫 거들었다.


매력은 또 어떠냐.


역성혁명이 끝나가는 순간까지 궁예를 지지했던 친 궁예파.


왕건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던 명주의 호족인 김순식의 사례가 인간성을 지지해 주었다. 심지어 김순식은 고려 건국 이후에도 10년간 항전하며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이 몸에 새겨진 본능을 믿었다.


움직이는 자가 나일지라도 경험이 각인된 근육을 믿었다.


“어찌 감히 폐하를 공격할 수 있겠습니까!”

“뭐야, 어명을 거역한다고?”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시옵······. 폐하!”

“칙서라도 써서 전해줘야 덤벼들려나.”


한참을 티격태격하던 우리는 목검으로 극적 타결을 보았다.


“불충이라 생각하지 마라. 괜히 날 위한답시고 살살 해주는 게 오히려 불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감을 담아 덧붙였다.


“과인이 더 강하다.”


아무리 낭랑 18세의 어린 호위관이라고는 하나, 실력에 자부심이 없다면 여기까지 이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도발에 박술희는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았다.


확실히 액션 영화에 기반한 내 자세와는 수준이 달랐다.


박술희도 그걸 느꼈는지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위협적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어설퍼서 함정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결국, 선공은 내 차지가 되었다.


까짓거 맞기 아니면 처맞기라는 심정으로 검을 내질렀다.


가볍게 흘러 낸 박술희가 역으로 덤벼들었다. 어떻게 내 옥체에 해를 끼치냐던 엄살치고는 꽤 진지한 몸놀림이었다.


“흡!”


눈을 감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당황했지만, 휘적거리며 용케도 방어해 냈다. 기본기 없는 움직임이라고는 해도 단단한 팔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완력만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충격에 놀란 박술희가 어깨를 돌리며 거리를 벌렸다.


“어딜.”


난 흐름을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단숨에 파고들었다.


가속력을 이용한 찌르기였다.


나름 묵직하다고 봤건만 몸을 돌려 피해낸 박술희의 목검이 내 등으로 쏟아졌다. 꼼짝없이 정타를 허용하나 싶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한 바퀴 구르고는 발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전혀 계산하지 않은, 나도 모르게 나간 공격이었다.


빡-


경쾌한 타격음이 손목을 타고 전해졌다.


추측은 정확했다.


궁예의 신체는 허접한 정신을 상회하는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일격이 먹히자 내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불충을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봐주는 중이냐는 내 말에 박술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절뚝거리던 박술희는 이내 고통을 삼키고는 나와 합을 맞췄다. 속도감에 잠시 헤매었지만, 이어 나갈수록 검이 가야 할 길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굽었던 무릎은 펴지고, 어설펐던 자세도 본모습을 찾았다.


재밌는데?


키보드나 두드리던 내가 한가락 하는 역사 속 무인과 호각으로 겨루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재밌었다.


일진일퇴.


한 번 다가가면 다음에는 물러나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애초에 죽이기 위한 승부가 아니었기에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그림은 서로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반 병사가 보기에는 상당한 수준일 터였다.


“어디 해 질 때까지 겨뤄보자고!”


나는 포효와 함께 잡념을 날려버렸다.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싶었다.


**


“이런 괘씸한 호위를 보았나.”


땀에 젖은 채로 뻗어버린 박술희를 향한 내 감상이다.


누구 하나 치명적인 공격을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남아있는 체력으로만 따지면 내 판정승이었다. 내심 수련에 집중하면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하게 만든 승부였다.


물론, 박술희가 아니라 내 이야기다.


박술희야 알아서 잘 크겠지.


“죄송합니다, 폐하.”


거친 숨을 몰아쉬는 박술희는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는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내가 원하던 결과는 충분히 이룬 것 같으니, 진짜 괘씸하다며 벌을 내릴 수는 없었다.


털썩-


그냥 나도 바닥에 드러누웠다.


내 기행에 기겁하며 일어난 박술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어쭈? 쉬고 싶어서 요령 피운 거 아니야?


그러나 덜덜 떨리는 두 다리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변명하는 듯했다. 그만큼 놀랐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폐, 폐하······. 체통을 지키시옵소서.”


차마 내 몸에 손대지는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박술희를 구원해 준 건 뜻밖에도 참관자 장귀평이었다.


“폐하, 예전처럼 흙 내음을 벗 삼아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관심법으로 삼국통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은 21:00 입니다. 24.09.08 95 0 -
22 22화 - 포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 NEW +1 22시간 전 84 9 12쪽
21 21화 - 직구만 던지는 미친 강속구 투수. +1 24.09.16 105 9 13쪽
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18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39 10 11쪽
17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29 10 12쪽
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8 10 12쪽
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40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6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0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8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4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64 9 11쪽
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3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4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8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3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5 8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