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수놓는 마법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시니레네
작품등록일 :
2024.08.30 12:24
최근연재일 :
2024.09.13 22:42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229
추천수 :
0
글자수 :
87,661

작성
24.08.30 15:15
조회
33
추천
0
글자
10쪽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DUMMY

우리는 모두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우주의 모든 것은 정해진 법칙에 따를 뿐인 수동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이 말은 마력의 등장으로 깨졌다.


마력, 언젠가 불현 듯 나타나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이다. 이를 통해 모든 존재는 기존의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경우 정신과의 감응이 강해 대체로 정신을 이용해 마력을 다룬다.


또한 마력은 이 세상 자체를 밀어내고 법칙을 무시하는 성질, 존재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성질이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제한적으로나마 법칙을 벗어난 현상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인간이 기존의 세계로부터 자유의지와 주체성을 찾았다는 철학적 의의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마력이 많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자연법칙을 무시하는 현상을 일으키려면 자연법칙에 상응할 만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상상을 해야 한다.

게다가 상상(의식)뿐만 아니라 마력을 통제하는 정신세계(무의식) 역시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세계여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어렵다. 먼저 현실 세계와 정신세계의 격차가 커지면 인간은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데 큰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들면 당연한 것들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해지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헛소리를 하기도 한다.

또한 정신세계의 안정성이 떨어져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체계가 붕괴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심리학적, 뇌과학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세계 자체가 이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자연법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현상을 주로 이용한다. 즉, 반쪽짜리 자유의지인 것이다.

-<마력학개론>에서 발췌


“바보들”


어린 소녀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읽던 책을 덮으며 말한다.

“정신이 붕괴되는 게 무서워서 자유의지를 포기하다니”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오랜만에 읽은 책이 고작 이 정도라니 실망스럽군.”

아이는 책을 바닥으로 던지며 다소 결연한 어조로 말한다.

“나는 그 누구의 이해를 얻지 못해서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다해도 내 자유를 찾는 것을 멈추지 않을 거야.”

이 소녀처럼 보이는 누군가의 정체는 지구에서 가장 기존의 세계에 벗어나 있는 정신세계를 가진 인물이다. 정확히는 이를 시도했던 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1세대 마법사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이 아이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는 미스테리하다.

아이는 바닥에 던져진 책을 발로 차고 침대로 가서 잠에 빠진다.

------------------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귀로 들은 것도, 눈으로 본 것도, 냄새를 맡은 것도, 하다못해 육감으로 느낀 것도 아니다. 그저 있다는 인지가 선행된 이후 그것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선(線). 수학적으로 또는 인공적으로 모난 곳 없이 세상을 가르는 선이 떠오른다.


그러나 떠오른다는 것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을 봤다는 것인지, 생각을 떠올렸다는 것인지,

생각이라면 단순히 개념을 떠올린 것인지, 아니면 시각적인 형상을 떠올린 것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 공허는 이런 이상적인 선이 구현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앞뒤 양옆 위아래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생각과 이미지들만 나열되는 무질서한 곳이다. 선은 아직 공간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 경계가 생겼다. 그러나 무(無)는 서로 구분되어도 무(無)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곧이어 무언가 휘거나 왜곡된 것 같은 굴곡감이 느껴진다. 그 굴곡감이 마음속의 선을 휘게 한다. 휘어진 선은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처럼 동적이고 불규칙하지만 미끄럼틀처럼 인공적이다.

질감은 무른 고체이다. 색은 하얗고 반투명하다. 하지만 아직 무언가는 아니다.


이 요소들이 삼차원 공간이 아닌 다른 세계에 구현된다면 어떨까? 아니, 구현된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무언가는 곧 나의 기억과 뒤엉키며 내가 인지하는 ‘있다’에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된다.


하얗고 반투명하게 시작하여 끝내 덧없는 것을 떠올린다.

비누에서 비눗방울들이 퍼져나가는 것이 보인다.


동적이지만 동시에 정적인 것을 떠올린다.

비누로 된 판에 굴곡을 가한 듯한 머리카락이 보인다. 직선과 원으로 된 완벽하고 부자연스러운 모양이다.

그러나 그 과장된 굴곡은 바람에 휘날리는 커튼보다 더 생동감이 느껴지고 정지된 형상은 마치 과거의 기록과 같아 이전에 어떤 강렬한 사건이 있었을지 상상력을 자극한다.


완벽하지만 그렇기에 불완전한 것을 떠올린다.

비눗방울들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아직 공간조차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세상에서,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는다.

마치 순수한 빛이 오색으로 나뉘고, 또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변하는 듯하다. 그러자 비눗방울 속이 알록달록한 물감으로 차오르고, 세상은 빛으로 된 실체로 가득 찬다.

비눗방울이 내 생각에 영향을 준 것이다.


‘축하해, 너희가 이 세상을 바꿨어.’


비눗방울은 빛을 자신의 투명한 몸에 투과시켜 스팩트럼처럼 여러 색으로 나눈다.

알록달록한 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물감이 남는다.

차오른 물감은 이따금 빛을 발하며 다른 비눗방울과 소통한다.

그러나 비눗방울은 이내 터져버린다.

이것은 완결된 이야기일까? 아니면 텅 빈 공허일까?


그렇게 생겨난 비누소녀가 나를 바라본다.

그러자 이야기를 만들고 바꾸는 존재인 내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너도 그렇게 떠나갈 거야?”


비누소녀가 나를 인지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 소녀에게 있어 나는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듯한 유리구슬이다.

비누소녀의 생각을 알게 되자마자 나는 비누소녀 앞에 그 유리구슬로 나타난다.


비눗방울들이 물감에서 빛을 발하자 타일, 욕조, 물이 만들어진다.

비눗방울들이 정의한 공간이, 만들어낸 색이 이야기의 무대를 형성한다.

나의 기억을 재해석한다. 나의 생각의 일부임에도 이들은 마치 독립적인 개체 같다.


욕조가 놓여있다.

주변의 타일이 일렁이며 넘실거린다.

점점 욕조의 물이 채워진다.

사물들이 동글동글한 추상화처럼 녹아내린다.

녹아내려서 욕조로 들어가 빛을 발한다.

욕조 안을 들여다볼수록 그 작고 흔들리는 빛이 세계처럼 느껴진다.

나는 욕조에 둥둥 떠다니며 그 빛들을 조금 흡수해본다.

기억들이 떠오른다.

금속성의 물건들은 빛을 흡수하는 나와는 반대의 존재이다. 비누는 세균과 우리를 단절하듯 세상과 나를 단절하는 재료이다. 나의 기억에 대한 비눗방울들의 해석이 흥미롭다.


빛들을 바라볼수록 어떤 세계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비누소녀가 비누 받침대를 타고 와 나를 건져 올린다. 비누소녀의 몸에서는 계속 비눗방울이 나오고 있다.

비누소녀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이 비눗방울들을 살릴 방법을 알아냈어.”


그러고는 그대로 욕조로 몸을 던졌다. 비눗방울들이 욕조 안으로 낙하한다.

.

.

.

그리고 너도

.

.

.

몸이 가라앉는다

의식이 침전한다

깨어나야 하는데...


물속에서 빛의 물살이 나를 덮친다.

현실의 기억이 그 물살에 섞이고 뒤엉켜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촛불을 끄면 숲이 웃을 거야. 숲이 웃는 건 사실 새가 웃는 거란다. 우리가 숲에서 웃을 수 있는 소리는 새소리뿐이거든, 하하하.


뒤엉킨 기억이 미치광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

괴로워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진정하도록 귀를 막아줘 보자.

여전히 헛소리가 들리지만 머릿속이 조금 진정되는 듯하다.

현실의 기억 대신 어떤 이야기가 나의 머릿속을 채운다. 꿈이 이야기를 만드는 중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를 이야기의 인물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뭔데, 이 나레이션 같은 말투는, 너는 이제 이야기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고.

쉿, 꿈의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자. 꿈에게 현실의 기억을 빼앗길 지언정 이야기 밖에서의 관점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기억하자. 자각몽에서 중요한 건 현실의 기억이 아니라 관조자의 입장이다.




극중극.


후 후우 후

비누소녀의 날숨에 기포들이 만들어진다. 기포가 사물들을 감싼다. 비누소녀는 사물들에게 말했다.

“이제 너희도 어른이야.”

나 또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유지하기 위해, 망각하지 않기 위해, 더이상 변화하지 않는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보글보글

나의 차례가 왔을 때 그 소녀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더니 나의 몸속의 구슬을 울린다.

구슬이 울리며 물을 진동시킨다. 구슬 모양의 동심원이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마치 ‘나’ 자체가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존재를 증명하는 듯하다.

비누소녀는 나에게 물었다.


“만약 계속 아이로 지낼 수 있다면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


내가 대답한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어.”


비누소녀는 계속 사물에 기포를 씌우며 말한다.

“그거 아니? 어른은 정말 따분해.

무얼 보든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런 감흥이 없어. 떠오르는 생각이나 드는 감정이 없나 봐.

게다가 분명 지금 당장 눈앞에 무언가가 있는데도 보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

아니, 아마 처음에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거야.”


나는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지 않으면 계속 변화하다가 결국 세상에 흩어져 버릴거야.”


비누소녀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너는 괜찮아, 구슬을 가지고 있거든. 우리 상상놀이를 해보지 않을래? 우리같은 아이들만 할 수 있는 놀이야.”

“무얼 하면 되는데?”


비누소녀는 사물에 기포를 씌우는 것을 멈추고 나에게 말한다.

“날 따라와.”

비누 소녀가 물에 섞여 있는 무언가를 움직여 기류를 만들어낸다. 그 앞에서 비누소녀가 내게 손을 내민다. 내가 그 손을 잡자 물살이 일고 비누내음이 퍼진다. 어딘가 가슴 한편이 아릿해진다...

.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꿈을 수놓는 마법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하는가 24.09.13 5 0 14쪽
15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24.09.12 5 0 13쪽
14 가게 24.09.11 7 0 13쪽
13 가게 24.09.10 7 0 13쪽
12 가게 24.09.09 8 0 12쪽
11 입학 24.09.08 10 0 11쪽
10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7 11 0 12쪽
9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6 10 0 13쪽
8 신은 어째서 외로운가 24.09.05 11 0 12쪽
7 시작 24.09.04 13 0 14쪽
6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3 12 0 13쪽
5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2 11 0 11쪽
4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9.01 13 0 10쪽
3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1 16 0 11쪽
» 비눗방울은 결국 터진다 24.08.30 34 0 10쪽
1 평범한 누군가 24.08.30 57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