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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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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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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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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DUMMY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왕건은 늘 주목받는 위치에 있는 만큼 암계를 직접 실행할 수 없다. 일거수일투족이 이미 감시받고 있는 것과 같았다. 즉, 행동대장 역을 해줄 존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 촉은 여기서 발동되었다.


왕건이 역사와 달리 고려 개국 공신들의 밥상을 받은 게 아니라, 개국 공신을 부리면서 일을 도모해 왔다면 미륵상을 파괴한 진범의 윤곽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공신.


말 그대로 개국의 공신이 되면서 출세한 이가 대부분이다.


박술희의 경우를 예로 들어봐도 태봉 시절에는 고위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니 왕건과 달리 행동에 제약이 없고, 사적인 일을 핑계로 잠시 자리를 비워도 의심받지 않는다.


그들을 용의선상에 올린다면?


심지어 사서에 의하면 2천여 명이나 되는 3등 개국 공신은 일개 군인, 포섭된 행정가 따위였기에 실질적인 수뇌부는 열 명 남짓한 인원이 전부였다.


그렇게 차 떼고 포 떼면.


난 이미 진범을 알고 있는 수준에 도달한 셈이다.


전직 승려다운 종간의 빛나는 정수리를 도화지 삼아, 천천히 음미하는 찻잔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시간을 돌려보았다.


국가의 중대사인 제향이다.


하물며 내가 직접 이곳에 머물며 하늘에 항의하는 연기 중이기에 대소신료 중 누구도 퇴근하지 못했다. 제각기 거처를 마련해 원정으로 업무 지시만 내리는 실정이었다.


어지간한 고위직조차 내 수발을 들기 위해 대기 상태인데, 기껏해야 중견에 불과할 공신이 자리를 비운다면?


아주, 매우, 굉장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러한 평판을 감수하고, 뒷소문이 나돌 걸 감수하면서까지 갖가지 핑계로 자주 떠나간 놈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내 지식과 궁예의 기억이 힘을 합쳤다.


내가 아는 이름과 궁예가 마주했던 얼굴을 대조했다.


음.


아니고.


얘도 아닌데?


어?


오!


“찾았다.”


나도 모르게 육성을 내뱉었다.


종간이 뜬금없는 독백을 의아하게 쳐다보았지만, 내 표정이 적잖이 심각해 보였는지 잠자코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놈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거물.


가히 거물이라 칭할 만한 놈이 모든 증거를 쓸어 담고 있었다. 우선 녀석은 무장이다. 하지만 여타 장군급처럼 지휘관이나 맹장으로 분류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진정한 진가는 전장이 아닌 도성에서 발휘되었는데.


후방 공작을 통한 치안 유지의 달인.


이게 녀석의 주특기였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왕권 강화에 방해되는 정적을 합법적으로 제거할 빌미를 만들어 준다는 뜻이었다.


제왕이라면 누구도 멀리할 수 없는 재능이었고, 왕건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당히 고려 개국 공신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그 재능이 지금은 날 겨누고 있었다.


더 시간을 끌 이유가 없음을 느꼈다.


“잘했다.”


짐짓 본인이 말실수를 한 건 아닌지 불안해하던 종간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역할을 해준 내 공신에게 가볍게 웃어주고는 밖으로 나섰다. 마치 점집을 연상케 하는 형형색색의 치렁치렁한 천을 지나 목적지로 향했다.


무당이 휘어잡은 제사상 주변에는 나름 진지하게 임하는 대신들이 곁을 지켜주었다. 이제 장난질은 끝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나마 익숙한 향취가 나는 곳에 닿았다.


마군. 그러니까 기마 부대의 주둔지였다.


당연히 전 병력이 머물 공간은 없었기에 지휘관 위주로 꾸려진 풍경이었는데, 그곳에서 녀석의 실물을 목격했다.


어딘가 지쳐 보이는 심신.


또 무슨 개짓거리를 꾸미고 있긴 하구나 싶은 그때.


“폐하.”


유난히 누군가의 이쁨을 받는 사람이 있다.


그건 외모, 성격과 별개로 그럴만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슬슬 주름살이 얼굴을 덮고, 정리 안 된 턱수염이 너저분한 눈앞의 사내가 내 신뢰를 독차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야에 남방의 미륵상이 흉수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장귀평은 내 예상이 맞았다는 들뜬 기색 없이.


그렇다고 흉수를 향한 분노의 감정도 없이.


마침 본인이 남방을 맡고 있었기에 미륵상은 무사하다는 첨언만 할 뿐이었다. 이후 가져온 성과를 담백하게 읊어댔다.


“흉수의 손에 들린 갖가지 연장이 부랑자가 아님을 나타내주었습니다. 이에 소신은 선택을 내려야 했습니다.”

“포박하느냐, 살길을 만들어 주느냐.”


장귀평은 잠시 이채를 띤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다.


자고로 백수라면 현실과 거리가 먼 로맨스보다는 스릴러, 미스터리 장르의 드라마·영화를 파게 되는 법이다. 그간의 덕질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말씀하신 대로 죽이는 건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또한, 이미 목숨을 내던진 패악질이라 판단하여 포박 후 자백도 포기하였지요. 하여 소신과 아이들은 포위망을 열어주었습니다.”

“오호.”

“흉수도 범인은 아니었는지 아군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물러나는 기색이었습니다. 심지어 한발 더 나아가 대기 중이던 일행을 뿔뿔이 흩트리며 혼란을 유도하려 했습니다.”

“제법 꾀를 부린 모양이지만, 자네에겐 어림도 없었겠지.”


장귀평은 과분하다는 반응과 함께 아이들의 눈썰미 덕을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 어둠 속에서 정확히 우두머리의 특징을 기억해 분별해 냈다는 것이다.


이쯤 되니 궁예는 실패했던 아이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싶어졌다. 그중에 단 한두 명이라도 내 측근으로 둘 수 있다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후일로 미루고는 뒷말에 귀를 기울였다.


“기척을 죽이고 최대한 조심히 추격했습니다.”


이유가 예상되었다.


“일종의 근거지가 있을 거라 보았군. 들고 왔다던 연장을 숨겨놓고 일행이라던 자들과 흉사를 도모한 바로 그 장소가.”

“그렇사옵니다.”

“그래서 결과는?”

“교전 후 놓쳤습니다.”


여러 사건이 압축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장귀평의 의복에까지 묻어있는 핏물로 보아 짐작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상대는 마군 소속의 지휘관이자,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공신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힘으로 제압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장귀평의 성격상 수확이 없다면 날 찾아올 리 만무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매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다만 근거지를 확보하였고, 1차 수색 결과로 가져온 물품입니다. 범위를 넓혀 더 찾고 있사오니······.”


난 그 종이를 보는 순간 유레카를 외치고 싶었다.


안 그래도 녀석을 압박할 카드가 없어 고민이었는데, 이거라면 충분히 증거물 역할까지 해줄 수 있을 터였다.


장귀평은 의미가 크지 않은 물건이라는 듯이 말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애초에 용의주도한 놈이기에 신원이 특정될 만한 걸 남겨뒀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종이.


이걸 두고 도주할 만큼 몰아붙인 장귀평과 아이들을 칭찬하고 싶었다. 나는 씩 웃으며 증거물을 고이 챙겨 두었다.


준비는 끝났다.


때마침 내 행방을 찾아 부리나케 다가온 종간에게 말했다.


“제향을 잠시 멈추고 모든 이를 이곳으로 데려오라.”


**


어명 위에 놓인 건 아무것도 없다.


이내 한 명의 열외자도 없이 모두 소집되었다.


심지어 무당마저 분위기에 압도당해 참석한 채였다. 나랏일이라면 제외시켰을 테지만, 소문을 퍼트려 줄 백성이 한 명쯤은 필요했기에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난 그들의 시선을 느끼며 목표를 향해 다가갔다.


거리를 벌리라는 뜻으로 가볍게 손짓하자 우리 5명. 아니, 녀석, 삼 인의 마군 장군, 나, 내 그림자인 박술희까지 6명만을 위한 작은 무대가 만들어졌다.


“마군의 지휘관인 마군 장군, 그리고 마군 장군의 상관이자 실질적인 총책임자인 마군 대장군.”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내 목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군병 전체가 정예나 다름없는 마군의 대장군이라면 무관 중에서 광치나 바로 밑 서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략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병과니만큼 당연한 영광이지.”


누군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현재 공석으로써 마군은 광치나의 통솔하에 놓여있다. 왕 광치나의 역량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지만, 이리 걸출한 인재들의 앞길을 막아둔 셈이 아닌가.”


지켜보던 이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비로소 내 기행의 목적을 알아챈 듯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새로운 마군 대장군을 선출하려 한다. 네 명의 마군 장군은 영광을 위해 시험에 응하겠느냐.”


말하자면 이런 거다.


어라, 회사에 차장 자리가 비어 있었네?


거기 만년 과장 4명.


승진 걸고 대결 한판 할까?


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제안이라 자찬했다.


제향 중이라는 특이점이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허용 가능한 범위라고 생각했다. 실제 여론도 내 손을 들어주었다.


마군에 대한 내부 평가가 제법 좋았는지, 대장군이 취임하여 단단한 조직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러한 주위 반응이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숙고하던 장군들이 한 명씩 무릎을 꿇으며 의지를 전했다.


“영광을 쟁취할 기회를 주시어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때아닌 열기가 달아오르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선택한 종목은 무예가 아니다.


“좋군. 지필묵을 가져오도록.”


마군이라는 특징에 맞춰 마와 창을 준비하려던 시종이 잠시 멈칫거렸지만, 내 확고한 음성에 머지않아 걸음을 떼었다.


준비되는 동안 잠시 장귀평을 바라보았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게 내가 무엇을 노리는지 예감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상상이 맞출 거라는 의미로 가볍게 입꼬리를 들어 올려 주었다.


“자고로 최고 지휘관은 내실을 다져야 하는 법. 몇 가지 안건을 읊을 터이니, 각자의 생각을 담아 공백을 채워 보거라.”


그리고.


“첫째로 고착된 정국을 파훼하고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태봉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보라.”


“그 방향성에서 마군이 담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도적 떼의 수장인 견훤을 짓밟기 위해 힘을 집중해야 할 요지. 나아가 돌파해야 할 전장은 어디로 삼아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넷째, 국운이 다한 멸도를 제압해야 할 적기는 언제가 좋으며, 견훤과 합심하지 못하게 할 방안이 있는가.”


안건이 하나하나 공개될 때마다 작은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저 미친 왕의 유흥이자, 하루만 유효한 변덕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대계의 일부분이라 받아들이는 듯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하니 우습네.


나는 묘수를 발휘해 해결책을 발의한 게 아니다.


칼잡이들 승진시켜 준답시고 생각을 강요한 것이다.


그런데도 진지한 대화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반응이라니. 신하들이 말년의 궁예에게 거는 기대치가 너무도 낮았음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앞으로 놀랄 일 천지겠어.


어?


이 몸은 썩은 동태 같던 말년의 궁예와 다르다고.


아무튼 마군 장군들은 제각기 열심히 답을 적어나갔다.


한참을 그들의 붓 놀림을 바라보다 문득 시선을 돌렸는데,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겨우 참아야만 했다.


복잡미묘한 표정을 차마 숨기지 못하는 왕건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하필 이런 때에 하필 녀석을 지목해서 기행을 시키는 것 자체가 불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왕건의 걱정은 현실이 될 터였다.


더욱 재밌는 건 사실 답지에 무엇을 쓰던 결말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왕건 변비 앓고 있음. 견훤 여자한테 인기 없음. 따위의 말을 적어도 내 관심을 끌 수는 없었다.


시험이라는 방식을 채택한 의도는 따로 있었으니까.


마침내 하나둘 작성이 끝나고 채점 시간이 다가왔다.


학생들아.


아니, 문제 학생아.


『복지겸 / 간웅, 중상모략, 변설가, 안목, 뚝심』


“적은 걸 내게 다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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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 직구만 던지는 미친 강속구 투수. +1 24.09.16 105 9 13쪽
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18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38 10 11쪽
17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29 10 12쪽
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8 10 12쪽
15 15화 - 내심 걱정이 됐다. +1 24.09.11 139 7 11쪽
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6 8 11쪽
12 12화 - 어전이란 본디. +1 24.09.08 160 10 12쪽
11 11화 - 홍유, 배현경, 신숭겸. 그리고 복지겸. +2 24.09.07 168 10 11쪽
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9 9화 - 사람 심리가 그렇다. +2 24.09.06 164 10 12쪽
8 8화 - 미륵상 소실은 인재입니다. +2 24.09.05 164 9 11쪽
»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3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4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8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2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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