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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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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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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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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DUMMY

『왕건 / 왕재, 덕왕의 자질, 천명, 인복, 용장, 영걸, 와신상담, 당혹』


자연스럽게 발동시킨 관심법을 보며 잠시 눈을 의심했다.


?


나라 한번 세워보라고 하늘이 점지해 준 운명.


뭐, 그런 건가?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이라니.


그래도.


악의를 내려놓고 하나하나 곱씹어 보자면, 내가 기억하는 태조 왕건과 잘 어울리는 평가뿐이었다. 난세를 잠재우고 삼국을 통일하는 위업은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비벼볼 수 있는 창구라면.


왕건은 숙적이라 할 수 있는 궁예나 견훤처럼 자수성가형 군주는 아니었다. 기록을 돌이켜보면 절묘한 위기의 분기점마다 본인의 능력이 아닌 누군가의 구원을 통해 돌파했다.


인복이 용장이나 영걸보다 앞서 새겨진 이유였다.


필연적으로 왕건과 부딪쳐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반드시 노려야 할 약점이기도 했다. 주체가 되는 왕건보다 수족부터 잘라내야 한다는 뜻이다.


내 옆으로 슬며시 나서는 박술희의 경우처럼 말이다.


뿌듯함을 감추고는 물었다.


“어디 가는 길인가?”


왕건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아마도 폐하와 같은 용무인 듯싶사옵니다.”

“형미?”

“힘들게 모셔 온 분이니 자주 찾아 뵙고 괴롭혀야 그 의미가 빛을 발하지 않겠사옵니까. 매번 불공으로 가벼워지는 제 주머니는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겠지만요.”

“광치나 어른의 봉급이 어디 쉬이 메마르겠습니까. 폐하와 나라를 위한 일이니 더 열심히 비워보시지요.”

“이런, 자네 앞에서는 무슨 말을 못 하겠군.”


왕건의 농담을 장귀평이 받으며 화기애애함이 연출되었다.


장귀평과 박술희는 물론, 종간과 은부마저도 내 주적은 국외에 있다고 믿는다. 왕건은 끌어안아야 할 아군이라 여기기에 조금의 경계심도 품지 않는 모습이었다.


언젠가 내가 믿는 이들을 모아 회동을 연다면 꼭 왕건의 민낯을 폭로하리라 다짐했다.


이미 형미와 유착 관계를 맺은 건 아닌지 슬쩍 떠보았다.


“그래, 좀 도움이 되던가?”

“폐하께서 폐하시기에 많은 조언을 얻고 있습니다.”

“내가 나라서?”

“폐하의 뿌리는 곧 불교. 미륵의 현신이기에 저 같은 범인은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간혹 있었습니다. 그때, 형미 대사를 찾아 어떻게 보필해야 하는지 조언을 받았습니다.”

“날 위해서였군.”

“소신은 폐하의 검입니다.”


왕건의 목소리가 한층 진중해졌다.


“주인의 목표물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움직임보다 근육의 떨림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신은 그 깨달음을 형미 대사를 통해 이루어 보려 할 뿐입니다.”


쳇, 잘 빠져나가네.


태연하게 대답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어쩐지 꺼림직했다.


단순히 왕건이 내 목숨을 노리고 있어서는 아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혹이라는 단어가 맺혀있던 것. 대면 직후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눈동자가 흔들렸던 것.


마치 나를 마주쳐서는 안 될 장소라서 놀란 기분이었다.


그 중심에는 형미가 있을 터인데.


대체 둘의 관계와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아직 캐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았으나, 이토록 순수하게 충심을 표현하는 이를 붙잡는 것도 이상했다.


“역시 자네가 있어 든든하군. 앞으로도 힘써주게나.”


그저 덕담 한마디와 함께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등 뒤로 멀어지는 왕건의 기척이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오늘이 내가 궁예로서 마주한 왕건과의 첫 대면이었다. 가슴이 떨려옴을 느꼈다. 두려움? 흥미?


그런 것과는 조금 종류가 달랐다.


내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었지만, 역사적 승자와 전력으로 겨뤄볼 수 있겠다는 기쁨에서 기반했다.


호승심.


왕건의 경쟁자로 나를 인정해 보려 한다.


**


그리고 꺼림직한 기분의 정체는 오후에 바로 밝혀졌다.


모든 관료를 소집하여 대전 회의를 주최할 수 있는 권한.


이른바 집합!


을 시전할 수 있는 권력자는 태봉 내에 3명이 존재했다.


먼저 최고 존엄 0순위의 나.


다음으로 외정을 담당하는 신하 서열 1순위의 왕건과 내정을 담당하는 서열 2순위의 종간이 그 당사자였다.


그런데 왕건과 종간이 합심하여 긴급하게 소집 소식을 알려왔다면? 그 사안의 심각성은 말하지 않아도 체감되었다.


바로 지금.


왕좌 아래 도열한 문무백관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내 참석을 확인한 종간이 밖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불렀다. 이내 평범한 병사 복장의 사내가 들어왔다.


“태왕 폐하를 뵈옵나이다.”


그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부복했다.


“소신은 마군 척후대 소속으로써 평시에는 도성을 나가 혹시 모를 위협을 탐지하고, 아국의 주요 지형지물을 관찰하여 전시에 비교 자료로 쓸 수 있도록 기록하고 있습니다.”


꽤 참신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찰이라는 개념을 훈련으로 향상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고, 내통자의 꼼수나 매복 따위를 알아채기도 수월해질 것이다.


척후대.


궁예의 유산이라 생각하고 활용도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본 게로군.”


굳이 언급한 본인의 업무와 연관이 있으리라 보았다.


병사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박술희가 건네받고는 내게 전해주었는데 검게 그을린 돌 파편으로 추정되었다. 절단면이 날카로운 것이 힘에 의해 깨진 듯했는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서······. 서방(西方)을 수호하는 미륵상의 파편으로······.”


미륵상?


속성으로 진행했던 장귀평의 강의에서 들은 기억이 났다.


도성 철원을 기준으로 동, 서, 남, 북 사방의 길목에 장승과 함께 세워둔 이른바 수호신이었다.


미륵은 곧 궁예를 뜻하니, 액운을 막기 위해 한발 앞서서 지킨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실제로 근 몇 년간 국외적으로는 승전보만 터지며 제 역할을 해주었다고 했다.


국내적으로는 궁예 본인이 액운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알기로는 최근에 비가 오는 등의 악천후는 없었다. 하지만 파편은 앞서 말한 대로 깨어지고 그을려 있었는데 마치 벼락에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병사도 그 부분을 지적하려 했으나 여의찮아 보였다.


“······정찰을 마치고 복귀하는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다가가 보았더니······. 산산이 부서져 있었습니다. 서둘러 잔해를 챙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낙······. 낙······.”


병사는 차마 뱉고 난 후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더듬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워 보일 그때.


누군가가 보고를 이어받았다.


“폐하!”


왕건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외쳤다.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할 불경한 말을 지껄이는 소신을 용서하지 마시옵소서! 병사와 근처 주민의 말에 따르면 낙뢰가 만들어 낸 참상이라 하였습니다.”


서열 1위의 광치나가 엎드린다.


나머지가 꼿꼿이 허리를 치켜세운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어느새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바닥에 이마를 맞대었다.


“소신이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해당 지역에 마지막으로 먹구름이 목격된 것은 아흐레 전이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미륵상은 나흘 전까지만 해도 건재하였다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그것도 하필 나를 상징하는 미륵상 머리 위로.


왕건의 보고는 점차 절규로 변해갔다.


“신 광치나! 참담함을 안고 형미 대사를 찾아가 이에 대한 해석을 물었습니다. 모든 대소신료의 걱정을 대신 담아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랐사온데······.”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군가의 훌쩍이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분위기는 굉장히 무거웠지만, 그에 반해 나는 어이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일종의 콩트라는 의심이 들 만큼 도저히 몰입되지 않았다.


“뭐라던가?”

“나라에 불운이 닥칠 것이라는 끔찍한 흉조라 하였습니다. 다른 자였다면 요설을 휘두른 죄라도 묻고 싶었지만, 형미 대사의 영험함은 모두가 아는바. 흘려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하하.


재밌다. 개그 재밌어.


척후대 소속이라는 병사의 몰골을 보라. 어찌나 급하게 달려왔는지 땀이 채 식지도 않았다. 이는 방금 도착해서 곧장 최고 상관인 왕건을 찾았다는 뜻이다.


이는 서둘러 관료를 소집하기 직전에 속칭 참상에 대해 들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형미를 찾아 해석을 물었다고?


아침에 나와 마주한 때를 말하는 거라면 시간대가 맞지 않는다. 방금 다녀온 거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재밌게도 나머지는 이를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쏘아붙이는 왕건의 속도감도 한몫 거들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신뢰를 받는 인물이다 보니 설마 거짓말이겠어? 라는 심리를 이용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찰 앞에서 대화까지 나눈 사이다.


작전이라면 좀 수정하는 정성을 보여야 하지 않나 싶었다.


임기응변이 약하거나, 그만큼 날 호구로 보거나인데.


궁예의 평소 행실로 미루어 보아 후자가 분명했다.


일단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낼 겸 맞춰줘 보았다.


“그래서 과인이 어떻게 해야 한다던가.”


왕건은 곤란한 낯빛을 지우지 않은 채 답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죄책감이라 생각할 정도로.


“비슷한 사례가 적힌 기록을 찾아보겠다 하였습니다. 소신도 사람을 풀어 해결법을 찾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울 생각입니다. 이에 신 광치나 왕건! 간곡히 바라나이다.”


내가 무어라 답변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왕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정한 목표를 털어놓았다. 하늘 아래 이런 충신이 없다는 듯이, 모든 액운을 홀로 떠안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말이다.


“혹여 폐하께 변고라면 생긴다면 태봉은 재기할 힘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것만은 막기 위해 소신이 천벌을 대신 받는 한이 있더라도 방도를 찾겠나이다. 그러니 정사는 관료들에게 맡기시고 산수 좋은 명당이라도 찾아 자적하시옵소서!”


얼씨구?


“옥체를 보중하셔야 하옵니다.”

“옥체를 보중하셔야 하옵니다!”


에에?


누군가의 선창이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후창이 따라붙었다.


사람을 풀어 해결법을 찾겠다더니, 심복은 죄다 여기에 있었다. 문제는 좋은 의도 탓에 모두의 목소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왕건의 목표는 모든 대소신료의 바람이 되었다.


관심법을 발동시켜 주욱 훑어보았다.


몇몇 이들의 감정에서는 왕건을 향한 감복이 떠올랐고, 누군가는 극진한 충성심에 소름을 느끼고 있었다.


왕건의 연기가 보기 좋게 먹혀들어 갔다는 증거였다.


나는 작금의 행태로 왕건에 대한 의문 한 가지가 해소됐다.


기록에 따르면 왕건의 즉위는 개국 공신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형태로 표현된다.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간절한 부추김에 어쩔 수 없이 일어선 영웅 말이다.


개소리 더하기 개소리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잘 활용한 위선자의 포장이었을 뿐이다. 그는 누구보다 개벽을 바라고 있었다.


사찰 앞에서 날 마주하고 당황한 이유가 비로소 밝혀졌다.


본인이 오후에 주장할 알리바이와 정면으로 위배되는 행적임을 내가 직접 목격해 버렸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왕건은 가증스럽게도 정면 돌파를 선택했고, 성공하는 듯 보였다.


“큭큭.”


지랄.


내가 알고도 당해줄 허술한 놈으로 보여?


“크크큭.”


난 터지는 웃음을 억지로 막지 않았다.


심각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실소다 보니 짐짓 섬뜩함마저 자아냈다. 내 무사태평을 바라던 신료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흩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진짜 궁예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자존심 하나로 먹고살던 그가 숨지는 않았을 텐데.


칼춤이라도 췄으려나?


나도 피바람 좀 몰고 와 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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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 직구만 던지는 미친 강속구 투수. +1 24.09.16 105 9 13쪽
20 20화 - 대체 그놈은 정체가 뭡니까? +1 24.09.16 122 9 12쪽
19 19화 – 태봉은 건재하다. +1 24.09.15 125 9 12쪽
18 18화 - 채 펴지 못한 새싹을 그대로 밟아주리라 마음먹었다. +3 24.09.14 138 10 11쪽
17 17화 - 몸은 묘소에, 마음은 전장에. +2 24.09.13 129 10 12쪽
16 16화 - 말이 통하지 않는 말을 붙잡고 말싸움을 해대는 사내. +1 24.09.12 12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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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 산적들이 점점 군인이 되어감을 느꼈다. +1 24.09.10 144 7 12쪽
13 13화 - 인재라 해도 짝을 잘 만나야 한다. +1 24.09.09 156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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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 - 축제로구나! +3 24.09.06 161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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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 이번 사건의 배후에 왕건이 있다. +1 24.09.04 172 8 12쪽
6 6화 - 왕건이 원하는 것. +1 24.09.03 184 7 12쪽
» 5화 - 대놓고 천명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인물. +1 24.09.02 178 7 12쪽
4 4화 - 땀, 술, 추억. 그리고 소탈함. +1 24.09.01 178 7 12쪽
3 3화 - 비상사태다. +1 24.08.31 192 8 12쪽
2 2화 –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과거의 나. +2 24.08.30 220 8 9쪽
1 1화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1 24.08.30 235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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