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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작품등록일 :
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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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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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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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DUMMY

쩝.


다시 태어나겠다고 다짐한 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피바람은 보류하고 생각에 잠겼다.


왕건이 원하는 것.


내가 갇혀있는 거다.


강제 은거 상태에 돌입하는 순간, 내 눈과 귀를 막아 본인의 질주에 제동을 걸지 못하게 되는 순간. 혁명을 위한 발판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라는 대로만 해주지 않아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어떻게?


상대는 미신을 제동의 카드로 들이밀었다.


아니, 지금의 시대상으로 볼 때는 미신이 아니라 진리다.


현대에서는 운 나쁘게 떨어진 벼락에 불과할지라도 이들에게는 하늘이 전하는 전언과 동일시됐다. 애당초 벼락 자체가 꾸며낸 일일 확률이 높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나라에 흉조가 들었다고 여기는 마음.


그걸 부정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이룰 수 없었다. 그러니 내가 제시할 카드도 미신이어야만 했다. 미륵상이 파괴된 것보다 더 강력하게 하늘 운운할 수 있는 카드 말이다.


다행히도 있었다.


“재밌군.”


실소 끝에 내 입이 열리자 모두 숨을 죽였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하던 대전은 적막에 휩싸였다.


“왕 광치나.”

“예, 폐하.”

“내 하나 묻지.”


지목당한 왕건조차 긴장이 가득했다.


당초 예상과는 다른 반응을 내가 보인 탓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군주라며 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건넨 질문도 그러했다.


“그대가 고귀한가, 과인이 고귀한가?”


“소신이 어찌 폐하와 견줄 수나 있겠사옵니까. 그런 계산을 한다는 자체가 불경한 일이 오니 부디 거두어 주시옵소서!”


“형미 대사가 영험한가, 과인이 영험한가?”


“형미 대사가 아무리 명성이 높다고 한들, 한낱 미물에 불과하옵니다. 미륵의 현신인 폐하와 어찌 비교하시는지요!”


딱 내가 원하던 정석 답변이었다.


내가 그만큼 중요한 존재이니 피하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다.


“자네의 말대로라면 내가 세운 국가에 해를 끼치지 말라며 항의해 볼 자격도 내게만 있는 것 아닌가 싶네만.”


왕건은 비로소 내가 말하려는 바의 주체를 눈치채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딴지는 사절이다.


“모두 들어라!”


이제 이 재미없는 연극을 끝낼 때였다.


“하늘이 이유 없이 내지른 분노에 굴복하는 건 멸도나 백제의 수장이나 하는 짓이다. 천벌이 두려우니 몸을 피하라? 하하, 과인이 그들과 같은 겁쟁이로 보이는가!”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광치나의 충심은 퍽 기특하나, 과인의 책무를 떠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봉령!”


종간이 내 호출에 응답했다.


“분부 내리시옵소서.”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제향을 지내겠다. 미륵의 이름으로 당당히 따져 물을 테니, 만반의 준비를 하라 이르라!”


**


미신의 파훼법은 미신에 있었다.


유일하게 자격이 되는 내가 하늘이랑 대화해 볼게. 그러니 너희 신하 놈들은 잠깐 빠져 있어봐. 왜, 내 말이 틀려?


라는 논리는 왕건이 휘어잡은 여론을 금세 뒤집었다.


왕건도 어쩔 수 없다고 느꼈는지 일단은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완전한 백기는 아닐 터였다. 일을 꾸민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순순히 계획을 접을 리가 없었다.


“순군부령 장귀평을 불러오라.”


문밖에서 박술희의 대답이 들려왔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주제가 나를 괴롭혔다.


내가 궁예가 된 이후 처음으로 맞은 왕건의 잽이다.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몸으로 느끼고 나니, 조금은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문제는 왕건의 입에서 형미 라는 핑곗거리가 지속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둘의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서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진 건 분명했다. 다만, 천벌 이야기가 거짓인 걸 알고도 왕건의 뜻에 동참한 형미의 의중이 궁금했다.


이미 왕건의 왕도에 매료됐나?


그것만은 아니길 바랐다.


끝까지 내 선언에 답변을 해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내 다짐을 들을 때의 형미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휴.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러나저러나 내가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앞으로 왕건과 나는 암투를 이어 나가야만 하는 운명이다. 그 과정에서 형미가 기준으로 삼은 정도를 왕건이 벗어나기를,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이 그 안쪽이기를 바랄 뿐이다.


싸움은 이제 시작이었다.


“폐하, 신 장귀평 도착하였나이다.”


때마침 싸움의 선두 주자로 삼을 선수가 등장했다.


장귀평은 내정, 정치와는 거리가 먼 모사꾼이다. 필시 자신만의 첩보 조직을 거느리고 있으리라. 지금 필요한 건 그들이 뛰어줄 발과 원하는 걸 목격해 줄 눈이었다.


왕건의 꼬리부터 잡아야 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두서없이 내뱉은 질문에도 장귀평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예상한 답변과는 조금 달랐다.


“직접 맞서시겠다는 결심을 들으니, 절로 평원을 누비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형미 대사를 만나 나누었던 문답이 진심인 것을 다시금 확인받을 수 있었사옵니다.”


이런.


아무래도 장귀평은 엎드려 있느라 미륵상의 파편을 가져온 병사의 복색을 살피지 못한 듯했다. 그저 귀로만 들었기에 왕건의 말을 모두 진실로 여기고 있었다.


사찰 앞에서 왕건을 함께 만났고, 내 측근이라 부를 수 있으며, 계책에 능한 인물일지라도 거짓을 잡아내지 못한다.


바꿔 말하자면.


왕건을 향한 신료들의 신뢰가 그만큼 두텁다는 의미였다.


“내 설명이 부족했나 보군.”


가볍게 혀를 차자 장귀평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제야 내 얼굴에 내려앉은 수심을 눈치챈 듯했다.


“무엇이 폐하의 어심을 괴롭히는지요. 혹 제향과 관련된 문제라면 소신도 내봉령 어른을 돕겠사옵니다.”


나는 어떻게 서두를 꺼내야 할지 잠시 망설여졌다.


괜히 관심법 운운했다가는 기껏 올려둔 신뢰만 깎아 먹을 터였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이, 역당을 역당이라 맘 편하게 부를 수 없는 현실이 우스웠다.


그래서 고민은 짧았다.


에라.


그냥 납득시킬 방법을 찾지 말자.


“알다시피 미륵상은 동방, 남방, 북방에도 설치되어 있다. 이미 하나를 파괴한 놈들이니, 나머지는 더 쉽게 시도하리라 생각한다. 제향이 진행되는 동안 감시를 맡겨도 되겠나?”


장귀평은 내 말이 끝났음에도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귀로는 분명 들었다.


그러나 머리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듯했다.


너무 직구였나?


“실례가 안 된다면 인위적이라고 생각······. 아니, 확신하시는 연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현재로서는 심증뿐이다. 하지만 자네가 물증. 나아가 현장 적발까지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에게 단호히 말을 이었다.


“제향이 진행되는 기간은 절대 짧지 않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만큼 반드시 다시 움직일 것이다. 다시 묻겠다. 거리가 먼 세 지역을 자네의 사정권에 둘 수 있겠나?”


내가 미륵임을 앞세워 하늘에 고한다.


그런데 미륵상이 또 부서진다.


신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무능, 천벌이 점차 다가온다는 공포, 더욱 강력히 도피를 주장할 수 있는 명분. 한 번의 성공이면 왕건은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그러니 손 놓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내 의지가 전달된 걸까.


비로소 장귀평이 마음을 굳혔다.


“소신을 돕던 아이들을 기억하십니까.”


첩보 조직 이야기였다.


궁예의 기억을 뒤적거려 보니 구면이긴 했다. 그러나 얼굴을 맞댔다는 뜻은 아니었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대한으로 줄여야 활동이 수월하다며 만남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감히 왕과의 대면을 거부한다?


맹랑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만큼 실력과 수완만은 최고였다며 궁예는 회상하곤 했다. 태봉이 건국되기까지 음지에서 일조한 이름이 없는 자들이 바로 아이들이었다.


실제 아이인지, 표현만 그러한지도 전혀 모른다.


오직 장귀평만이 부릴 수 있는 미지의 세력.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때였다.


“오랜만에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겠습니다. 미륵상에 접근하는 자는 그 누구도 제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허언과는 거리가 먼 장귀평이다.


이 정도로 자신감을 표한다면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심지어 밀명을 받은 이상, 미적거릴 시간이 없다며 일어나 보겠다고 한다.


“부탁하지.”


**


『종간 / 왕좌지재, 현사, 헌신, 순후함, 청빈』


단언컨대 사료와 가장 정반대인 인물 1순위였다.


시대만 잘 태어났더라면, 주군이 궁예가 아니었다면, 궁예가 폭정을 저지르지 않고 통일을 이루어 냈다면.


수많은 IF 중 하나만 현실이 되었어도 일개 아첨꾼이란 오명은 생기지도 않았을 터였다. 나아가 을파소, 황희, 류성룡 등과 같은 명재상 반열에 올랐을 수도 있었다.


비약이라 치부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진심이었다.


그런데.


종간의 역량을 충분히 체감하고도 내다 버린 내 몸뚱이의 전 주인은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말년에 이르러 정신병이라도 강하게 온 게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기야 지낭 장귀평도 죽였을 놈인데.


매사에 옳은 말만 하는 종간은 거슬려 했을 것 같다.


“폐하와 다시금 찻잔을 기울일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물론, 나는 아니다.


작금의 자리는 내가 아닌 종간의 청에 의해 만들어졌다.


명분인즉슨,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끝끝내 장귀평을 살렸고, 다시 측근으로 기용하는 모습이 기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궁예의 재기를 꿈꿔왔던 걸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 간 원 역사의 종간이 떠오르는 한마디였다. 덕분에 우리는 단숨에 의기투합을 이뤄냈다.


계산적으로 종간과의 접촉을 미룬 나날이 후회될 정도였다.


“순조롭구나.”

“폐하의 진심이 닿은 것뿐입니다.”


내가 말한 순조로운 흐름은 제향이 아니었다.


종간의 여전한 수완이 불러온 여파였다.


제향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심혈을 기울임과 동시에 소문을 퍼트렸던 모양이다. 어느새 나는 천벌에 맞서는 용사나 다름없어졌고, 나라를 위해 희생하려는 성군이 되어 있었다.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민심을 당겨오는 효과를 가져왔다.


본래의 계획과 완전히 틀어져 버린 왕건 입장에서는 속이 쓰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시선에서는 이보다 완벽한 카운터 펀치가 없었다.


말 한마디.


그것도 내봉령씩이나 되는 고위 인물이 흘리듯이 뱉는 말이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는지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내 얌전한 언행은 상승세에 쐐기를 박았다.


나는 벌써 나흘간 미륵상이 파괴된 사건 현장에 머물렀다.


이는 제향이 진행된 지 나흘이 흘렀다는 말과 같았다.


이러한 시간은 모두 돈과 직결되었다.


격에 맞는 시설을 짓거나 개조하는 일, 임금의 호종부터 따르는 각 대신의 노비와 사병들이 먹을 음식을 구하는 일, 일일이 궁에서 공수해올 수 없는 각종 생활용품까지.


자연스레 인근 주민들에게 떡고물이 풀릴 수밖에 없었다.


폭군이 접근한다는 소식에 긴장했던 백성은 온데간데없었다. 뜻밖의 횡재로 인해 연신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천벌에 대항하는 일에 거든다는 자부심이 그들을 감쌌다.


심지어 성질머리를 죽인 궁예가 패악을 저지르지 않으니, 적어도 일대에 한해서는 전성기 때의 민심을 되찾고 있었다.


“소신께 꿈에 있다면 순군부령을 비롯해 태봉을 건국했던 공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이옵니다.”


종간은 자조 섞인 웃음과 함께 찻잔을 들이켰다.


날숨과 함께 튀어나온 한탄은 덤이었다.


“각 파벌끼리의 의미 없는 견제가 사라져야만 가능한 일이지요. 특혜니, 차별이니 정치적인 음해가 뒤따를 생각을 하니 사적인 연락조차 취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이해가 되었다.


장귀평에게 씌워진 누명마저 이용해 먹으려 하지 않았던가.


꿈을 이루려면 나를 도와 태평성대를 이룩해야겠다며 말을 끝맺는 종간이었다. 그 소박하고도 어려운 꿈을 곱씹으며 궁예의 기억을 회상했다.


각종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어?


잠깐만.


조금 전에 엄청 중요한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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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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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9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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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3 8 12쪽
»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5 7 12쪽
5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8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3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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